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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94화 (194/313)

나는 아직 살아있다.  194화

포탄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나는 넘어지듯 바닥에 엎드린다. 그러자 오른쪽 풀숲이 펑 하고 터져나가며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파편과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지옥의 불. 나는 얼굴에 묻은 피와 흙을 소매로 황급히 닦으며 바닥에 침이 섞인 거친 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총을 잡은 상태로 바닥을 필사적으로 기어 포격 때문에 흩어졌던 박대박과 무리들을 찾기 위해 엄폐물에 다가간다.

그리고 엄폐물 옆까지 도착한 나는 바위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박대박과 가까스로 살아남은 상처투성이의 무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반절 넘게 죽어 나간 상태였으며, 남아 있는 인원은 박대박을 포함한 3명이 끝이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시체들, 자신이 죽으면 꼭 두고 가라던 그들의 비장한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비정한 현실은 짧은 이별조차 저 진창 속에 파묻어 버린다. 나는 건조한 슬픔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쓰러져 있는 그들의 팔과 목덜미를 잡아 끌어올렸다.

온몸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자 내 입에서는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허벅지에서 핏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를 쭉 짜내듯 터져 나온 피는 구멍이 뚫린 근육 사이와 붕대를 축축하게 적시며 극심한 고통을 유발한다.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과 죽음 직전까지 다가온 사신의 낫이 예리하게 날을 세우며 눈앞에서 번뜩인다.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기 시작하며 흙과 핏물로 진창이 된 바닥이 내 발과 온몸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나는 영혼의 근원마저 토해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숲이 불타오른다, 동시에 나 자신도 발화하기 시작했다. 아름답지 않고 때가 묻어 덧없기만 한 그 불꽃. 하지만 그 불꽃은 저 밤하늘에 보이는 별을 보며 끝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박대박을 들추고, 양손으로는 일행들의 팔을 한쪽씩 잡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후방을 향해 그들을 이끌고 걸어갔다. 동시에 앞섬에 꽂아 둔 무전기에서 대원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찢어지다 못해 쉬어 버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격이 끝나면 저쪽에서 먼저 몰려올 거야! 그전에 여기서 벗어나야 하니까, 싸울 생각 하지 말고 빠져나와! 박대박이랑 애들 부탁한다!]

나는 답할 힘이 없어 거친 숨소리로 응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B팀이 에덴의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빠져나간 상태다. 물론 우리가 봉쇄지역 안에서 나왔다는 증거를 포함해 무전기와 화기들은 모두 내려놓고 나가 연락이 끊겼지만, 나는 믿음직한 용팔이 형제와 우리 구조팀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무사히 빠져나갔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A팀의 생사 여부였다. A팀은 이미 반절이 넘게 사망한 상태이며 겨우 살아남은 인원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그래, 사지로 들어올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우리 A팀은 전멸을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아까부터 지속하고 있는 박격포 포격이 풀숲을 화염이 들끓는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까 우리를 뒤쫓아 오던 군인들은 이미 포격을 피해 몸을 피한지 오래고, 놈들은 우리를 전멸시키기로 작정했는지 쉴 새 없이 포격을 가하며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온다.

그래, 아마 노인의 말대로 이 포격이 끝나면 상부의 지시를 받은 군인들이 우리를 추격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 외나무다리조차 보이지 않는 절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옆에서 화염이 터진다.

쾅-!!!

어떻게 살려야 할까? 목숨을 각오했던 이들을 어떻게 내보내야 할까? 내 머리를 가득 채우던 고뇌와 상념이 옆에서 터져 나온 빛에 모두 날아가 버린다. 나는 힘없이 폭발에 밀려 허공을 날았고, 피부에 흘러내리는 것이 핏물인지, 빗물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형편없이 진창과 나무에 몸을 박는다.

컥-!

등판에 가공할 고통이 느껴지며 바닥에 몸을 처박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끔찍한 고통에 나는 참지 못하며 외마디 단말마를 내뱉었다. 그리고 팔다리에 감각이 사라지며 새하얗던 눈앞이 암전된 듯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끝, 허우적거리는 팔다리. 내 정신을 붙잡고 있던 필라멘트가 팍하고 끊긴 것을 느낀다.

“- - - - - - - -.”

“아…….”

이명이 울리고 온몸에 힘이 없다. 눈은 떠지지 않았으며 주변을 울리던 폭발음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상황은? 내가 끌고 오던 박대박하고 사람들은 무사한가? 빨리 오라고 무전하던 노인은 괜찮은지 잘 모르겠다.

울고 불던 용팔이의 얼굴. 아, 혹시 수련 씨랑 채연이는 울고 있지 않을까? 모든 게 걱정이고 모든 게 아프다.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부담감과 고통이 내가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나약한 영혼을 괴롭힌다. 소리가 질러지지 않는다.

“- - - - - - 아.”

신경을 자극하던 끝없는 물음이 머리와 정신을 치고받으며 나에게 일어나 상황을 살피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끝내 한계까지 도달한 몸은 작은 연기 한 줄기만을 남긴 촛불처럼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것 같았다. 이 고통과 고뇌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나는 그토록 원하던 평안을 찾아가는 것이다. 죽음, 어둠. 나는 저 끝없는 심연에 빠져들어 가는 모래알처럼 무게가 없는 부유감을 조용히 느낀다. 그리고 얼굴에 떨어지는 빗물의 감촉이 완전히 잊힐 때쯤, 나는 모든 것을 망각하고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에 몸을 웅크린다.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너무 아팠다. 죽이기 싫은 사람을 죽여야 했고, 도망가지 못하는 터널만을 끝없이 걸으며 항상 고독해야 했다. 쫓기고 도망간다. 죽이고, 죽고, 죽을 날만을 기다린다. 언제 이 고통이 끝날까? 언제쯤이면 나도 어깨 위에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춥다, 나는 이 회색 도시에 한 가운데서 너무나 추웠다. 피가 만든 설원을 맨발로 걸으며, 나는 스스로 저지른 죄를 심판받는다. 손에 묻은 피만큼 발아래 피가 고인다. 나는 보통의 인간이었을 뿐인데, 이미 저 멀리 지옥이 보이고 끝내 그들과 같이 괴물이 되었다.

스스로가 위대하지 않고, 그림 속에 나오는 슈퍼맨이 아니었다는 것 뼈저리게 느낀다. 너무나 작은 존재, 이 큰 도시 안에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 나는 넘실거리는 현실의 파도에서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정신을 느낀다.

*       *       *

“- - - - - -.”

그리고 그 순간 콧등에 화하고 차가운 것이 맺힌다. 그것은 미치도록 내리던 빗물도 아니었고, 우리를 옭아매며 처절함을 닮고 있던 진창도 아니었다. 꼭 박하사탕을 입안에 머금듯 퍼지는 시원함은 내가 간직하고 있던 차가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까 들리지 않던 심장 소리가 두근두근 천천히 울려온다.

‘- - - - 동윤아.’

거친 노이즈와 이명만이 들려와야 하는 귀에서 누군가 나를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내가 끌고 여기까지 걸어온 박대박의 것도 아니었고, 무전기 너머로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던 노인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잠시 까먹고 있었던 목소리였다. 내가 절대 잊지 못하고, 또 가슴속에 못처럼 박아두던 그 목소리는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우리 막내가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잠깐 쓰러져 있었네.’

눈을 뜨자 비와 화염이 넘실거리던 숲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고통과 지옥은 모두 악몽의 불과했다는 듯 하늘에는 새하얀 눈이 예쁘게 내리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칙칙한 회색이 아니고 가슴이 시린 무색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정말 예쁘고,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생소한 감정은 새하얀 눈과 섞여 내 얼굴에 떨어져 내린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붙잡으며 그토록 그리워하던 목소리를 쫓았다. 그리고 안개가 끼기라도 한 듯 흐릿한 시야 사이로는 티 없이 밝은 여명이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얼어붙은 서리를 녹이는 따뜻한 입김이었고, 모든 세상을 지배하던 어둠을 몰아내는 위대한 여명이었다. 진창에 처박혀 차갑게 식어 가던 내 몸이 서서히 따뜻해진다.

그리고 목소리를 쫓아 시선이 도착한 그곳에는 하나도 늙지 않은 형님이 소방 모자를 벗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근하게 웃는 얼굴, 개구쟁이처럼 익살스럽게 올라간 입꼬리. 항상 꿰매며 사용하던 소방 장갑과 때가 가득하던 소방 모자를 쓴 형님은 마지막으로 볼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여명을 등지고 있었다.

나는 그 여명과 형님이 너무나 시려 눈을 감으면서도 가슴속에 차오르는 먹먹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꾹 다물고 있던 입이 가까스로 열리며 부르고 싶던 이름을 흐린다.

“형님……, 나…….”

‘그래, 알아. 많이 고생했다.’

내 머리 위로 두껍고 따뜻한 손이 살며시 올라온다. 그리고 형님은 소방 모자를 눈 위에 천천히 내려놓으며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고생했어, 형님이 내뱉은 그 짧은 위로의 한마디가 내 고통과 문드러진 가슴을 절실하게 대변해 주었다.

아아-.

가슴속에서부터 벅차오르는 먹먹함이 하늘에 내리는 눈처럼 내려와 온몸을 촉촉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가 옆으로 흘러내린 슬픔의 정수가 진창으로 더러워진 볼을 따라 천천히 흘렀고, 곧 피와 두려움으로 얼룩졌던 내 손과 몸을 파도처럼 씻어 내렸다.

꺽- 꺼억.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입과 눈에서는 참고 또 참았던 서러움과 눈물이 여과되지 않은 상태로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나, 힘들었다. 나, 너무나 아팠다. 상처가 날 때마다 이를 악물었고, 스스로 상처를 낼 때마다 꾹 참아왔다. 괜찮다, 나는 아프지 않다. 항상 그렇게 말해 왔지만 나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부딪히고 깨지고, 갈라지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이제 이곳에 도착했다. 내 삶을 휘둘렀던 거친 조류가, 나를 끊임없이 시험했던 노도의 파도가, 저 끝에 설원의 숲이 보이고 나서야 잔잔한 호수까지 도착한 것이다.

나는 잘해 왔을까? 이토록 고통스러웠던 내 삶이 과연 의미가 있었을까? 나는 그 물음과 삶의 마지막을,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고통이 사라진다. 내 귓가를 속삭이던 모든 이명이 차분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바뀌었다.

‘동윤아, 천천히 와.’

눈물의 장막이 커튼처럼 눈 앞을 가린다. 그리고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잔잔한 산들바람은 형님의 마지막 목소리를 나에게 전달했다. 그 말에 반응해 힘겹게 커튼을 걷어내자 구름과 설원 사이로 서리처럼 시린 여명이 형님의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형님은 아무도 밟지 않았던 눈을 밟으며 저 너머로, 그리고 더 너머로 걸어간다. 나는 손을 뻗었다. 아니, 끝내 버리지 못하는 미련을 뻗으며 형님을 조용히 불렀다.

“형, 나도 같이 가요.”

살가죽처럼 벗지 못하는 과거였다. 뼈가 사무치도록 후회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형님은 끝내 나를 찾아와 주었고,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피와 진창을 씻어 내려 주었다. 온몸이 노곤하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도달한 나는 인제 그만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목소리에 순간 걸음을 멈춘 형님은 들고 있는 소방 모자를 꾹 눌러쓰며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저 앞에 펼쳐져 있는 설원만큼이나 새하얀 이빨과 웃음. 형님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해 주었다.

‘일어나야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그 목소리는 내 몸을 관통하는 번개로 변했다. 발끝에서 시작한 짜릿함이 온몸에 있는 혈관을 타고 흘러간다. 죽어가던 정신과 육체가 거칠게 소리를 내뱉는 심장 소리에 반응했고, 곧 번개를 뒤이어 천둥이 친다. 눈앞이 번쩍 빛난다. 나는 태풍처럼 눈앞을 지나가는 주마등을 마주 본다. 그리고 이곳으로 이루고 있는 공간이 폭풍에 휩쓸려 눈보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끝까지 지켜보며 웃고 있는 형님은 그 눈보라 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그날 하수구에서 나 깨워 준 거, 형님 맞죠?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이 나를 깨워 줬잖아요. 그리고 나는 그 읊조림을 끝내 내뱉지 못했다. 기다리는 사람, 나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 그 문장이 머리를 맴돌며 포기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붙잡는다. 그리고 불어오는 눈보라 속에서 마지막으로 보이는 그림자를 잊기 위해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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