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애들 시키지 그러냐.’
‘괜찮아요.’
노인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짧게 대답했고, 아까부터 보고 있던 지도를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무사히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에덴으로 출발할 준비를 맞췄다. 물론 처음 올 때랑은 달리 생존자들을 한 아름 챙겨가는 상황이지만, 수월한 임무 성공으로 인해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좋은 분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져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뒤따라 갈 테니까, 먼저 가세요.’
항상 선두에서 일행들을 이끌던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노인이 일행들을 이끌어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어젯밤 나와 미리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긴 한숨을 훅 내뱉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필수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포로들과 이번에 새로 합류할 생존자들을 전부 이끌고 가야 하는 험한 행군,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우리는 곧 갈림길에서 헤어져 각자가 가야 할 길을 걸었다.
내가 향한 곳은 마을회관 앞에 있는 공터. 주변에 건물이 없기에 시야가 탁 트여 있었고, 가끔 마을 행사를 하는지 공간도 넓었다. 그곳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자 불어오는 바람이 내 등을 천천히 밀어주었다. 잔인해져라, 냉정해져라. 이성마저 깡그리 얼려 버리는 그 바람은 내가 해야 하는 행동에 정당성이 아닌, 잔혹함을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찌꺼기마저 뱉어 버리며 공터에 도착했다.
‘-----!!’
‘읍! 읍 --!’
나는 박대박에서 빌린 담배 한 개를 꺼내 천천히 입에 가져갔다. 피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는 담배지만, 지금만큼은 이 거지 같은 기분을 딴 곳으로 돌려줄 돌파구가 필요했다. 라이터에서 기침처럼 터져 나오는 불똥, 그리고 내 입에서 불똥처럼 터져 나오는 잔기침이 속 안이 말라 버린 내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나는 정면에서 온몸을 움찔거리는 놈들을 쳐다봤다. 담배 끝에 어린 붉은빛이 놈들의 막힌 비명을 이명으로 바꾸어준다.
콜록콜록-.
독하다, 역시 사람일 필 것이 아니다. 나는 거친 기침과 함께 반쯤 피다만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밟았다. 그리고 입안에 남아있는 쓴 내음을 천천히 삼키며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놈들과 양복의 남자들을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유감입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미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여기서 죽을 이들에게 그 짧은 조롱 한마디 정도는 해 줄 수가 있었다. 이들은 죽는다. 하지만 일행들은 모른다. 아니, 내가 모르게 했다. 가뜩이나 거지 같은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일행들에게 이런 더러운 기분과 말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총을 조용히 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떠나기 전에, 회관 곳곳에 시체를 걸어뒀습니다. 아마 제가 이곳을 벗어나면 피 냄새를 맡은 놈들이 몰려오겠죠. 이유는 당신들이 알 필요 없지만, 아마 정확할 겁니다.’
약품의 지속시간이 정확히 끝나는 시간을 계산해 뒀고, 놈들을 이곳으로 유인할 시체들은 이미 마을과 회관 곳곳에 뿌려놓았다. 도망? 못 친다. 이들은 절대 끊을 수 없는 굵은 노끈으로 묶여 있었으며 근방에 구조를 청할 곳이라곤,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곳을 떠나면 놈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 말은 즉 이곳에서 펼쳐질 지옥도에 이들은 저항조차 못 하며 죽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곳에 묶인 포로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며 나에게 구걸과 적의를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동정보다는 눈앞으로 펼쳐질 잔혹한 풍경을 예감하며 끝까지 눈을 맞춰주었다.
‘당신들은 이렇게 죽어야 합니다.’
어제 놈들의 본거지에서 다양한 거래 장부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처음 발견한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들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피마저 빨아먹는 쓰레기 같은 놈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검은 찌꺼기의 근원은 내 속과 정신을 썩게 했다. 입에서 속이 탄 연기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여운은 아지랑이처럼 흩어져 내가 할 일을 알려주었다.
나는 버둥거리는 놈들에게 다가가 느슨한 노끈을 동여매 주고, 마지막까지 도망갈 구멍을 막는다. 놈들은 재갈에 막힌 비명을 읍읍 내지르며 나에게 살려 달라, 혹은 죽이겠다는 저주를 끝없이 내뱉었다.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 바닥을 더럽게 적시는 오물들은 죽음이 당도했다는 공포로 이들의 이성을 전부 날려 버린다.
꿈이 아닌 현실이다. 혹시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없었다. 여태 죽어 왔던 모든 이들이 느꼈듯, 이들도 그것을 알아야 했다.
마지막을 작업을 끝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과 총을 챙겨 들며 애써 건조한 기분을 유지한다. 아무 감정도, 그 어떠한 동요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 이 세상과 같이 말라 버린 내 가슴에 이질감을 느끼면서 차라리 나인 것에 감사했다. 묻고 싶었다. 정말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나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바람이 분다. 나는 일행들이 출발한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 중턱에 위치한 청계산의 개나리골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평화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나무에 가려 그림자를 이룬 저 숲에는 곧 마을을 향해 들이닥칠 수많은 놈들이 내가 빨리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가려진 어둠 너머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정당하지 않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 * *
‘어, 형님! 배는 괜찮으세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일행들과 합류하자 노인에게 꾸중을 듣고 있던 용팔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그리고 그 순간 앞을 향해 걷고 있던 모든 일행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고 배는 괜찮냐고, 화장실은 잘 다녀왔냐는 물음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걱정해 주는 일행들에게 능청스러운 대답을 해 주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더니, 잘 안 맞았나 봅니다.’
여자의 개인 창고에는 일행들과 피난민들 모두 배부르게 먹을 가공육이 쌓여 있었다. 물론 밥맛이 없어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나는 실컷 먹고 배탈 난 연기를 하며 일행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굉장히 좋은 분위기다. 에덴으로 복귀하면 한 일주일 정도는 휴식기를 가진다고 공표해놨기에 일행들은 퇴근길을 걷는 마음으로 열심히 행군했다. 그리고 나는 익숙한 선두를 향해 걸어갔고, 곧 에덴으로 가는 길을 밟는다.
시간이 조용히 흐른다. 우리는 한없이 걸으며 조용히 수다도 떨고, 간혹 시시한 농담도 건네며 심심함을 달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지, 행군의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모두 체력을 아끼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더군다나 피난민과 포로들이 딸렸기에, 긴 퇴근길이 될 것이 예상된다.
일행들은 능숙하게 체력을 분배했고, 불안해 보이는 피난민들을 다정하게 다독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바퀴가 되어 점점 에덴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2시간 정도가 지나자 우리가 활동하는 사정권에 들어설 수 있었고, 일행들과 떨어진 선두에서 걷던 내 옆으로 노인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에덴에다 미리 보고해 뒀다. 아마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야기를 끝내둘 거야. 그 두 명을 최대한 빨리 내보내는 쪽으로 행보를 잡아보자.’
일 처리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채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구체적인 계획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살며시 돌려 눈이 가려진 채 터덜터덜 걸어오는 인질 몇몇을 살펴보았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원상복구 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알게 된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에덴으로 도착하는 즉시, 장비와 체력을 점검하고 짧은 휴식기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우리의 화살을 밖으로 쏘아 보낼 차례였다.
‘고생했다.’
노인이 내 어깨를 툭 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고생했다, 그것은 근 한 달간 벌어졌던 임무에 대한 마무리였다. 나는 온몸에 묻어 있는 피곤과 상념을 털어내는 기분으로 한숨을 훅 내뱉었고, 굳어 있는 근육을 움직여 풀어냈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노인을 바라보며 도착하면 푹 쉬라는 대답을 해 주려고 했다.
‘------.’
하지만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연 그 순간,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내 말문을 틀어막는다. 나는 갑자기 몰려온 이상한 기류 앞에 당황하며 입을 뻐끔거렸고, 막 물에 빠진 것만 같은 막연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평범한 바람이 아니다. 방금 불어온 바람은 숨어 있던 신경을 한순간에 일깨울 만큼 섬뜩함을 담고 있었다. 나는 넋을 놓고 걸어오는 일행들을 바라봤지만, 다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눈치였다.
‘-----?’
나는 다리가 뿌리로 변한 것처럼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잔잔한 호수에 바위를 집어 던진 것 같은 여파에 당황하며 미친 듯이 사방을 둘러봤다. 회색 도시, 이 무서운 잔잔함을 담고 있는 이 도시가 나에게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었다.
한쪽으로 흐르던 물살이 사방으로 날뛰는 조류로 변했다. 완전히 뒤바뀐 기류는 여태 내가 알고 있던 곳이 반전이라도 된 듯 지독하면서도 생소한 이질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갑자기? 갑자기 왜?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 중에 오직 나만이 느끼고 있는 생존본능, 나는 뚜껑을 연 콜라처럼 새어 나오는 그 본능을 어김없이 내뱉으며 눈을 연신 감았다 뜬다. 이명이 울리고 피부가 짜릿하다. 뒤통수가 뻣뻣해짐과 동시에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 손끝은 움찔거리며 오직 본능에 의존했고 곧 따가울 정도로 시선을 보내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그곳에는 꺾어지는 골목이나 길가에 머리만을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놈들이 있었다. 낮이면 당연히 바보가 되어야 하는 놈들이다. 하지만 꼭 귀신이 우리를 몰래 훔쳐보듯, 수십 마리가 넘는 놈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꿈쩍도 하지 않고, 심지어 이상한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시선을 고정해 둔 놈들은 꼭 인형처럼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소름이 돋는다, 모든 신경을 찌르르 일어나며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어, 동윤아. 왜 그러냐?’
한참 일행들하고 하하 웃으며 걷던 노인은 내가 멈춰 선 것을 지금에서야 발견했는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노인이 멈추자, 다른 일행들도 멈춰 섰고, 곧 모든 대열이 정지하며 선두에 서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침을 삼켰고,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인 노인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영감님, 우리 출발하기 전에 약 뿌렸죠?’
‘그랬지.’
그래, 분명 넉넉하게 약을 뿌린 것을 나도 확인했다. 그렇다는 것은 근방에 존재하는 놈들은 알아서 이 냄새를 피해 도망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저 100m 밖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저놈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꼭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움직임, 나는 빠르게 몰려오는 불안함에 정신없이 손을 흔들었고, 일행들을 향해 주변을 경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이 근방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찾으며 노인에게 재차 물었다.
‘에덴, 에덴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부지런히 걸어왔으니까, 한 50분가량 남았지. 근데 도대체 왜 그래?’
나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발견한 오피스텔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일행들이 깜짝 놀라며 나를 불렀지만, 사태파악이 빠른 노인은 내 행동을 통해 무언가 틀어졌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재빨리 총을 들어 노리쇠를 당겼다.
얼어붙는 분위기, 일행들과 피난민 무리들은 갑작스러운 행동에 불안해했지만, 나는 그 두려움을 뒤로하고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옥상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정신없이 밟는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에는 그날 밤 에덴의 장벽을 습격했던 놈들의 돌발행동이 있었다. 분명 그때도 연구소에서 제작한 약품을 뿌렸을 때였고, 원래라면 공격이 없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는 그날 밤 작은 소동을 만들었고, 지금 와서는 그 거대한 몸짓을 드러내며 짐작을 현실로 만들고 말았다.
커헉-컥.
얼마나 미친 듯이 뛰어왔는지 평소 차지도 않던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옥상 난간에 손을 짚었고, 곧 거친 기류가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옥상에 올라오자 한눈에 보이는 회색 도시, 그리고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은 지금이 초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갑고 매서웠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적인다. 그리고 항시 챙기고 다니던 망원경을 꺼내 들어 아까부터 무언가 꿀렁이기 시작한 도시 한쪽을 시야에 담았다. 초점이 서서히 들어맞기 시작하는 광경, 그리고 믿기 어려울 만큼 비정상적인 장면이 내 두 눈 가득 담겼다.
해는 구름에 가려 사라지고, 주변은 어둡게 변한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던 방금이 모두 꿈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입이 달달 떨릴 만큼 매서운 칼바람이 내 머리와 몸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저 멀리서 파도가 몰려온다. 육편으로 만들어진 죽음의 파도가 도시를 가로질러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도시가 변했다.
놈들이 몰려온다.
나는 힘이 풀리는 손을 놓으며 그대로 망원경을 떨어트렸다. 몰려오는 아득함, 막연함. 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독기와 피는 나에게 움직이라고 윽박지르며 정신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나는 아드레날린과 함께 몰려오는 공포를 입안 가득 씹어내며 밖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을 향해 거친 고함을 내질렀다.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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