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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82화 (182/313)

[182]

약을 뿌렸다고 해도 저렇게 많은 놈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만큼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놈들은 까만 무리의 파도를 이루며 이쪽을 향하여 해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왜? 어째서? 끝없는 의문이 내 사고를 끊임없이 노크했지만, 마땅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거대한 파도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불가항력의 재해였으니까.

내가 내지른 고함은 일행들에게 닿았고, 순간 패닉과 혼란이 번개처럼 내려쳤다. 나는 미친 듯이 옥상에서 내려오며 가지고 있는 탄창의 개수를 확인한다. 총 4개의 탄창.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고, 무언가를 해 보기에는 저 앞의 적은 너무나 거대했다.

도망가야 한다. 에덴의 장벽 뒤로 일행들을 데려가야 한다. 그 짧은 두 문장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나는 본능이 이끄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숨에 오피스텔 문을 박차고 나오자 일행들이 내가 지시한 방향으로 서둘러 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대열을 지휘하는 노인과 눈을 마주치자 손 떨림이 멎었다.

당황하지 말자. 할 수 있다. 무사히 복귀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읊조렸고, 나를 바라보는 노인을 향해 재빨리 수신호를 보냈다. 그 수신호를 받는 노인은 자세한 상황을 모름에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는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다. 그리고 나는 긴말할 필요도 없이 노인에게 대열 후방을 부탁하고 일행들 앞으로 뛰어가 선두에서 총구를 들어 올렸다.

주위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영문 모르고 뛰기 시작한 사람들은 서서히 바뀌는 기류를 눈치챘는지, 몰려오는 공포를 표정으로 나타낸다. 무언가 오고 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육편의 소리는 보지 않았음에도 상황을 알게 해 주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렸고, 허겁지겁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작은 비명을 지른다. 폭풍전야, 우리는 몰려오는 폭풍을 피해 살기 위한 레이스를 시작한다.

‘대열 지켜!! 대열 지키면서 뛰라고!!! 옆에 사람 확인하면서 빨리!’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킨다. 노인의 고성이 이곳저곳에서 터지며 금방이라도 흐트러질 것 같은 대열을 유지시켰다. 아슬아슬한 선 타기. 우리는 죽음의 외줄에서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가로지른다.

허억, 허억-.

아까보다 배는 많은 체력이 입김을 통해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바뀌는 풍경을 조준간 사이에 담고 내 몸을 짓누르는 부담감은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를 안개 속에서 깨운 것은 언제나 그렇듯 배신하지 않는 생존본능이었다.

‘형니이이임!!!!!’

달리는 와중에 대열 중간에서 울리는 용팔이의 고함. 찢어지는 듯한 그 비명에는 분명 나를 찾고 있는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그대로 노리쇠를 당겼고 순식간에 안전장치를 풀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골목에서 튀어나온 수십 마리의 놈들이 꾸역꾸역 몸을 밀며 대열 중간을 공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심장이 죽은 듯이 가라앉는다. 모든 세포가 싸우기 위해 변해갔다.

‘- - - - - -.’

놈들의 공격이다.

이명이 울리고 시야가 좁아진다. 눈동자가 조준간이 되고, 검지는 방아쇠가 된다. 이 느려진 공간에는 오직 나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놈들의 숫자는 총 13마리, 나는 그 짧은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하며 가장 먼저 죽여야 하는 놈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을 놓친 채로 황급히 놈들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용팔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광석화처럼 쏠린 시선, 피부를 핥는 본능은 망설일 시간조차 주지 않으며 나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딱, 딱, 딱, 딱, 딱.

5발 뒤로 내가 얼마나 더 사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손가락은 스프링을 단 듯 순식간에 움직였고, 무아지경의 순간에서 놈들의 머리통이 터지는 광경만이 내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용팔이를 물려는 한 놈, 그 옆에 박다혜를 향해 달려가는 한 놈, 생존자들을 공격하려는 그 외에 나머지 놈들. 모두 대가리 터져 바닥에 뇌수를 쏟았고, 그 순간에도 오발 사격은 없었다. 대열을 무너트리려고 한 놈들은 순식간에 그 기세를 잃고 바닥에 나자빠진다.

‘뭐해, 이 새끼들아!!!’

번개처럼 놈들을 죽여 버린 내 모습에, 일행들은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대열 뒤에서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온 노인이 일행들에게 진심이 담긴 욕설을 내뱉었고, 그 욕설에는 나머지 놈들을 정리안하고 뭐하냐는 정확한 지시가 담겨 있었다.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앞으로 뛰쳐나온 박대박과 강 형사는 좁은 골목 사이에서 서로가 엉켜 있는 놈들을 향해 빠르게 총을 발사했다.

아비규환,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열은 어지러워졌고, 노인과 나머지 일행들은 생존자들과 인질들을 강제로 붙잡아두며 현상유지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대박과 강 형사는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기며 우리 측면을 공격한 놈들을 전멸시킨다.

이명이 울리고 그 이명 사이로 울음소리와 비명이 섞인다. 나는 쓴 내가 진동을 하는 입을 벌리며 거칠게 숨을 내뱉었고, 곧 내가 사용한 탄창의 숫자를 확인했다. 머리가 아프고 거친 공기가 밀고 들어오는 목이 따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일행들을 향해 고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내 등만 보고 뛰어!’

약품이 통하지 않는다. 원인이 무엇이고, 도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놈들의 습성과 행동 양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편하게 행군하고 에덴을 지킬 수 있었던 약품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놈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우리를 찾아 제 발로 걸어왔다. 아까부터 점점 진해지기 시작한 이명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나는 앞을 향해 달려가면서 황급히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골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놈들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가 불을 뿜는다. 방아쇠를 또 당기면 총구가 기침을 내뱉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즘에는 아예 숨을 멈춘다. 나는 심장의 박동을 한 점조차 놓치지 않으며 손을 스프링처럼 놀렸고, 우리 일행들이 나아갈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회색 도시가 다시 한 번 정글로 바뀐다. 모든 포식자들이 우리의 목을 노리고 나는 그사이를 가로지르며 살아 있다는 고함을 내뱉는다. 내가 시선을 던질 때마다 터지는 놈들의 머리와 비산하는 뇌수, 바닥에 놈들이 쓰러지고 또 쓰러진다.

마치 총을 쏘는 기계가 된 것 같은 나는 손과 발이 사라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가 어떤 공간에 있는 거지? 사방이 어둡고 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유일하게 빛나는 천둥이 된다.

‘- - - - - -.’

시간과 이명이 흐른다.

찰칵.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날아가 있던 이성을 붙잡는 것은 공이가 빈 허공을 치는 소리였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나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가방에 꽂아둔 탄창을 찾았지만, 언제 다 사용했는지 손에 잡히는 탄창은 존재하지 않았다.

끼기기긱!

그리고 내 부근을 돌며 일행들을 향해 덤벼들 기회를 노리던 한 놈이 황급히 바닥을 기어가며 나를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총을 놓으며 허리춤에 꽂아 넣었던 대검을 놈에게 던졌다.

‘- - - - - 끼긱!’

대검의 수납공간이 칼집에서 놈의 머리통으로 바뀐다. 놈은 내가 투척한 대검에 오른쪽 눈을 꿰뚫려 그대로 자빠졌고, 벌레처럼 온몸을 꿈틀거리며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놈에게 다가가 눈에 박힌 대검을 빼내며 놈에게 최후를 선사했다. 숨이 거칠다. 입에서 튀어나온 분비물은 놈들의 피와 뒤엉켜 내 몸을 적신다.

‘동윤아!’

뒤에서 나를 부르는 노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탄창 하나를 던져주었다. 나는 놈들의 피로 흐릿한 눈을 소매로 닦았고, 재빨리 날아오는 탄창을 받아들며 총에 끼워 넣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를 뛰어왔는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억겁의 시간을 이겨내며 내가 살아 있고, 길을 만들고 있다는 것만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놈의 대가리를 개머리판으로 깨부수던 노인이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다급하게 손가락질을 했다.

노인의 손가락을 쫓아 시선을 옮기자, 저 멀리 에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참고 있던 숨을 다급히 몰아쉬며 거친 기침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쿨럭쿨럭-.

온몸이 몽둥이로 난도질을 한 듯 아파져 왔고, 에덴의 장벽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다. 나는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조용히 한쪽 다리를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열심히 사람들을 챙기는 일행들의 안위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괜찮다. 다들 자잘한 상처를 제외하고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괜찮냐, 이놈아! 누가 보면 네가 변종인 줄 알겠다!’

흐릿한 시야를 닦고 또 닦는데, 옆에서 부유감과 함께 노인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리니, 내 오른쪽 어깨에는 노인이 그리고 내 왼쪽 어깨에는 아담한 김혜정이 낑낑거리며 나를 부축하고 있었다. 노인은 다 쉰 목소리로 내 안위를 걱정했고, 경이와 뿌듯함이 담긴 목소리로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거친 숨으로 막혀 버린 말문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에덴에는 무전을 해 뒀어! 사람들이 문 열고 나온다는 거, 무슨 일이 있어도 처박혀 있으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잘했다, 역시 노인이다. 저 멀리서 오는 파도를 관측하지 못한 에덴은 우리 구조팀을 걱정하며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위급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노인은 그 행동을 미연의 방지했고, 덕분에 우리는 장벽에서 그 파도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숨 빠지는 기합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혜정이 발을 동동 구르며 생수 한 통을 내밀었다. 나는 감로수를 마시듯 입과 얼굴에 물을 뿌려 정신을 차렸다.

‘빨리 들어갑시다.’

에덴이 눈앞에 보이는 이상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땀과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소매로 대충 닦고 잠시 정체되어 있던 뜀박질을 다시 한 번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웅성거림. 그 위험한 거리를 뛰어왔음에도 일행들 모두가 견고한 정신을 유지하며 생존자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시선을 에덴에 고정해놓은 그 순간, 노인이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덴 정문입니다!!! 이쪽에서 구조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원사격할 테니까,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문으로 접근해 주세요. 그리고 문을 열지 말라고 해서 일단 보류는 해 뒀는데, 어디로 들어올지 생각해 두신 거 있으십니까!]

위급상황치고는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나는 꽉 막힌 목을 기침과 함께 풀어내며 현재 위치를 빠르게 짐작하기 시작했다. 이 속도라면 2분 뒤에 정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를 쫓고 있는 파도가 지척까지 접근했다는 것인데, 여닫는데 무려 10분이 소요되는 육중한 에덴의 정문을 열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눈을 가늘게 뜨며 고민했고, 곧 무전기 너머에 남자를 향해 말했다.

‘경비팀 전부 모여 있습니까?’

[네! 지금 정문 장벽으로 모든 경비팀 집결해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주민들한테 도움을 청했는데, 한 20분이면 모두 모여 줄 겁니다. 혹시 필요한 것 있습니까?!]

경비팀 전원이라, 그렇다면 인원은 충분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의 총인원의 숫자를 빠르게 계산했고, 예전에 한 번 사용했던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생각이 끝나자 고민할 것도 없이 무전기 너머 경비에게 지시를 내렸다.

‘밧줄 있는 거 죄다 긁어모아서 장벽 밖으로 던지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문을 열지 못한다면 장벽을 넘어가면 된다. 비록 걸어서 문을 통과하는 것보다는 비효율적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많은 인원이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진입 루트, 내 말뜻을 단숨에 이해한 경비는 빠르게 대답하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난 그대로 노인에게 무전기를 돌려주며 바닥에 쓴 내가 가득한 침을 뱉었다.

이제 지척이다. 난 일행들에게 설명할 틈도 없이 장벽 오른쪽으로 우회했고, 일행들은 아무런 의문 없이 내 등만을 바라보며 따라왔다. 보인다, 이제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저 멀리 경비들이 모여 있는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그 순간, 뒤에서 일행들의 발소리가 아닌 또 다른 것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절규, 증오, 살의, 적의, 굶주림. 모든 것을 진창처럼 뒤엉켜놓은 놈들이 한꺼번에 울부짖으며 공명한다.

‘여깁니다!!! 여기요!!!’

장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우리를 부른다. 장벽에서는 우루루 몰려온 경비들이 동시에 긴 밧줄을 던지며 구조팀을 끌어올려 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골목에서 튀어나온 놈들은 우리의 지척까지 접근하며 노인이 있는 후방을 위협했다. 나는 그대로 뜀박질을 멈추고 일행들과 생존자들에게 밧줄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장벽에서 내려오는 것은 적어도 수십 개가 넘는 밧줄이다. 경비들과 어느새 장벽으로 모인 주민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 구조팀을 끌어올려 주었고, 일행들은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에덴의 장벽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나쳐가는 일행들에게 서두르라 외치며 이쪽을 향해 몰려오는 놈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저 멀리 파도가 보인다. 꼭 밀물이 몰려오듯 우리의 영역은 서서히 작아지고 있었다. 아마 저 큰 파도가 몰려오기 전까지는 일행들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파도 앞에서 잔존하고 있는 작은 웨이브들은 딴 곳에 정신이 팔린 우리 일행들을 여전히 위협하고 있었다. 총구를 들어 올린다.

손에 가득 묻어나오는 검은색 피로 내 몸을 기름칠한다. 나는 굳건하게 장벽을 등지며 내 삶의 조준간을 놈들에게 고정시켰다. 그리고 나의 연장선이 불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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