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01화 (201/313)

제201화(외전 3)

끼기기기긱-.

한계까지 당긴 활시위가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나는 아랑 곳하지 않고 활시위가 내는 소리를 귀 안 가득 담았고, 곧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천천히 만끽한다.

온몸을 핥고 지나가는 대기와 기류, 그리고 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이 신경이라는 전해질을 타고 나에게 다가온다.

눈을 뜨자 멀게만 느껴졌던 공간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

동시에 끄르르 울며 목을 이쪽으로 트는 검은 녀석과 눈을 마주친다.

퉁一.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회색 도화지 위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낸다.

나는 활과 시위가 주는 떨림을 그대로 만끽하며 황혼 사이로 그어지는 궤적을 눈동자에 담는다.

그리고 천천히 활을 내려놓자 건물 옥상에서 몰래 이쪽을 살펴보고 있던 검은 녀석의 머리통이 팍하고 터져버린다.

잔잔한 떨림과 명중에서 오는 쾌감.

나는 손바닥을 잠시 펼쳤다가 다시 쥐며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 밑에서 나를 보고 있던 노인이 흥분한 얼굴로 외친다.

“어때! 쓸 만해?”

“끝내줘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대로 장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여기서 바닥까지는 2층보다 살짝 위인 높이지만 나는 익숙하다는 듯 바닥을 밟았고, 노인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 나는 내 신체의 반 정도 되는 털보표 활을 들어 올렸다.

수준급의 장력과 손에 딱 맞는 훌륭한 그립감.

거기다 아무리 당겨도 균열이 생기지 않는 튼튼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두 남자를 구할 때 마지막 크로스 보우까지 전부 망가져 버려서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그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털보 자식,이런 끝내주는 걸 만들어 뒀으면 말을 했어야지.”

노인은 내가 건네주는 활과 교본을 받아들며 오랜만에 그리운 이름을 불러본다.

이것을 발견한 때는 불과 몇 시간 전.

그간의 활동으로 크로스 보우가 전부 망가진 뒤로 우리가 막연한 생각만을 가진 채 대용품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고민만 하기를 반나절,

나는 철사를 찾기 위해 우연히 들어간 에덴 공구 창고에서 그동안 몰랐던 털보의 비밀 작업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작업실에는 털보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둔 냉병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나와 노인의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는 한 낡은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케이스를 열어 본 우리는 지금 들고 있는 이 활 2자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었을 활과 화살들.

리커브식 같으면서도,외부 구조가 단순한 게, 각 현대식 활이 가지는 장점들만을 긁어모은 고위력의 명품 활이었다.

그리고 그 활은 수백 개의 화살과 함께 작업실 한쪽에 걸려 있었는데, 그곳에 주인인 털보는 원래 우리를 주기로 했었던 것인지 간단한 초심자 사용법과 함께 필수로 지켜야 할 행동 교범들이 빼곡하게 적어놓은 수첩도 남겨 놓았었다.

“어르신, 아까 시키신 거 다했습니다!”

그리고 노인이 설레는 얼굴로 활을 받아드는 순간, 저 뒤에서 김중원 씨가 힘차게 노인을 부르며 다가왔다.

그는 방금까지 힘든 노동을 하고 왔는지 땀이 가득 고여 있는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내렸고,

그간 보여 주었던 혼란과 두려움이 전부 사라진 얼굴로 우리에게 친근감을 표한다.

그리고 노인 또한 고생했다는 듯 그의 어깨를 쳐 주며 나에게 말한다.

“다 된 모양이다. 빨리 가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앞서 걸어가는 노인과 김중원 씨를 따라 저 한 블록 근처에 보이는 체육관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간간이 들리는 중원 씨와 노인의 목소리.

그날 밤 협조라는 이름으로 성사된 거래는 오랜만에 찾아온 외부인들을 우리의 계획을 도와줄 동조자들로 만들어 주었고,

이제는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친분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떠들며 걷던 우리는 어느새 체육관 문 앞까지 도착했다.

“아이고,오셨습니까.”

문이 열리기도 전에 체육관을 지키고 있던 최 부장은 우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한다.

그가 우리에게 빌려 입은 낡은 셔츠와 고무줄 바지는 이미 먼지와 때가 가득했고, 나이로 인해 반쯤까진 머리에서는 아직도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힘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한 줌의 가식 없는 웃음꽃이 매달려 있었다.

노인이 분위기를 잡기는 했지만, 그날 식사자리에서 그들에게 강요된 협박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안전을 보장하고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줬을 뿐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 고립으로 인해 금전 감각이 사라진 나는 그들에게 약속한 현물의 가치를 몰랐지만,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에게는 무척이나 큰 금액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연신 히죽히죽 웃고 있는 최 부장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우리를 꼭 사장님 모시듯 극진하게 대했다.

고개를 숙이고, 손은 공손하게 가운데.

물론 얼굴에 너무나 환한 미소가 달려 있었기에 그 모습이 비굴하다기보단, 익살스러워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노인은 결국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대답한다.

“에라이, 속물아! 돈이 그리 좋으냐?”

그러자 최 부장은 하하 웃으며 이마에 고인 땀을 천천히 닦아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돈만큼 무서운 게 있겠습니까? 물론 저번에 만난 괴물도 무섭기는 했지만, 가족들 굶는 것보다는 덜 무섭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노인이 피식 웃기는 했지만, 별다른 꾸중과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땀으로 젖은 셔츠를 말리고 있는 최 부장과 중원 씨가 단순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같은 목적과 의도로 땀을 흘리고 있을 우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깃털 같은 가벼우면서도 자유로운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노인과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최 부장이 지키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때론 정과 의리라는 존재는 사람과 땔 수 없는 신뢰 관계를 만들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길게 숙성되어야 먹을 수 있는 불확실한 와인.

그런 인간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와 노인은 그들을 섣부르게 믿지도, 신뢰를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대신 우리가 선택한 것은 에덴 초창기부터 이용해 왔던 이해관계를 통한 거래였다.

우리는 그들에게 동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노동력을 제공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지만,

심리적, 신체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해 주었고 일주일로 잡았었던 준비시간을 대폭 단축하게 해 주었다.

만족스러운 결과.

노인은 체육관 문을 열자마자 흐뭇하게 웃더니, 곧 한쪽에 놓인 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체육관 천장에 달린 전등에 불이 들어오며 주변이 환하게 변했다.

“당부해 주신 방법대로 다 옮겼습니다, 어르신.”

그러자 최 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와 노인이 지시한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손한 손이 가리킨 방향, 그곳에는 깨끗한 비닐들로 쌓여 있는 폭약(TNT)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 양과 별개로 저 물건은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폭약을 꼭 필요로 했던 우리는 4년이라는 긴 수색 끝에 과거 투쟁의 장소였던 신서울대 폐허에서 저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인은 고생했어, 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조심조심 폭약 앞으로 다가갔고, 곧 비닐 위를 조심스럽게 치우며 상태를 확인했다.

우리가 당부한 대로 정말 가지런히 쌓여 있는 폭약들.

안정성이 보증된 좋은 물건이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나와 노인은 한 가지 숙제를 해결한 아이처럼 희미하게 웃었고, 곧 저 앞에 마지막 물건 확인하기 위해 가운데 강당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한쪽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던 중원 씨가 나에게 질문을 해 온다.

“그나저나, 저기 검은 포대에 쌓여 있는 건 뭡니까? 옮기라고 하셔서 일단 가져오기는 했는데……. 엄청나게 무겁더라고요.”

폭약의 양은 그다지 많지 않기에 옮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하는 둘에게 가장 큰 난제였던 것은 강당 가운데에 있는 저것.

검은 포대에 쌓여 있어 희미한 형체만 알 수 있는 저것은 크기도 크기지만, 꽤나 육중한 무게를 자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음에 희미한 미소로 대답하며, 잠시 기다려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펄럭-.

강당 중앙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노인은 한동안 검은 포대를 어루만지더니, 곧 거침없이 테이프를 뜯고 가림막 옆으로 치워 버렸다.

그 순간 휘날리는 먼지와 바람들, 그리고 그 먼지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번쩍이는 은빛과 흑색을 머금고 있는 중후한 배기량의 바이크였다.

“죽이네.”

노인은 오른쪽 손으로 바이크를 쓸어내리며 히죽 웃었고, 나도 오랜만에 몰려오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바이크라는 게 한때 남자의 로망이 아니었던가?

물론 봉쇄지역 밖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이겠지만, 몇 년간 회색 도시에 갇혀 지내던 우리에게는 이동수단이라는 자체가 생소한 단어였다.

그리고 바이크를 이곳까지 옮겨다 주었던 남자 둘도 의외로 신이 나는지, 텐션이 올라간 목소리로 묻는다.

“와, 이거 B시리즈 아닙니까?”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는 바이크.

이곳에 모인 남정네들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끝내주는 모습의 바이크 근처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고 적막한 삶을 살아가던 나도 오랜만에 흥분을 느끼며 파리가 미끄러질 듯 반짝이는 동체를 만져 보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 바이크는 나와 노인이 근처 동네를 순찰하던 중 정말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물론 처음 발견할 당시에는 부품 대부분이 녹슬고 망가져 있는 상태였지만,

4년간 돌아다니며 꾸준히 부품을 모으고 깔끔하게 칠을 한 결과,

지금은 새것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복원된 상태였다.

바이크를 한참 구경하던 최 부장이 나와 노인에게 묻는다.

“그……. 참 멋있기는 한데, 뭐에 쓰려고 가져오신 겁니까? 소리가 너무 커서 타고 다닐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들이 어리숙하기는 해도, 방송 매체를 통해 기본적인 놈들의 습성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회색 도시에서 소음을 유발하는 이동수단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달리는 관과 필적한 수준의 바이크.

이것을 타고 놈들이 바글거리는 도시를 가로 지른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가져온 거야.”

하지만 노인은 그 물음에 읊조리듯 대답하며 한쪽에 걸려 있던 바이크 열쇠를 짤랑거렸다.

그래, 최 부장의 말대로 평소 우리 같았으면 미쳤냐고 욕을 하며 바이크를 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음이라는 문제점 자체를 이날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바이크를 수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거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우리는 그동안 어린아이처럼 어르고 달랬던 바이크에 휘발유를 먹인다.

“어젯밤 우리가 알려 준 사항, 다 기억하지?”

그리고 휘발유를 다 넣자, 노인은 장비를 하나둘 입으며 넋 놓고 있는 김중원과 최 부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둘은 흠칫 놀라며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이내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준다.

어젯밤 우리가 열변을 토하며 가르치고, 또 가르쳤던 사항.

그 둘은 귀에 박히도록 잔소리를 들었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헤헤, 그나저나 어르신…….”

“어? 왜?”

그 물음에 노인은 오토바이 헬멧을 눌러쓰며 대답한다.

아껴 뒀는지 쫙 빠진 검은색 옷과 번쩍 번쩍한 오토바이 헬멧.

노인은 이날만을 기다렸는지 아주 멋지게 차려입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헤헤 웃으며 바라보고 있던 최 부장은 조심스럽게 땀을 닦으며 노인을 향해 물었다.

“우리는 뭘 타고 이동하는 겁니까? 혹시, 우리도…….”

“아니, 너희 거는 저기 있다.”

그리고 노인은 오토바이 뒷자리를 탐내는 최 부장에게 어림도 없다는 듯 말하며 강당 한쪽에 놓여 있는 또 다른 포대를 가리켰다.

그 포대는 깔끔한 검은색 포대와는 다르게 먼지와 때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파란색 포대였는데, 분명 장시간 방치된 듯 굉장히 낡아 보였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쪽으로 다가가 포대를 치워 주었다.

“에이…….”

포대를 치우자 중원 씨가 시무룩하며 입술을 삐죽인다.

그리고 그 모습에 노인은 하하 웃으며 바이크를 체육관 문으로 끌고 갔고, 나도 마찬가지로 웃으며 넘어져 있는 자전거 벨을 짜르릉 짜르릉 울려주었다. 이 포대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한강에서 하나 둘 주워온 대여용 자전거였다.

그것들은 정말 앙증맞게도 뽀로로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는데, 채연이가 좋아할 법한 디자인이었다.

“자전거 탈 줄 알죠?”

내 물음에 둘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따라 이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무시하나? 소리가 안 날뿐더러, 걸음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최고의 이동수단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시무룩해 있는 남자 두 명이 너무 안쓰러워 보여 유성 사인팬을 꺼내 보란 듯이 M자를 그려주었다.

이상하게 표정이 더 나빠진다.

* * *

“떨지 마, 그냥 거기에 물건만 내려주고 숨어 있으면 되니까.”

그리고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사람 하나 없는 에덴의 정문 앞에서 오늘 있을 거사를 위해 마지막 점검을 시작했고, 밝은 햇살이 작열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녀석들이 가장 둔감해지는 시기, 좋은 날만을 골라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무서운 건 아니고요……. 그 쪼매…….”

큰돈을 보여 줄 때만 해도 자신들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하던 남자 두 명은 막상 거사가 다가오자 조금 겁먹을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대검을 갈고 있는 노인 때문인지 차마 못 하겠다고는 말하지 못하는 상황.

남자 두 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전거와 연결된 리어카를 점검하며 열심히 뽁뽁이를 쑤셔 넣고 있었다.

다량의 폭약이 담긴 리어카와 그것을 옮겨 줄 자전거 두 대.

나는 마지막으로 노인의 바이크에 요란한 소리가 나는 깡통들을 길게 연결해 주며 초소 옆에 내려놓은 장비들을 입기 시작했다.

항상 둘이서 쓸쓸하게 하던 출정식, 왠지 내가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일행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동윤아.”

나지막이 나를 부르는 노인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졌는지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주물러 준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털보표 활과 화살집을 받아들며 오토바이 헬멧을 눌러쓰고 있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긴장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요.”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시절은 이미 너무 멀리 가 버렸다.

나는 살기와 신경마저 내 근원 안에 묻어 버리고,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신발을 고쳐 신었다.

봄 날씨가 적당하니 좋다.

그리고 저 멀리 일행들이 놀러 올 거라는 생각에 기분마저 좋아졌다.

나는 천천히 활을 앞으로 들고 에덴의 정문을 향해 뛰어갔다.

“어쭈, 새끼……. 다 컸다고, 이제.”

뒤에서 퉁명스러운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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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 살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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