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73화 (173/313)

[173]

‘어머, 동윤 씨 손님 오셨어요?’

연구원 남성은 몹시 어두운 얼굴로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향해 안부를 물어보려는 순간, 저 뒤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강수련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이곳으로 걸어왔다.

건강을 많이 회복한 그녀는 다시 직장으로 복귀했고, 지금은 숙소에서 모든 일행들을 보살펴주며 대들보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었다. 해맑은 미소와 발랄한 목소리, 나는 그녀를 마주 보고 웃으며 연구원 남성에게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때 준 약품은 아직 남아 있는데.’

우리가 여태 잡은 놈들과 변종들은 대부분 에덴의 연구소로 넘어가 있었다. 샘플이 다양하고 많아서 그런 걸까? 연구소 직원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하루가 멀다 하며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공로를 인정받아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 남자, 바쁠 시간일 텐데, 웬일인지 우리 숙소를 찾아왔다.

‘단체장님, 잠시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평소 그답지 않게 잔뜩 가라앉고 우울한 목소리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연구결과에 매진하던 그가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나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그의 표정을 살폈고, 어쩔 수 없이 강수련을 돌아보며 식사는 다녀와서 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눈치가 빠른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재빨리 자리를 피해 주었다. 잠시 이어지는 정적, 그는 나에게 같이 가자는 듯 고개를 숙였고,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 * *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우리는 그런 거리를 말없이 걸으며 연구가 한참 진행되는 연구소로 향했다. 듣자 하니 우리 간부진들처럼 연구소 직원들도 낮과 밤 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연구소 건물은 그 소식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듯 켜진 전등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노고를 알고 있기에, 빈말이 아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했다.

‘연구소분들이 만들어 준 약품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점이 얼마나 많은지 다 나열하기도 힘드네요. 우리 팀도, 저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놈들이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

이 짧은 문장은 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사했다. 비록 한정된 재료 때문에 대량생산은 불가능했지만, 이들이 만들어 준 그 한 병이 얼마나 많은 작전을 수월하게 도와주는지 이들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내 감사 인사에 연구원 남자는 천천히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다 단체장님 덕분입니다. 항상 천덕꾸러기 신세였는데, 이제라도 도움이 되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네요.’

고마워해야 할 건 난데, 이런 식으로 얼굴에 금칠을 해 주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문을 열어 주는 그를 따라 연구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 이른 새벽이라 그런 걸까? 연구원 대부분은 나와 남자가 들어오건 말건, 의자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쉿, 나는 쪽잠을 자고 있는 연구원들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고, 이쪽으로 오라며 손을 흔드는 남자를 따라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한 방에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나를 반겨주었다.

‘동윤 씨,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디 아프신 곳은 없죠?’

항상 우리의 건강과 상처를 돌봐주는 의사 선생님. 일주일 전 상처를 치료할 때 본 적이 있는 김 철이었다. 그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김 철과 진한 악수를 나누었다. 요즘 유입 인원이 많아져서 그런지, 병원에는 환자가 없는 날이 없다고 한다. 나는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그와 한참을 안부를 나눴고, 곧 이곳에 있는 이유를 넌지시 물어봤다. 하지만 김 철 대신 대답한 사람은 그 옆에 있던 연구원 남성이었다.

‘도움이 필요해서 제가 불렀습니다. 아무래도……, 제 분야가 아닌 영역이 있어서요.’

분야? 아무래도 이번 일은 의사인 그와 겹치는 영역이 있는 모양이다. 연구원 남자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환하게 웃고 있던 김 철은 표정을 굳혔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두운 얼굴과 망설이는 듯한 입, 이쯤 되니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서서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빨리 말해 보라는 듯 그 둘을 재촉한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혹시 전염병이라도 돌고 있습니까?’

나를 독대할 정도면 이 둘이 해결 못 할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넘겨짚는 질문에도 둘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곧 의자를 하나씩 가져와 나와 가장 가깝게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나에게 조용히 읊조렸다.

‘저번에 말씀하신 이상 현상 있잖습니까. 단체장님을 마주한 놈들이 처음 보는 움직임을 취한다고 하신 거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눈의 변종을 처리했었고, 그다음 날 진숙이네를 만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나고 놈들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나와 전투를 벌이던 놈들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수상한 움직임을 취했었고, 이내 전의를 잃으며 도망가는 모습까지 보여 줬었다. 말 그대로 그동안 정해져 있던 법칙을 깨 버리는 이상 현상이었던 것이다.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물론 지금은 일이 바빠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구원 남자에게 내 샘플을 제공한 기억이 있었다. 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놈들에게 변화가 있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전문가에게 맡겼고,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비밀을 풀어낸 연구원 남자가 고개를 떨어트리며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단체장님 몸에서……, 변종과 비슷한 성분이 나왔습니다.’

머리를 누가 세게 때리기라도 한 듯 눈앞이 아득해졌다. 나는 한순간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해내지 못했고, 침만을 꿀꺽 삼키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막을 뚫고 들어온 그 말, 절대 현실일 리가 없다는 부정과 함께 빈 허공을 맴돌았다.

삐이이-.

그리고 허공을 맴돌던 진실은 폭탄이 되어 터지고 말았다. 이명은 내 귀를 어지럽히고 정신은 한줄기 남아 있는 이성을 위해 간신히 버텨 낸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가가 쉴 새 없이 경련한다.

하지만 그 이명 사이를 뚫고 나온 목소리가 내 떨리는 손을 부여잡아 주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 철이 연구소 남자를 바라보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시면 어떡합니다! 제가 분명히 다른 케이스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눈앞에서 놈들의 피를 주입 당해 변종으로 변해가던 생존자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인간의 탈을 벗는 것 같은 그 모습, 인세 위에 도래한 지옥의 종자들은 내가 수없이 죽여 온 종말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놈들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이제는 나마저 죽여야 하는 걸까?

‘아닙니다, 동윤 씨!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랑은 달라요. 검출되기는 했지만, 지금 동윤 씨가 변종으로 변했습니까? 아니잖아요! 원래 늦으면 1일, 빠르면 1시간 내로 변이가 되는데, 동윤 씨는 검사가 진행되고 이 주일이 지나가도록 아무 이상 없습니다.’

김 철은 내 손을 꼭 부여잡으며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다. 비록 이명 사이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변종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가깝게 다가오는 행동에는 애절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결과를 알려 준 연구소 남자는 자신이 실수한 것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이내 김 철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김 철 씨의 말이 맞습니다. 비록 감염이 돼 있다고는 하나, 변이되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 겨우 초반? 꼭 무언가가 변이를 막는 것처럼 진행이 느립니다. 혹시, 단체장님 스스로 몸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까?’

내 몸에 변종과 비슷한 성분이 흐른다는 말을 듣자 과거의 기억들이 단편처럼 지나가며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위험한 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능력. 그리고 간혹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빛나던 본능. 그 모든 것이 현실과 맞물려 스스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주었다.

눈이 한없이 내리던 그 날, 강 형사를 처음 만났던 경찰서 근처에서 놈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모든 일행들이 듣지 못했을 때, 유일하게 나만이 듣던 그놈들의 목소리.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지금의 결과를 말해 주고 있던 단초였던 것이다. 나는 연구소 남자를 향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오직 어둠만이 보이는 허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지, 지금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치료제 개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든 연구진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고, 변종 샘플도 많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목숨을 걸고서라도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내 모습 때문일까? 연구소 남자는 말까지 더듬어가며 황급히 대답을 해주었고, 그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던 김 철도 굳은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감사 인사가 아닌, 너무나 비정한 현실이었다.

‘두 분을 제외하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갑자기 이성을 되찾은 나를 보며 그 둘은 잠시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연구소 남자였고, 그는 치료제 개발을 미리 만들어 두자는 핑계로 비밀을 숨겼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철은 입이 그렇게 가벼운 남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이 이야기는 누군가 말하지 않는 한 내 속에서 영원히 묻어놓고 갈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변이속도가 느리다고 하셨는데, 이게 얼마나 갈지 예상이 가능합니까?’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라 그런지, 연구소 남자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전문가인 그는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고,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기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대략적인 기간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정확한 경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3~4달은 괜찮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몸이나 정신적으로 이상 현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혹시 원하시면 지금 입원을 하시고, 아니면 우리 연구소로…….’

나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차가움이 서린 숨을 훅 내뱉었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끝없이 담금질을 한 심장, 그 심장은 찢어질 듯한 아픔보다 당장 눈앞을 보게 만드는 단호함을 담고 있었다.

적어도 3~4달……. 좋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짧은 생각을 마친 나는 그 둘에게 절대 잊지 말라는 듯 당부했다.

‘일행들과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 주세요. 그럼 두 분을 믿고,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동윤 씨!’

‘단체장님!!’

망설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나를 보며 그 둘은 깜짝 놀라 동시에 외쳤지만, 나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주었다. 그들이 내 정신 상태를 우려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남긴 채 연구소 건물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바람이 분다, 조금 많이 따뜻해진 바람이었다.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한 길가가 보인다. 하지만 나는 큰길가를 조용히 피해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고,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작은 상념에 빠졌다. 내 발걸음은 10분 뒤에 회의가 있을 단체장실을 향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흩날린 지 오래였다. 내 손을 펼쳐보자, 수없이 많은 상흔과 굳은살이 보인다.

많은 게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인연이 생겼고, 소중한 장소도 생겼다.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은 하루가 멀다 하게 내 환경을 바꾸었고, 이제는 가장 앞에 서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이상하게도 나였다. 아까 멈췄던 떨림이 다시 한 번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한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이 기분,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내 다리에는 힘이 풀리고 말았다.

털썩.

나는 형편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골목 벽에 등을 기대었다. 정신은 멍하다. 속에서는 억울함과 함께 슬픔이 솟구쳐 오른다. 너무 힘들다. 너무 아프다. 못 견딜 것 같은데, 그런데도 견뎌야 한다는 현실이 지독한 슬픔마저 진창에 던져 버렸다. 어쩌면 이렇게 독하고 비정한지,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을 향해 원망을 했다.

내 몸에 이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놈들이 나를 보고 도망친 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바쁜 일상은 그 걱정을 한순간 사라지게 만들었고, 간간이 찾아오는 행복은 마약처럼 모든 것을 망각시켰다. 망각이 오래되어지자, 걱정은 부정이 되었다. 그리고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뒤바뀌었다.

하지만 진실을 동반한 현실의 열차는 나를 치고 지나갔다. 시간은 되돌리지 못한다. 바뀐 이상 되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그 정답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모든 짐들이 말해 주고 있었다.

동윤아, 동윤아. 나는 내 이름을 거듭 부르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 * *

모든 안건은 순식간에 통과되었다. 간부진들은 한마음 한뜻이 모여 생각과 힘을 모았고, 구체적인 계획이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봉쇄 지역으로 들어온 언론인 중 유일한 생존자인 여자와 남자. 이 둘에게 기밀문서를 주고 밖으로 내보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 둘이 어떻게 빠져나가냐는 것이었는데, 그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언론인과 포수들을 동반한 이들은 불법적으로 일을 자행하는 밀수 브로커를 통해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위성 전화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상 남녀 한 쌍 정도는 브로커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고 김창식은 말했다.

처음 밀수 브로커가 있다는 소리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너무 위험하고 비교적 소수밖에 움직일 수 없다는 말에 빠르게 포기했다. 그리고 모든 루트와 계획이 완성되자, 진행은 순풍을 단 듯 앞으로 나아갔고, 곧 언제 작전을 실행할지에 대한 결정만이 남아 있었다.

브로커를 만나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했다. 솔직히 이 언론인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브로커와 탈출로는 봉쇄지역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놈들을 쫓아내 줄 약품이 존재했고, 그 누구보다 뛰어난 구조대 팀들이 있었다. 이동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 외로 다른 곳에 있었다.

‘급하게 진행할 게 아니야! 적어도 그 길을 먼저 가 보고 브로커라는 사람도 만나 봐야 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항인데, 얼렁뚱땅 넘기려고 해?’

이것은 작전 기한을 한 달 뒤로 잡고 있는 노인의 입장.

‘일주일 뒤에 출발합시다.’

그리고 이것은 일주일 뒤에 출발해야 한다는 내 입장.

언제나 의견이 일치하고 환상의 파트너로서 지내왔던 노인과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의견을 대립하기 시작했다. 결정권한과 영향력이 가장 큰 우리가 싸우고 있기 때문일까? 모든 간부들과 일행들은 입을 꾹 다물었고, 불안한 듯 눈치를 보며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곽동윤!!!!’

그리고 내가 부리는 똥고집에 노인은 결국 큰소리를 내며 책상을 내려쳤다. 맞다, 노인의 말이 맞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일은 우리의 운명을 건 중요한 사항인 만큼 신중의 신중을 다해 일을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화를 내며 섭섭해 하는 노인을 보자 가슴을 칼로 후벼 파내는 것 같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 길었다. 적어도 일주일, 내가 생각한 리미트 라인은 일주일에 불과했다. 그 짧은 기간 안에 이 두 명은 봉쇄지역 밖을 빠져나가 절망적인 상황에 무언가 변화를 가져와야 했다. 나에게 더 이상 시간이 없다. 그만큼 스스로 조급해하고 있었고, 노인은 그 조급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쾅.

노인은 결국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오직 정적만이 내 주위를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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