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67화 (167/313)

[167]

‘전, 전화기……!’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가장 먼저 위성 전화기를 찾으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 노인은 그녀의 허리를 잡아 제압했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 눈을 부라린다.

역시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녀는 아마 위성 전화기가 완전히 고장 났을 거로 생각하고, 그 이후 행방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난 일단 노인에게 침착하라는 몸짓을 취하며 눈가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말한다.

‘우리가 아직 못 끝낸 이야기가 있나 봅니다.’

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차가운 말이 사무실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그 목소리는 단호함과 동시에 부정이라는 끈적한 감정을 담고 있었고, 그것과 마주한 여자는 한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간절함과 동시에 애절함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입에서는 폭포수와 같은 변명이 터져 나왔다.

‘오해가 있었어요! 저, 저는 연락이 완전히 끊길 줄 알고 이야기를 못 했던 건데……. 속이려고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제발, 제발 믿어 주세요. 그 사람이랑 꼭 통화해야 해요…….’

여자는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지 노인에게 몸을 제압당한 순간에도 내가 들고 있는 위성 전화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측에서도 반쯤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이쪽을 향해 제대로 된 반응을 보여 온다. 전화기를 통해 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내 눈가도 함께 떨려왔다.

(왜 남자 목소리가……. 서 선배! 서 선배 맞아요? 혹시 놈들한테 붙잡힌 거 아니죠? 대답 좀 해 보세요! 여보세…….)

뚝.

방안이 소란스럽다. 이성을 잃어 겁에 질린 목소리가 시끄럽게 하모니를 이룬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나 싫었기에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보란 듯이 남자와의 통화를 끊어 버렸다. 뚝, 그 단호한 소리는 시끄럽게 변명을 내뱉던 그녀의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해 보였다. 나는 끊어 버린 전화기의 전원을 끄며 그녀에게 권유했다.

‘앉아요.’

비틀, 정적을 깨부수는 내 말에 노인은 구속하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여자는 허망한 얼굴로 비틀거리더니 곧 의자가 아닌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게 들려온다. 나는 그런 그녀를 잠시 외면하며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창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살며시 열린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화가 나느냐고? 아니, 전혀 아니다. 내가 한숨을 쉬었던 이유는 그저 조금 피곤해서일 뿐이지, 결코 그녀를 향한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껴서가 아니었다. 기대가 없었기에 배신감도 없었고, 신뢰가 없었기에 분노도 없었다. 그녀와는 공통된 목적을 위해 협력하고 있을 뿐 잠깐의 변수는 내 정신과 판단 능력에 아무런 해를 주지 못했다.

‘총 몇 명입니까?’

귀를 울리는 노이즈와 복잡한 생각을 수습한 내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내 질문에 얼굴이 수척해진 그녀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고, 곧 전등이 깜빡이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이제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주변에는 나와 노인 그리고 여자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저를 포함해서 8명이요…….’

여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총 8명, 그럼 그날 죽었던 카메라맨과 여자를 제외하면 6명이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가 들어왔고, 아까 연락이 왔던 남자도 이 중에 포함이 되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노인은 그녀를 일으켜 세워 정면에 보이는 의자에 앉게 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6명 다 방송국 직원입니까?’

본래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이쪽으로 들어온 구성인원을 자세히 알아야 했다. 아까 전화가 왔던 남자는 그녀를 선배라고 지칭했었다. 그렇다면 방송국에서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라는 것인데, 과연 나머지 인원들도 다 같은 방송국 사람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잠시 후, 내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무거운 침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뇨……. 그중에 2명만요. 나머지는 제 후배 삼촌 분들이신데, 산에서 유해동물 잡으시던 포수분들 이거든요, 그래서…….’

‘미친놈들, 죽고 싶어서 엽총이라도 쐈겠지.’

아까부터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이 처음으로 반응하며 여자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거침없는 욕설을 동반한 비판을 지옥을 제 발로 걸어온 이들에게 아낌없이 선사해 준다. 아무런 전투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대부분.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다고 총기를 가진 경호 인력을 동행했지만, 그래 봤자 나선과 소음기가 없는 엽총을 든 사람일 뿐이다.

경과를 물어볼 것도 없었다. 아마 저들 무리는 놈들과 처음 마주한 순간 총을 발사했을 것이고, 그 소리를 듣고 몰려온 놈들을 피해 미친 듯이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행들과 떨어진 여자와 카메라맨은 우연이 나와 마주쳐 도움을 받게 되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난 겁대가리 없는 그들에게 어이없음을 느끼다가도 바로 도망가지 않고 본사까지 도착한 전화기 밖 남자에게 진짜 언론인이라는 느낌을 진하게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넋 놓고 있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본사에 뭐가 남아 있습니까.’

궁금했다. 과연 이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미련한 언론인들이 끝까지 놓지 못했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자 여자는 내가 책상 위에 놓아둔 위성 전화기를 애절하게 바라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 모습은 전화해 주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겠다는 소소한 반항.

강제로 말하게 해야 하나? 나는 대답이 없는 여자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잠깐의 이해관계를 위해 한번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나는 위성 전화기의 전원을 켜고 아까부터 걸려오던 남자의 전화를 받아 주었다.

‘창, 창식아…….’

내가 던져 준 전화기를 받은 여자는 허겁지겁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 전화기를 들며 상대측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창식이, 저 남자의 이름이 창식인가보다. 그러자 아까부터 침묵만이 감돌던 전화기에선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서 선배? 서 선배 맞아요? 무사한 거죠? 무사한 거 맞죠?)

‘응, 나 괜찮아…….’

여자는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는지 서럽게 울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웅얼거림과 눈물로 전화기 너머에 있는 창식이를 쉼 없이 부른다. 목소리에는 애틋함과 함께 진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와 노인은 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사귀고 있거나 혹은 결혼한 연인 사이, 나는 괜히 커플을 갈라놓은 나쁜 놈이 된 것 같아 잠시 시선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 다행이다……. 혹시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요?)

불안함과 초조함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남자는 자신의 연인인 그녀를 걱정하며 아까 들려온 내 목소리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며, 아직 코안에 남아 있는 콧물을 열심히 훌쩍인다. 이제 좀 진정이 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아까보다 또렷해진 눈으로 나와 마주하며 남자에게 말했다.

‘봉쇄지역에 아직 살아있는 분들이 계셨어. 그분들이 도와줘서 지금은 안전한 곳에 있으니까, 걱정 마. 근데, 창식아……. 혹시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어?’

그 순간 전화기가 꺼지기라도 한 듯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와 노인 그리고 여자는 별다른 말이 없음에도 그 침묵의 원인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흐윽, 흑.

들려오는 남자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는 전화기 너머에 남자를 제외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를 들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흑색으로 변한다.

(미안해……. 미안해요, 선배……. 뒤돌아보니까, 아무도 없어서……. 도착했는데, 나밖에 안 남아서…….)

남자는 공포와 두려움에 찌들어 있었다. 듣는 사람조차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은 침울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어둠보다 짙고 끈적끈적한 과거의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남자는 지금 반쯤 미쳐있을 것이다.

빛 한 점 없는 어둠과 눈앞에서 죽어가던 사람들. 그리고 겨우 연결된 그녀와의 연결고리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옅은 통신에 불과했다.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중얼거렸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목소리를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가 울음을 멈추며 경기를 일으킨다.

(또 들린다……. 선배, 그놈이 내는 소리가 또 들려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숨죽이는 속삭임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숨죽임 사이에서 고요하게 들려오는 기괴한 울음소리.

끼-. 끼이이.

언뜻 들으면 녹슨 철문을 여는 듯한 그 소리는 이상하게 피부가 일어나는 소름을 유발했다. 인위적인 소리, 결코 사람이 내는 것 같지 않은 짙은 이질감.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노인이 속삭였다.

‘적어도 건물 근처에 있어.’

분명 남자는 사람 같지 않은 놈이 근처에 있다고 했다. 다행히 직접적인 추격을 당한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본사 근처를 돌고 있는 변종은 남자의 존재를 대충이나마 눈치챈 모양이다. 아마 본사가 넓지 않았다면 남자는 진즉에 잡혀 먹이가 되었겠지. 그리고 노인의 말을 감으로 알아들은 여자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얼굴로 나와 노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는 전화기를 천천히 입에서 떼고 우리를 향해 말한다.

‘뭐가 있다는 거예요? 네? 창식이가 위험한 거죠? 그죠?’

많이 위험하다. 물론 본인이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런 총기가 없다면 해가 뜰 때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그 이상은 수십 번 놈들을 죽인 나라도 무리인 최악의 상황이다.

그 녀석들의 악독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하게 질린 그녀에게 잔혹한 현실을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힘없이 의자 아래로 미끄러진다.

‘아, 아저씨……. 아저씨 한 번만 도와주세요, 네? 그 사람 좀 살려 주세요.’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알량한 통신으로 남자와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여기서 남자를 구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유일.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 여자는 결국 무릎을 꿇고 나와 노인 앞으로 천천히 기어왔다.

처절함, 그리고 짙은 슬픔. 그녀가 뿜어내는 온갖 어두운 감정은 나와 노인을 엄습해왔고 기분을 저 아래로 다운시켰다.

그녀는 이미 신용을 잃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은 지푸라기와 구명줄은 우리밖에 없었고, 결국 뻔뻔한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내 발아래까지 기어와 연인의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기분은……. 딱히 좋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숙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래,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지 못한 나에게 타인의 죽음이란 종이 한 장의 통계로 바뀌어 올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통계를 볼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단순한 모순이 아닌, 원초적인 생각을 던지며 내 근원을 뒤바뀌어 놓는 수많은 질문이었다. 심경이 복잡하다. 나는 많이 변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의 모습이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본사에 뭐가 있습니까?’

나는 아까 여자가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넋이 사라진 눈으로 천천히 대답했다.

‘정부가 통제하려고 했던 기사 내용이요…….’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질 듯 위태해 보이는 전화기를 뺏어 들고 숨죽여 우는 남자에게 말을 건다.

‘창식 씨, 지금 아무것도 못 하시는 상황인 거 이해합니다. 다만, 살고 싶으면 내 말 들어요. 절대 소리 내지 마시고, 빛이 나는 물건은 꺼내지 마세요. 놈이 소리를 내든 말든 숨죽인 듯 숨어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뜨면 총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전화기를 찾아서 다시 나한테 전화를 거세요.’

후욱, 후욱-.

훌쩍거림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가 내뱉는 거친 숨만이 내 귀에 들려왔다. 다 들었을까? 아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어떤 탁월한 판단과 생각보다 뛰어난 것은 인간이 가지는 생존본능이다. 나는 창식이라는 남자가 그것마저 놓지 않길 빌며 조용히 마지막 말을 속삭였다.

‘다 들었으면, 대답하지 말고 전화기 꺼요.’

마지막 말, 그리고 거친 숨.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소리쳐서 빨리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성이라는 옅은 줄을 붙잡으며 최대한 소리를 숨기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 한다. 나는 남자의 전화가 끊길 때까지 기다렸고, 곧 그토록 기다리던 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뚝.

그리고 남자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나는 끊긴 전화기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모래를 끼얹은 듯한 뻑뻑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쪽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장비를 준비해서, 새벽 일찍 출발합시다. 구조대 인원 전부 불러요.’

‘너도 가게?’

노인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여자를 바라봤지만, 내 지시에 직접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단체장 자리에 앉은 내가 같이 움직인다는 게 불만인지 지시를 되물어보며 짙은 의문을 표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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