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만당 같은 집을 두고, 서러워서 어이 가나. 어허, 넘차. 어허, 넘차. 천금 같은 자식 두고……. 서러워서 어이 가나……. 어허, 넘차. 어허……. 넘차…….’
노인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기가 먹먹한 노래를 속삭인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닌 죽은 자를 보내야 하는 한의 읊조림이었다. 상여 없는 상엿소리와 모든 곳을 감도는 정적,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이 어젯밤의 악몽을 모두 잊으라는 듯 나무와 풀들을 조용히 흔들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 사람들의 눈꺼풀을 조용히 감겨주었다. 지우지 못한 피가 남아 있는 손은 우리네 마음처럼 갈 길을 잃고 떨린다.
동이 트기 전 21명의 경비 대원이 죽었다. 하지만 21명의 사람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것은 그보다 더 많은 주민의 생명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시의 습격. 모든 게 불리했던 상황에서 경비대 전원은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발악했고, 그 결과 3명의 중상자를 제외한 주민들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봉쇄지역이 당도한 마지막 순간까지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사명을 완수하고 떠나간 것이다.
사람들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진다. 자신의 자녀, 혹은 부모. 그리고 연인이었을 모를 시체들 사이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이 묻어나는 눈물로 시체를 적신다. 억울함과 분노가 뼈에 사무치고, 이젠 증오할 대상이 사라져 버린 세상이 너무나 덧없게 우리를 괴롭힌다.
나는 천천히 시체의 얼굴을 담요로 덮어주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오른쪽 팔이 묵직해지며 익숙한 용팔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움직이면 안 돼요, 네?’
용팔이는 한때 같이 웃고 울었던 그들을 보내며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그리고 자신이 힘든 상황에도 나를 걱정하며 빨리 천막으로 가자고 사정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완강하게 그 말을 거부했다.
온몸에 감긴 붕대와 지독한 소독약 냄새. 진통제가 없으면 버티지 못할 강한 고통이 몰려왔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위해 조용히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은 까맣게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준다.
‘짐은 최소로 하고 나머지 물품은 놈들 시체랑 같이 태워 버릴 거야. 박대박, 그 친구가 교란책으로 숲속 이곳저곳에 봉화를 피운다고 하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이제 이동할 준비는 끝났으면, 사람들 다독여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우리는 슬퍼하며 그들을 보내 줄 겨를조차 없었다. 그래, 어젯밤 나와 일행들은 베이스캠프를 습격한 군인들과 교전해 놈들을 전원 사살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저쪽에서 인식할 수 있다는 소리.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잔여 시간이 어제의 교전으로 인해 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빨리 부상자를 수습해 베이스캠프를 임시로 옮기자는 판단을 했다.
나는 노인에게 묻는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그들은 오합지졸인 단체나 구심점이 없는 부랑자들이 아니다. 비록 연기와 불을 이용해 교란책을 펼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 명령체계와 전투능력이 확실한 군대를 속이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나는 군인들을 상대로 정면으로 싸우자는 생각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우리는 최대한 몸을 숨겨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저 봉쇄지역을 넘어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잠시 후, 내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던 노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해 주었다.
‘오늘 밤이 한계야. 저놈들이 병신이 아닌 이상 내일은 못 넘겨.’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반나절밖에 없다는 소리. 나는 원래 예상하였던 오늘 밤을 최대 한계점으로 잡고 마지막 임무를 계획하기로 했다. 이제 막바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틀비틀 걸어 용팔이의 부축을 받는다. 그리고 곧 어두워진 노인과 얼굴을 마주하며 지시가 아닌 슬픔이 묻어 나오는 부탁을 했다.
‘물품들 버리고, 남은 자리에 사망자의 시체들을 실어주세요.’
멍청하고 비효율적이며 현실적이지 못한 부탁이다. 하지만 이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 중에 그 부탁을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항상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하던 노인도 지금만큼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래……. 다 같이 왔으니, 다 같이 가야지.’
바람이 분다. 아까 보았던 여명만큼이나 시리고, 시린 바람이었다. 조용히 나와 시선을 나누던 노인은 곧 고개를 돌리고 한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일행들은 사방에 흩어져 전후처리를 하는 사람들을 조용히 호출한다. 이제 짧은 슬픔이라는 장애물을 넘어 출발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오열하며 시체를 리어카로 옮기는 유가족. 고통에 신음하는 부상자들을 조심히 들어 행렬에 합류하는 사람들. 모두가 어젯밤 공격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지만, 오로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힘을 합쳐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던 나는 오른쪽에서 끙끙거리며 나를 부축하고 있는 용팔이를 향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용팔아, 이제 괜찮아. 애들 잘 챙겨서 대열에 합류해 줘라.’
‘형님은요?’
용팔이는 여전히 내 몸 상태가 걱정되는지 울상을 지으며 물었지만,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용팔이의 뒤통수를 살짝 쳐준다. 하지만 맨날 하던 장난도 지금 이 상황에선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용팔이도 나와 마찬가지인지, 헤헤하며 웃는 얼굴이 아닌 침울하게 변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 나는 힘내라는 작은 말과 함께 용팔이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앞을 향해 밀었다.
‘먼저 가, 뒤따라 갈게.’
가기 전에 할 일이 남아 있다. 용팔이는 내가 하는 말에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아는지 한참을 망설이다가도 결국 대열을 향해 황급히 뛰어갔다. 그리고 나는 연신 이쪽을 뒤돌아보는 용팔이를 향해 마지막으로 웃어 주고 바닥에 내려놓았던 장비들을 하나씩 입기 시작한다.
움직일 때마다 총상이 비명을 지르고, 꽉 매어 둔 붕대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난 그 고통마저 껌처럼 곱씹으며 총을 들어 올린다.
장비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자 어느새 만들어진 이동행렬이 노인이 이끄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반대로 걸으며 우리가 머물렀던 베이스캠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고 내 얼굴이 비치는 황동색 지포 라이터를 주머니에서 조용히 꺼내 들며 작은 불꽃을 점화한다.
찰칵, 찰칵.
작은 소리와 함께 라이터 끝에 불꽃이 일렁인다. 그리고 그 불꽃 옆으로는 우리가 전부 태워버려야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끝을 알싸하게 찌르는 휘발유 냄새. 그 냄새는 노인이 이미 조처를 해 주었고, 내가 라이터를 던지기만 하면 끝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검은색 연기. 나는 그것이 박대박이 계획한 교란책에 시발점이란 것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라이터를 던졌다.
화르륵.
불이 타오른다.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고 뚜벅뚜벅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의 대열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멀다, 지옥과 현실의 간극처럼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그 순간 흐린 하늘에 흘러가던 구름이 이곳을 밝히고 있던 햇빛을 조용히 가리고, 숲에는 잠시 옅은 어둠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자욱하게 깔린 어둠과 같이 두근두근 뛰고 있던 내 심장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머리가 띵하고 눈가가 먹먹하다. 상처가 생긴 귀로는 끊임없이 이명이 울린다. 순간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반전하며 아까와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온 세상이 불타고, 셔츠 앞주머니에 꽂아둔 무전기가 요란한 잡음을 내뱉으며 기억 속에 지울 수 없었던 여자의 목소리를 내뱉는다.
[후회하세요?]
고개를 들자 이혜인이 목이 반쯤 갈라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녀.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혜인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원망스러운 얼굴이기도 하다.
그것을 자각할 때쯤, 나는 이것이 내 눈이 보여 주는 환각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몰려오는 여운과 탈력감에 그 물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혜인이 아닌 자신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 단호한 대답과 함께 비틀거리는 발걸음도 그것을 따른다. 내가 저 멀리 보이는 대열을 뒤따라가기 위해 나무 옆에 있는 이혜인을 거침없이 지나가자 과거의 망령은 아지랑이처럼 천천히 흩어져 버린다.
시체와 물품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검은색 연기는 눅눅한 바람과 함께 불어와 내 얼굴을 정면으로 때린다. 하지만 내 환각은 끝나지 않았다. 무전기 잡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화상으로 전신이 그을린 최태식이 스르르 나온다.
[그렇게 착한 척, 정의로운 척하더니. 결국, 너도 나랑 다를 게 없는 살인마 새끼구나! 곽동윤, 이 병신아! 네 밑에 깔린 피와 시체를 봐!]
바닥이 진창을 걷듯 질척거린다. 끊임없이 세수하고 손을 씻어보지만, 내 몸에 묻은 피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허망함. 하지만 그 모든 감정조차 이제는 익숙해져 무딘 내 정신을 붙잡지 못한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내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안심하고 울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꺼억-, 꺽.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내 서러움과 고통을 천천히 씻어 내려준다.
[무너지라고!!! 그만 이제 뒤지라고, 이 개새끼야!!!]
화상으로 전신이 그을린 최태식이 나뭇가지를 미친 듯이 흔들며 발광했지만, 나는 그런 놈마저 지나치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귓가를 울리는 이명이 끔찍한 놈의 비명을 막아 주고, 눈물로 흐릿한 시야가 칠흑같이 어두운 숲속을 안개처럼 가려 준다.
그리고 꿋꿋하게 걸음을 옮기자 불타는 숲속과 나에게 죽으라고 비명을 지르는 수십 개의 환청이 눈 녹듯 사라져 내린다. 나뭇가지가 휘날린다. 그리고 나는 바람을 맞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아직 멈출 때가 아니었다.
* * *
우리가 2시간 이동 끝에 도착한 임시 베이스캠프는 숲속 가장 외곽에 있는 끄트머리였다. 이곳은 등산로도 없었고, 근처에 마을이나 인적도 없다. 비록 흐린 날씨에 해가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숲속이었지만, 놈들과 군인들을 피해 몸을 숨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우리는 잠시 이곳에 몸을 숨겨 부상자들을 추린 다음 해가 질 때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내 붕대를 교체해 주는 김 철에게 이제 되었다는 말과 함께 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화기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봉쇄지역으로 오는 과정과 어젯밤 교전으로 인해 상당수 화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일한 무기인 화기들은 사람들이 최우선으로 관리하는 것 중 하나.
그것이 모자란다는 것은 곧 우리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씁쓸한 심정을 애써 삼키며 물어봤다. 그러자 한곳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은테 안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짧은 순간 점검한 서류를 내밀며 나에게 대답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건 대부분 소모했습니다. 하지만 사살한 군인들이 상당수 가지고 있었기에 최대한 노획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한 명당 탄창 두 개가 끝일 겁니다.’
천막 곳곳에서 절망이 어린 침음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나도 기록이 남아 있는 서류를 보며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찾지 못하고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넘어가야 할 산이 남았는데, 모든 상황이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는 그저 아득하고 막연한 미래가 보일 뿐, 우리는 드디어 한계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는 힘없이 서류를 넘겨 주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예상외로 경계가 삼엄한 봉쇄지역. 싸울 수단은 부족했고, 우리에게 딸린 식구들은 많다. 그리고 천막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도 나와 같은 막연한 심정인지 들려오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힘든 정신과 신체를 갈무리한다. 하지만 그 순간 한쪽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노인이 잔뜩 쉬어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자.’
‘네?’
짧은 문장이었기에 그 뜻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한쪽에서 이야기를 듣던 용팔이는 자신도 모르게 멍청하게 반문했고, 우리도 노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한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노인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천천히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짙은 주름과 백발로 변한 머리. 나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노인은 조금 힘들어 보였다.
‘어차피 놈들한테 우리는 무장한 간첩일 뿐이야. 들어보니 윗대가리들은 우리가 누군지 조금 알고 있는 눈치 같은데……. 개새끼들의 양심에 기대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자고.’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자. 노인의 말을 즉, 우리가 놈들이 규정한 적으로 변하자는 말이었다. 일행들은 깜짝 놀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웅성거렸지만, 나는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캐치해 내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발끝부터 시작한 열기가 머리에 닿는다. 포기하자고 속삭이는 절망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들며 마지막 말을 이어간다.
‘화기를 전부 모아서 별동대를 꾸리자. 그리고 우리가 먼저 봉쇄지역을 공격하고, 스스로가 무장공비가 돼 주는 거야. 일단 교전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끌릴 거고, 마지막으로 남은 밀수 루트의 경계가 약해지겠지. 그렇게만 돼 준다면…….’
노인은 천천히 말을 흐리며 바위처럼 굳센 눈동자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씩 마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순회하던 그 눈동자는 비로소 나에게 멈추며 확고한 다짐을 받아낸다. 노인의 마지막 문장은 내가 끝을 맺었다.
‘사람들이 그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천막이 펄럭이며, 매서운 바람이 우리들의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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