# 210
2부 7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변종을 상대해 본 대원들에게 가장 힘든 점을 물어본다면 백이면 백, 놈들의 속도를 뽑을 것이다.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시야에서 사라져 절묘한 사각지대를 노리는 영악한 변종 놈들.
특히 시가전이나 소규모 전투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는 가공할 속도는 2차 격변 초창기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간 치명적인 무기 중 하나였다.
허나 그들이 서서히 진화하듯, 목숨을 대가로 정보를 쌓은 인간들도 천천히 놈들에게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속도에 대항하기 위해 끊임없이 재수정되는 교본과 수많은 신무기들.
그리고 그중에 제일 가성비가 좋다고 꼽히는 무기는 바로 노인이 들고 있는 작살 총이었다.
핑!
노인이 방아쇠를 당기자 작은 발사음이 고막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체를 떠나 빠른 속도로 놈에게 날아가는 작살.
그리고 신속 정확한 조준에 놈은 작살을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상반신에 직격탄을 맞았고 끔찍한 비명과 함께 지붕 위에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섭섭했다.
노인은 몸체에 작살이 꽂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작살 끝부분에 연결된 줄을 강하게 당겼다. 그러자 작살 촉에 숨어 있는 칼날이 활짝 날개를 펼치며 놈의 살점을 강하게 부여잡아 버린다.
빼내려면 직격 부위 전체를 도려내야 하는 잔인하고 악랄한 무기.
변종보다 더 악랄하다는 그 명성에 걸맞게 작살 총을 맞은 놈은 꼭 다리가 묶인 맹수처럼 버둥거리며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기동성을 완전히 빼앗은 노인은 밧줄을 양손으로 꽉 붙잡으며 지붕에서 뛰어내렸고 이내 나에게 거친 고함을 내뱉었다.
“동윤아, 후딱 정리하자!”
나와 용팔이의 뜀박질은 자동반사적이었다.
우리 손에 죽은 머리귀신만 4마리.
물론 가사 상태에 빠져 나를 속인 변종은 처음이었지만, 놈의 기동력이 묶인 이상 평소와 똑같이 대가리를 터트려 주면 되는 것이다.
달려간 용팔이는 그대로 노인을 도와 밧줄을 당겼고, 나는 마치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창고 벽을 타며 지붕 위로 올라갔다.
쾅! 쾅-!!!
몸이 묶인 놈은 미친 황소처럼 날뛰며 작살과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파고드는 칼날은 더더욱 놈을 속박했으며 밧줄을 잡은 노인과 용팔이는 있는 힘을 다해 밧줄을 당긴다.
그리고 노인과 용팔이가 최선을 다해 놈을 묶어 놓을 동안 나는 조용히 대검과 44구경을 뽑으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이제 나의 시간이다.
“끼이이기기이익- - -!!”
철을 찢는 것 같은 괴음이 놈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한눈에 봐도 패닉상태에 빠졌다는 알 수 있는 무의미한 발버둥.
포식자로 태어나서 포식자로 살아가던 놈에게 사냥꾼의 등장은 자신의 세계관을 뒤집는 죽음의 역전이었을 것이다.
“- - - - 후.”
숨을 뱉어 망설임의 이명을 없앤다.
두 번은 없다.
이대로 죽이지 못한다면 놈은 죽음의 두려움을 학습하고 진정한 포식자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죽여야 했다.
재빨리 자세를 낮게 숙인 나는 놈에게 미친 듯이 뛰어가며 본능이 그리는 경로를 쫓았다.
후웅-!
허나 놈은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도 척추 반사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내 목을 노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고를 인지하기도 전에 목이 달아났을 엄청난 속도.
하지만 흑백의 수채화 속에서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내 허리는 그대로 뒤로 젖혀지며 공격을 피해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태풍처럼 사방에서 날아오는 손톱과 최소의 움직임으로 그걸 피해내는 내 몸.
대검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44구경의 방아쇠는 빨리 자신을 당겨 달라는 듯 파르르 떨려왔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순간 내 목이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
“더 당겨, 인마! 너 그래 가지고 결혼이나 하겠냐!”
그리고 밧줄을 당기고 있는 노인은 생각 외로 거센 저항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용팔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반신이 부실하다느니, 그래 가지고 힘이나 쓰겠냐느니.
남자의 자존심을 살살 간지럽히는 노인의 잔소리 덕분인지 용팔이는 이를 악물고 양팔에 힘을 줬다. 그리고 악을 지르는 기합과 함께 바닥에 누우며 밧줄을 당겨 버린다.
쾅-!
그러자 각진 지붕과 밧줄에 순간적으로 들어간 힘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미쳐 날뛰던 놈이 그대로 지붕에 넘어져 버렸다.
그로기 상태, 용팔이와 노인이 만들어 준 다 한 번의 기회.
나는 엎드려 있던 그 자세 그대로 발을 박차고 뛰어가며 놈에게 몸을 날렸다.
시간이 느려지고 시선의 공간이 줄어든다.
발버둥과 같이 의미 없는 공격을 피한 나는 놈의 몸체로 그대로 밟으며 올라탔다.
수시로 바뀌는 균형과 뒷목이 빳빳해질 만큼 위험한 순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사선마저 익숙한 듯 넘으며 마치 황소를 타듯 놈의 몸체를 관통 작살의 밧줄을 붙잡았다.
사지가 끊기고, 머리의 일부분이 날아가도 움직일 수 있는 지독한 변종 놈.
진화와 진화를 거듭한 놈들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선 머리 자체를 없애 버리거나 재생하지 못하게 몸을 불태워야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을 위해 준비한 잭슨의 리볼버를 앞으로 조준했다.
끼릭-.
“- - - 끽 ”
실린더가 회전하고, 약실을 채운 탄두가 놈의 뒤통수를 향한다.
그리고 미친 황소처럼 발광하던 놈은 등에서 느껴지는 나의 숨소리와 차가운 총구를 이제야 인지했는지 마치 죽기진전 동물과 같은 마지막 괴음을 내뱉었다.
죽음, 힘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맞이하는 순간이 드디어 놈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탕-!!!
해머가 힘껏 뇌관을 치자 대구경 저속탄이 기다렸다는 실린더를 빠져나와 대기를 찢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박살이 나 버리는 놈의 머리통은 비어 버린 약실처럼 뻥 뚫려 버린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지붕 바닥에 떨어지는 뇌 조각과 더러운 뇌수들. 미친놈처럼 발악하던 놈의 몸체는 떨림이라는 마지막 단발마를 끝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립을 잡은 손과 팔에 그대로 전해지는 여운과 떨림.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화약 냄새를 빠르게 떨쳐낸 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대검을 다시 수납했다. 그리고 살며시 오른쪽 발을 들어 지붕에서 죽은 놈의 시체를 바닥으로 밀어냈다.
“…….”
그리고 힘껏 발을 놀려 바닥에 쿵하고 떨어지자, 창고 구석에 있어야 할 잭슨이 넋을 놓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다른 세상의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미묘한 눈빛.
나는 괜찮냐는 물음 대신 정말 딱 한 발만 사용한 리볼버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좋은 총이네요.”
* * *
[동윤 씨, 미 육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차량을 확보했다는 좋은 소식과 함께 차후 행동에 관한 조언을 얻으려 강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내가 기쁜 소식을 꺼내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말을 끊은 강 형사는 미 육군이 움직였다는 다급한 소식을 나에게 전해왔다.
“……갑자기요 ”
각주의 방위군이 아닌 미국 연방정부의 육군이다.
그런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말 그대로 미국이 이 재난사태에 대응해 대대적인 군사행위를 취하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그들이 왜 이제야 움직이는지에 대한 어이없음이 몰려왔다.
[저희 측도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입니다.]
그리고 내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피곤한 한숨을 푹 내쉰 강 형사는 나를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서부 지역에 지원을 보낼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언가를 숨기듯 소극적인 움직임만을 보여 주던 미국 정부.
우리가 원정길을 가게 된 것도 캘리포니아 지원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그들 때문이지 않았던가
허나 원정팀이 도착하자마자 타이밍 좋게 움직이기 시작한 미 육군은 어이없음을 넘어선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진즉에 좀 움직이지, 그동안 조급함을 생각하니 열불이 난다.
“나중에 또 연락하겠습니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허나 적어도 적군이 아닌 군대가 지역을 수복하며 이곳으로 오고 있다니 나쁜 소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떨떠름한 기색을 삼키며 강 형사에게 차후 연락하자는 말을 주고받았고, 이내 위성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동윤아!”
그리고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자마자, 마을 차고 근처에서 노인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가 끝나자마자 타이밍 좋게 나를 찾는 노인. 나는 쪼그려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짐을 정리하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많이 아꼈다. 아까는 고생 많았어.”
길 한복판에 앉아서 남은 탄약을 점검한 노인이 나를 향해 흐뭇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최소한의 화력을 사용해 사냥에 성공한 머리귀신.
아까 전 전투에서 사용한 탄약은 나와 용팔이, 각 한 탄창씩에 불과했고 심지어 노인은 총알 한 발 쏘지 않았다.
앞으로 험난할 여정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효율적인 전투였던 것이다.
덜컹-!
“트럭은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반쯤 무너져 내린 차고 앞에서 허름한 트럭을 점검하던 잭슨이 얼굴에 묻은 기름때를 닦아내며 말했다.
아까와는 달리 안색이 많이 좋아진 얼굴과 목소리.
나와 일행들 덕에 고립과 변종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마을 주민들은 희망을 되찾은 얼굴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마을 재건에 힘쓰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나, 둘, 셋. 오케이 ”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조용히 모자를 벗으며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마을을 둘러보았다.
주민들에게 손짓 발짓하며 부비트랩의 설치를 도와주는 용팔이와 우리의 짐을 신기해하며 다가오는 아이들과 놀아 주는 노인.
서로 언어가 통하는 건 아니었지만 얼굴에 머금은 웃음은 하나같이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한동안 하늘을 메우고 있던 우중충한 구름이 지나가고 하늘 한복판에는 맹렬한 빛을 쪼아대는 태양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의 활동반경이 줄어들고 생존자들이 움직이기 좋은 최적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잠깐의 휴식을 끝마치고 채연이가 있는 곳을 향해 다시 출발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연료는 아마 충분하실 겁니다.”
그리고 잭슨은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나에게서 작별의 순간을 읽었는지 이마 위에 땀을 닦으며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트럭 양옆으로 매달려 있는 수많은 기름통들과 트럭 짐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말린 옥수수들.
잭슨과 마을 주민들이 곧 떠나가는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신경 써 줬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저…….”
그리고 낡은 트럭의 문을 열려던 나는 문득 강 형사와의 통화내용이 생각나 떠나기 전 잭슨을 향해 좋은 소식을 알려 주려고 했다.
하지만 잭슨은 내가 물자를 사양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내 말을 끊어 버렸다.
“괜찮습니다. 옥수수야 다시 농사 지으면 되고, 연료는 없으면 그만이죠.”
그냥 미 육군이 오고 있다고 말해 주려고 한 건데……. 뭐, 괜찮겠지.
정감 가는 시골마을과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다시 볼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곧 군인들에게 구출될 그들의 앞날을 조용히 축복해주며 잭슨과 마지막 악수를 나눴다.
부비트랩 설치를 모두 끝내고 트럭 뒤 칸에 타는 용팔이와 운전을 도맡아 해 줄 노인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떠날 준비를 끝 맞췄다.
허나 내가 조수석에 한쪽 발을 올린 그 순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민들 사이에서 한 앳된 아이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아저씨!”
교회 창고 앞에서 낡은 초록색 책을 들고 이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아이였다.
그리고 나를 부른 아이는 깜짝 놀라며 자신을 따라온 삼촌과 함께 트럭으로 다가왔고, 이내 품속에 꼭 안고 있던 낡은 책을 나에게 내밀었다.
“제 보물이에요.”
입술이 우물우물 거리는 서툰 영어.
아이는 자신의 보물이라는 말과 함께 낡은 책을 나에게 내밀었고, 뒤따라온 삼촌은 흐뭇한 얼굴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표지가 다 낡아 무슨 내용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이 책.
하지만 고마움의 의미로 보물을 건네준 동심을 파괴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한 손으로 그 책을 받아들었다.
“자, 오라이!”
이제 진짜 출발할 시간이었다.
트럭 뒤 칸에서 되지도 않는 영어로 마을 주민들과 작별인사를 한 용팔이는 경쾌한 신호와 함께 트럭 통통 두들겼고, 노인은 능숙하게 시동을 걸며 도로를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로 보이는 마을사람들은 전부 손을 흔들고 있었고 나는 한쪽 팔을 밖으로 내밀며 또 다른 여정을 준비했다.
“sir! 잠, 잠시 만요!”
허나 그 순간 엑셀을 밟은 조수석 백미러로 아차한 얼굴의 잭슨이 황급히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또 뭐냐는 얼굴로 천천히 속도를 줄여 주는 노인.
나는 재빨리 조수석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다급히 뛰어오는 잭슨을 바라보았다.
“이름!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다급히 뛰어오며 나를 부르는 잭슨. 생각해 보니 그들에게 우리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었다.
운전대를 잡은 노인은 피식 웃으며 창문을 열었고, 뒤 칸에 앉아 있는 용팔이는 멀어지는 마을을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나는 잭슨을 향해 마지막으로 외치며 도로를 달렸다.
“곽동윤입니다! 잭슨, 정말 고마웠어요!”
내가 이름을 말해 주자 달려오는 속도를 천천히 줄인 잭슨은 이내 제자리에 멈춰 멀어지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넋을 놓기라도 했는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
허나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트럭은 그의 표정마저 여운으로 남겼다.
백미러에 매달린 주사위 장식이 조용히 찰랑거리고 그 앞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
우리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