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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97화 (197/313)

나는 아직 살아있다. 197화(에필로그 2)

그는 오랜 시간 접견실에 앉아 있었던 우리를 위해 믹스커피를 한 잔씩 타다 건네주었다. 비록 그 커피는 종이컵 위로 뜨거운 내용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싱거웠지만, 이게 버릇이 되어 버렸다고 사과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싱거운 커피도 달달하게만 느껴진다.

그날의 생생한 증언과 어쩌면 맛이 아닌 살기 위해 먹었을 물 많은 커피는 우리 취재팀이 그날 봉쇄지역에 있었던 것만 같은 현실감을 전달해 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용팔 씨와의 인터뷰를 이어가기로 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았겠군요.”

“네. 뭐, 당연하죠.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꿈도 희망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우리를 지옥 밖으로 꺼내 줬는데, 그 앞은 이보다 더한 지옥이었던 거죠. 부족한 물품과 식량, 언제 군인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두렵고, 없다시피 한 의료품들 때문에 부상자들은 죽어 나갔어요. 근데,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게 뭔지 알아요?”

그 물음에 접견실은 침묵으로 휩싸였다. 카메라는 너무나 슬픈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담았고,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용팔 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애들한테 어떻게 말해 줘야 할지 몰라서 밤새 울었어요. 분명 사람들이 잠깐 늦게 오는 거라고, 내일이면 전부 온다고 알고 있을 텐데, 비겁하게 살아남은 내가 무슨 면목으로 진실을 말해 줄 수 있겠어요? 애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아이들이 잔혹하고 억울한 진실을 알아야 할 나이는 아니잖아요.”

용팔 씨는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지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거친 호흡과 먹먹함을 잔뜩 담고 있는 눈가. 비록 4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피부 위에 남은 흉터처럼 고통은 기억 속에 아직 남아 있었다.

“못 나갔어요. 아니, 그냥 안 나갔어요. 할아버지랑 형님이 그토록 벗어나라고 당부했는데, 나는 봉쇄지역 근처를 못 벗어났다고요. 언제 잡힐지 몰라서 불안함에 떨면서도, 이 목숨의 값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면서도……. 나는 혹시 나올지 모르는 형님이랑 할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저랑 마찬가지로 모두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었죠.”

“어느 날은 형님이 저한테 말씀해 주신 것이 있어요. 움직이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희망은 헛된 희망일 뿐이라고요. 근데 그때만큼은 형님이 해 줬던 충고를 잊고 만 거죠. 꼭 약이랑 술에 취한 사람처럼 난 굶주림과 피곤함에 잊고 봉쇄지역만 바라봤어요. 폐인처럼……. 그냥 호수 위를 떠다니는 부표처럼요. 근데 그러다가 처음으로 천막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게 누군지 알아요?”

용팔 씨는 우리와 인터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허름한 지갑 속에서 손에 쏙 들어갈 정도의 작은 사진 한 장을 꺼내 우리 취재진에게 보여 주었다. 카메라가 잡은 그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예쁘게 앉아 있었다. 꽤 최근 것으로 보이는 그 단체 사진, 나는 언론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사진을 바라보며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리고 곧 그에게 물었다.

“이거…….”

“우리 아이들이에요. 많이 컸죠?”

출판물은 본 많은 독자가 아이들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에덴 리스트의 적힌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언론과 관심이 닿지 않는 지역으로 피해 다녔고, 결국 이민했다는 소문과 함께 아이들에게 쏠렸던 관심과 집중은 천천히 식어갔다.

하지만 관심과 이목이 식었다고 해서 아이들의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인 나는,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사진을 받아들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기장에 나온 아이들의 숫자와 단체 사진 속에 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일치했다. 그토록 처절하게 살아가던 인간 곽동윤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일은 결국 해내고 만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을 조심스럽게 잡고 다시 용팔 씨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날 천막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이들이었어요. 하나같이 조막만 한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당장 출발한 기세로 나를 바라봤죠. 무슨 뜻인지 알아요? 그 연약한 아이들이 고통과 아픔을 딛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은 내가 너무 한심했어요. 아니, 아마 거기 있던 모든 어른들이 나처럼 생각했을 거예요. 형님과 사람들이 남겨준 유산은 슬픔과 고통이 아닐 텐데, 우리는 잠시 까먹고 있었던 거죠.”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다 알고 있었는데도 어른들을 위로하려고 찾아온 거예요. 그리고 조용히 옆으로 다가온 채연이가 내 손을 잡아주는 순간, 나는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 아이들은 정말……, 형님의 아이들이 맞구나.”

“아픔과 고통이 때로는 사람을 멈추게 하잖아요? 눈 앞을 가리는 어둠과 밤이 찾아오면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방황하는 거죠. 하지만 누군가를 탓한다고 해도, 세상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변한 것은 오직……, 나죠. 다음 날 눈을 뜨면 언제나 여명이 찾아오듯이, 우리는 항상 일어날 기회를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럼 그걸 누가 말해 줬을까요. 책이요? 위인이요? 영웅이요? 아뇨, 그건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아요. 그냥 저는 등대를 봤을 뿐이에요.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길을 만드는 발자국을 따라간 거죠.”

“나는 비로소 두려움을 버릴 수 있었어요.”

그는 앉아 있던 허름한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까부터 보고 있던 하늘을 살피며 누군가를 향한 숨을 내뱉는다. 우리 취재팀은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카메라에 담으며 한동안 침묵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최용팔 씨는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는지 읊조림이 섞인 독백을 계속 이어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떠날 준비를 했어요. 그리고 짐을 정리하는데, 형님이 부탁한다고 저한테 건네준 가방에서 현물이 잔뜩 발견됐죠. 금, 시계, 보석……. 봉쇄지역 안에서는 하등 쓸모없던 그 물건들을 형님은 하나하나 모으고 있었던 거예요. 혹시 욕망 때문이냐고요? 아니요. 그 현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들 전부가 알고 있었어요.”

“빈민소굴 같은 지역을 벗어나서 산과 국도를 끊임없이 넘었죠. 그리고 난민들이 최대한 몰리는 지역을 찾아가서 형님이 챙겨준 현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매했어요.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좋은 점은 그것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돈만 있으면 식량도, 물품도, 심지어 브로커를 통해 가짜 신분까지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고 우리는 살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지기로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헤어진다고 해서 서로의 유대감이 끊긴 것은 아니었죠. 그리고 그날 밤, 사람들은 헤어지기 전에 한곳에 모두 모여 자신의 이름과 남겨두고 온 자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어요. 한 자, 한 자……. 형님이 말해 주던 그 근원이란 것을 담아서요.”

나는 순간 머리를 번뜩 스치고 가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많은 독자와 전문가들이 추측하던 내용의 실체가 방금 최용팔 씨의 증언으로 드러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가슴속에 뭉친 먹먹함을 여과 없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에덴 리스트…….”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맞아요. 에덴 리스트요. 형님의 이름을 적을 좋은 종이와 펜을 가져와야 했는데, 물품하고 신분을 사느라 주머니에는 땡전 한 푼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강 형사님이 가지고 있던 낡은 이면지랑 모나미 볼펜으로 에덴 리스트를 완성시켰죠. 정말 형편없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써 내려가는 마음으로 그걸 두 손에 쥐었어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면서…….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고 말해 주는 숭고한 이정표였으니까요.”

카메라는 최초의 증언을 정신없이 화면에 담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펜을 휘갈겼다. 하지만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최용팔 씨는 우리가 자신을 보고 있든 말든, 자서전을 읽어내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헤어지기 전날 창식이 형이 내 손을 잡고 펑펑 울었어요. 만나지 두 달도 되지 않은 형님인데, 나도 주책없이 눈물을 질질 흘렸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모두가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창식이 형이 말했어요. 버티고 또 버텨서……. 1년만, 제발 1년만 살아 있어 달라고요. 1년이요? 난 동윤이 형님이랑 할아버지를 볼 때까지 10년이고, 100년이고 살 수 있었는데, 너무 쉬운 부탁이잖아요? 그래서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약속했죠.”

“도망자처럼 살았어요. 우리 일행들을 보호하면서 쥐새끼처럼 살아남았죠. 그리고 1년이 지나니까 연락이 끊겼던 창식이 형이 끝내 약속을 지켜주더라고요. 사람들이 일어나서 정권을 바꿔주고……. 그날 우리를 지옥 속에 가뒀던 사람들은 법이라는 이름 앞에 서야만 했어요. 그리고 일이 끝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물어봤죠. ‘이제 모든 게 끝나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 줘요.”

“아니요. 아직 안 끝났어요.”

그의 말대로 최용팔 씨와 일행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사상 처음으로 싱크 홀을 전원 격리하고, 매번 터져 나오는 놈들과 변종들을 성공적으로 막아 내고 있는 나라. 그리고 그 최전방에는 에덴 팀이라 부르는 그들이 있었다. 나는 이 대단원과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인터뷰의 끝을 위해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말도 많고 논란도 많았던 법안이 오늘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정부와는 이미 손을 맞추신 거라는 소문이 있는데, 초창기부터 주장하시던 작전이 곧 시작될 거라 생각이 듭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 시기를 3달 뒤라고 추측하고 있던데, 맞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기자님이 말하시는 전문가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정확하네요. 맞아요. 따뜻한 봄이 오고, 눈이 다 녹으면 우리는 봉쇄지역으로 천천히 전진합니다. 그리고 그 근방을 탈환하고 지옥에서 웅크리고 있는 놈들을 전부 끌어낼 거예요.”

특종이다. 같이 왔던 취재진들은 그의 단호한 음성을 듣자마자 바쁘게 손을 움직이기 바빴고, 나와 카메라맨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민감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해야만 하는 사명감을 느꼈다.

“많은 논란이 있잖아요?”

최용팔 씨는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논란이요?”

그의 반문에 막내가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내 손을 잡았지만, 난 기필코 이것만은 물어봐야겠다는 듯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창가 앞으로 다가가 내가 정말 듣고 싶은 이야기의 결말을 그에게 물어봤다.

“그날 군 관계자들은 신원미상의 시체들을 여럿 찾았었다고 자백했어요. 물론 사체들이 유기되어 증거가 사라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중에 분명 곽동윤 씨와 엄재형 씨의 유해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만약 포위망을 뚫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최용팔 씨도 잘 알고 있잖아요? 그곳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거요.”

모든 전문가들이 그 둘의 사망이 확실하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오직 팀 에덴만이 전문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단독으로 수색작전을 펼칠 것이라는 일방적인 통보해 왔다. 그리고 그 통보에 많은 팬들과 독자들은 깜짝 놀랐고, 평소 불순한 자들은 팀 에덴을 미쳤다고, 아직도 과거의 망령을 쫓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팀 에덴을 이끌고 있는 최용팔 씨는 그 어떠한 비난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3달 뒤에 있을 작전을 위해 스스로를 가다듬고 팀원들을 다독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무례한 질문을 하고 나서 그에게 한 대 맞을 각오로 눈을 감았지만,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온 것은 주먹과 화가 아닌 너무나 맑은 웃음소리였다. 내가 파르르 떨리는 눈을 떠 정면을 바라보자, 최용팔 씨는 창문을 열어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수련이 누나가 가끔 그래요. 지금 나온 책은 자신이 쓰지 못하는 미완성이라고요. 그리고 나도,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 긴 이야기의 마지막 장, 우리들의 맺음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단 두 명밖에 없다는 걸요.”

“우리는 이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끝을 위해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어요. 두 분을 꼭, 꼭 만나서……. 채우지 못했던 마지막 일화를 마무리 짓는 거죠.”

아이의 가방 속으로 들어간 이후, 주인을 잃어 완성되지 못한 일기장.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다는 결말을 기대하면서도 곽동윤의 다음 장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화 속의 영웅과 같이 저 험난한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그들만은 알고 있었다. 이야기의 속편은 그들이 그토록 만지고 싶었던 저 멀고, 먼 여명 속에 있었다고.

*       *       *

최용팔 씨는 인터뷰가 끝나기 직전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기자님도 책 읽었어요? 그럼 그 뒤에 있는 부록도 보셨겠네요. 그 부록 내용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나와요. 형님이 우리한테 직접 써 준 거거든요.”

그는 시끄럽게 울리는 무전기를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벗어 두었던 장비들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꿰맨 흔적과 때가 꼬질꼬질한 장비들, 하지만 그가 총을 들었을 때는,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봐 왔던 누군가를 똑 닮아 있었다. 그는 문밖을 나가며 우리에게 말했다.

“기자님,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어요.”

그는 정말 유명한 문장을 읊었다. 그리고 우리 취재팀은 떠나가는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봄이 와요. 형님을 만나러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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