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65화 (165/313)

[165]

밤을 꼬박 지새우며 내가 써온 일기장을 읽고 또 읽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겪었던 기억과 고통이 일기장에 함축되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글자가 눈앞에서 춤을 추고, 찐득한 고뇌가 내 정신을 괴롭힌다. 나는 일기를 읽는 그 순간에도 한가지만을 생각하며 고민이 섞인 한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내가 잡아야 한다. 그 부담감은 나의 어깨를 짓눌렀고, 살아 있는 순간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막연함. 나는 이 이 순간만큼은 강철을 심었던 심장이 절절 닳아 없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일기장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자, 이른 여명이 창문 사이에 걸쳐 있었다. 새근새근, 일행들이 자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뇌가 녹아 버릴 것 같은 고뇌를 느끼고 있음에도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그리고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색 도시는 어김없이 아침을 가져왔다. 나는 피부를 간지럽히는 여명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잠이 들 생각조차 못 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속이 답답하다. 차가운 아침 공기라도 맡으며 정신을 차려야겠다. 나는 아직도 꿈나라에 빠진 일행들을 살금살금 피해 걸으며 숙소 밖으로 나갔고, 곧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초라한 남자의 발걸음이 귓가를 울린다. 복도를 걷자 밤새 불침번을 서주던 경비들이 고개를 숙이며 아침 인사를 해 주었다. 나는 고생하고 있는 그들 전부와 눈인사를 나누었고, 에덴의 생존자라는 유대감을 시나브로 느꼈다. 그리고 긴 복도를 걸어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 옅은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무심결에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서 백발이 되어 버린 노인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담배를 끊었던 노인이다. 하지만 어젯밤 일로 고민이 많았는지 끊었던 담배를 꺼내 들며 조용한 사색에 잠겨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문을 밀었고, 불어오는 찬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나지막이 노인을 불렀다. 그러자 노인은 피곤한 눈으로 나를 흘겨본다. 그리고 그 특유의 무신경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잠이 안 오냐?’

나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는 가정은 사실이 되었고, 심지어 시민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냐는 확신조차 서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을 자력으로 탈출한다고 해도 정부가 손 벌려 환영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회색 도시는 그들이 남긴 오점이자, 절대로 숨겨야 하는 치명적인 진실이었으니까. 망망대해 위에 표류하는 이 기분, 나를 위한 항구는 없었고, 목적지는 흐릿해졌다.

‘한 개 주실래요?’

나는 노인에게 손을 내밀어 피지도 않는 담배를 요구했다. 그러자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던 노인은 한동안 구시렁거리며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본인은 피면서 왜 나는 안 되냐는 소리를 하자, 결국 노인은 담배를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탁하고 타오르는 불꽃에 담배 끝을 점화시키며 숨을 들이켠다. 담배 연기가 허공을 솟아오르는 입김처럼 흩어진다. 매캐한 연기가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그러자 그 여파는 금세 찾아오며 기침을 유발했다.

콜록콜록.

내가 거친 기침을 내뱉자 노인은 혀를 차며 내 담배를 뺏어 버린다.

‘처음 피는 놈이 연기는 왜 삼켜?’

거친 기침이 터지고 눈가에는 눈물이 찔끔 고인다. 나는 아직도 흩어지지 않는 담배 냄새를 휘휘 저어 날려 보내고, 소매로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닦았다. 정말 맵고 매캐하다. 하지만 나는 노인이 왜 저런 얼굴로 이런 걸 피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우리네 현실만큼이나 더러운 연기는 까맣게 타 버린 속을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노인은 내가 물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뜨기 시작한 아침 해를 바라봤다.

‘30분 전에 박대박, 이 친구한테서 무전 왔어. 워낙 챙기고 정리할 게 많아서 오늘 아침에나 출발할 거라고 하더라. 아마 점심쯤에나 도착하겠지.’

그래, 워낙 바빠서 잠시 까먹고 있었다. 분홍색 털모자를 쓰며 나름 힘차게 살아가던 진순이와 이런 상황에서도 남을 위해 주던 강유미. 그 생존자 모두가 정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입안이 씁쓸해지고 또 다른 상념이 나를 덮쳐왔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과연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상념들을 몰아내기 위해 거칠게 고개를 휘저었다.

일단 가장 앞에 있는 일을 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던 내가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문장에 있었다. 한지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에서는 내 팔과 다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발이 바닥을 밟고 있다는 것을 보면, 스스로가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위치에서……, 내가 살아 있는 시간 속에 최선을 다하자. 나는 뜨는 해를 바라보며 또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저 먼저 가 볼게요. 조금이라도 쉬고 계세요.’

숙소에서 먼저 나와 있던 노인이다. 분명 나처럼 잠이 오지 않아 밤을 꼬박 새우고 밖으로 나왔던 것이겠지. 하지만 노인의 나이와 몸 상태를 고려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충분한 휴식은 필수적이었다.

항상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은 노인. 저번에 한강에 그 둘을 떠나보낼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노인의 백발이 더 옅어질수록 그 든든한 기둥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나는 절대 따라오지 말라는 몸짓을 취하며 정문을 나섰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노인의 말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가기 전에 수련이 쪽에 들려. 오늘 새벽에 의식 차렸다고 하더라.’

나는 발걸음을 멈추며 손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그게 정말이냐는 얼굴로 노인을 바라봤고, 입에서 새어 나오는 기쁜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금방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그녀였다. 하지만 나를 애태우기라도 하듯 병원 측에서는 쉽사리 면회를 허락해 주지 않았고, 오늘 아침이 와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애들 일어나면 우르르 몰려갈 것 같으니까, 아침 먹기 전에 빨리 다녀와.’

일행들 사이에서 강수련은 집안을 책임지는 큰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 다정다감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독차지했고, 알게 모르게 많은 일행들의 버팀목이자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아마 일행들이 그녀가 깨어났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병원은 한동안 떠들썩하게 바뀌고 말 것이다. 노인은 그것을 알기에 가장 먼저 나에게 소식을 알려 주었고, 한두 시간이라도 같이 있을 기회를 준 것이다.

‘좋냐?’

노인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고 나를 놀렸다. 평소 같으면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받아쳤겠지만, 지금만큼은 나를 배려해 준 노인이 너무나 고마워 그럴 수도 없었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 아른거리는 그녀 얼굴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는 의사를 거침없이 밝혔고, 곧 가 보라는 노인의 말에 서둘러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할 일이 많은 단체장이지만, 지금만큼은 우선순위가 있었다.

* * *

스치고 지나간 우연이 인연을 만들었고, 수많은 역경은 필연을 탄생시켰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것 같던 내 마음에 울타리. 세상을 경계하며 미워했지만, 언제인가부터 수많은 일행이 그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처음 만나 더러운 현실과 고통을 극복한 강수련, 그녀의 자리는 유독 넓게만 느껴졌다.

아침을 맞이한 병원은 잡음 한 점 들리지 않는 고요의 호수였다. 나는 그런 병원 복도를 가로지르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위치를 물어보았고, 곧 가장 조용한 곳에 입원해 있는 강수련의 개인 병실을 찾을 수가 있었다. 나는 병실 문손잡이를 꾹 잡으며 설렘으로 뛰고 있는 심장을 다잡았다. 그리고 개운한 숨과 함께 모든 감정을 품 안에 가득 담고 문손잡이를 돌린다.

아-.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의료진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따뜻함을 강수련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지 두꺼운 커튼을 다 치워 주고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강수련, 그녀는 천 대신 햇볕으로 만든 커튼 사이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연 자세 그대로 멈춰 살아 있는 강수련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심장에 심어 둔 강철이 조금씩 녹아내렸고, 수상 레스토랑에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그 쇳물을 따라 흘러가 버린다.

‘수련 씨.’

꽉 막힌 목구멍을 애써 열며 그녀를 불렀다.

그래, 나는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그 험난한 늪지대를 헤쳐 왔을지도 모른다. 내 떨리는 목소리는 고요한 병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렀고, 곧 그녀의 고개를 이쪽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었다. 신서울대에서 잘렸던 머리카락은 많이 길어져 있었다. 그리고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지만, 항상 싱글거리던 얼굴은 여전한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같았다. 그녀는 놀란 듯 이쪽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 큰 눈 사이로 눈물이 천천히 떨어진다.

눈물이 떨어지고, 또 떨어지며 하염없이 떨어진다. 왜 의료진들이 면회를 한동안 막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떻게 참고 있었는지 모를 만큼 눈물을 흘리며 끅끅 울었다. 그 눈물에서는 한과 서러움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었고, 강수련은 마치 애처럼 양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내 발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저 떨리는 양손을 잡기 위해, 그리고 품 안 가득 그녀를 안기 위해.

‘미안해요……. 미안해요……. 눈물이 계속 나와서…….’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울기만 하는 자신이 싫은지 연신 사과를 했다. 하지만 나는 백 마디 말보다 계속해서 흘려주는 눈물에 많은 의미를 읽었다. 더 이상 긴말이 필요 없었다. 고난과 역경은 익숙했고, 이제 이런 재회마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지금만큼은 말을 하기 싫었다. 그저 서로의 체온과 생각을 읽으며 인연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곱씹어 보고 싶을 뿐이었다.

아이들을 살려 줘서 고마웠다. 스스로 살아 줘서 고마웠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고마운 것투성이였다. 난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끌어안았고, 그녀도 내 목을 감싸 안으며 힘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태초의 만난 아담과 이브처럼 필연으로 바뀐 인연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없어서는 안 될 애틋함을 작은 입맞춤으로 확인했다.

채연이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면,

비로소 멈추게 한 것은 그녀였다.

* * *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네.’

앞자리에서 서류를 보던 노인이 내 웃음과 콧노래를 보며 못마땅한 잔소리를 해 온다.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생소하고 어려운 일투성이였지만, 인수인계를 확실하게 해 준 은테 안경과 의외로 이런 일에 능숙한 노인의 도움으로 이제는 수월하게 업무를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자택 치료를 결정하고 숙소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분위기였다. 비록 한동안 건강을 유의해야 하는 그녀였기에 예전처럼 바쁘게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강수련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행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다.

알게 모르게 불안함을 느끼던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되찾았고, 날 선 분위기를 유지하던 일행들은 조금씩 뭉툭해지며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모든 톱니바퀴가 나라를 존재에게 들어맞는 것 같았다. 비록 저 앞에는 거대한 난관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나는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연료 삼아 끊임없이 마음을 불태웠다. 나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확고함이 들어선 것이다.

나는 마지막 서류를 넘기며 종이를 접었다. 그동안 단체장이 남긴 자료와 에덴의 초창기 사람들 증언까지 다 수집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멈추면 도태된다. 비록 발버둥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나는 가장 먼저 서류를 바쁘게 보고 있는 노인에게 아까 점심에 부탁했던 일을 언급했다. 그러자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너도 알겠지만, 유선이고 무선이고 먹통이 된 지는 오래야. 아마 내부 기지국을 죄다 박살 내놨거나, 외부에서 손을 써뒀겠지. 그 방송국 여자 말 들어보니 바깥 상황도 결코 조용하지는 않다고 하는데, 특히 언론인들은 목 조심한다고…….’

노인은 말끝을 흐리며 손으로 목을 살며시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제스처를 본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고, 곧 생각이 난 물건의 행방을 물었다.

‘그 여자가 가지고 있던 위성 전화기는요?’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고장 났길래 털보한테 가져다줬어. 뭐, 털보가 어떻게 말할지 알잖아? 해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기에 그냥 왔지. 근데 너 설마 그거 써 볼 생각은 아니지?’

당연히 아니다. 위성 전화기를 가져다가 누구한테 쓴단 말인가? 119? 112? 정부가 우리를 버리고 억제력을 발휘할 계엄령을 선포한 마당에 외부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보다 개판이 된 국제상황, 정의는 의미 시들었고, 힘 자체가 윤리를 이기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파도의 가운데 서 있었다.

‘변종 시체는 다 회수했죠?’

‘우리가 죽인 놈들까지 전부 가지고 왔어.’

‘연구소 사람들 오랜만에 바쁘겠네요.’

나는 꾹 쥐고 있는 주먹에 힘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노인과 내가 끙끙거리며 그린 대형지도 앞으로 걸어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자가 말한 봉쇄지역, 그리고 그 가운데 떡 하니 존재하는 우리의 마지막 낙원, 에덴. 나는 그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

더 이상 피와 눈물은 없어야 한다. 버림받은 생존자들이 집결할 곳은 바로 이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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