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91화 (191/313)

[191]

나는 조잡한 천을 덧대서 만든 천막 앞으로 다가가 조용히 문을 들춘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올리며 오직 숨소리밖에 들려오지 않는 천만 안을 살펴보았다. 새근새근,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난방시설조차 존재하지 않는 열약한 시설, 그 속에 아이들은 쌀쌀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슬픔과 피곤을 달래고 있었다.

다 큰 성인이 걸어 다녀도 힘들 거리를 투정 한번 없이 따라와 준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쁘게 출발준비를 하는 동안 한걸음이라도 더 걷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에덴의 아이들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나는 해가 떠 있는 낮 동안 아픈 몸을 이끌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고, 곧 주변 경계와 함께 오늘 밤 있을 작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주황빛 황혼이 숲 위에 걸치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가 있었다.

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발을 동동 구르며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채연이, 하지만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혼자 눈물만을 삼켰을 채연이. 나는 어쩌면 오늘의 마지막일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아이를 보러 이곳으로 들어왔다.

어찌나 참고 또 참았는지, 내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비록 20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기억이라는 액자에 사진을 남기기 위해 바삐 눈동자를 돌리며 채연이와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심장에 심어진 강철은 아이의 자석과 반응해 자연스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으응…….’

내가 조용히 그곳을 향해 다가가자 채연이가 잠결에 투정을 부리며 몸을 웅크린다. 그 좁은 공간에서 채연이와 우리 아이들이 모여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얼굴에 눈물 자국과 씻지 못해 생긴 때들이 처량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며 발 디딜 틈 없는 이부자리를 지나왔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채연이 옆에 앉아 아이가 발로 차 버린 담요를 목 아래까지 올려주었다.

퉁퉁 부은 얼굴과 팔다리.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 내가 바로 옆에 앉았음에도 아이들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타깝다. 입안이 씁쓸하다. 하지만 나는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뱉는 채연이의 얼굴을 보며 이상하게도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채연이가 나랑 만난 시간은 인생에 있어 찰나라고 느껴질 만큼 짧았을 텐데,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빠…….’

그 순간 이마에서 내려가는 내 손가락을 꼭 잡은 작은 손. 채연이는 평온하게 잠든 얼굴을 살며시 찡그리며 나에게 가지 말라는 듯 손가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깜짝 놀라 혹시 채연이가 깨 버렸나 하고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아이는 아직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아마 잠결에 내 손을 붙잡은 게 아닌가 싶었다. 채연이가 연신 아빠를 부르며 몸을 뒤척인다. 아빠. 내 가슴을 울리는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눈을 감으며 회한이 남는 짙은 숨을 내뱉었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고, 강수련을 엄마라고 부르는 채연이. 물론 진짜 부모는 나와 그녀가 아니었다. 잊고 싶었던 기억. 도로에서 죽었던 아이의 친부와 친모의 얼굴이 각인된 상흔처럼 눈앞에 훤하고, 세상 모든 게 무너지는 듯 잔인하기만 했던 그 날의 광경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과연 채연이는 그 끔찍한 광경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만 커 줬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웃으면서……. 좋은 친구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평생 행복하게, 이렇게만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잔인한 과거의 기억을 눈꺼풀에 담았고, 아이와 가장 처음 만났던 가슴 뛰는 그 순간을 조용히 곱씹으며 눈을 뜬다.

나는 채연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잊지 않기 위해 행복과 가슴 떨리는 그 순간을 내 근원에 심는다. 시간이 흐르고, 천막을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손은 천천히 떨려왔다. 내 눈앞을 띵하게 만드는 슬픔이 속에서부터 차오른다. 미련이 남는다. 가야 하는데,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회색 도시를 향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그 순간을 위해 놓아야 한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아이의 손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분주하게 움직여 아이가 들고 왔던 가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연이가 덮고 있는 담요 밑에서 내가 고시원을 빠져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키티 가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공원 화장실에서 꼭 가지고 있으라고 들려주었던 그 가방.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아이는 잊지 않고 나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거칠게 변한 손으로 잔뜩 때가 탄 키티 가방을 쓸고 또 쓸어내렸다.

그리고 나는 이 마지막 글자를 끝으로 가방에 일기장을 넣었다.

지금부터 기록을 끝낸다. 이 기록은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그리고 단순한 일기이자 훗날을 위한 지참서다. 나와 내가 했던 고독의 대화는 단순한 현실회피에서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과 같이 한 길을 걸어왔던 자서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작은 다이어리에 써갔던 형편없는 남자의 일기가 내가 죽어서도 삶을 이어가는 마지막 단추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       *       *

[그의 일기는 이 장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일행들조차 사라졌을 거라고 예상했던 이 일기장은 채연이가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발견되었고, 우리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써내려 왔다. 그리고 지금부터 기록된 이야기는 그와 함께 살아남은 노인 (본명: 엄재형) 의 증언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다.]

*       *       *

천막을 열고 나오자 하늘에 만개하던 주황빛 황혼이 몰려오는 어둠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완전 무장을 마친 노인이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고, 곧 천막 옆에 세워둔 총과 장비를 들어 앞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한참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노인이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며 묻는다.

“더 있어도 괜찮았는데, 깨워서 이야기 좀 하지 그랬냐.”

“이제 괜찮아요.”

이제 20분 뒤면 사람들을 모아 작전지역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그곳까지 이동하는 데에만 1시간이 걸리니 시간을 지체하면 좋지 않았다. 나는 입안에 쓴 내를 굴리며 천천히 노인을 바라본다.

우리가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은 봉쇄지역을 공격하는 것과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탈출 작전. 서로 아귀가 절묘하게 맞아야 했기에 이 일을 선두 지휘하는 노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항상 노인이 나에게 해 주듯 어깨 위에 손을 천천히 올리며 무거운 짐이 자욱하게 묻어 있는 부담감을 털어 내준다. 그리고 노인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독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한다. 두렵다, 무섭다. 하지만 그뿐이다.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우리는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에게 묻는다.

“잘 설득했어요?”

“처음에는 울면서 차라리 죽이고 가라고 하더라. 근데, 동윤이가 너 아니면 누구한테 맡기냐고 하니까, 끝내 알았다고 하네. 참, 그 겁 많던 녀석이 언제 그렇게 컸는지.”

노인은 때와 어울리지 않는 흐뭇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고, 나는 그 대답에 울고불고 난리 치는 것과 처음 나신으로 길가를 가로지르던 용팔이의 모습이 상상되어 실없이 하하 웃었다. 역시 일행들을 쥐락펴락하는 노인답게 다른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용팔이 형제와 일행들을 잘 설득해 준 모양이다.

이번 작전에서 우리 구조팀은 A팀, B팀, 2개의 그룹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A팀은 별동대에 적극적으로 지원한 경비대를 이끌고 봉쇄지역 공격한다. 그리고 B팀은 탈출 작전을 선두지휘하며 혹시 밀수 루트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제거하며, 사람들을 무사히 밖으로 내보낸다.

일행들 각자가 에덴에서 주민들을 이끌어본 경험이 있기에 이렇게 두 그룹으로 갈라놓아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박다혜, 김혜정과 사무실 무전 인원이 포함된 B팀의 선두 역할을 맡은 것은 이제 든든한 생존자들의 대들보인 용팔이 형제였다.

“단체장님.”

상념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공터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소리에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렸고, 공터에 모여 뜨거운 눈으로 이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 하나 눈을 마주쳤다. 정적, 고요. 완전한 어둠이 가라앉은 풀숲에는 오늘따라 밝은 달빛이 시리도록 내리쬐며 사람들의 얼굴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다들 식사는 하셨습니까?”

긴장과 두려움이 고조되던 순간, 맥 빠지는 내 첫마디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첫마디를 들은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그들 앞에 서게 되면 항상 먼저 해 줬던 이말.

어쩌면 마지막 임무가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도 나는 변함없이 틀에 박힌 안부 인사를 건네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했노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노인은 마지막 점검을 위해 천천히 내 옆으로 다가오며 표정을 굳히고 있는 일행들에게 말해 준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 작전은 속도랑 팀워크가 관건이야. A팀은 사살보다는 시선을 돌리는 게 목적이니까 절대 무리하지 말고, 최대한 시끄럽게 교전을 해. 그리고 B팀은 A팀이 무전을 보내는 즉시 사람들을 이끌고 봉쇄지역 밖으로 탈출하고. A팀이 나갈 길은 따로 있으니까, 괜히 우리 기다린다고 서성이지 마라. 알았어, 용팔이 이놈아?”

아직도 눈가에 물기가 가득한 용팔이가 B팀 앞에 당당하게 서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뒤에는 마찬가지로 눈이 퉁퉁 부은 김혜정과 박다혜,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무전기 인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인은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조용히 백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총기를 점검했고, 그 대신 경비대 사이에 있던 은테 안경이 드물게 중무장을 한 채 앞으로 걸어 나온다.

“경비대도 준비 완료했습니다.”

한동안 이어졌던 에덴의 장벽 방어와 어젯밤 군인들의 습격으로 인해 인원이 반 토막 나 버린 경비대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명의 반대표도 없이 전원 이번 작전에 지원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작전을 같이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에덴 초창기 우리 일행들과 대척하고 다툼을 했던 경비대는 이제 모습을 감추고 든든한 전우로 변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힘찬 구호나 피를 들끓게 하는 파이팅은 없었다. 하지만 나와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어도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주변을 감도는 무형의 기운, 그것은 고난과 역경을 같이하면서 만들어진 피보다 진한 유대감이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동질감의 끈이었다.

나는 천천히 노리쇠를 당긴다.

찰칵-.

그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 전원이 나와 마찬가지로 노리쇠를 당겨 화답해 주었다.

*       *       *

“동, 동윤 씨.”

대열의 선두로 가는 길에 잠시 숙소 일행들이 모여 있는 중간지점에 몰래 들렸다. 그러자 한쪽 외곽에서 김시은과 함께 짐을 정리하고 있던 강수련이 나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와 품에 안겨 온다.

내 목을 꽉 끌어안은 양손과 연신 떨리는 목소리는 그녀가 나를 얼마나 걱정해 주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망설임 없이 그녀를 끌어안으며 풍겨오는 향기를 머릿속에 담기 위해 눈을 감았다. 강수련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선두에요? 몸, 몸도 아픈데,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안 될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인이 죄책감과 혼란을 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에덴의 주민들에게 A팀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물론 강수련을 포함한 숙소 일행들도 마찬가지였고, 한동안 입조심 하고 있었던 구조대 인원들 덕분에 지금까지 비밀로 할 수 있었다. 강수련은 빨리 가야 하는 이 순간까지도 연신 내 상처를 더듬으며 처량하게 손을 떨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짧은 사과 한마디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사지로 향하는 A팀이 있다는 것을 알면 죽어도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을 그녀, 나는 그녀와 채연이를 위해 진실을 속일 수밖에 없는 지독한 딜레마를 느낀다.

그리고 내 사과에 아니라고, 자신이 미안하다고 울먹이는 강수련을 보고 있자니 심장 속에 심어둔 강철이 담금질을 통해 단단해짐을 느낀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헷갈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밖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에게 고정되는 주민들의 시선. 그 눈동자에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희망이라는 밝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어둡다, 안개가 자욱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존재하는 저 멀리 보이는 등대는 비로소 살고 싶다는 목적을 가슴속에 심어둔다.

한 명, 두 명, 세 명. 내가 걸음을 옮길수록, 뒤를 조용히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작전의 시작. 그것을 알리는 정적과 고요가 불어오는 바람 소리처럼 시나브로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 앞에 있었고, 이제 내 앞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짙은 어둠이 지나면 그보다 밝은 새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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