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2부 6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이쪽입니다.”
길 안내를 자처한 잭슨은 애써 두려움을 삼키며 숲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켰다.
바스락거리는 낙엽들과 저 멀리서 눅눅함을 머금은 채 불어오는 바람.
나와 일행 그리고 잭슨밖에 남지 않은 행렬은 천천히 농장 창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변종이 머리귀신인 걸 알게 된 순간 나와 노인은 이곳까지 따라온 주민들을 전부 마을로 돌려보냈다. 물론 그들은 총기로 무장하고 기본적인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위 개체인 머리귀신 앞에서는 총을 들고 있나, 안 들고 있나 똑같았다.
차라리 오발 사격을 우려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놈을 사냥하는 것이 옳았다.
허나 잭슨은 들어가는 입구와 트럭의 위치를 알려 줘야 한다는 이유로 동행을 요구했고, 나와 노인은 두려워하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그가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천천히 모자를 눌러쓰며 찬 기운이 감도는 홀더 위에 손을 올려두었다.
까악- 까악-
숲 입구로 들어서자 까마귀 울음소리가 음산한 분위기에 힘을 더했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공기와 완전히 말이 없어진 일행들.
우리는 바스락거리는 풀숲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페인트로 칠이 된 농장 창고가 발견할 수 있었다.
침묵이되 침묵이 아닌 고요가 지나간다.
바닥을 밟는 소리조차 조심스럽고 숨을 삼키는 찰나조차 아낀다.
그리고 우리 뒤를 천천히 따라오는 잭슨은 나와 일행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하며 자기 입을 한쪽 손으로 틀어막는다.
숨 쉬는 소리가 작아진다.
앞, 뒤, 양옆.
고개를 돌리고 마치 실을 뿜어내듯 감각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느껴지되 보이지 않는 놈은 살기를 내포한 것처럼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분명 우리가 자기영역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지만 최적의 순간을 기다리는 산군처럼 말이다.
하나 수십 번, 수백 번이고 포식자의 목을 딴 우리는 이 긴장감과 초조가 익숙하기만 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놈이 지쳐 뛰쳐나올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변종과의 싸움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먼 길을 뛰어야 하는 마라톤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우리는 어느새 창고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고 적막이 내 오른손을 감싸고 지나간다.
“…….”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썩은 피비린내.
허공에는 파리 떼들이 들끓었고 낡은 창고 벽에는 갈색으로 변한 피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노인은 조용히 바닥에 허리를 숙이며 인간의 살점과 내장들로 보이는 구더기 덩어리에 시선을 옮긴다.
겉으로만 봐도 무언가 살고 있다는 게 팍팍 풍겨지는 역한 광경.
나는 조용히 수신호를 보내며 앞으로 걸었다.
조용히 견착을 하고 총구를 앞으로 향하는 노인과 용팔이.
나는 잭슨을 향해 뒤따라오라고 말한 뒤 선두에 서서 걸으며 반쯤 뜯어진 창고 문을 마주했다.
정적, 고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이 문이 맞냐는 눈신호를 잭슨에게 보냈고, 잭슨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이익-.
어차피 놈은 먼저 나오지 않는다.
나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굴 입구를 당당히 열어젖히며 조용히 공기의 흐름을 읽었다.
문을 열자마자 얼굴을 팍 때리는 역한 썩은 내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노인과 용팔이는 내 양옆에 서며 재빨리 자세를 숙였고, 준비해 둔 손전등으로 창고 안쪽을 비추자 어두운 내부가 밝혀졌다.
“- - -웩!”
그리고 손전등 빛이 내부를 밝히는 그 순간 잭슨이 토악질을 하며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마치 공기처럼 사방에 자욱한 파리와 구더기,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잭슨은 몰려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명을 지르다 목이 잘렸는지 나무 꼬챙이에 끼워져 입이 관통되어 있는 여자의 머리, 그리고 하반신이 전부 잘려 내장이 치렁치렁 걸려 있는 남자의 사체가 좌우로 천천히 흔들린다.
그래, 적어도 수십 구는 돼 보이는 인간의 사체들은 마치 아이가 장난감을 쌓아 올리듯 기괴한 모습으로 창고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간 봐 왔던 놈들의 욕망은 순수한 포식 그 자체였다면 머리귀신의 기이한 행위는 본능과 지능이 점철된 더러운 욕망으로 보였다.
마치 지옥도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이곳저곳 장식품처럼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사체.
그것은 놈에게 인간은 고깃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 말해 주는 참혹함의 단편인 것이다.
허나 이 광경이 너무나 익숙한 나와 일행은 천천히 창고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며 총구를 들어올렸다.
눈앞에서 손전등 빛이 점멸하고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이 긴장감과 교차한다.
그러나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근방에 있어야 할 놈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뭐야, 이 새끼.”
굴 안으로 들어온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오래 참을 리가 없는 놈이다.
한참 긴장감을 조이고 있다가, 아무 기색이 없는 창고 내부에 어이가 없어진 노인은 욕설을 작게 읊조렸고 용팔이는 서둘러 손전등을 천장에 비추며 머리귀신의 몸체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 한정된 공간 속에 숨어 있어봤자 얼마나 잘 숨었겠는가.
약 5분가량 주위를 경계한 나와 일행은 머리귀신은커녕 무언가의 움직임조차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의 흐르자 일행 뒤에서 샷건을 꽉 잡은 잭슨이 나를 향해 물어왔다.
“……없는 겁니까 ”
어이없게도 그렇다. 우리가 찾지를 못한 건지,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나 감각이 틀린 건지.
나는 조용히 모자를 벗으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내 옆에서 주변을 살펴보던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내 등을 툭 쳐 주었다.
“동윤이가 틀리는 날도 있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고 지난 1년간 에덴 팀의 레이더 같은 역할을 했던 내 감각이 틀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나는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권 홀더에 올려둔 손을 천천히 내렸고, 뒤에서 얼떨떨한 얼굴로 서 있는 잭슨에게 물었다.
“꼭 죽여야 하는 놈이니까, 부비트랩 설치해 두고 오후에 다시 옵시다. 차는 어디 있습니까 ”
도망을 간 건지,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사냥을 간 건지.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놈을 죽일 방법은 우리에겐 없었다.
그래도 나는 거래를 위한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후시간을 기약하며 잭슨에게 물었고, 그는 그제야 자기들이 챙겨야 할 게 기억났는지 황급히 뒤쪽 문을 가리키며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들었다.
“잠시만요, 금방 열어 드릴게요…….”
창고 뒤쪽 차고 문은 두꺼운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맞는 열쇠를 찾는지, 잭슨은 한동안 자리에 멈춰 꾸러미를 쩔그렁거렸고, 역한 시체 냄새가 싫다고 말한 노인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바닥에 조심히 쪼그려 앉은 용팔이와 열쇠를 찾는 것에 집중하는 잭슨.
창고 내부는 금세 조용해졌고 오직 열쇠가 잘그락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순간 풀려 버린 긴장에 나는 그나마 깨끗한 창고 벽을 골라 등을 기댔고, 이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차를 구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이동거리가 긴만큼 연료도 충분히 구해야 했고, 부피를 많이 차지해 챙기지 못한 장비는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 살며시 눈을 감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 - - - - ”
잘 - - 그락.
그리고 그 순간 내 신경이 바짝 고개를 들며 공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물속에 들어온 듯 귀에 끼는 짙은 이명과 유일하게 들려오는 잘그락 소리에 저속화.
너무나 익숙한 제3의 공간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나타나고 만 것이다.
“- - - -”
감각이 사라지고 소리가 진해진다.
이명이 낀 공간은 오직 본능이 이끄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했고, 무거운 눈꺼풀은 내 강한 의지와 맞물려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열차가 옆을 지나가듯 두쿵거리는 심장소리.
뒷목에서 시작해 고개를 쳐든 감각은 아까 사라졌던 놈의 기척이 다시 한 번 느끼며 머리에 경종을 울렸다.
- - - -지직.
본능적으로 손이 허벅지에 매달린 대검으로 향했고 동시에 시야가 흑백 화면처럼 단조로워졌다.
내 옆에 앉아 조용히 총기를 만지고 있는 용팔이와, 문 앞에서 맞는 열쇠를 찾고 있는 잭슨, 코끝을 스치는 옅은 담배 냄새는 밖에서 노인의 존재를 인지한다.
위험, 위험이 알리는 방향!
다시 시간은 제자리를 찾으며 내 몸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시체라고 생각한 구더기 더미에서 마치 파충류처럼 동공이 좁아진 노란색 눈동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놈이다, 가죽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꽂아 둔 대검이 내 손에 잡혔다.
영리하다, 악독하다.
이런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시체 더미에 숨어 의도적으로 가사상태에 빠진 놈은 내 감각에서 완전히 벗어났었다.
그리고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 가한 공격은 정확히 잭슨의 목을 향했다.
깡-! 끼기기기기긱!
근육이 폭발한다. 모든 피와 힘이 대검을 잡은 오른팔로 쏠렸고 심장과 폐에서 뿜어져 나온 숨은 마치 터빈 엔진처럼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나의 대검이 놈의 손톱과 맞부딪히며 귀를 찢는 귀곡성이 터져 나왔다.
“어…… ”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 목이 허공으로 두둥실 뜰 뻔했던 잭슨은 사고를 정지하며 또르르 눈알을 굴렸다.
자기 목으로 날아온 놈의 손톱과 그것을 절묘하게 막고 있는 내 대검.
거짓말 같은 광경에 입에서는 그의 입에서는 단말마와 같은 탄식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이런, 시발! 형님 엎드려요!!!”
그리고 나 다음으로 반응한 것은 역시나 용팔이었다.
나는 그 고함에 저속화의 여운을 빠르게 떨쳐내며 잭슨의 멱살을 붙잡았고, 이내 두 번째로 날아오는 후속타를 다시 한 번 피해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그리고 내가 떨어져 나온 것을 확인한 용팔이는 재빨리 조정간을 연사로 놓으며 총구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따다다닥-!!
“- - - - - -끼이익!!”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놈의 손톱과 대기를 찢으며 날아가는 용팔이의 총알.
언제나 그래왔듯 손쉽게 사냥감을 죽였을 거라 생각한 놈의 일상이 깨지며, 총구에서 빠져나온 총알이 놈의 몸통에 수없이 처박혀 왔다.
기습에 실패한 이상 전투의 양상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나는 그대로 잭슨을 발로 밀어내며 그나마 안전한 창고 구석으로 보냈고, 빠르게 바닥을 기며 연신 총을 발사하는 용팔이를 향해 다가갔다.
눈앞에서 비산하는 탄피와 총소리에 맞춰 울려오는 끔찍 비명소리.
나는 용팔이 앞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떨어트린 라이플 잡으며 앞을 향해 조준했다.
“용팔아! 쟤 튄다!”
놈은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하기라도 했는지 날아오는 총알을 연신 피하려 미친 듯이 날뛰었고, 결국 도주라는 어울리지 않은 선택을 하며 천장을 거미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미리 읽은 나는 용팔이에게 고함을 내뱉은 채 놈이 기어 다니는 천장을 가리키며 재빨리 총을 발사했다.
쾅-!!!
허나 변종은 역시 변종이었다.
그 수많은 총탄이 몸에 박히고도 절명하지 않은 놈은 그대로 너덜거리는 천장을 뚫으며 몸을 버둥거렸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아예 벗어나기로 작정을 했는지, 검은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끝내 창고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1, 2, 3. 마치 서커스처럼 공중을 날아가는 빈 탄창과 번개 같은 재장전.
용팔이는 내 팔을 잡으며 그대로 일으켜 주었고, 난 용수철처럼 일어나 창고 문을 발로 찬 뒤 밖으로 뛰쳐나갔다.
퀴퀴한 공기 대신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익숙한 담배연기가 밖으로 나온 나를 반겼다.
짧은 순간 나와 용팔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놈은 여기서 죽는다고.
“이 새끼는 꼭 일을 두 번 하게 만들어요.”
판단은 번개와 같고 호흡은 끈끈하다.
고함이 들려온 순간, 미리 지붕에 올라가 있던 노인은 천장에서 빠져나온 변종 놈을 그대로 반겨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퉤 뱉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구수한 욕설과 함께 작살 총을 놈에게 조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