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우리는 에덴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피해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넘어진 용팔이의 찰과상과 내 오른팔에 남겨진 멍이 전부. 최악의 상황에서 변종을 처리한 것 치고는 굉장히 미미한 피해였다.
에덴의 정문이 열리자 모든 경비들과 직원들이 마중 나와 물품 정리 및 뒤처리를 도와주었고 기다리고 있던 의료진은 우리들의 몸 상태를 봐주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라 그런지 정문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동윤 씨!’
경비들과 직원들은 내가 스스로 장비를 벗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 손수 내 총과 짐들을 받아주며 우리의 귀환을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의 은테 안경이 뛰쳐나오며 반갑게 내 이름을 불렀다.
예전 같으면 항시 무표정을 유지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나를 대했을 텐데, 여태까지 겪어온 고난과 역경, 그리고 단체장의 죽음이 은테 안경을 변하게 만든 것 같았다. 은테 안경은 친구처럼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이쪽으로 다가왔고, 마주한 나도 자연스럽게 표정을 풀며 그를 맞이했다. 언제나처럼, 일이 끝나면 악수를 청하고 손을 맞잡는다.
‘너무 과한 환영 아닙니까?’
정문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과 경비들이 대부분 나온 것 같다. 분명 이런 걸 해달라고 지시한 기억은 없었는데, 황송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과한 환영. 나는 혹시 은테 안경이 계획한 일인가 싶어 넌지시 농담을 건넸지만, 은테 안경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다들 아무런 말 없이 자원해서 나온 겁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신문 동아리에서 작성한 기사나 몇 줄 읽어보세요. 평소 관심이 없으신 거 같아 말씀드리는 겁니다.’
신문 동아리? 아, 에덴 중앙에 있는 게시판에 소식지를 붙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나름 초창기에 존재하던 그 사람들도 모진 풍파를 잘 견디며 아직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고 있는 모양. 난 꼭 읽어보겠다는 대답을 하며 이따 있을 회의를 위해 잠시 은테 안경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저쪽에서 찢어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리 일행들 가운데에 있던 남자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창식아!!!’
‘자기야아아!!!’
자기야아아? 그 외침을 들은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저기서 물을 마시던 노인은 물을 뿜으며 거칠게 기침을 한다. 어제만 해도 꼬박꼬박 선배라고 부르더니, 둘만 있을 때는 낯 뜨거운 애칭으로 바뀌는 모양이다. 정말 엘리트 언론인 같던 남자의 인상이 그 한 마디와 지금 부리는 응석으로 인해 무참히 깨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창식이라는 남자를 부른 것은 우리를 애타게 기다렸을 방송국 여자인 서민정이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과 산발이 된 머리를 한 채로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왔고, 창식이도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사람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던 은테 안경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이번에 구조한 사람입니까? 다행히 소중한 사람이랑 재회한 모양이군요.’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은테 안경은 그녀가 단순히 에덴의 주민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는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줬고, 1~2시간만 있으면 모든 진실을 전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미간을 찡그리며 조심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끌어안고, 뽀뽀하고, 울고불고. 난 한동안 커플들이 벌이는 애정행각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리고 무장을 해제한 상태로 대열을 이루고 있는 일행들을 바라봤다. 일행들은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눈동자에 어린 자신감을 통해 나에게 안도와 든든함을 전해 주었다. 나는 입가를 올려 웃고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에게 말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숙소로 돌아가서 저녁 드시고, 씻으세요. 그리고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9시쯤에 단체장실에서 만나는 거로 합시다.’
출발할 때는 다 같이 생존을 외쳤지만, 해산할 때는 비장함 대신 웃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살아서 다행이다, 일행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다. 우리는 하루 동안 느낀 그 불안감을 해산 뒤에 내뿜는 웃음으로 깔끔하게 해소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진 해산명령은 그렇게 끝이 났고, 일행들은 제각기 떠들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테 안경에게 9시에 보자는 짧은 작별인사를 남기고 숙소로 되돌아갔다.
근데 숙소에 도착해 보니 방금 해산명령을 내린 일행들이 전부 숙소에 모여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시끌벅적, 정신 사나운 가운데 이어지는 식사. 용팔이랑 다혜가 심심한지 나를 굉장히 귀찮게 군다. 이게 바로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하는 것 같다.
* * *
‘글씨가 그게 뭐냐? 지나가는 유치원생도 너보단 잘 쓰겠다.’
내가 깨끗한 종이 위에 편지를 쓰고 있는데, 옆에서 돋보기안경을 쓴 노인이 핀잔을 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편지 내용을 확인했고, 삐뚤삐뚤한 글씨체를 보며 펜을 내려놓았다. 확실히 주민들이 볼 내용인데 많이 엉망이긴 했다. 일기는 혼자 편하게 쓰고 보는 것이기에 잘 모르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보다 악필인 모양. 혀를 쯔쯔 찬 노인은 내 종이를 뺏어 들며 말했다.
‘내용은 대충 다 쓴 거지? 글씨는 내가 대신 써 줄게.’
지금 시각은 저녁 8시 50분. 10분 뒤면 에덴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해가 뜨는 내일이면 에덴의 모든 주민들은 출근과 동시에 직원들로부터 진실을 듣게 될 것이다. 그토록 참고 또 참았던 비극적인 현실. 하지만 꼭 마주해야 하는 태풍이었기에 에덴 위에 승선한 모든 선원들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회의가 시작되기 1시간 전, 가장 먼저 단체장실로 향했고, 생전 쓰지도 않던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런 비극적인 사실을 전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런데도 우리는 잘 해 낼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은 내 일행들과 에덴의 주민들에게 보내는 진심이 담긴 편지였다. 감동적이고 마음을 울리는 대단한 편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생존자에게 이 말을 꼭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 * *
[편지 내용은 부록 2장에 동봉되어 있다.]
* * *
노인은 자신이 대필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있었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점잖은 자세로 글씨를 쓰는 노인은 꼭 나이가 지긋한 선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편지 위에 또박또박 써지는 글자 또한 컴퓨터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깔끔한 정자였으며, 간혹 고쳐지는 오탈자들은 정확하기 그지없었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내가 깜짝 놀라자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편지를 서류철에 끼워 넣었다.
‘복사기는 학교 측에 한 대 있다고 하니까, 가는 길에 처리해 두마.’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보. 분명 주민들 대부분은 혼란스러워 할 것이고, 그동안 꽁꽁 감쳐두었던 증오를 내보일지도 모른다. 힘든 상황에서 분노해야 할 대상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는 나는 한동안 수심에 빠졌었다.
물론 노인과 상의 끝에 치안 유지 대책과 안정화를 위한 방법을 몇 개 생각해 뒀지만, 나는 그 정책들보다 앞서 이 작은 편지지에 써 보내는 진심을 주민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동윤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노인은 그 마음을 충분히 아는지, 돋보기안경을 조용히 벗으며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은은하게 깜빡이는 전등,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에덴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위에 별. 험난한 역경을 넘어왔지만 변한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오늘 회의를 진행할 사람들이 천천히 입장했다.
* * *
알다시피 단체장과 간부들의 사망으로 에덴 지휘체계에는 많은 구멍이 생겼었다. 물론 중요한 자리에는 경험이 많은 우리 일행들과 박대박 무리가 메꿨지만, 그 외에 다른 경험이 필요하고 자리를 비우기 힘든 간부직은 은테 안경이 직접 뽑은 사람들이 우선순위로 선발이 되었다. 물론, 하나같이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었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처음 에덴으로 들어온 날, 모든 게 낯설기만 한 그때를 생각해 보니 감회가 새롭다. 모두가 내 적 같았고, 전투조를 이끄는 우두머리는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진행된 나의 이야기는 어느새 이 자리까지 들어 서 있었다. 이제 회의실은 서로의 이권을 위해 싸우는 공간이 아닌, 진심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대화의 장이 되었다.
서론이 길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나는 그 비참한 과정을 모두 일기에 쓸 생각은 없었다. 간단했다. 나는 이곳에 모인 일행들과 새롭게 뽑힌 직원 간부들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고, 제각기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침착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얼굴이 창백해지는 사람들부터, 정부를 향한 강한 적의를 나타내는 사람. 심지어 여성진 들은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작은 울음까지 터트리고 말았다.
마음이 착잡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격렬한 반응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던 노인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고요한 호수에 도화선을 놓은 기분, 나는 찬바람에 말라 버린 입술을 핥으며 사람들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격렬했던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금 회의실을 가득 채운 이 정적은 허망함일 수도 있고, 현실을 마주하는 수용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쪽도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던 은테 안경이 가장 먼저 혼돈을 수습하고 나에게 물었다.
‘중요한 회의라고 하신 이유가 있었군요……. 단체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를 결정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래, 은테 안경이 하는 말이 이번 회의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였다. 지금 당장 배신감과 증오가 몰려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허망하며 밖으로 뛰쳐나가 현실을 저주하고 싶을 수도 있었다. 나도 그랬고, 노인도 그랬고, 지금 진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표정도 그랬다.
하지만 절망의 순간이 지금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포기할 수 있어도 우리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는 생존자이기에 가지는 유대감이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잡을 수는 있는 것, 항상 우리 곁을 떠다니는 집결의 접착제였다. 나는 이들과 도시의 생존자들을 믿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강인함은 끝을 보기 전까지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진실한 대답에 사람들의 눈빛이 서서히 이쪽으로 향했다.
‘도와주세요.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 * *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마친다.
그 일 이후로 하루가 멀다고 회의가 진행되었다. 야근과 철야는 기본이고, 한 번 회의를 시작하면 밤을 새워 버리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큼 우리 간부진들을 치열했으며 단 한 번의 휴식시간도 없이 일과 일, 그리고 일에 매달렸다.
정보수집, 물품 보급, 생존자들의 집결. 할 일은 산더미였지만 갈수록 몰려오는 것은 막막함뿐이었다. 그렇다고 물론 좋은 대책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 가장 먼저 나온 의견은 정부에게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고, 구조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안건은 나오자마자 기각을 당했는데, 그 이유에는 정황상 어려움과 정부를 향한 극심한 배신감이 한몫했다. 생존자들은 전부 남긴 채 지역을 봉쇄한 정부, 그들이 과연 우리를 구조해 줄까? 웃기지 마라. 은폐하기 위해 학살이라도 안 벌이면 다행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통상적인 정공법이었다. 이 안건은 간부와 일행들 중 전투를 담당하는 호전적인 사람들이 동의한 것이었는데, 바로 우리가 장벽으로 먼저 쳐들어가 이 지역을 봉쇄한 정부를 치자는 의견이었다. 물론 이 방법도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노인에게 욕설을 들으며 기각되고 말았다. 이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김창식이 말하길 지금 북한과 대한민국은 극심한 대립을 이루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라도 한다면, 모든 걸 끝으로 몰고 갈 전쟁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근데 그 상황에서 우리가 정부를 먼저 친다면? 비록 현장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어나겠지만, 그 여파는 결코 작지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도 진통을 겪으며 침묵하는 지금, 여차하면 모든 걸 파묻기 위한 정부는 본격적으로 움직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대한 몸을 숨기며 생존자가 집단을 이루었다는 사실조차 알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각과 기각, 박 터지는 회의가 지속된 지 일주일째가 지나자 점점 현실적인 안건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이번에 우리가 구출한 방송국 기자들을 이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 안건을 낸 노인은 때론 칼보다 펜이 강한 법이라고 말하며, 이 두 명을 우리가 입수한 기밀자료들과 함께 봉쇄지역 밖으로 내보내자고 했다.
본사에서 찾은 기밀자료에는 정부가 은폐하려고 했던 내용과 증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가 버려진 것부터 시작해서, 비윤리적인 선택을 한 정부 인사들의 발언들까지. 만약 이것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다른 국제 사회는 몰라도 국내 여론들은 들끓게 될 것이다. 삼권분립에서 오는 민주적인 견제. 우리가 정부를 향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젯밤 김창식에게 언론통제가 이뤄지는 가운데, 이런 소식이 전해질 수 있겠냐고 넌지시 물어봤었다. 그러자 김창식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언론인들이 모두 모여, 죽는 한이 있어도 이 꼭 방송하겠다는 다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짐과 함께 회의는 좋은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오늘은 구체적인 방안을 짜기 위해 마지막으로 회의를 하는 날. 난 새벽같이 일어나 씻었고, 사람들을 마주하기 위해 용모를 단정히 했다. 해가 뜨기 전부터 바쁘게 돌아가는 숙소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겼다.
이 이른 새벽에 누구지? 의문을 느낀 나는 천천히 앞으로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의외에 인물이 어두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땀 냄새가 진하게 나는 흰색 가운과 피곤한 얼굴. 그는 오랜만에 보는 연구원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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