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살아있다. 198화(에필로그 3 –완결-)
[일부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봉쇄지역 안으로 진입하는 작전이 일주일 뒤에 시작되죠? 그리고 현재 작전을 준비 중인 3구역에는 그들을 응원하는 시민들과 반대시위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회 각층에서는 전 세계 최초로 이뤄지는 진입작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오늘 데스크에는…….]
잔잔하게 봄비가 내리는 저녁 시간,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시장에 있는 한 허름한 돼지국밥집에서는 오래된 TV가 옅은 노이즈와 함께 그날의 중요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술자리를 즐기고 있는 손님들은 화면 속에 나오는 3구역의 모습을 술안주 삼아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많은 손님 사이로 검은색 모자를 눌러쓴 남자 둘이 조촐한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제일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 은밀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수다 소리에 그들의 대화 내용은 조용히 묻혀 버린다. 그리고 가운데에 앉아 소주잔을 내려놓은 한 중년 남성이 목소리를 천천히 줄이며 속삭인다.
“어때, 김 대리……. 그래, 생각은 해 봤어?”
그렇게 물어본 중년 남성은 혹시 상대측에서 거절하면 어떡하나 라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입술에 묻은 소주를 조용히 핥았다. 그리고 김 대리라 불린 사내는 고민이 잔뜩 묻어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과 함께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의 눈동자와 얼굴에는 짙은 망설임이 농후하게 고여 있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 끝에 앞에 있는 중년 남성을 향해 물었다.
“정말 안전하게 목돈 벌 수 있는 거 확실해요? 만약에 제가 죽거나 돈 못 받으면, 최 부장님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김 대리가 하고 있는 망설임의 원인은 역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에 있었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그는 일주일 전, 자기 상관이 회사 몰래 권한 제안 때문에 그동안 잠을 설치며 고민했다. 그리고 당장 내일 해야만 하는 비밀스러운 부업에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깡 술만 들이켜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망설임에 빠져 있는 동안, ‘국 밥’ 이라는 큰 글씨가 쓰여 있는 창문으로 잔잔한 봄비가 톡톡 떨어지고, 어둠과 시간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최 부장은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아까보다 언성이 커진 목소리로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래! 차라리 내가 다 책임질게! 그리고 김 대리……. 아니, 중원아. 잘 생각해 봐. 어차피 들어가서 위험한 일을 하는 애들은 다 기자 새끼들이랑 중국 용병들밖에 없어. 우리는 그냥 들것만 챙겨서, 조용히 뒤따라가면 된다니까?”
팀 에덴과 무장한 군인들이 봉쇄지역으로 들어가기 이 주일 전, 인터넷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소문은 바로 모두가 죽었을 거라 생각한 곽동윤과 엄재형이 살아 있다는 것.
마치 도시 전설처럼 내려오던 그 풍문은 짧은 기간 동안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를 휩쓸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찌라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찌라시를 본 누군가는 호기심을 느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관심을 받기 위해 허무맹랑한 소리를 떠든다. 하지만 조용히 상황만을 지켜보던 일부 사람들은 그 출처 없는 소문이 꽤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특종과 돈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은 기자와 용병들이었다.
봉쇄지역에 맨몸으로 들어가, 역사상 최고의 특종을 따낸 김창식의 신화는 이미 언론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내려져 오는 이야기다. 물론 그 명성을 얻기까지 남들이 아는 것보다 더 큰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김창식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동경하고 있던 수많은 언론인들은 그 리스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소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들게 과일을 따는 과정보다 그 껍질 안에 달콤한 과육이 우선시되었다. 공포스러운 존재인 놈들은 운이 좋으면 초대박이라는 욕망에 천천히 잊혔고, 먹고 살기 힘든 불경기는 위험한 돈 냄새에도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젊은 가장을 꼬드기고 있는 최 부장 또한 그 부류와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중원아! 너한테 있는 자식만 셋이야, 셋! 네 와이프, 이번에 실직당하고 집안 분위기 개판이라며? 이 불경기에 셋이나 되는 애들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냐? 너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목돈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잖아, 응? 형만 믿고 가자! 애들, 대학은 보내야지!”
설득하는 목소리와 내용에는 이 어려운 시대를 정확히 관통하는 설득력이 있었다.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그대로고. 거리에는 실직자와 노숙자들이 떠돈다. 입에 풀칠하고 살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서 한 가족의 가장인 남자는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 부장은 힘들어하는 남자를 위로하며,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준다.
“내일 아침 8시야. 재수 씨랑 애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조용히 나와. 그 기자 애들이 중국 용병 애들 고용해 놨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뉴스에 나왔던 괴물들의 이야기와 모습이 남자의 머리에서 아른거렸다. 하지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술과 알딸딸한 기분, 그리고 당장 다음 달부터 걱정해야 하는 생활비에, 결국 김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봄비가 그날, 에덴의 사람들이 탈출했던 날처럼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수다 소리와 잔뜩 텐션이 올라간 최 부장의 웃음소리. 그날 밤도 그렇게 시나브로 지나갔다.
* * *
“자, 여기랑 여기, 지장 찍으시고……. 그리고 이따가 대열 뒤만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만약 봉쇄지역 안으로 들어가서 딴소리 나오면, 정말 얄짤없어요, 아셨죠?”
정부 몰래 본사 지원을 받은 새끼가 더럽게 재수 없다. 김 대리는 눈을 까는 척 그렇게 속으로 욕을 삼키며, 거드름을 피우는 기자를 곁눈질 친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는 최 부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비굴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김 대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 여우 같은 아내랑 토끼 같은 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김 대리는 자신의 행동과 비굴함을 애써 현실로 돌리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돈줄을 쥐고 있는 새파랗게 어린 기자에게 최 부장처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앞에서 한 남자의 걸걸한 음성이 들려온다.
“진짜~ 정말로, 이게 마지막입니다! 처남이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이거 들키는 순간, 당신이고 나고 다 모가지에요. 하여튼 시발, 어떤 미친놈이 그딴 소문을 퍼트려서…….”
출발하기 10분 전, 봉쇄지역 근처에 정지한 무리들은 미리 섭외해 둔 공무원의 안내를 받아 철책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무원은 연줄이라는 비겁함을 놓지 못하면서도, 무언가 양심에 찔리기라도 하는지 걸음을 옮기는 내내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걷고 있는 무리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거친 숨을 헉헉 내쉬는 최 부장과 함께 대열 맨 뒤에서 힘없이 무리를 따라가는 김 대리는 사람들이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이 시대를 살아가고, 그날의 일을 목격한 하나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이다.
세기말 직전까지 갔던 세계는 구덩이에서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놈들과 동시에 치솟아 오르는 자살률을 감당해야만 했다. 두려웠던 과거, 희망이 없는 미래. 사람이 응집된 단체에 있어, 당장 목을 물어뜯는 그놈들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들 사이에 퍼진 공포와 절망이었다. 그리고 그 해, 어둠이 내려앉은 대한민국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기침체, 채찍질과 같은 살벌한 공권력. 그리고 동시에 치솟는 실업률과 자살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죽어가는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기들을 조금씩 파먹기 시작한 절망과 두려움에 저항조차 못 하며 안개 낀 길을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영혼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종교도, 정책도, 사상도 아닌, 정말 홀연하게 나타난 책 한 권이었다. 절망, 눈물, 발악, 그리고 끝내 얻은 희망. 시민들은 한 남자의 처절함이 묻어나오는 일기장과 나락에서 기어 올라온 사람들의 증언을 이야기를 들으며, 정부를 향해 분노와 동시에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희망을 꺼내 들었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영웅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이라는 진창을 끝까지 기어오르며 끝내 삶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탈취해 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도, 종교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언제나 어둠만이 가득할 것 같은 땅은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야,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많은 것이 변화했고, 우리는 올바른 이정표를 찾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일기장을 읽은 기억이 있는 무리들은, 그를 이용해 명성과 자본을 취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욕심과 욕망은 금세 그 죄책감을 덮어 버렸고, 그들은 정부와 팀 에덴이 그토록 자제해 달라 부탁했던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공무원이 걸음을 멈추자, 뒤를 따라가던 무리도 걸음을 멈췄다. 시간이 많이 흘러 녹슬어 버린 철책과, 우거진 풀숲. 꼭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것 같은 문 앞에서 사람들은 약간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안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회색 도시는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오늘도 바람과 정적을 옮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조용할 것 같은 도시 안에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불청객 두 명이 녹슨 차들이 즐비한 2차선 도로 한가운데를 숨 바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최 부장은 피가 흐르는 어깨를 움켜잡으며 같이 뛰고 있는 김 대리에게 외쳤다.
“중, 중원아!! 시발, 봤지?! 너도 봤잖아!”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닥치고 뛰기나 해요!!!”
김 대리는 숨 가쁘게 도망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관을 향해 처음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패닉에 빠져 있는 최 부장은 그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비명을 내지르며 목적지가 없는 정면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그 둘의 가방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고, 몸에는 작은 상처들이 즐비했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일은 순조로웠다. 그동안 팀 에덴과 군인들이 많이 노력했는지, 봉쇄지역 외곽에 분포한 그놈들의 숫자는 상당히 적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기자 측에서 고용한 용병들이 신속하게 처리했고, 많은 괴물들을 죽여 본 적이 있다는 중국인 용병들의 허세는 거짓이 아니었는지, 우리들은 이동하는 내내 안전하게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봉쇄지역 안에 풍경을 담고, 외형이 많이 변한 놈들의 모습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인 그의 모습을 찾기 위해 무리들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순조롭게 이어지는 일과와 그를 찾아 대박을 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처음 출발할 때 보여 주었던 죄책감과 두려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사람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진창을 내포하고 있던 회색 도시는 소풍을 나온 것처럼 행동하던 그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잠시 풀숲에서 휴식을 취하던 무리들에게 가해진 습격.
결코, 인간이 아닌 것이 시작한 사냥 게임은 순식간에 카메라맨의 머리통을 뜯어 버리며 조용하던 현장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용병들에게 쏠렸었다. 변종쯤이야 수십 마리가 와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허세가 제발 거짓이 아니기를 빌면서 말이다. 하지만 들고 있는 비싼 총이 너무나 무색하게도, 용병들은 변종에게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사방에 뿜어져 나오는 피와 내장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지금 도망치는 최 부장과 김 대리 또한……. 살기 위한 질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개새끼들! 수십 마리를 잡아 보긴 뭘 잡아 봐! 김 대리는 목숨의 경각이 코끝까지 다가온 순간에도 자신에게서 담배 한 갑을 뺏어가며 허세를 떨던 용병들을 욕했다. 그리고 그의 눈가에는 두려움이 섞인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저 뒤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가 온몸에서 소름을 일어나게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서 최 부장이 비명을 내지른다.
“으아아아아!! 온다, 온다고!!!”
벌써? 그 많은 사람들을 벌써 다 죽이고,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김 대리를 쭈뼛하고 서는 소름을 느끼며 다급하게 뒤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두운 하늘 아래로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서 무언가 검은 물체가 거미처럼 빠르게 기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길쭉한 회색 팔과 다리, 온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90도로 돌아가는 머리에는 귀까지 찢어진 웃음이 달려 있었다. 김 대리는 여기까지 달려오는 내내 비명을 지르는 최 부장에게 닥치라고 욕을 했지만, 놈과 마주한 지금 순간만큼은 자신도 똑같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지옥이다, 그리고 지옥 속에 아귀가 자신을 찾아왔다. 김 대리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내와 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짙은 후회와 원망이 남은 눈물을 질질 흘렸다. 팔과 다리에는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폐는 이제 한계라고 남자를 다그치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 그는 절망했다.
“으아악-!!”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 김 대리와 함께 뛰고 있던 최 부장이 돌부리에 걸려 바닥에 엎어진다. 새된 비명을 지르며 몸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는 발목을 삐기라도 했는지 고통스러운 몸짓으로 몸을 버둥거렸다. 최 부장이 다급히 김 대리를 부른다.
“중, 중원아!”
10년이나 같이 일한 상관이다. 물론 자신을 사지로 끌고 오기는 했지만, 같이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얼굴을 붉혀 본 적이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김 대리는 어쩔 수 없이 뛰던 걸음을 멈추며 바닥에 넘어진 최 부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100m 앞까지 다가온 변종과 경각에 달한 목숨. 눈앞에선 주마등이 지나가고, 그 주마등 사이로 눈앞에 모든 광경이 오버랩된다.
“- - - - - 젠장!!!”
평범한 가장이지만, 선한 마음만큼은 감출 수 없었던 김 대리는 결국 외마디 욕설과 함께 최 부장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최 부장은 본능처럼 손을 뻗었고, 김 대리도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오는 놈의 위용 앞에, 최 부장을 끌어올리던 김 대리 또한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흐……, 흐으…….
코앞이다.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신음이 흘러나왔고, 최 부장의 바지에서는 진한 지린내를 풍기는 노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까지 도달한 변종은 여전히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팔다리를 기괴하게 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사냥감을 조롱하는 모습과 같았기에, 죽음의 순간 앞에 선 두 명은 조용히 서로의 손을 맞으며 눈물을 질질 흘린다.
“김 대리……. 진짜……. 진짜, 내가 미안해…….”
최 부장이 김 대리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김 대리는 눈물을 흘리는 최 부장을 욕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딸들과 새침데기 아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감을 뿐이었다.
“끼- 끼기기- 끼이이익!!!!!!!!”
그리고 사냥과 사냥감을 위한 조롱이 끝났는지, 변종은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그 둘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둘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고, 김 대리는 펑 하고 터져 버리는 주마등에 세상을 향한 안녕을 고했다.
핑-!
“- - - - - - -끼?”
“- - - - - - - -.”
하지만 그 둘에게 찾아온 것은 고통과 죽음이 아닌, 무언가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죽이려고 손을 뻗은 변종은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자각 못 한 채, 의문이 가득한 외마디 단말마를 내뱉으며 그대로 벽에 머리통을 처박는다.
파르르-.
깃이 떨리는 소리가 남자의 귀를 관통한다. 김 대리는 이게 무슨 일인지 한순간 자각하지 못했고, 얼떨떨한 기분을 품에 안은 채 살며시 눈을 뜬다. 그러자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길쭉한 화살이 변종의 머리통을 꿰뚫다 못해. 그 옆에 존재하는 건물 벽에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아귀가, 단 한 발의 화살 앞에 절명한 것이다.
삐이이이.
귓속을 파고드는 이명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변종이 죽자마자 다시 찾아온 회색 도시의 고요함은 한줄기 봄바람을 안은 채 남자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김 대리는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최 부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혼절한 지 오래였다.
김 대리는 온몸에 힘이 빠짐을 느꼈다. 그리고 살았다는 기쁨에서 오는 여운과 안도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하늘에는 언제 찾아왔는지 모를 주황색 황혼이 조용히 걸쳐있었다. 빌딩과 건물 사이로, 눈을 부시게 만드는 빛이 마음속에 조용히 고인다.
“- - - - - - -.”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김 대리는 불어오는 바람에 고여 있던 땀과 두려움을 닦아 내며, 빛과 도시의 근원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리운 삶의 향기가 따뜻한 바람과 함께 도시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멀지 않은 건물 옥상에는 주황색을 등진 두 사람이 이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완결.
<후기글>
동윤이한테 따뜻한 봄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작품도 봄에 끝낼 수 있어서 기쁘네요.
처음 시작할 때 제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오랫동안 품에만 안고 있었던 작가라는 이름의 설렘과 제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 작기만 했던 꿈은 좋은 독자분들을 만나 차근차근 진행될 수 있었고, 이제는 완결이라는 너무나 값진 단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참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네요.
일단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완결이 났고, 동윤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물론 외전을 통해 제가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쓰기는 하겠지만, 작품 속에 동윤이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채연이와 일행들을 만나 오랜 회포를 풀고 있을 겁니다. 겁 많고 나약하기만 하던 주인공이……. 정말 힘든 고난과 고통을 뚫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동윤이는 영웅이 아니고, 슈퍼맨처럼 히어로도 아니었습니다. 항상 아플 만큼 나약했으며, 끝없이 고민하고, 살아가는 내내 삶의 목적을 고뇌하는 보통의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죠. 하지만 동윤이는 그런 보통의 사람이었기에 성장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번데기, 하지만 곧 부화할 것을 기다리는 나비처럼 말이죠.
나비는 인내를 터트리며 부화하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윤이 또한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가장 멋졌어요. 비록 지금과 같은 시대에선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바보 같은 주인공이었겠지만, 그런데도 저는 동윤이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끝까지 지켜봐 준 독자님들에게도 동윤이가 가지고 있었던 그 작은 용기가 항상 같이하길 바라봅니다.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저를 지지해 준 가족과 제 작품이 완성될 수 있게 도움을 준 편집자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제가 끝까지 글을 쓸 수 있게 지켜봐 주신 독자님들에게 가장 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의 구절입니다. 그리고 오늘 작품을 완결 내는 이 순간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구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님들과 함께했습니다. 글과 이야기를 쓰는 것은 저였지만, 그 작품과 함께 걸어가 주었던 것은 여러분이었단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잠시 휴식을 취하고, 19일부터 외전을 연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완결, 끝까지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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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 살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