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96화 (196/313)

나는 아직 살아있다.  196화(에필로그 1)

20xx년 11월 21일 57번 국도 인근 제3구역

우리 취재팀이 그를 만난 곳은 사람들 사이에서 3구역이라 불리는 거주지 밀집 지역이었다. 이곳은 민간인이 봉쇄지역까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었고, 육안으로 경계철책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불법 난민들의 유입으로 치안이 굉장히 불안정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소는 그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도청 소속의 건물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이 방어지역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그가 굉장히 바빠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취재팀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접견실에서 꼬박 4시간을 죽치고 앉아 그를 기다렸다. 지난 4년간 단 한 번도 언론의 노출된 적이 없는 그다. 전 세계 최초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우리 취재팀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 3시쯤, 우리는 드디어 문을 열며 모습을 들어오는 최용팔(본명) 씨를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첫인상은 일기장에서 등장한 용팔이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중후하고 건장한 사내였다. 부록 사진에 나오는 용팔이는 분명 키가 작고 까불거리는 개구쟁이였을 터인데, 우리 앞에 있는 남자는 볼 옆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 있는 베테랑 군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악수를 청할 때, 우리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통해 분명 최용팔 씨가 맞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최용팔 씨는 가장 먼저 우리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을 확인하며 기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아직도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 팀장님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의 안부를 물어왔다. 물론 책을 수십 번이고 읽어본 나는 김 팀장님(김창식)과 에덴의 관계를 잘 알고 있기에 최근에 찍은 팀장님의 사진을 보여 주며 동봉해 온 자필 편지도 같이 건네주었다. 편지를 받은 그는 무언가 아련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 읽은 편지지를 조용히 접어 책상 위에 내려놓자, 우리 취재팀은 드디어 인터뷰를 진행할 수가 있었다. 이하 내용은 약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의 내용이다.

*       *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우편을 보낼 때만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라도 있으신가요?”

우리 제작진은 준비한 카메라를 들고 앵글에 얼굴을 담았다. 마침 창문 사이로 환한 햇빛이 들어와 따뜻한 풍경이 배경이 되어 준다. 그리고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지 부끄러운 미소로 바닥을 내려다보았고, 곧 입맛을 다시며 옆에 마련해 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30초라는 짧지만 긴 시간이 흐르며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창식이 형 부탁인데,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 어째 그 형님 신수가 훤한 게 결혼식은 잘 했나 봐요? 아차, 내 정신 좀 봐. 기자분들인데 앞에서 질문이나 하고 앉아 있네. 혹시 시작하기 전에 자기소개 이런 것도 해야 합니까?”

“아뇨, 아뇨. 책을 읽으셨던 전 세계 구독자분들이 다 목을 빼놓고 기다릴 만큼 유명하십니다. 아마 자기소개를 하지 않으셔도 사람들이 이해해 주실 거에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는 구독자라는 단어를 듣자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사전의 많은 조사를 했던 우리 제작진은 들리는 풍문으로 그가 언론 노출을 꺼려했던 이유를 알고 있기에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며 인터뷰를 이어가기로 했다. 카메라의 들어오는 붉은빛이 조용히 빛나고, 나는 자세를 바로 하며 그에게 할 질문에 화두를 던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잖아요?”

“벌써 그렇게 지났어요? 시간 진짜 빠르네.”

내 물음에 최용팔 씨는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잔잔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와 우리 제작진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천천히 되짚으며 조용히 돌아가는 카메라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전부 담기 시작했다.

탈출 이후로 정확히 4년하고도 11개월이 지났다. 일주일만 더 지나면 5주년이 되어가는 그 날의 이야기는 에덴의 사람들이 모습을 감추고, 정확히 1년 뒤에나 진상이 드러날 수 있었다. 정말 예고 없이 신문 1면에 실린 사진과 인터넷에 터져 나온 짧은 영상들. 완전히 사장되었을 거라 생각한 A사 언론에서 튀어나온 폭탄은 싸늘하게 식어 있던 국내 여론을 뜨겁게 달궜고, 정부는 그 사실을 황급히 숨기려고 했지만, 한 번 타오른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퍼져나간 생존자들의 증언과 정부의 눈길을 피해 꼭꼭 숨어 있던 일부 언론인들이 불을 지피며 에덴 리스트라는 자료들이 서서히 국제사회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북한과의 대치라는 이유로 살얼음 같은 공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정부다. 참고 또 참고 있던 국내 여론은, 마지막 날 공개된 곽동윤의 영상을 끝으로 터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거리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왜 거리로 나왔는지, 어째서 우리가 이래야 하는지 서로 묻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앞을 걸었던 에덴의 사람들처럼 누구나 볼 수 있는 큰길로 빠져나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애,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올바른 일을 위해 뭉쳤다. 놈들의 출현으로 침체된 국제경기. 대한민국은 최대 실직자와 자살자를 기록하던 그 추운 겨울날, 사람들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을 처음으로 겪으며 시리고 시린 진실 앞에 마주한 것이다.

광장 앞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군인과 경찰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하지만 싸늘한 대치 순간에도 시위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했고, 큰 소리와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심지어 그들은 막는 군인과 경찰들조차 눈을 감았으며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진실이 세상에 밝혀진 순간, 모두가 조용히 길바닥에 앉아 가슴속에 품은 촛불을 조용히 들어 올렸다.

일주일간 지속된 작은 반도의 시위는 서서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삼 세계 국가는 갈수록 몰려오는 놈들 때문에 국토를 분단하고, 전 세계 사각지대에는 갈수록 몰려오는 수많은 국제 난민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군사 강대국들조차 몸살을 앓는 그 세기말의 순간에서 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저렇게 나와 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씨 위에 마지막 장작을 던진 것은 안정화가 되어가는 미국에서 출판된 한 권의 책이었다. 너무나 허름한 표지, 너무나 흔한 이름. 하지만 그 허름한 책 한 권은 경제 침체 속에 망해가기 시작하던 북미 출판계를 4주 만에 휩쓸었다. 그리고 그 책이 북미에 출간된 지 한 달 뒤, 그가 써 내려갔던 이야기는 진실을 찾기 위해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 앞에 시린 첫눈처럼 천천히 내려왔다.

저자, 강수련. 그 허름한 책의 첫 장을 펼치면 환하게 웃고 있는 그가 에덴의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남자가 고시원을 빠져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무고한 사람과 아이들을 밖으로 빼내기까지의 이야기. 에덴의 생존 리스트와 정확히 일치하며, 김창식이 촬영했던 영상이 절묘하게 들어맞던 그 책은 조용하면서도 치명적인 여파를 내포하고 있었다.

살려야 한다는 처절함과 그날의 비극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생생한 증언록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숨을 죽이고 있던 내외신 기자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고, 전국 수많은 도시에선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 현 정부가 시간이 지나면 꺼질 거라 생각한 그 불길은 아직 남아 있는 양심과 윤리를 불태우며 반도 위에 내려앉았던 차가운 서리를 녹이기 시작한 것이다.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쏟아지는 비판과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보도. 수백만의 촛불과 그들을 막기 위한 물대포가 난무하는 혼란은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하지만 담담하게 일기장을 써 내려가던 그가 말했던 것처럼 차가운 겨울이 지나자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전 세계가 세기말을 지켜보는 가운데, 기어코 정부를 끌어내리며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그리고 길고 긴 후일담을 나누던 우리의 대화는 그가 조용히 입을 다물 때쯤 끝이 났다. 의자 위에 조용히 앉은 최용팔 씨는 밖에서 비추는 해를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시련과 누군가를 향한 짙은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우리 취재진은 한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그를 위해 조용히 녹음기를 내려놓는다. 그는 아마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입안에 담긴 여운을 곱씹고 있을 것이다.

5분간 정적이 흐르고, 나는 그에게 그토록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많은 독자분들이, 그 이후 이야기를 많이 궁금해하세요. 봉쇄지역 밖으로 나오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사장될 뻔했던 진실이 밝혀지고 비리와 독재로 얼룩졌던 정권이 바뀌었다. 서서히 안정화되기 시작한 국제사회와 완벽하게 놈들을 막은 철책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켰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에덴 리스트로 사람들의 시선을 쏠렸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수많은 인터뷰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으며, 수많은 증언과 경험담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에덴 리스트의 주축이며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선두지휘했던 구조팀의 인터뷰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취재팀은 4년 11개월 만에 B팀과 사람들을 이끌었던 최용팔 씨를 통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막내가 조용히 마른침을 삼킨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어 그날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형님하고 연결된 무전이 끊기고 슬퍼할 틈도 없이 움직였어요.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당부한 대로 모든 걸 버리고 빗속을 뚫고 지나갔죠. 그리고 걸으면서 했던 결심이 허망하게도 그 좁고 작은 길을 지나가는 우리를 막는 군인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기뻤죠,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어요. 하지만 봉쇄지역을 완전히 빠져나가고 나서 주민들은 왜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꼭 억세게 비가 오던 그 날, 그 자리에 아직도 있는 것처럼 슬픈 얼굴로 숨을 내뱉었다.

“수련이 누나가 처음으로 내 뺨을 때렸어요. 근데, 그거 알아요? 뺨은 내가 맞았는데, 때린 누나가 더 아파 보였다는 거? 순간 주저앉은 누나가 때려서 미안하다고 울고, 나도 미안하다고 울고, 사람들은 그냥 서로 울면서 처량하게 비를 맞았죠. 아직도 생생해요. 여기 앞에 항상 서 있던 사람들 어디 갔냐고, 여기 있어야 하는 그이는 도대체 어디 갔냐고 누나가 물었을 때, 난 정말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거든요?”

그는 목이 타는지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에 물컵을 잡았다.

“그리고 정확히 하루 뒤에 강 형사님과 박대박 씨를 포함한 A팀 8명이 봉쇄지역 밖으로 빠져나왔어요. 대부분 총과 파편을 맞은 끔찍한 중상이었는데, 김 철 형님이 대부분 살려냈죠. 그리고 나는 치료를 받아 정신을 차린 박대박 씨한테 물어봤어요. 형님은 어디 갔냐고, 왜 할아버지는 같이 안 나왔냐고…….”

그는 천천히 말을 흐렸고 떨리는 손으로 녹음기를 잡은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두 분은…….”

“네. 박대박 씨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형님이 끝까지 놈들을 유인하려고 다른 곳으로 뛰고 있었대요. 심장이 한 번 멈췄었는데, 그런데도 뛰고 있었다고요.”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마와 얼굴을 짚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나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그의 증언을 말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두가,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너무나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강 형사님이 마지막으로 본 할아버지는 이미 풀숲으로 뛰어들어 간 지 오래였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무전을 꺼 버린 형님을 데리러 간 게 아닐까 싶어요. 항상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셨는데, 너무나 당연한 거죠.”

그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더 이야기해 줄까요?”

막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을 까먹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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