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88화 (188/313)

[188]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 위가 아닌, 근처 풀숲에 몸을 숨기며 천천히 길을 추격한다. 그런데 봉쇄지역에 가까워질수록 심한 썩은 내와 매캐한 탄내가 코끝을 찌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간중간 보이기 시작한 놈들의 시체는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했고, 사람이 만들어 낸 불빛은 이제 500m 앞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산이 하나 보인다. 아니, 그것은 산이 아닌 육편으로 만들어진 썩은 시쳇더미였다.

‘끔찍하군.’

노인이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혼잣말에 동의를 표하지 않는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봉쇄지역 곳곳에는 놈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고, 수많은 군인들은 중장비들을 이용해 그 시체들을 밀어내며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정부가 위험성이 큰 폭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환한 불빛을 피해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둔 펜을 꺼내 지도 위에 붉은 x자를 그리며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표시해 두었다. 정말 엄청난 규모였다.

저 수많은 놈들을 잡았다는 것은 적어도 이 근방에 수많은 군 병력이 지원을 왔다는 소리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이 길이 이토록 변해 버리니, 나는 당황과 함께 입술을 씹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노인은 내 어깨를 잡아주며 조용히 위로를 건넨다.

‘너무 실망하지 마라. 다른 길을 찾아보면 되는 거야, 알았지? 일단 봉쇄지역 근처를 타고 쭉 둘러보자고’

그래, 낙담하고 있으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노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 번 힘내보자는 의미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사방을 빛으로 밝히는 군인들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 환한 빛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몸은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1, 2, 3.

3초가 채 지나기 전에 우리는 이곳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눈앞으로 폭격으로 인해 생긴 구덩이와 아직도 연기를 내뱉고 있는 탄 나무들이 간혹 보인다. 다행히 큰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일어나는 작은 화재들은 우리의 움직임을 잠시 지체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가끔 저 멀리서 비치는 불빛으로 인해 군인을 마주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옥죄어 온다. 빠르게 떨어져 가는 체력, 점점 당겨오는 다리 근육은 뜀박질을 막는 너무나 치명적인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고, 최후이자 최고가 되어야 할 마지막 임무에 모든 근원을 갈아 넣었다. 실패는 곧 죽음이다. 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성공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순풍처럼 몰려온다.

‘- - - - - -.’

그리고 그 순간 앞으로 쏜살같이 뛰어가던 내 발걸음은 갑작스럽게 경종을 울리는 신경에 미끄러지듯 넘어졌고, 노인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내 팔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넘어질 뻔한 그 상황조차 인지 못 하며 청각을 뚫고 들어오는 미세한 소리를 다시 한 번 인식하기 위해 애쓴다.

내가 멈추고 귀를 기울이자, 다른 일행들도 무언가 이변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발걸음을 멈추며 풀숲에 몸을 숨기기 시작한다. 나는 노인의 팔을 놔주자마자 천천히 자세를 죽이며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

‘- - - - - - - -!’

맞다, 분명히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지금 들려오는 이 말소리는 나만 들은 것이 아닌지 일행들은 표정을 굳히고 침착하게 총구를 들어 올렸다. 아직 지도 위에 표기된 길까지 도착하지 못한 상황.

10분 정도만 더 뛰어가면 되는데, 더럽게 꼬인 운은 오늘도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일행들에게 사방으로 흩어지라 지시했고, 나는 바닥을 기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잘 들어봐, 사람 목소리야.’

나를 따라 옆으로 기어온 노인이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메고 있던 총을 조용히 앞으로 내밀었고,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손전등 불빛. 그 불빛이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 순간, 사방에 흩어져 있던 일행들이 헛숨과 함께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우리 옆 50m에는 산길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무리가 천천히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웅성거림은 곧 뚜렷한 말소리로 들린다.

‘- - - - 김, 김 병장님……. 우리 진짜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여기 그놈들 나오는 안쪽 지역이지 말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여길 왜 와야 하는 겁니까? 네?’

‘너 시발, 진짜 아까부터 쫑알쫑알 떠들면서 올래?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

총원 8명. 복장은 군복이고 전원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소총 끝에는 국방색의 소음기가 달려 있었으며, 코끝을 간지럽히는 옅은 화약 냄새는 분명 조금 전까지 총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재빨리 상황을 판단했고, 곧 노인의 어깨를 꾹 잡으며 옅은 숨을 내뱉는다. 이놈들이 왜 여기까지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봉쇄지역과 멀지 않은 곳이기에, 나는 재빨리 상념을 버리며 대책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3초간의 짧은 생각이 가속화된 머리를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 복잡한 생각 속에서 결국 내가 내린 판단은 놈들과 충돌 없이 그냥 지나가게 두자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전투가 아닌 정찰이다. 쓸데없는 전투는 최대한 피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이 생각을 일행들과 상의하고 알려줄 시간조차 없다. 나는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려 내 등만을 바라보고 있을 일행들에게 약속해 둔 수신호를 순식간에 여러 개 보여 준다. 그러자 일행들은 얌전히 바닥에 몸을 숨기며 이내 기척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미 안쪽에 사람 없다고 발표 난 거 아니었습니까? 그, 그리고 시대가 어느 때인데, 뜬금없이 무슨 무장공비입니까. 우리 그냥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보고하고, 그냥 가지 말입니다. 네?’

길을 걷고 있는 군인 전원이 얼굴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항상 밝은 곳에서 놈들을 쏘기만 했을 사람들에게 이 어둡고 칙칙한 숲은 어디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공포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분대장으로 보이는 군인 뒤에서 연신 말을 더듬는 상병은 돌아가자는 설득과 함께 입술을 떨기까지 했다. 하지만 분대장은 스트레스와 두려움에서 유발되는 짜증을 어김없이 상병에게 퍼부으며 손전등을 조용히 내렸다.

‘시발, 진짜! 뭔가 봤다잖아! 그 문어 대가리 새끼가 저기 안쪽에서 빛이 반짝이는 거 봤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확인 안 했다가, 그게 진짜 간첩 새끼들이면 네가 책임질 거야? 맨날 뉴스에서 북한, 북한 떠드는 게 네 눈에는 장난으로 보이던?’

한 성깔 해 보이는 병장이 조용히 으르렁거리자, 상병은 그제야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저절로 찡그려지는 미간과 힘이 들어가는 손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빛, 분명 빛을 봤다고 했다. 그럼 이들은 그 빛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란 소리다. 간첩과 무장공비, 그리고 북한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맴돌았고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어두운 숲에선 정말 작은 빛이라도 충분히 관측이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분명 최대한 조심을 하라고는 했지만……. 혹시, 정말 혹시나…….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지 말입니다. 만약 중대장 말이 진짜면, 먼저 저 숲속으로 들어간 옆 소대 애들은 정찰하다가 무장공비 놈들이랑 교전할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우리야 나중에 중대랑 같이 가서 다행이지……. 걔들은 군 생활 더럽게 꼬였습니다, 정말.’

이 대사는 그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또 다른 상병이 내뱉은 말이었다. 숲 안쪽에서 발견된 작은 빛, 그 발원지를 향해 상부의 명령을 듣고 파견된 군인. 우리는 졸지에 봉쇄지역에 갇힌 피해자에서 사살을 필요로 하는 적군이 되고 말았다.

순간 총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가죽장갑을 뿌드득 울렸고, 발끝에서 시작한 민감한 신경은 화산처럼 머리 위에서 터져 나왔다. 분대장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니들은 중대장이 하는 말을 믿냐? 생각해 봐, 안쪽에 민간인 없다고 판명된 마당에 이상하다 싶으면 폭격하고 마는 거지, 땅개들 집어넣는 이유가 뭘 거 같아? 분명히 켕기는 게 있어서 저러는 거야. 중대장 얼굴 보면 다 나오잖아.’

입술과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노인도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을 최대한 참아내고 있었다. 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중대장이라는 인물, 분명히 상관을 통해 무언가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과연 정부가 그토록 은폐하려 했던 민간인의 존재인지, 혹은 다른 것으로 포장된 가짜정보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 상황은 몹시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근데, 안다고 해서 우리가 어쩔 건데? 군사 분계선 부근에 데프콘 2가 발령된다, 만다 하는 상황에서 우리 같은 사병들이 뭘 어쩔 거냐고. 그러니까 제발, 시키는 것만 하고 무사히 제대하자, 알았지? 그러면 빨리 걸어 새끼들아.’

그 순간, 뒤에 숨어 있는 일행들의 소리 없는 살기가 내 피부를 짜르르 울린다.

‘- - - - -.’

내가 끓어오르는 숨을 내뱉으며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자 일행들은 바닥을 미친 듯이 기어가며 군인들을 공격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과정에서 빛 한줄기쯤은 어쩔 수 없이 흘러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군인들이 발견해 내고, 사람을 보내는 것까지는 정말 운이 더럽게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아니라 대화와 양심으로 풀 수 있는 단계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저들은 판단했고, 그리고 결정했다. 악착같이 살아남은 피해자들이, 이제는 무장공비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나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터져 나오는 살기를 억누르며 얼음보다 차가운 이성을 폭발시켰다.

나는 이성적이다. 내 판단은 냉정하다. 나는 특정 대상을 향한 대한 분노가 아닌, 꼬리를 정확하게 자르고 재빨리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을 했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고, 내 손가락에 망설임이 없다.

눈앞에서 내 검지가 까닥거린 순간, 노인이 휘파람을 길게 불며 가장 소음이 적은 크로스 보우를 군인들에게 발사했다. 그리고 그 작게 분 휘파람 소리는 일행들에게 군인을 공격하라는 신호였다.

‘- - - - 컥!’

사방에서 소리 없이 발사된 볼트가 어두운 옷을 뒤집어쓴 사신처럼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짜증을 부리며 선두를 걷던 병장은 노인이 발사한 볼트에 그대로 목이 뚫려 피를 내뿜었고, 그 뒤를 따라오던 군인들도 하나둘 볼트가 박혀 밤보다 검은 피를 주룩주룩 내뱉는다.

그리고 나는 허리춤에 꽂아 둔 대검을 그대로 뽑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목표는 깜짝 놀라 총구를 들어 올리는 군인, 대열 중앙에 있던 그 군인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기겁하며 비명을 삼켰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보다 빨랐다.

나는 허겁지겁 이쪽을 조준하려는 총구를 잡고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내 오른쪽 손은 정확히 놈의 손가락을 찾아 반대쪽으로 꺾어 버렸다.

빠드득-.

뼈가 박살 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놈이 총을 놓친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대검을 들어 가슴팍에 있는 심장을 찔러 버린다. 순식간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칼날. 군인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서서히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진다. 아마 고통을 없었을 것이다.

사방에서 억압된 비명과 몸싸움을 벌이는 기척이 정신없이 들려온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가해지는 기습공격의 이점은 훈련받은 군인이 하는 저항마저 빠르게 진압하게 했고, 주변을 가득 채우던 소리는 곧 불어오는 바람에 파묻혀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내가 대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노인에게 다가가려고 한 그 순간 저 앞쪽에서 제발 돌아가자고 사정하던 상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살, 살려 주세요……. 저 사람이에요……. 제발 살려 주세요…….’

누군가 조준을 잘못했는지, 그 상병은 급소가 아닌 오른쪽 어깨에 볼트가 박혀 있었다. 군모는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고, 들고 있던 총을 바닥을 뒹굴며 흙먼지를 묻힌다. 디지털 복에 서서히 퍼져나가는 붉은 피. 살며시 들고 있는 양손은 애처롭게 떨려온다.

그는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지, 흔들리는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며 그저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아, 그의 눈과 표정에서 그가 느끼고 있는 끝없는 공포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크로스 보우를 들고 있는 박다혜가 서 있었다.

박다혜가 들고 있는 크로스 보우에는 볼트가 이미 장전되어 있었다. 아마 정확히 조준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군인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더러운 감정은 그 방아쇠를 막고 있었다. 괴물과는 다르다. 부랑자들과는 다르다. 어쩌면 이들이 무고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잠깐의 고민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비정한 현실은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는 억울함과 서러움으로 바뀌어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탄창만 챙기고 바로 뛰어갑시다.’

그리고 사막의 모래알만큼 건조한 내 목소리가 표정을 굳히고 있는 일행들을 가로질렀다. 슬프다, 아프다, 역겹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감정을 느낄 찰나조차 없었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일행들에게 서둘러 가야 한다는 채찍질을 하며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 총대를 멘다. 눈이 녹아가는 이 눅눅한 숲만큼이나 칙칙한 감정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나는 박다혜에게서 크로스 보우를 뺏어 들며 노인 쪽으로 조용히 밀었다.

‘동윤아.’

‘먼저 가요! 뒤따라갈 테니까 전속력으로 달려요.’

박다혜에게서 뺏은 크로스 보우를 들며 나를 부르는 노인에게 대답했다. 일이 매우 급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노인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재빨리 일행들에게 죽은 군인들의 시체를 치우게 하고, 피가 묻은 탄띠를 모두 노획했다.

그리고 내가 크로스 보우를 떨고 있는 군인에게 정조준하자, 일행들은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으로 전속력을 다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발걸음이 멀어진다. 내 손끝이 떨렸지만, 정조준은 떨리지 않았다.

‘엄마…….’

처음 쉼터에서 돌멩이로 때려 죽었던 군인이 기억난다. 분명 그 군인도 이렇게 피를 흘리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분명 죽는 것은 눈앞의 사내일 터인데, 왜 내 영혼이 단말마를 지르며 죽어갈까. 나는 귓가를 울리는 비명을 떨쳐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과 이 어두운 숲에 보이는 환각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아, 아. 아! 하지만 망설였을까? 아니, 나는 원래 그래야 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근원조차 벗어 버린 사람처럼 인간 곽동윤을 볼트에 쏴 보냈다.

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       *       *

[훗날 많은 전문가가 그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여러 정신병으로 인해 미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했던 일행들은 그 가설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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