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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08화 (208/313)

# 208

2부 5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코가 아프지…….”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은 용팔이는 자기 코를 연신 만져 대며 투덜거렸다.

무슨 이유인지 살짝 붉게 부어있는 용팔이의 코.

그걸 조용히 지켜본 나는 남몰래 웃음을 머금었고, 그 원인의 제공자인 노인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했다.

창고에 딱 하나 존재하는 창문 사이로 흘러내리는 여명의 기운.

새벽같이 일어난 우리는 늘 그렇듯 가지고 온 장비와 무기를 하나하나 점검했다.

대략 셋이서 열흘 정도 먹을 수 있는 보존식량과 맛을 포기한 칼로리 바. 그리고 최소한의 무게를 위해 정말 필요한 만큼만 챙긴 탄약들은 따로 마련해 온 가방에 담았다.

“오늘도 연락 없냐 ”

그리고 필요한 짐정리가 모두 끝날 때쯤 저 옆에서 가방과 총기를 짊어진 노인이 천천히 내 옆으로 다가와 채연이의 소식을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순간 기분이 침울해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네……. 없네요.”

나는 강 형사와 연락할 때 사용한 녹색 위성 전화기를 들어 올리며 아무런 변화가 없는 빈 화면을 넋 놓고 쳐다보았다.

벌써 한 달째 연락이 없는 채연이와 그곳을 책임지고 있는 캘리포니아 방위대.

허나 노인은 이제 익숙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어투로 나를 위로했다.

“수련이가 미리 말해 줬잖아.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연락이 갑자기 두절된 거면 정말 물불 안 가리고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한 달 전 나와 통화한 강수련은 현지 전력상황이 좋지 않아 충전을 필요로 하는 위성 전화기가 언제 끊길지 모른다고 미리 당부를 해 주었었다.

아마도 연락이 안 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 노인과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위성 전화기를 품속에 소중히 챙겼다.

“sir, 일어나셨습니까 ”

그리고 타이밍 좋게 찾아온 잭슨이 창고 문을 조용히 노크하며 우리의 기상을 확인했다.

여태 종말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생존자들답게 해가 떠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알고 새벽같이 일어난 모양.

나는 장비와 무기를 모두 챙긴 일행들과 함께 창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 일찍 일어나계셨군요.”

문을 열자 얼굴빛이 많이 좋아진 잭슨이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어제와는 다르게 깨끗한 경찰복을 입고 완전무장하고 있는 잭슨, 그리고 그의 뒤로 10명 정도 돼 보이는 마을 주민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간용 라이플부터 사냥에 쓰이는 소구경 사냥총까지.

우리 앞에 모여 있는 주민들의 구성을 보아하니 총구를 당길 수만 있다면 남녀불문하고 모두 데려온 모양이다.

하지만 허술한 인원과 장비와는 달리 비장함이 감도는 그들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 보였기에 나는 조용히 눈가를 긁으며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괜찮겠습니까 변종이라, 사상자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비록 10명뿐이지만, 전체 인원이 적은 그들 입장에선 뒤가 없는 배수진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나는 주민들을 향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켰지만, 주민 대표인 잭슨은 사람들과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대답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잭슨과 마을 사람들의 눈에선 삶이라는 뜨거운 감정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을 한동안 마주한 나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잭슨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일행들에게 그들의 각오를 통역해 주었다.

그러자 노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작게 웃으며 나에게 속삭인다.

“오래 살 놈들이야. 그치 ”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못 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 반나절의 만남을 통해 이 마을 주민들이 ‘괜찮은’ 생존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총을 잘 쏘고 놈들을 잘 죽여서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짜 생존자 말이다.

“좋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묵직한 어깨와 총구.

나는 탄창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용팔이가 건네주는 모자를 받아 꾹 눌러썼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아침의 시작은 긴장감과 전의를 적절히 혼합시켜 속을 따뜻하게 만드는 각오를 만들어 낸다.

심장소리가 귀를 지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숨과 함께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 -끼기긱 컥 -!!”

이상한 괴음을 뱉으며 달려오는 놈이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면 기다렸다는 듯 착검한 대검을 입안에 찔러 넣는다.

머리통과 피부가 질겨져 이제 어수룩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는 놈들.

지금까지 살아남은 노련한 생존자들이라면 놈들의 눈동자와 입안이 날붙이를 찔러 넣기 가장 좋은 포인트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형님.”

그리고 3년 전과 달리 침착한 어조의 용팔이가 나를 향해 접근하는 놈들의 존재를 알렸다.

골목의 사각지대나 차 밑, 혹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 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놈들은 신체가 진화함과 동시에 머리도 점점 영악해지고 있었다.

방금도 봐라.

용팔이가 시야를 넓게 잡고 알려 주지 않았다면 사각지대에서 달려온 놈에게 그래도 덮쳐질 뻔 했다.

허나 놈들이 끊임없이 진화하듯 나와 노인, 그리고 용팔이 3명으로 이루어진 에덴 1팀도 단순한 팀의 개념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 - -끽!”

찌르고 차고 찌르고 뽑는다.

나는 용팔이의 신호에 맞춰 마치 춤을 추듯 대검을 놀렸다.

느려진 시간 속에 고막을 차지한 내 심장소리.

놈들이 사람을 죽이는 기계였다면, 나는 놈들을 분해하는 기계라고 생각했다.

아, 신경이 일어난다.

나는 그대로 달려오는 놈의 발을 걸어 넘어트리고, 내가 고개가 돌아간 틈을 타 사각지대로 접근하는 놈의 눈덩이에 대검을 던져 넣는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앞길을 뚫을 새로운 경로를 제시했다.

“동윤아, 한 놈 도망간다.”

불리한 상황에서 도망이라는 선택까지 할 수 있게 된 영악한 놈들.

아마 한 놈이라도 놓치게 되면 더 많은 숫자의 놈들이 우리를 덮쳐 올 것이다.

허나 도망치는 놈을 진즉에 포착한 노인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고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총 홀더에 손을 얹었다.

0.1, 0,2 0.3. 뻣뻣하게 굳는 내 뒷목과 마치 수채화가 그려지듯 흐려지는 공간.

감각을 공유하고 육감이라는 요소가 내 살결을 핥고 지나간다.

위치, 눈동자가 돌아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위치.

방향이 정해지자 내 눈은 사르륵 감겼다.

- -딱!

소음기가 장착된 9mm 권총에서 작은 총성이 팍 하고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저 멀리 황급히 도망치는 놈의 몸체가 순간 비틀거렸고, 내 총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즉사한 놈의 몸체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다.

고기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내 눈은 스르륵 떠졌다.

몸을 부르르 떨다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는 놈과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며 고이는 검은색 피. 나는 그대로 홀더에 권총을 넣고 상황이 정리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용팔이의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노인의 탄식어린 투덜거림이 터져 나왔다.

“아니, 시바 어떻게 한번을 안 놓치나.”

“내가 이겼죠 빨리 내놔요.”

보아하니 또 내기를 한 모양이다.

용팔이의 깐족거림을 들은 노인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지만,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내기의 판돈인 담배를 용팔이에게 뺏긴 노인은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방, 방금 눈감고 쏜 겁니까 ”

그리고 결연한 의지와는 달리 딱히 해 볼 수 있는 게 없었던 잭슨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향해 말했다.

눈을 감은 상태로 어깨만 90도로 돌려 발사한 단 한 발의 권총 탄.

하도 현장일이 심심해서 시도해 본 건데 계속 성공하게 되니 이제는 버릇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용팔이와 노인도 이 서커스 같은 사격술에 처음에는 깜짝 놀라다가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는지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놀랍다는 얼굴을 해 보이는 잭슨의 반응이 조금 신선했다.

허나 여유롭기는 해도 현장은 현장.

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주민들에게 긴장을 놓치지 말라고 조용히 당부했다.

“등을 벽으로 향하게 하고 절대 사각지대를 두지 마세요.”

농장을 찾아주고 차를 얻으면 헤어질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용기와 희망을 갈구하는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생존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주었다.

그리고 우리 뒤를 열심히 따라오는 주민들은 꼭 강의를 듣는 학생들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sir……. 저 앞에 보이는 길입니다.”

그리고 처음 만날 때보다 배는 공손해진 잭슨은 마을을 고립시킨 놈들을 전부 해치웠다는 걸 확인했는지 눈앞에 보이는 길을 가리켰다.

놈들이 득실거리는 밖을 걷고는 있지만 우리와 함께 있으니 무언가 안심이 된다는 표정.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농장 창고는 그렇게 멀지 않는 장소에 위치했는지 3분 정도 더 걸어가자 검은색 지붕과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창고 건물이 나무들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해가 떠 있는 낮이지만 왠지 모르게 음산한 분위기.

마을 주민들은 변종이 활동한다는 지역 근처까지 오자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무기를 부여잡았다.

까악- 까악-.

그리고 그 순간 나무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 한 마리가 을씨년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음산한 분위기에 힘을 더했다.

어딘가에서 시체를 파먹기라도 한 듯 붉은 기가 감도는 부리와 검은색 눈동자.

나와 일행은 그 소리를 기점으로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있냐 ”

짤각, 짤각. 노인은 조용히 조정간을 움직이며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듬성듬성한 숲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용팔이와 내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마을 주민들.

나는 조용히 마른 입술을 핥으며 눈을 가늘게 뜬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무언의 형체.

저 애매한 어둠사이로 느껴지는 것은 웅크리고 있는 분명 존재감이었다.

“있긴 있어요. 위치는 모르겠지만…….”

수없이 많은 놈들을 상대해 본 나의 경험과 인지능력이 저 숲과 창고 어딘가에 변종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 확답을 들은 노인은 조용히 숨을 내뱉으며 잭슨과 마을 사람들을 향해 통역을 부탁했다.

“저쪽에서 죽은 사람 있다고 했지 시체 상태가 어땠어 ”

통역을 전해들은 잭슨은 갑작스런 질문에 얼떨떨한 얼굴로 나와 노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치가 빠른 그는 검지로 이마를 긁으며 그날을 회상하기라도 하는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채 3초도 지나지 않아 작은 감탄사와 함께 재빨리 대답했다.

“2명이 죽었는데, 한 명은 머리가 없었고 다른 한 명은 그냥 상반신 전체가 잘려 나갔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일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그날을 회상하기라도 했는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잭슨은 뭐가 튀어날지 모르는 숲속에 그늘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툭 말을 뱉었다.

“머리 없는 시체가 여자였죠 ”

그러자 잭슨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여자 시체는 머리가 없을 것이고 남자 시체는 상반신이 없을 것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노인과 눈을 마주쳤고, 이내 동시에 입 밖으로 놈의 정체를 읊조렸다.

“머리귀신.”

회색 도시에서 처음 발견한 아히이를 포함해, 수없이 많은 종류의 변종들을 목격했었다.

그리고 그 종류와 숫자가 더욱 다양해진 지금은 교본과 절차에 따라 발견자가 이름을 붙이는 것이 통상적이었는데, 이 창고에 있는 변종은 내가 발견하고 처리한 적이 있는 변종 중 하나였다.

머리귀신.

인간포식을 즐겨하는 변종 중 가장 특이한 놈이었는데, 이상하리만큼 여자 머리에 집착을 하는 기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민첩하고 지능이 높아 상위 변종에 속하는 놈은 이 근방에 있는 것만으로 생존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인 것은 분명했다.

“잭슨 씨, 혹시 그거 44구경입니까 ”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내 홀더에 들어가 있는 9mm권총과 잭슨 허리춤에 차여 있는 은색 리볼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놈의 대가리를 깨부수기 위해 필요한 대구경 저속탄.

나는 내 9mm 권총을 잭슨에게 내밀며 44구경을 잠시 빌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잭슨은 얼떨떨한 얼굴로 나에게 리볼버를 내밀며 걱정스레 물었다.

“……두 발밖에 없는데 괜찮습니까 ”

그간 전투로 인해 탄약이 두 발밖에 남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44구경을 받아들었고, 이내 실린더를 옆으로 젖히며 빈 구멍 2개를 채우고 있는 총알 2개를 확인했다.

묵직한 무게와 손에 딱 잡히는 그립.

찰칵 소리와 함께 실린더를 닫은 나는 잭슨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딱 한 발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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