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83화 (183/313)

[183]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친다. 서서히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한 검은 파도는 장벽에서 형성한 화망과, 우리가 발사하는 총알에 막혀 형편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 시체를 밟고 넘어오는 놈들로 인해 그 사살의 흔적조차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거친 조류처럼 돌변한 놈들은 마치 하나의 의사로 통일된 군집체 같았고, 시선은 오로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명 사이로 노인의 고함이 들려온다.

‘탄창!!!’

노인은 숨은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탄창을 가져다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뛰어왔고, 내가 바로 장전할 수 있게 탄창을 서둘러 넘겨준다. 장벽 위에 있는 경비들에게 넘겨받은 걸까? 마침 총알이 다 떨어져 갈 때였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나는 장전하는 그 잠깐 사이에 10년은 더 늙은 것 같은 노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잔뜩 경직된 목 사이로 거친 숨과 함께 쉬어 버린 고함을 노인에게 내뱉었다.

‘먼저 가세요!!!’

‘시끄럽고, 총이나 쏴!’

먼저 가라는 소리에 노인은 역시나 시끄럽다는 듯 대답한다. 하지만 그 차가운 대답에는 절대 먼저 갈 수 없다는 따뜻한 고집이 담겨 있었다. 장벽 아래에서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인원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노인을 도와주던 박대박 무리와 강 형사도 이제는 코앞까지 밀려온 거대한 파도를 보며 주춤주춤 뒤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늦으면 다 죽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들에게 후퇴 신호를 보냈다.

‘빨리 올라가요!’

저 불가항력의 재난 앞에서 정말 잘 버텨 주었다. 끝까지 화망을 유지해 준 박대박과 강 형사 덕분에 일행들과 생존자들은 무사히 장벽을 넘어 에덴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까지 남은 우리가 넘어갈 차례였다. 내 지시를 들은 그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장벽을 향해 뛰어간다.

숨이 거칠다.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던 나는 바쁘게 총을 발사하고 있는 노인을 재촉하며 장벽을 향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빈손으로는 탄창을 끼워 넣고, 정면을 향해 끊임없이 총을 발사했다. 코끝을 찌르는 화약 냄새와 연신 점멸하는 총구 불빛, 나는 눈 한 번 감지 않고 그 모든 장면을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겼다.

‘단체장님!!! 빨리 넘어오세요!!!’

1시간 같은 1분이 흘렀다. 이제 50m 앞까지 접근한 거대한 육편의 파도는 화망으로는 어찌하지 못할 거대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장벽 위에서는 무사히 밧줄을 타고 올라간 박대박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장벽 위에 사람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파도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모두 올라간 건가? 이제 장벽 아래에는 나와 노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몸에 힘이 풀린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노인을 잡아끌며 장벽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 - - -!!!’

죽이자, 먹자, 배고프다, 도망가지마! 울부짖음이 놈들이 내뱉는 웅성거림으로 바뀌어 들린다. 나는 그 환청을 들으며 바로 뒤까지 쏟아져 나온 놈들의 기척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장벽 위에서는 일행들이 연신 고함을 내지르고, 김혜정과 박다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나는 그 급박한 순간에도 침착하게 심장을 가라앉히며 노인에게 내려온 밧줄을 잡게 했다. 주름과 흘러내리는 땀, 노인이 이미 리타이어 직전이었다.

‘꽉 잡아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귀는 소리를 차단했고,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리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노인은 말문이 막혔는지, 결국 대답하지 못하며 작게 고개만을 끄덕여준다.

‘하나! 둘! 셋! 끌어올려어어!!!’

그 순간 장벽 위에서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밧줄을 잡고 있는 노인이 쑤욱 하고 위로 올라간다. 나는 올라가는 노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혼을 내뱉듯 깊게 숨을 내뱉었다. 모두 무사하다. 그 힘든 지옥을 뚫고 모두 살아남았다. 안도의 숨이 내 폐부를 가득 채움과 동시에 아직 가라앉지 않은 내 생존본능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 - - - 끼긱- - - 끽!’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놈들의 울음소리. 나는 허리춤에서 재빨리 대검을 뽑아 노인의 발목을 잡으려는 놈의 대가리를 깨부순다. 피가 마를 날이 없는 날과 손에는 더러운 피와 뇌수로 잔뜩 더럽혀졌다. 나는 손잡이를 비틀어 그대로 놈을 확인 사살했고, 팔에 힘을 줘 대검을 빼낸다. 그리고 장벽을 따라 달리며 저 앞에 보이는 밧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다리 근육이 팽창하며 본능이 혈관을 타고 끓어오른다.

해일이 나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바로 옆에는 수많은 놈들이 나에게 팔을 뻗었고,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육편이 빈자리를 메꿨다.

느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죽음이었고, 숨을 쉬는 존재는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이에 온전히 움직이고 있는 곽동윤은 거친 파도 위에 홀로 남은 조각배와 같았다.

아득함, 막연함, 폭죽처럼 터지는 모든 감정이 내 머리를 휘몰아친다. 일기를 읽는 당신은 알아 달라. 이 죽음의 순간에서 나는 살아 있었고, 저항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에서도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장벽에서 내려보내 준 밧줄이 내 손에 잡혀 온다.

3초 차이, 2초 차이. 그리고 이제는 0.5초 차이.

그리고 밧줄을 잡은 그 순간 몸이 쑤욱 하고 위로 올라간다.

나는 간발의 차로 놈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옷깃을 스치는 원초적인 악의를 만끽한다. 신경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심장은 폭발하기라도 할 듯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뛴다. 장벽 위에서 들리는 비명과 놈들이 내뱉는 울부짖음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끔찍한 하모니를 이뤘다.

부유감이 느껴진다.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자 모든 경비들과 일행들이 모여 내가 잡은 밧줄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찌나 급해 보이는지, 생을 건 줄다리기에 모든 힘과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그러진 얼굴, 그런데도 나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하나의 개체가 되어 같이 느낀다. 그 순간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지옥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더 이상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짧은 순간 눈을 감고 뜨자, 땀으로 목욕을 한 노인이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탁.

그 손을 잡자 피부를 통해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노인의 강한 힘과 의지가 느껴졌다. 내가 손을 잡자마자 사방에서 달려온 일행들이 어깨와 팔을 잡으며 이 지옥에서 나를 끌어올려 주었고, 나는 결국 마지막으로 장벽을 넘을 수가 있었다.

올라왔다. 장벽 바닥을 손을 짚는다. 그리고 흐릿한 눈을 비비며 허리를 곧게 펴자, 모두의 시선이 정확히 나에게 꽂혀 있었다.

‘- - - - - - 와!!!!!’

내가 살아 있다. 그 짧은 인식과 함께 장벽에 모든 이들은 환호성 섞인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만큼은 놈들의 울부짖음도 우리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피부를 통해 짜릿한 동질감과 생존본능이 느껴진다.

우리 집, 우리의 둥지. 마지막으로 남은 낙원은 절대 놈들에게 뺏길 수가 없었다. 고함과 함께 사람들은 싸워야 한다는 투지를 불태웠고, 이제 생존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경비들은 총을 발사하며 장벽을 올라오는 놈의 대가리를 깨부순다. 그리고 주민들도 그들과 다를 것 없이 무기를 손에 꼭 쥐고 정면으로 들이치는 파도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에덴은 평화로운 낙원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었다. 에덴은 숭고한 삶의 다리에서 끝없이 생을 불태우는 생존자들의 근원이었다. 절대 막지 못할 것 같은 검은색 파도는 회색으로 이뤄진 에덴의 장벽에 가로막혀 버렸다.

‘비켜요!! 앞에 다 비켜!’

여자, 남자. 애, 어른 할 것 없이 장벽으로 몰려들어 한 손을 보탠다. 그리고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털보가 황급히 계단을 밟으며 장벽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털보는 등에 무언가 묵직한 것을 메고 있었는데, 굉장히 다급하게 외치며 장벽 근처에 붙어있는 사람들을 옆으로 비키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가져온 게 분명했다. 그걸 진즉에 눈치챈 노인은 재빨리 사람들을 밀어내며 털보가 들어올 빈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 죽어, 이 새끼들아!!’

장벽으로 올라온 털보는 그대로 고글을 쓰며 고함을 내뱉었다. 그 순간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복스러운 털보의 턱수염을 휘날리게 했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기름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알싸하게 자극했다. 털보는 등에 메고 있던 통에서 무언가 길쭉한 호수와 분사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손잡이를 눌러 펌프질을 하더니 곧 따닥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분사기 입구에서 터져 나온다.

화아아아아아-.

털보는 그동안 철야와 야근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전부 이곳에 풀어내려는지, 화끈한 지옥 불을 장벽 아래에 있는 놈들에게 쏟아 냈다. 그것은 급조해서 만든 평범한 불이 아닌 상대를 완전히 녹여 내버릴 수 있는 시뻘건 용의 숨결과 같았다. 놈들은 정면으로 지옥 불을 맞으며 산채로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생살을 태우는 냄새가 장벽 아래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총력전. 쇠파이프 창으로 머리를 깨부수고, 스프링처럼 손가락을 움직여 방아쇠를 당긴다. 하나의 개체처럼 공유하는 투기와 생존본능은 마치 뜨거운 물처럼 끓어올라 사람들 머리에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놈들은 결코 우리들의 장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자들이 희생하며 쌓아 올린 에덴은 여전히 견고했으니까.

*       *       *

‘동윤 씨!’

강수련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는 모든 상황이 끝난 장벽에 기대서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겨우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한 그녀는 계단을 황급히 밟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을림과 탄내 사이로 향긋한 강수련의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그을림으로 더러워진 그녀의 볼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요? 네?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빨리 병원부터 가요!’

모든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수성전을 벌였다. 그리고 강수련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지 옷과 얼굴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 있었다. 장벽이 한눈에 보이는 에덴 안쪽에서 하염없이 이곳을 올려다보고 있었을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강수련은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안겨 왔다.

하늘로 솟구치는 검은 연기와 살을 태운 역겨운 냄새. 그리고 그사이에는 해가 지고 있음을 알리는 황혼이 걸쳐 있었다. 나는 엉엉 울고 있는 그녀를 품속에 안으며 주변을 둘러봤고, 모든 사람들은 장벽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놈을 죽인 지 10분이 지났다. 우리는 3시간이 넘는 수성전을 펼쳤고,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검은 해일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싸움을 벌인 경비 대부분이 병원으로 실려 갔고, 수성전에 참여한 주민들도 작고 가벼운 상처를 입어 전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비규환, 마치 폭격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풍경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단체장님.’

모두가 정신이 없을 상황이다. 하지만 은테 안경만은 그 특유의 표정을 유지하며 전후처리에 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싸우다 겨우 쉬고 있는 나에게 용건이 있는지, 소매로 땀을 닦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하-.

한숨이 나온다. 나는 그런 그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쉬어 버린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움직임을 막은 것은 나에게 안겨있는 강수련이었다.

‘조금 쉬게 내버려 둬요!!! 그이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요?!’

맞다, 안 돌아간다. 하지만 녹초가 된 나는 그 말을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표독스럽게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강수련은 나를 데려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듯 은테 안경을 노려봤다. 평소의 나긋나긋한 그녀와는 180도 다른 모습. 평소 집 안에 있던 그녀의 얼굴만을 봐왔던 은테 안경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 멈춰 섰고 곧 벙찐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은테 안경이 우리 숙소의 진짜 실세가 누군지 깨닫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별 소용이 없는 변명만을 내뱉다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사실상 항복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그는 장벽 아래로 후다닥 내려가 버렸고, 곧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나는 힘든 와중에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잠깐뿐인 휴식을 조용히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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