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그동안 수없이 많은 고비를 넘기며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짙은 상처가 나에게 준 교훈은 바로, 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곧은 궤적, 상대를 죽이는 노크. 놈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쏘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준다.
그 외에 튀어나오는 모든 변수는 오로지 방아쇠를 당기는 사용자에게 달려 있었다. 1을 주면 1을 받고, 2를 주면 2를 받는다. 믿을 수 있는 오랜 친구. 그 누구보다 말이 없는 동료였다. 나는 눈앞에서 차가운 한기를 내뿜고 있는 소총을 꾹 잡고 조용히 들어 올린다.
‘너는 안 무섭냐?’
내가 마지막으로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데, 저 옆에서 신발 끈을 묶고 있던 노인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이곳은 은테 안경이 새롭게 마련해 준 구조대의 사무실. 공간도 널찍하고 햇볕도 잘 드는 게 전에 사용했던 사무실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에덴에서 최고로 쳐 주는 인부들을 데려와 구비한 시설은 와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대단해 보였다. 나는 시끌벅적한 내부를 조용히 훑어보며 노인에게 대답했다.
‘왜 안 무서워요. 다 무섭지.’
내가 이번 작전을 같이 간다고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만류한 것은 노인이었고 그다음으로 난리 친 사람들은 나머지 일행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만류들을 칼같이 쳐내며 결국 해가 뜨는 새벽, 사무실로 찾아와 출발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노인은 내 솔직한 대답을 듣고도 불만이 많은지 심통 난 표정으로 내 대검을 뺏어 들어 꼼꼼하게 날을 갈아 주기 시작한다.
‘근데 왜 주야장천 따라오려고 해? 변종 놈을 그렇게 잡더니, 이젠 무서운 게 없어?’
정말 수없이 많은 놈들과 변종들을 죽였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달려와도 벌벌 떨던 그 곽동윤이, 이제는 수십 마리쯤은 이 악물고 사냥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새삼 몰려오는 감회를 곱씹으며 조용히 웃음을 머금는다.
물론 노인과 일행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젠 당당한 구조대의 일원이 되어 일당백을 발휘하는 일행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 동료들이자, 이 거친 파도를 같이 나아가는 한 척의 범선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다고 그들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에덴이 불타며 많은 이들이 생사를 모를 때, 그리고 부랑자 놈들에게 공격을 당한 노인과 강수련이 한강 물에 떠내려갈 때. 나는 그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무력감과 공포를 느꼈었다. 내가 손을 뻗지 못하는 곳에서 소중한 이들이 죽는 것. 나는 그것이 스스로가 죽는 순간보다 더 무서웠다.
‘어쭈? 단체장이라고 이젠 대답도 안 해 주네?’
내가 조용히 웃고만 있자, 노인은 발로 내 허벅지를 툭툭 차며 장난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 장난도 한순간일 뿐, 노인은 날카롭게 갈린 대검을 칼집에 넣어 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 작은 손짓에는 말 안 해도 안다는 따스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고, 마음이 상쾌하게 변한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끌벅적한 사무실이 한순간 조용해진다. 그리고 모든 일행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나는 일행들 중 빠진 사람이 없는지, 컨디션이 나쁜 사람은 없는지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체크했다. 그리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단이 들자 단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이 조용하다고 해서 분위기 자체가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입을 꾹 다물고 일행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머금고 나를 보고 있었으며, 나 또한 기분 좋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용팔이를 시작으로 인원 전부가 크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모두가 완벽히 중무장을 마친 모습, 나는 천천히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까 영감님이 했던 브리핑은 다들 잘 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침에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복귀할 생각이니, 모두 다치는 사람 없이 무사히 도착하도록 합시다.’
수십 번이고 해 왔던 임무다. 이제는 이 아침 인사도 너무나 친숙하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일행들도 익숙하다. 나는 연신 들숨과 날숨을 뒤바꿔가며 폐 안에 고여 있는 묵은 숨들을 빼내었다. 그리고 단상 아래로 내려가려는 찰나, 저 한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혜정이 재빨리 손을 들며 나에게 외쳤다.
‘단체장님! 근데, 아까 브리핑을 들어보니까 단체장님과 어르신은 마무리부터 우리랑 다른 경로로 가시던데, 혹시 저희가 모르는 다른 게 있는 겁니까?’
기본적으로 우리 작전의 개요는 섬멸-구출 순으로 아주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본사 내부에 있는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표면적인 목표인 김창식을 구한다.
일단 브리핑에 포함된 작전 내용은 그러했지만, 일행들은 모르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나와 노인은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잠시 일행들과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방송국 여자가 말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고, 물론 그 사실을 일행들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김혜정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의심이나 경계가 아닌 단순한 호기심을 담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들도 처음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지, 별다른 말 없이 나를 보며 그 질문에 힘을 실어 준다.
말해 줘야 하나? 고민이든 나는 노인에게 고개를 돌려 의중을 물어봤지만…….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직이라는 부정적인 의사를 보내 왔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혜정 씨. 다만 지금 말씀드리기가 많이 곤란합니다. 작전이 끝나면 꼭 알려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
내가 꼭 알려 준다는 말에 김혜정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도 속 안에 품고 있던 작은 의문을 나를 향한 신뢰로 풀었는지,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떠들며 출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나가기 2분 전, 나는 그런 일행들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에 빠진다.
꼭 말해 주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나와 노인은 이번 작전이 끝나면 에덴 내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 모두에게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모두 이야기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에덴이 혼란을 수습하고 바위처럼 튼튼하게 변할 때……, 일반 주민들에게도 이 진실을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저 웃는 모습들을 보아라. 그동안 겪었던 아픔과 고뇌는 이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고, 이제는 타인이라는 격마저 사라지며 하나의 전우들로 뒤바뀌고 있었다. 모이면 즐겁고, 같이 밥만 먹어도 행복하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내 일행들에게 차가운 물을 뿌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 자신이 힘들었던 만큼, 일행들도 아파할 거란 생각에 그만 꾹 눈을 감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어깨를 툭 밀어주는 느낌이 든다.
‘자! 출발합시다, 단체장님.’
고개를 돌리자 환하게 웃고 있는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늙으셨다. 내가 속상한 마음에 매번 염색을 권유했지만, 노인은 자신이 늙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하며 염색을 완강히 거부하신다. 흰 백발, 주름진 얼굴. 처음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온화한 얼굴을 마주하며 나는 굳세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마음속에 고여 있던 걱정과 불안함을 떨쳐내며, 그 누구보다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 * *
새로 취임한 단체장이 구조 활동은 간다는 소식에 에덴은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경비대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인솔에 힘을 쓰고, 출근하던 주민들 일부는 길가 근처로 모여 우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호기심, 호의, 신뢰. 그 모든 부드러운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졌고, 용팔이와 다혜는 벌써 신이나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화려한 출정식을 겪으며 중간 길에 들어설 때쯤, 저 멀리서 박대박 무리가 나에게 걸어왔다.
‘동윤 씨! 아니, 이제 단체장님이시죠.’
박대박은 여전히 유쾌하고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야 할 구조 임무를 대신 다녀온 박대박은 진순이네 사람들을 무사히 데려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아쉽지만, 오늘은 우리와 같이 임무를 떠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자리를 비운 에덴을 총괄하여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물론 박대박에게 주어진 직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내 아이들과 사랑하는 사람이 자고 있는 둥지다. 그렇기에 함부로 떠나갈 수 없는 망설임이 있었지만, 박대박이 자원해서 수비를 맡겠다는 소리에 나는 안심하고 작전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중후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박대박과 그의 무리들, 나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안부와 함께 신뢰를 전달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어갈 때쯤, 나는 그들과 헤어져 정문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찬바람이 분다, 아니 많이 따뜻해진 바람이 분다. 길가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혼자 걷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정문은 서서히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응원하고 무사 귀환을 바라는 목소리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정문에 완전히 도착했을 때는 에덴의 주민들이 상당수 모여 우리의 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구조팀, 정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빨리빨리 움직여, 인마!]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하던 무전기는, 우리가 정문 앞에 도착하자 고성과 함께 고참들의 폭풍 같은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계 탑에 있는 경비들을 재빨리 총을 들고 와 정문 근처를 살폈고,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은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고 일행들에게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영감님, 연구소에서 받은 거 뿌리고 나갑시다.’
‘오냐.’
그동안 우리가 잡았던 변종 시체를 모조리 모아 연구소에 전달했었다. 몸체는 실험용, 그리고 나머지 피들은 놈들의 접근을 막을 약품으로 바뀌어 에덴 장벽과 구조대 팀원들에게 한 병씩 배포되었다. 물론 뼈가 갈리는 연구원들에 희생이 있었지만, 덕분에 우리 구조대 팀은 놈들 걱정 없이 본사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이 뒤를 향해 짧게 소리치자 일행들을 기다렸다는 듯, 온몸에 약품을 뿌리기 시작한다.
‘----!’
하지만 그 순간, 막 출발하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막는 외침이 들려왔다.
‘아저씨!!! 아저씨, 잠시만요!!!! 제발 저도 데려가 주세요!’
나는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머리가 산발이 된 방송국 여자가 다급히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고, 그 여자의 돌발행동을 막기 위한 경비원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분명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했었는데, 어째 놓치고 만 모양. 나는 뿌리고 있는 약품 통을 조용히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총을 등 뒤로 돌려 맸다.
여자는 이번 임무에 우리를 따라오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나는 경험이 없는 그녀와 동행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거절을 통보하는 나에게 끝까지 매달리며 다시 한 번 생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애절한 고성과 비명,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피곤함을 느끼며 눈을 잠시 감는다. 입에서는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고립된 연인,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반쪽을 걱정하는 그녀가 이해는 갔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경험이 없는 여자는 우리 일행들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고, 중요한 임무에 방해를 줄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뜩이나 신뢰를 잃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는 나에게 하등 존재하지 않았었다. 임무는 우리끼리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외침을 무시하고 천천히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비틀비틀 뛰어오던 그녀는 결국 뒤따라오던 경비들에게 붙잡혔다. 안절부절못하며 나의 눈치를 보는 경비들, 그리고 그녀가 바닥에 넘어지며 새된 비명을 지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 묻혀 그 소란도 점점 잠잠해졌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상념을 지우고 본사로 향해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가죽 장갑을 낀 손을 꾹 쥐자 끄드득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를 울린다. 나는 앞주머니에 꽂아 둔 무전기를 꺼내 들고 말했다.
‘출발합니다.’
[[[출발합니다!!!]]]
무전기 너머로 수많은 사람이 복창하고 내 뒤에 있던 일행들도 힘차게 외친다. 그 순간 정문 위에 있는 경비들이 큰 동작으로 수신호를 보냈고, 굳건한 에덴의 정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펼쳐지고 회색 도시는 멋진 광경을 이루며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가자.’
나는 스스로에게 독백을 읊었다. 그리고 둘러메고 있던 총을 앞으로 꺼내 들며 앞에 펼쳐진 광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피부를 핥으며 전해지는 현실, 내 신경을 자극하는 수많은 위험들. 하지만 내 모든 요소는 그 삶의 근원마저 보살피며 나를 만들어 내었다. 환호성이 터지고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 환호성을 뒤로하며 에덴의 정문을 빠져나온다.
기나긴 길을 지나, 나는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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