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80화 (180/313)

[180]

깊은 조류는 소리 없이 흐르기에 치명적이다.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움직임은 거리낌이 없었고 총구를 들어 사람을 조준간 사이에 놓는 노크에는 망설임이 없는 노도가 담겨 있었다. 마치 물 흐르듯 이어지는 행동.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갔음에도, 시간은 내 편이라도 된 듯 모든 요소가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눈은 정면을 향한다. 나는 가장 먼저 허리춤에 가스총을 차고 있던 놈의 팔을 날려 버렸다.

따닥!

‘꺄아아악!!!’

비산하는 피와 떨어져 나가는 팔. 술잔에는 붉은 피들이 튀겼고, 쾌락은 공포로 바뀐다. 나는 단 한 발의 총알이 만든 여파를 바라보며 화약 냄새의 여운을 본능으로 만끽했다. 피가 튀기자 접대하고 있던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양복의 남성들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는 정중앙에서 기겁하는 중년 여성과 그대로 눈을 마주친다.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흐르고, 이명 대신 나를 향해 쏟아져 나오는 욕설과 적의가 귀를 자극했다.

‘--이 --새끼야!’

간간이 들려오는 욕설과 함께 손끝이 꿈틀거린다. 옅게나마 울리는 경종, 고개를 살짝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니 책상 옆에서 자세를 숙이고 있던 한 놈이 내 옆구리를 향해 기다란 회칼을 찔러 넣고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니 당황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방아쇠에서 검지를 떼고 개머리판을 오른쪽으로 휘두른다.

까각.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정확한 타격은 놈의 뼈를 박살 냈다. 개머리판으로 관자놀이를 맞은 놈은 그대로 칼을 놓치며 바닥에 몸을 처박았고, 모두가 즐겁게 웃던 방은 비명과 고성이 가득해진다. 그리고 중년 여자는 그제야 제정신이 드는지 우리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히스테릭이 섞인 비명을 내지른다.

‘얼빼놓고 뭐해, 이 병신들아! 빨리 막아!!!’

그리고 놈들이 나에게 달려들자 용팔이 형제는 동시에 앞을 향해 뛰쳐나갔다. 자신에게 칼을 찔러 넣는 놈의 팔을 아작 내고,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두식이와 한 마리의 다람쥐처럼 날쌔게 움직이는 용팔이는 파죽지세의 기세로 경로당 내부를 개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했던 싸움은 배에다 칼을 찔러놓으면 끝나는 깡패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비록 4배 정도 차이 나는 인원이었지만, 괴물들과 바닥을 뒹굴던 우리에게 놈들은 하나같이 같잖은 양아치들과 같았다. 2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놈들이 반절 정도 떨어져 나가고, 중년 여자의 표정은 점점 굳어진다. 당최 싸움이란 것이 성립되지 않는 분위기, 서슬 퍼렇던 놈들의 얼굴은 우리가 들고 있는 칼날처럼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

마을회관 계단 아래에서 일행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진다. 끝을 내야 할 때가 온 것을 직감한 나는 마지막으로 방언 터지듯 중국말을 내뱉는 놈의 머리를 걷어차 그대로 기절시킨 뒤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양복의 남자들과 구석으로 도망간 접대하던 여자들, 그리고 내가 만나고 싶었던 중년 여자를 포함한 밀수업자 3명이었다. 뜀박질 소리가 가까워지자 문이 박차고 열리며 노인이 들어온다.

‘뭐야? 벌써 끝났어?’

무언가 김이 빠지는 듯한 목소리다. 노인의 말대로 기세등등하던 놈들은 나와 용팔이 형제들에게 제압당해 바닥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일행들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당연한 반응을 보이며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놈들을 노끈으로 묶기 시작했고, 나는 고개를 돌려 노인에게 전후처리를 물었다.

‘밖은 좀 어때요? 그냥 일반인도 많던데.’

‘일단 무기 들고 있는 놈들만 죄다 족쳐 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서 대충 분류만 해놨고. 여기까지 살아서 걸어온 거 보면, 도망가든지 남아서 우리를 기다리든지 알아서 처신할 줄 알겠지.’

역시 노인다운 깔끔한 마무리다. 나는 전후처리를 잘해 준 노인과 함께 눈가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중년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우리 둘과 여자의 거리는 불과 5m. 하지만 근처에 남아 있는 밀수업자 두 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사실상 저항을 포기한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천천히 총구를 내리며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싸울 겁니까?’

그 물음과 동시에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딱히 의리나 정으로 뭉친 것 같지는 않은데, 지는 싸움을 해 봤자 자기들만 손해인 것을 잘 아는 모양. 무기를 버린 놈들은 재빨리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행들의 다음 행동을 눈치를 살피며 기다렸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표독스럽게 외치던 중년 여자. 나는 품속에서 위성 전화기를 조용히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미리 연락드렸습니다.’

내일 거기서 봅시다. 나는 그날 전화 통화했던 마지막을 조용히 곱씹었다. 불과 하루 만에 일어난 일치고는 그 여파가 대단했다. 그 때문인지 중년 여자는 지금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혹은 자신이 술에 취해 헛것을 보는 게 아닌지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박대박의 말대로 개박살이 나 버린 현장. 나는 옆에서 노끈을 들고나오는 용팔이에게 말했다.

‘묶어.’

* * *

박대박네 팀원 중 하나가 허벅지에 얕은 자상을 입었고, 노인과 같이 다닌 박다혜가 바닥에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무슨 이야기냐면 이것이 우리 팀원들이 입은 피해 내용의 전부라는 말이다. 2~3배나 많은 성인 장정들을 상대한 것 치고는 말도 안 되는 결과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중년 여성은 미래를 깔끔하게 포기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나는 천천히 책상을 두드리며 강 형사를 향해 말했다.

‘놈들은 한곳에 묶어 놓고,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바로 죽여요. 그리고 아직 안 도망친 생존자들은 있으면 마을 안쪽에 모아두시고요. 아마 근방에 가족 한 무리도 숨어 있을 겁니다.’

오늘 에덴으로 복귀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외박이 예상되어 있던 원정이었기에, 일행들은 익숙한 듯 베이스캠프를 꾸리기 시작했고, 내가 지시한 대로 움직이며 재빨리 밤을 보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난장판이 된 이방에는 나와 노인만이 남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얼어붙기라도 한 듯 마지막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경로당, 나는 만신창이가 된 채 입이 막힌 양복 남성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분명 여자가 김 과장이라는 호칭을 부르며 남자를 대했다. 딱 봐도 이득을 위해 접대를 하던 모습, 적어도 같은 사업을 하는 파트너거나 동종업자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내 눈에는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양복이 눈에 들어왔다. 강한 이질감, 얼굴에서 보이지 않던 생존의 처절함. 어쩌면 이들을 바깥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읍, 읍! 읍!’

하지만 내 물음에 반응한 것은 눈을 내리깔고 있는 중년 여자가 아닌, 온몸이 결박당한 양복 남성 중 하나였다. 머리가 반쯤까진 그는 무엇이 그리 말하고 싶은지 온몸을 버둥거리며 읍읍 거렸고, 결국 노인이 다가가 입에 처박힌 천을 빼내 주었다. 그러자 대머리 양복이 가장 처음 꺼낸 말은 뜻밖에도 내 신경을 건드는 오만함이었다.

‘당, 당신들은 누군데, 이 난리요? 나랑 여기 있는 최 여사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이럽니까? 그리고 우리는 전부 다 나랏일 하는 사람……, 끄아아악!!’

대머리 양복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결국 비명을 내질렀다. 왜냐하면, 노인이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책상 위에 있는 양주병을 들어 머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간혹 병으로 사람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병이 깨지는 것이 고증 실패라는 걸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터지는 피, 하지만 양주병은 그 단단함을 자랑하며 깨지지 않고 있었다. 노인은 이를 악물며 읊조린다.

‘다 아는 새끼가 그래? 다 알고 있는 새끼가 이 짓을 하고 있어?’

한이 사무치는 목소리였다. 나는 허탈함을 느끼며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 힘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양복을 입고 있는 저 남자들……. 그래, 그들은 공무원이다. 아니, 이 봉쇄사태의 진상을 알고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으니, 정부 쪽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아닌 역겨운 개인의 욕심으로 움직이고 있겠지만, 목적은 같으니 이 사태의 공범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굉장히 노하고 있는 노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아무리 전 세계가 쑥대밭이 되고 대한민국이 이 난리라고는 하지만 아직 체제가 살아 있는 지금, 이런 밀수업자들이 판을 치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언론까지 통제하고 접근을 불허하는 봉쇄지역에서? 그것도 몇 달이 넘어가도록? 그리고 그 짐작을 따라 내린 결론에는 외부에 동조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숨이 나온다. 나는 마주하기 싫었으면 하는 진실을 직시하며 분노를 속으로 삼켰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냐고! 아무것도 모르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그 어린애들이!’

그 두꺼운 양주병은 결국 깨졌다. 머리를 계속해서 얻어맞은 대머리 양복은 결국 정신을 잃었고, 주위 사람들은 나설 생각조차 못 하며 바닥에 눈깔을 내리깐다. 참고 참았던 분노, 참혹한 광경을 보며 쌓이고 쌓였을 노인의 한과 슬픔이 분노로 응축되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을 말리기는커녕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이마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불쾌한 기분, 그런데도 오직 나만이 느꼈으면 하는 이 더러움을 혼자 속으로 삭인다.

후우, 후우-.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남자를 보며 노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깨진 양주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내 옆에 있는 의자로 비틀비틀 걸어와 조용히 앉는다. 모두가 살벌한 노인의 분노 앞에 얼어붙는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그와 동시에 몰려오는 진한 두려움의 향기가 내 피부와 기류를 핥는다. 나는 그 사이에서 천천히 일어나 허리춤에 있는 대검을 뽑았고, 곧 눈을 깔고 있는 중년 여성에게 물었다.

‘협상, 거래, 설득, 협박. 당신한테는 하나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간 보기도 싫고, 복잡한 말싸움도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치정 싸움에 질린 지 오래였으며, 오직 내가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얻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알고 있는 밀수 루트. 난민들을 빼낼 수 있는 그 길만 알면 되는 것이다. 오늘 많은 피를 삼킨 대검을 살며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한 가지 대답만을 내놓는 공식을 여자에게 들이밀며 침묵의 통보를 한다.

* * *

해가 떠 있는 동안 정신없이 움직여 준 일행들 덕분에 현장은 빠르게 정리되었고, 우리는 무사히 밤을 보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구조를 원하는 민간인은 한곳에 몰아 기본적인 조치를 취해 두었고, 우리가 무력화시킨 놈들은 임시방편으로 만든 감옥에 가둬두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지, 그들을 재판하거나 처벌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정보를 가지고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 이 지역을 살아서 걸어 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우리 일행들은 창고에 쌓여 있는 풍족한 물자들을 적극 활용하여 오랜만에 기름진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임무를 무사히 끝 맞췄다는 흥분에 한동안 시끄럽게 떠들며 자기들끼리 어울렸고, 곧 고된 행군과 전투로 쌓인 피로를 풀며 이른 잠에 빠져들었다.

‘-----.’

차가운 밤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리게 만든다. 칠흑 같은 어둠, 나는 밤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별들을 올려다보며 살며시 입김을 내뱉었다. 모두가 잠든 지금 시각은 새벽 2시, 오직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 조용한 산골 마을의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가장 처음 불침번은 자처한 것은 요즘 도통 잠을 자지 못하는 나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곤함보다는 머리를 가득 채운 상념의 안개가 나를 괴롭힌다.

‘동윤아.’

그리고 그 길고 긴 상념을 깨운 것은 슬픔의 무게가 진득하니 묻어 있는 노인의 목소리였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음 불침번인 노인이 호박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양주 한 병을 하나를 들고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크게만 느껴지던 노인의 어깨는 오늘따라 홀로 뜬 겨울의 달처럼 처량하기만 했다. 노인이 읏차 소리를 내며 낙엽이 잔뜩 쌓여 있는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마실래?’

평소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노인이었다. 물론 잠깐의 슬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것을 용납 못 하던 나도 노인과 대작한다는 것이 생소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자신이 불던 병나발을 내미는 노인의 눈에는 밤하늘만큼이나 짙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나는 밤바람에 말라 버린 입술을 핥으며 노인이 내미는 양주를 받아들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일이면 이 아픔도 다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몸에 흉터가 남듯이, 참혹한 현실과 광경은 항상 우리 정신에 상흔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아려오고 아파져 왔다.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회색 도시가 남겼던 그 참혹함은……, 분노하다 못해 속에서 썩어 우리의 심장을 문드러지게 만든다.

나는 양주병을 입으로 가져가 한을 토해내듯 술을 삼켰다. 이 찌꺼기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내 아픔과 본심이 다시는 나타내지 못하게 망각의 물로 오늘을 삼킨다. 모두 잊는 거다. 여기서, 이 땅에서 아픔을 모두 묻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노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목구멍을 양주로 채워 넣었다.

‘우리 정말 멀리도 왔다. 그지?’

노인은 콧물과 함께 먹먹한 목소리를 소매로 닦아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피 냄새가 나는 손을 바짓단에 닦으며 노인과 함께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참 많고 맑다. 나는 그 광경을 기억에 담으며, 말하고 싶었던 모든 내용을 일기장에서 지워낸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나는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다.

나는,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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