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외전 2)
‘아빠!’
햇살과 산뜻한 봄바람이 너무나 그리운 목소리를 가지고 내 얼굴을 스친다.
하지만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나의 그리운 존재가 아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허한 공간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너무나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항상 에덴의 주민들로 가득 차있던 거리는 흙먼지만이 남았고, 우리가 치열하게 투쟁을 벌이던 장벽은 세월의 흔적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장벽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형씨, 계단이 많이 낡았으니까. 조심히 올라와.”
그리고 내 뒤를 천천히 따라오던 노인은 저쪽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김중원 씨를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삐걱, 삐걱.
4년 동안 단 한 번도 잊지 않고 올라갔던 계단은 우리가 발걸음을 밟을 때마다 익숙한 소음을 내지른다.
매번 수리해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둘 다 워낙 자주 깜빡깜빡해서 매번 잊고는 한다.
그렇게 서로가 다른 상념을 안고 장벽 위로 올라온 우리는 챙겨온 가방들을 초소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도시가 훤히 보이는 정면을 한동안 바라보며 신선한 아침 공기를 잠깐이나마 만끽했다.
회색 도시, 두려우면서도 우리가 살아왔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요람이자 관.
나는 등에 메고 있던 활을 천천히 앞으로 들며 반시계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이제는 나와 노인밖에 남지 않은 에덴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이 자리를 지키며 흔적만이 남은 성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과의 시작인 장벽 순찰은 우리가 봉쇄지역 안에서 살아갔던 4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은 중요한 임무였다.
그리고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장벽을 걷게 된 김중원 씨는 맨 뒤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
그 모습에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천천히 그의 옆으로 다가갔고,
곧 친근하게 어깨 동무를 하며 노인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로 대화를 시작한다.
“아까 왜 못 나가느냐고 했는지 궁금하지?”
“예? 예.”
남자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궁금하기는 했는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는 현 상황을 향한 당혹스러움과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는 약간의 억울함,
그리고 그 와중에도 에덴의 유적과 우리를 살피는 호기심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주머니에서 망원경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낡은 망원경을 건네주며 저쪽을 보라는 듯 손짓한다.
“저기 제일 큰 건물의 옆쪽 골목 보여? 거기랑 차 밑에 봐. 때마침 모여 있네.”
모여 있어? 뭐가? 남자는 얼떨떨한 얼굴로 망원경을 받으면서도, 착실하게 지시를 따르며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노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뒤, 여기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망원경 안을 들여다보는 눈, 그리고 투과해 뻗어지는 시야.
헉!
그 순간 남자는 깜짝 놀라 짧은 외마디 비명을 삼킨다.
하지만 노인은 그 행동마저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비틀거리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주며 바닥에 넘어지지않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노인에게 도움을 받은 남자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저게 뭡니까? 저, 저기! 저기 뭔가…….”
남자는 망원경을 초소 책상에 내려놓으며 별별 호들갑을 다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남자의 호들갑마저 이해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 뿐이었다.
왜냐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나와 노인도 저놈들을 처음 본 순간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으니까.
노인은 초소 책상 위에 떨어지듯 놓인 망원경을 조용히 수거하며 아직도 얼굴이 창백한 남자에게 물었다.
“봤지? 이제 알겠어?”
노인의 짧은 물음에 남자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고, 동시에 남자가 망원경을 통해 본 광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시선이 닿은 그곳, 그 음습한 장소에는 우리가 4년간 이 곳에 머물러야만 했던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 - - - - -.’
시선을 돌리자마자 굳건하던 눈가가 짜르르 떨린다.
손끝에서 시작한 피가 혈관을 돌고 돌아 신경을 찢어 내린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전투 신호를 보내는 거대한 위협.
피부를 핥아내는 적의와 살기 앞에 나는 익숙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조용히 숨을 내뱉으며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검은색의 놈들과 눈이 마주치자, 우리를 비추고 있던 햇살이 잠시 구름에 가려지며 흐릿해진다.
“- - - - - 끼이익.”
수십 년간 방치된 녹슨 문을 여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
그리고 그런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놈들의 눈동자는 까마귀가 파먹기라도 한 듯 텅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은 분명히 우리 쪽을 향하고 있었고,
콧대가 존재하지 않아 흉측한 두 개의 구멍은 사람의 냄새를 맡기 위해 연신 벌름거리고 있었다.
“흐으…….”
그리고 망원경을 통해 놈들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남자는 아직도 공포가 가시지 않는지 작은 신음을 내뱉으며 초소 의자에 주저앉는다.
노인은 조용히 남자의 어깨를 만져 주었고, 나는 금방이라도 쏠 듯 날카롭게 벼려진 신경을 삼키며 바닥에 침을 뱉는다.
그래, 나는 겁먹은 남자를 이해한다.
놈들의 외형이 단순히 흉측해서가 아니다.
놈들은 마치 호랑이를 마주하듯 오금이 저리는 살육과 수라도를 회상시켜 주었고,
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도록 설계되어 만들어진 아귀들이었다.
그리고 저 구덩이 밑,
지옥에서 올라온 아귀들은 이 회색 도시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햇빛이 싫기라도 한지 짙은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며 바퀴벌레처럼 모여 있었다.
꿈틀꿈틀, 속이 니글거릴 정도로 끔찍한 광경.
하지만 노인은 그 익숙한 광경을 조용히 곱씹으며 정말 오랜만에 만난 외부인을 향해 넋두리하기 시작했다.
그 넋두리는 그간 우리가 겪어왔던 삶의 회상을 담은 피곤함의 읊조림이었다.
“놈들이 나온다는 구덩이 알지? 여기에도 몇 개 있거든. 근데 4년 전만 해도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긴 놈들만 나왔는데 말이야, 어느 날부턴가 제일 큰 구덩이에서 진창에 문드러진 것 같은 놈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 그래도 설마 변종들보다 더한 놈들이 나오겠거니 하고 쉬쉬했는데, 동윤이 상태가 좋아지자마자 나온 놈들이 저놈들이지 뭐냐.”
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콧방귀를 뀌며 속주머니에 넣어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 근처 편의점에 몇 개 남지 않아 아껴 피고 있던 그 담배 한 개비.
하지만 노인은 씁쓸한 입맛 때문인지 아낌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숨을 내뱉는다.
“처음에는 당연히 우습게 봤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평소처럼 밖으로 혼자 나갔었지. 근데 돌아다니는 저놈들하고 처음 마주한 순간, 내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볼꼴, 못 볼꼴 다 겪어본 내가 말이야.”
변종이 한 마리의 사자와 같다면 저 검은 것들은 회색 강을 점령한 피라냐와 같았다.
그 지독한 변종마저 상대가 되지 않는 악랄함과 집요함.
빈번한 격변을 맞이했던 이 도시에는 강대한 집단의 힘을 가진 진정한 포식자이자 안개처럼 자욱한 역병이 도래하고만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걱정부터 들더라고. 당장 내 목숨, 내 안위보다……. 저놈들이 봉쇄지역 밖으로 뛰쳐나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말이야.”
놈들의 등장은 완치 후 봉쇄지역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나와 노인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걸어 두었다.
마치 운명처럼 멈춘 연장선의 제동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사명을 심어 주었고, 삶을 위한 투쟁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노인은 그 당시를 회상하기라도 하는지 회한이 묻어나오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어간다.
“똑똑한 놈들이야. 분명 생각할 줄도 알고, 자기들끼리 의사소통도 하는 것 같아.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봉쇄지역 밖으로 뛰쳐나갈 기회만을 노리고 있어. 더 많은 고기, 놈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살코기를 찾으려고 말이야.”
놈들은 더 많은 고기,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마치 수족관을 뛰쳐나갈 듯 넘실거리는 피라냐 무리는 이 에덴의 장벽과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우리는 기회를 틈타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놈들을 조용히 주시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무기를 들고 장벽을 걷는다.
그리고 그 쓸쓸한 파수꾼 중 하나인 노인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우리가 막아야지.”
4년. 봉쇄지역 밖으로 나가려는 저놈들을 막는 이 행동이 반복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남자는 자신이 당장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와 우리가 4년째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유추하며 재빨리 눈동자를 굴린다.
그리고 모든 정리 끝에 나온 결론은 결국 남자의 고개를 힘없이 떨구게 만들었다.
휴-.
불운한 인생을 탓하는 남자의 짙은 한숨.
그 모습에 노인은 피식 웃으며 낙담하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 하고 쳐 주었고,
앞으로 같이 지내게 될 이 회색 도시에서 잊지 말아야 할 법칙을 강한 어조로 알려 주었다.
“방구석에 숨어 있는 거 아니면, 항상 동윤이 l00m 근방에 머물러 있어. 먹을 때나, 똥 쌀 때나, 심지어 잠들 때도 말이야.”
“……예? 왜요?”
남자는 심란한 와중에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얼굴로 노인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당부를 하는 노인의 얼굴에는 평소와 같은 장난기가 없었으며, 오로지 진지함과 비장함만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고개를 돌렸고, 왼쪽 손목에 차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장벽을 올라온 지 20분이 지난 시간, 슬슬 다음 장벽으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노인은 남자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생각해 봐. 상식적으로 우리 두 명이 이 넓은 지역을 막아 두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겨우 구덩이 하나라고 해도 영역 넓이만 수백 미터야! 그런데도 놈들을 막고 있었다는 건, 우리 두 명이 4년이나 비빌 수 있었던 수단이 있었다는 거겠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목숨 붙이고 살아 있는 게 용한 건데 말이야. 그지?”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장벽 아래로 내려가는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그리고 초소에서 넋 놓고 우리를 바라보던 남자는 헉하는 비명과 함께 멀어지기 시작한 우리를 헐레벌떡 따라왔고,
곧 노인을 향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 그게 뭡니까?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인간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남자도 별 반 다르지 않았는지,
우리가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노골적으로 물어보며 다음 스케줄을 이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나의 뒤를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그 물음을 들은 노인은 완전히 백발로 변해 버린 머리를 느긋하게 쓸어 올리며 조용히 읊조린다.
“저 앞에 놈들 천적이 있잖아.”
노인의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으며 남자는 멍청한 얼굴로 그 시선을 따라 인간 곽동윤과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그 순간 해를 가리고 있던 짙은 구름이 기다렸다는 듯 물러나며 따뜻한 봄과 어울리는 햇빛이 우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너무나 따뜻한 봄, 몸이 노곤해졌지만 나는 마치 기계처럼 걸음을 옮기며 텅 빈 에덴의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노인은 내가 지나친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은 동윤이가 제대로 화가 나서 놈들 수십 마리를 개작살 내놓은 적이 있어.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다음 날이 되니까, 날뛰던 놈들이 에덴 장벽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봤지.”
인생을 후회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노인의 옆을 따라 걷고 있는 남자는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우고 지나간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학습 자세가 올바른 외부인 앞에서 진중한 자세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다큐에서 변종 놈들이 채취 내뿜는 거 본 적 있어? 거기 보면 그 채취 때문에 그놈들이 접근하지 못하잖아. 근데 그 현상이 동윤이랑, 저 검은 놈들한테 똑같이 일어난 거야. 비열하고 악독한 하이에나 놈들이, 여기가 호랑이굴인 걸 늦게나마 알아챈 거지.”
조용한 거리와 도시.
우리가 4년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행한 임무는 놈들의 영역을 한 바퀴씩 도는 일이었다.
마치 더러운 벌레들을 통속에 가두듯, 그리고 놈들이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나의 존재라는 울타리를 만들 듯이 말이다.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고, 남자는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뒤통수에서 시선이 느껴지고 머리가 간지럽다.
나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소풍을 떠나는 사람처럼 가벼운 걸음을 뗀다.
오늘따라 일행들이 더 보고 싶었다.
* * *
“허어어엉……. 김 대리, 내가 진짜 미안해……!!”
최 부장이라 불리는 중년 남자는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노인이 가져다준 흰죽을 정신없이 먹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김중원 씨를 보자 눈물을 터트리며 오열을 시작했다.
삶과 죽음을 오고 가는 그 순간, 중년 남자는 많은 주마등과 마주했는지 김중원 씨를 끌어안으며 정말 많은 울음을 터트렸다.
“최 부장, 이 개새끼……. 흐어어엉…….”
평소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김중원 씨는 자신을 사지로 데려온 최 부장을 욕하면서도 살아남은 게 어디냐는 듯 한동안 중년 남자를 끌어안고 눈물을 터트렸다.
물론 감동적인 재회의 장면이긴 하지만 수염을 기른 남자 둘이 끌어안는 걸 볼 이유가 없던 우리는 말 없이 고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최 부장은 눈물을 그치며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에게 냅다 허리를 숙인다.
“진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이대로 중원이 죽었으면 제수씨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동윤 씨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것에 있어 피곤하고 골치 아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한 사람이 진심으로 해 주는 감사 인사는 때론 무의미한 움직 임에 이유를 심어 주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노인은 이 진심이 싫지만은 않은지 뿌듯한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는 중년 남자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닙니다, 무사하셨으니 된 거죠. 음식은 입에 맞습니까? 죽 좀 더 드릴까요?”
우리를 힘들게 했던 요소는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겨울바람처럼 지독하게 몰려오던 고독과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예상치도 못했던 오늘, 정말 오랜만에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은 딱딱하게 굳어 있던 우리 감성에 신선한 봄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오랜만에 커피도 끓이고 아껴두었던 과자도 꺼내 먹으며 그동안 몰랐던 바깥소식과 우리 일행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작은 역경을 넘어온 그들이라 그런지 대화는 잘 통했고, 방안은 어느새 소탈한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시던 커피가 다 떨어질 때쯤, 노인은 천천히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13일 뒤면 당신들도 나갈 수 있겠네, 그지?”
노인이 못 나간다고 겁을 줘서 그렇지, 이미 봉쇄지역의 해방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우리도 바보는 아닌지라 라디오를 통해 용팔이와 일행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 듣고 있었고,
밖에서 들어온 이들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노인의 물음에 그 둘은 과자를 먹다 말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말이야……. 중원이도 알다시피 우리 애들이 여길 오면 조금 위험하지 않겠어? 그래서 우리가 간단한 환영행사 겸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우리를 좀 도와주면 좋겠다. 준비는 다 해뒀으니까, 손만 좀 거들어주면 돼. 괜찮지?”
말투는 분명 양해를 구하는 부탁이었지만, 살벌하게 빛나고 있는 노인의 눈동자는 결코 부탁이 아니었다.
앞에서 열심히 과자를 까먹고 있던 최 부장은 그 노인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고,
그 옆에 김중원 씨는 헉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과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밤 양갱이를 그들 앞에 말없이 놓아주었다.
요즘 최저시급이 얼마지?
+++++++++++++++++++++++
< 나는 아직 살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