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75화 (175/313)

[175]

나는 거칠게 올라온 숨을 내뱉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동한 지 1시간이 지난 지금, 강행군을 거듭한 가운데, 우리는 경계지역과 제법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체력이 우리보다 떨어지는 방송국 여자와 김창식. 예상한 대로 1시간 강행군이 끝나가자 그 둘은 리타이어 직전까지 가 버리고 말았다.

‘잠시 휴식합니다.’

다행히 둘의 상태마저도 충분히 예상해서 짠 계획이다. 나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지시를 내렸고, 그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주변 경계를 도와주었다. 그러자 이쪽을 간절하게 바라보던 그 두 명은 휴식한다는 소리와 함께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계까지 도달한 숨을 힘들게 토해냈다. 빠르게 오가는 물과 에너지 바, 일행들은 마치 기계처럼 음식을 씹고 물을 삼키며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용팔이가 김창식과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저씨, 내키지 않는 거 아는데, 뭐라도 목구멍으로 넘기세요.’

이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용팔이가 하는 말이 불친절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 정비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것과 같은 출발선을 지시해주는 사람은 원래 아무도 없어야 했다. 하지만 착한 용팔이는 그들이 매뉴얼을 까먹었다는 가정하에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며 둘을 챙겼다.

퍼지지 말아야 한다.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그 생각이 가장 앞에 박혀 있는 일행들이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애쓰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 두 명도 용팔이가 해 주는 조언을 듣고서야 주위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는지, 힘들게 물만이라도 삼키며 숨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주변을 경계하는 내 옆에서 노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놈들 숫자가 적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순이네 쉘터를 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바로 주변에 존재하는 놈들의 분포도가 상당히 적다는 것이다. 에덴과 그 근처 지역들이 수도급이라면, 구를 넘어선 이곳은 거의 시골 마을 급. 100m 움직일 때마다 발견되던 놈들은 이제 300m 반경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상한 점이 있다면 놈들이 적은 만큼 많이 발견되어야 했을 생존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 꼭꼭 숨기라도 한 것일까? 정말 영문을 모를 만큼 보이지 않는 생존자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참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총구 끝을 바라보고 있는데, 노인이 작게 잔기침을 하며 걸음을 옮긴다.

‘하여튼, 이 거지 같은 도시는 뭘 그렇게 숨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말에 작은 동의를 보냈다.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잦은 변수가 우리를 위협한다.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회색 도시. 이제는 까기도 지겨워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중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잔재하는 상념을 털어내고 일행들에게 외쳤다.

‘이동합시다.’

대답은 없었다. 일행들은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할 준비를 했고, 한참을 뻗어 있던 여자와 김창식은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끙끙거렸다. 이 둘은 아마……. 정확히 40분 뒤면 자신이 에너지 바를 먹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희미한 미소를 얼굴에 머금었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서 앞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 * *

‘정면, 두 마리! 좌측 다섯 마리!’

어두운 지하 주차장. 내 지시를 빠르게 넘겨받은 일행들은 정면과 좌측을 향해 손전등을 비춰주었고, 사격 실력이 가장 뛰어난 강 형사와 노인이 놈들을 전담하며 총을 발사했다. 따닥 거리는 소리가 지하주차장에 울리자 약품 냄새를 맡고 주춤주춤하던 놈들이 픽픽 바닥에 쓰러지며 검은색 피를 흘렸다.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놈들을 잡는 것에 도가 튼 일행들은 순식간에 상황을 종결시켰다.

‘상황 종료!’

더 이상 남아 있는 놈들이 없다고 판단되자 나는 크게 외쳤고, 일행들은 복창하며 총구를 바닥으로 내린다.

달칵, 달칵.

안전장치 이상무.

모든 게 처음부터 시작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완벽한 마무리로 끝이 난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대열 사이에서 이 모든 전투 장면을 촬영하던 김창식이 침을 꿀꺽 삼키며 나에게 물었다.

‘예,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정말 잘 싸우시네요.’

그 말에는 감탄과 함께 일말의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척척 합을 맞춰서 놈들을 죽이는 우리들의 모습. 어쩌면 캠코더에 담는 내용 중에 이것이 진짜 우리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저쪽에서 강 형사와 함께 탄피와 놈들의 잔해를 정리하던 노인이 캠코더를 들고 있는 김창식을 향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쪽 애인은 졸도하기 직전인데, 우리만 보고 있으면 쓰겠어?’

그러자 김창식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난처하게 서 있는 김혜정 품속에서 김창식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방송국 여자가 있었다. 안전한 대열에서 보호를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놈들이 많이 무서웠던 모양. 거기다가 죽으니 사니 하던 남자친구가 다큐멘터리에만 관심이 있으니 섭섭할 만했다.

김창식은 여자를 향해 다급하게 뛰어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은 결국 소리 내서 웃어 버린다. 아마 그 순간 일행들 모두가 웃었던 것 같다. 눅눅하고 어두운 지하주차장에 웃음이라는 작은 햇볕이 들어오자 딱딱했던 분위기는 눈이 녹기라도 하듯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웃음들을 뒤로하며 천천히 주차장 내부를 살핀다.

왜 뜬금없이 주차장에서 놈들을 잡겠나 싶겠지만, 내가 이 구역을 확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행군속도를 올린 우리는 밀수업자와 접견하기로 했던 장소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장소가 외곽으로 빠지는 대로인지라 주변 대부분이 허허벌판이라는 것이었다. 밤을 보낼 장소가 마땅치 않은 지금, 우리는 우연히 찾은 지하주차장에서 밤을 보낼 자리를 먼저 확보하고, 임시 베이스캠프를 만들기로 했다.

‘자! 빨리 움직여!’

짧은 어수선함이 끝이 나자 노인은 크게 박수를 치며 일행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같이 동행하게 된 박대박 무리들은 능숙하게 바리케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리는 침상들과 주변을 환하게 밝혀 줄 전등들. 놈들의 울음소리와 어두움만이 가득하던 지하주차장은 일행들의 손길이 닿자 포근한 베이스캠프로 바뀌기 시작했다.

‘1시간 뒤에 접견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충분히 휴식하시고, 마음의 준비를 해 두세요.’

마음의 준비랄 것도 없다. 이 둘은 우리의 안전한 호위를 받으며 밀수업자와 접견한 뒤,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곧 있으면 헤어질 이 둘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마음의 준비하도록 하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러자 유난히 표정이 굳어 있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고, 김창식은 천천히 캠코더를 가방에 넣으며 알겠다는 대답을 해 왔다. 그 순간 내 옆에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둘만 만나게 할 거냐?’

‘아뇨, 혹시 모르니까…….’

나는 노인의 질문에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접견 장소는 이곳에서 1km 떨어진 대로 옆. 물론 일행들이 그 근방까지는 같이 동행하겠지만 밀수업자와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한 3명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최대한 존재를 숨겨야 하는 우리가 밖과 안을 오가는 밀수업자에게 모습을 보여서는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변수를 위해서 나 하나쯤은 비무장 상태로 가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영감님, 일단 작게나마 불 좀 피워 주세요.’

노인은 내 지시에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행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을 보며 난 저 멀리서 지기 시작하는 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황혼이 걸치고 그동안 시끄럽게 울렸던 무대에는 커튼콜이 내려간다. 나는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끓어오르는 긴장감과 전의를 속으로 삼켰다.

* * *

나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재를 손으로 만졌다. 하지만 짧은 상념도 잠시, 나는 손에 잔뜩 묻힌 재들을 망설임 없이 얼굴로 가져가 화장품처럼 열심히 바르기 시작했다. 미약하게 풍겨오는 탄내와 피부 너머로 느껴지는 따가움에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졌지만, 나는 완벽한 위장을 위해 빈 공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이 내미는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며 대검 두 개를 허벅지와 허리에 하나씩 꽂아두었다.

‘형님, 혼자서 괜찮겠어요?’

내 옆에서 용팔이가 울상인 표정으로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던 노인이 지금 장난하냐는 말투로 용팔이를 나무랐다.

‘야 이놈아, 네가 동윤이를 걱정할 짬밥이냐? 와서 짐 정리나 해!’

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찾지 못하고 큭큭 웃었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도 노인과 같은 생각인지 용팔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웃음을 머금는다. 내가 위험한 곳으로 걸어가 변종을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밀수업자 몇 명이다.

더군다나 양방향에서 노인과 강 형사가 총을 들고 대기하고 있을 것인데, 뭘 걱정한단 말인가? 그냥 다수가 같이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 내가 가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용팔이는 불만이 어린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곧 작은 투정을 부린다.

‘씨…….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의젓해졌다고는 하나 귀여운 막내는 영원한 막내. 용팔이는 결국 두식이에게 번쩍 들려져 노인에게로 끌려갔고, 텅 빈 뒤통수를 야무지게 맞아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웃음의 여운을 흘려 넘겼다. 그리고 생각보다 좋은 분위기에 마지막 임무를 시작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허리와 허벅지에서 차가운 살기를 내뱉고 있는 대검들, 나는 마지막으로 모자를 꾹 눌러쓰며 일행들에게 이동 명령을 내렸다.

‘이동합시다.’

소수 인원은 베이스캠프를 지키고, 경험이 많은 일행들만을 추려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6시 20분, 7시까지 도착해야 했기에 밀수업자를 만나기로 했던 장소를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해는 이미 떨어져 세상은 칠흑으로 변해 있었고, 우리는 손전등 불빛마저 감추며 대로를 가로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밀수업자는 근방에 놈들이 적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걷는 내내 시야에 들어오는 붉은 반딧불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길을 막고 있는 자동차만을 조심히 넘어가며 걷기를 30분. 잔뜩 겁에 질려 있던 여자가 갑자기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춰 섰고, 우리는 깜짝 놀라 순식간에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여자가 말을 더듬는다.

‘아, 아니요……. 저기 보인다고 말하려고…….’

일행들 사이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여자는 그 소리에 또 주눅이 들어서 고개를 숙였고, 김창식은 열심히 그녀를 달래 주었다. 그래, 그녀가 말한 대로 처음 밀수업자와 만나기로 했던 장소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수업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 장소에는 검은색으로 된 작은 텐트들이 여러 개가 처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일행들은 순식간에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조용히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후우-.

나는 깊은 숨을 폐부에서 끄집어내 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하며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있는 노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노인은 이쪽 방향에서, 그리고 강 형사는 저 반대쪽 방향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든 위협을 제거해 줄 거라는 그 믿음이 내 발걸음에 힘을 불어넣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불부터 꺼.’

어둠 속이라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다. 그것을 고려한 노인은 나와 약속을 하나 했고, 나는 꼭 그러겠노라고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호를 하자 순식간에 흩어져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일행들, 나는 김창식과 여자를 툭툭 밀며 밀수업자가 대기하고 있는 장소를 향해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나와 이 두 명뿐이다.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울려온다.

* * *

이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밀수업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장소에 도착하자 김창식을 기다렸다는 듯 손전등을 꺼내 빛을 점멸시키기 시작했다.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마치 신호를 보내기라도 하듯 점멸하는 불빛, 그 순간 피부를 짜릿하게 핥는 신경들이 누군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색 텐트 사이로 4명 정도 되는 그림자들이 천천히 쏟아져 나왔다.

김창식은 천천히 침을 삼키며 손전등 불빛을 끄고, 오직 어둠만이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밀수업자와 접견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빛을 오래 켜고 있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밀수업자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지 오직 작은 라이터 불만을 켜고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술 냄새와 짙은 담배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밀수업자가 우리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큭큭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다 뒤졌는가 봐? 영, 사람 숫자가 적네.’

역시 나 혼자 동행하기를 잘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 밀수업자들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보는 게 아닌지, 방송국 사람들이 출발했을 때 인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찌릿하게 울리는 신경을 조용히 가라앉히며 어둠 너머로 보이는 인영들을 눈으로 담았다. 그리고 저속한 표현 앞에 어깨를 떨며 분노하고 있는 김창식의 어깨를 조용히 잡았다. 당최 더러운 놈들인 것 같다. 이런 도발에 넘어가면 곤란하다.

‘여, 여기 약속한 돈이요…….’

하지만 방송국 여자는 의외로 정신을 붙잡고 있었고, 우리를 대표해서 밀수업자와 거래를 시도했다. 그러자 밀수업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여자가 내미는 가방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가 준비한 현물들을 하나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 엄청 느리게 흘러간다. 마치 목 앞에 칼을 들이민 듯한 이 긴장감, 나는 언제라도 대검을 뽑을 수 있게 천천히 검지를 까닥거렸고,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모든 외적 요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숨소리, 발소리, 하다못해 심장 소리까지. 그리고 그 순간 밀수업자가 우리 앞에 가방을 휙 던지며 말했다.

‘5배, 그 이상 아니면 안가.’

순간 분위기가 차가운 밤공기처럼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다. 근처에 있는 밀수업자들은 조용히 나와 남자를 바라보았고, 여자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완전한 억지 중의 억지. 처음부터 계약을 이해할 생각이 없었던 배짱장사였다.

‘무슨……, 무슨 소리에요!! 그런 큰돈이 갑자기 어디서 나와요!’

하지만 밀수업자는 여자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귀를 후비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리고 어쩌라는 얼굴로 우리를 향해 도리어 뻔뻔한 대답을 해왔다.

‘봉쇄지역 근방에 그 새끼들이 출몰해서 군인들 깔린 거 몰라? 위험수당이 있어야지, 안 그래? 댁들 사정 이해해 줄 생각은 없으니까, 은행이든 금은방이든 털어서 더 가지고 와. 어차피 안쪽에 사람들도 없잖아?’

당장 거래를 해야 하는데 뒤바뀌어 버린 계약 내용. 그 뻔뻔스러운 태도 앞에 여자와 김창식은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뻐끔거리며 어이가 없어 했다. 그리고 그 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향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지금 그들이 하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까부터 내 신경을 자극하는 외부요소가 연신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두쿵, 두쿵.

심장이 뛴다. 어쩌면 내 안에 있을지 모르는 괴물의 피가 위험을 감지하고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생각하지 않고, 보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는 것, 이것은 싸우기 직전에 찾아오는 폭풍. 시간이 멈추기 전 몰려 왔던……, 긴장감의 노도였다. 내 입은 필터를 거르지 않고 그대로 말을 내뱉었다.

‘텐트 안에 있는 새끼들은 누구야?’

이 4명이 전부가 아니다. 나름 검은색 텐트를 구비하고 의도적으로 숨은 것 같은데, 내 직감은 그것마저 잡아내며 놈들이 꾸미고 있는 다른 음모를 캐치해 냈다. 아까 우리의 숫자를 세며 아쉬워했던 얼굴. 그리고 만나자마자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변경되던 계약 내용. 모든 로직들이 모여들며 본능보다 빠르게 내 행동을 만들어 냈다.

밀수업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그들은 순간 차가운 눈을 빛내며 바닥에 침을 뱉었고, 품속을 향해 손을 뻗으며 진즉 챙겨왔던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서 여자를 겁박하던 놈이 예상치도 못한 변수를 만났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넌 뭐야?’

그리고 대답보다 빠른 것은, 내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대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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