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사라진 일기 내용. 이 찢긴 종이들은 이곳에 등장한 방송국 여자 수첩에서 발견되었다.]
* * *
노인이 스위치를 올리자 낡은 백열등이 거친 소리를 내며 켜진다. 나는 한순간 밝아지는 빛 앞에 살며시 눈가를 찡그리며 내가 서 있는 장소를 천천히 둘러봤다. 이곳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외곽에 위치한 낡은 건물. 원래는 거주 지역으로 쓰려고 했다가 장벽의 축소로 인해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되었다. 물론 장벽 밖은 아니었기에 간혹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노인에게 말했다.
‘풀어 주세요.’
건물 한가운데는 작은 의자와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눈이 천으로 가려지고, 손은 수갑으로 묶인 여자가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강 형사에게 잠시 빌려온 수갑, 나는 노인에게 그것을 풀어달라고 말했고, 노인은 정말 그래도 되냐는 얼굴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수갑이 철컥하는 소리를 내며 풀리고, 먼지가 쌓인 책상 위로는 수갑과 함께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는 낡은 천이 올려진다. 이제 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치지직-.
낡은 백열등이 깜빡이며 점멸하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여자가 창백해진 얼굴을 들어 올리며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녀의 표정과 눈동자에는 내가 자신을 헤칠 거라는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짙은 죄책감과 허망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녀를 구금하고 있는 동안 그 어떠한 학대와 고문도 없었다. 그저 식사시간이 되면 제때 밥을 주고, 난방을 위한 잠자리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두 명에게서 빼앗은 물품을 통해 수집한 정보들이 그녀가 가해자가 아닌 운 없이 조류 속에 휘말린 부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도 인도적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별다른 반항이나 거짓말은 하지 않고 조용히 눈치만을 살핀다.
‘네…….’
그녀는 한동안 우물쭈물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지, 대답만큼은 확실하게 하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리고 나는 들려온 목소리를 통해 그녀가 우리에게 앞으로도 대답해 줄 것이라는 무언의 긍정을 받아들였다.
노인은 반나절 앞서 나의 지시를 받고 그녀와 수차례 접촉을 했었다. 물론 단독으로 하는 심문이 아닌 그녀에게 이곳 상황을 알려주고,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한 기회였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곳에 이토록 거대한 쉘터가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란 눈치였다. 군인도, 정부도 아닌 오직 생존자들이 만든 장벽. 그 장벽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존자가 피를 흘렸는지 그녀는 알아야 했다.
‘죄송해요……. 저,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녀는 자신이 가해자가 아님에도 우리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보이던 죄책감과 허망함의 원인은 이것이었을까? 우리가 이토록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안 밖에 있는 자신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진짜일지, 아니면 위선일지 모르는 그 목소리를 온전히 들으며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 말해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눈이 가려진 방관자와 협력자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의 간극이다. 이 여자와 카메라맨이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밝혀진 것이 없는 진짜 진실을 찾기 위한 언론인의 미련함이었다. 비록 뜻하지 않은 경로를 걸었지만, 그녀는 결국 진실을 마주했고, 우리는 저 멀리 보이지 않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심문, 아니. 단어를 지운다. 나는 그녀에게 미래를 위해 협력을 요청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을 마주한 기분이다. 나는 숨을 훅 내뱉으며 천천히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내가 책상 앞으로 다가가는 걸 보고 있던 노인은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있나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고, 곧 이쪽으로 다가오며 조용히 턱을 매만진다. 눈에는 긴장이 어리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거대한 진실, 마주하는 비밀.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꾹 붙잡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 지역이 봉쇄된 겁니까?’
그녀는 결국 눈물 한 방울을 뚝 흘리며 대답했다.
‘네…….’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진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앞에 있던 책상이 격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책상 위에 쌓인 먼지는 허망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듯 허공을 향해 흩날렸고, 책상을 내려친 노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했다. 절대 아닐 거라고 부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물품에서 수집한 정보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그녀의 대답은 결국 그 부정들은 산산조각 깨트려 버린다.
‘미친 소리야……. 서울 인구가 몇 명인데!!’
노인은 역정을 내며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고, 여자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하지만 나는 노인을 제지하기보단 그 말에 작은 동의를 보냈다. 그래, 서울 인구가 몇 명인데, 그 사람들을 다 봉쇄한단 말인가?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이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다. 정부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면, 서울 전체 인구와 산업시설을 쉽사리 버린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문을 해결해 준 것은 목소리를 떨며 황급히 내뱉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서, 서울 전체가 아니에요! 몇 개 구를 포함한 경기도 일부 지역만 봉쇄상태에요.’
서울 몇 개 구와 경기도 일부 지역. 나는 황급히 지역지도를 꺼내 들며 먼지가 휘날리는 책상 한가운데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지역을 표시해보라는 듯 펜을 쥐여 줬다. 펜을 받아 든 그녀는 처음에는 당황하며 망설이더니, 곧 내 굳은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떨리는 손과 펜촉. 움직이는 여자의 손은 지도 위를 천천히 수놓는다.
선이 그어질수록 내 심장과 손은 떨려왔고, 눈조차 감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회색 도시, 내가 열심히 가로질렀던 그 도시는 그녀가 그려놓는 선 안에 갇혀 처절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펜을 놓을 때쯤, 시커먼 구정물 같은 침이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갔다.
꿀꺽.
노인과 나는 동시에 침을 삼키며 썩어가는 숨을 내뱉었다. 수척해진 노인이 의자에 털썩 앉으며 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 중앙이야…….’
한강 위쪽 일부 지역과, 그 아래 서, 동을 제외한 구들을 포함한 넓은 반경. 그 반경은 서울과 인접한 일부 경기도 지역도 포함하고 있었고, 우리가 활동했던 에덴과 동들은 그 지역들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친 조류의 한복판. 태풍이 불어오는 바다 한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그토록 잘못했기에 신이라는 작자는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나는 새장 안에 갇힌 우리 신세처럼 조용히 의자 위에 앉으며 허망한 숨을 내뱉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니, 차마 말이라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마주한 진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어찌 말해야 될지도 모를 만큼 대책이 없었으니까. 노인은 수척해진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숙인 여자에게 물었다.
‘정부는?’
놈들과 변종들은 총을 가진 우리도 상대가 가능하다. 물론 그 숫자가 많기에 이런 장벽을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기계화로 무장된 정규사단이 놈들을 상대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반도 전체지역이 아닌,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난 재난. 완전한 멸망이 아닌 이상 정부는 충분히 군대를 파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조 활동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군대조차 본 적이 없는 우리는 당연히 세상이 망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여자는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아까보다 더 또박또박해진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처음은 정부도 대규모 피난 작전이 있었다고 공식발표를 했었어요. 그리고 구조당한 생존자도 엄청 많았고요……. 근데 이상하게 사망자 숫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산 사람들은 모두 구출했다는 보도를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피난민들이 많아졌어요.’
그 순간 머리를 파바박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그래……, 그래. 분명 이혜인과 이진수를 처음 만나고 공사장 컨테이너에 들어간 그 날 이혜인이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는 군인들이 만든 임시 대피소에서 한동안 머물렀었고, 그곳에 있는 군인들이 분명 이런 말을 했었다고. 모든 게 끝나간다. 그러니까 안심해라. 그리고 뒤이어 또 다른 기억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게 했다.
내가 쉼터에 머물며 처음으로 총을 구했던 그 날. 산 아래로는 육공 트럭을 탄 군인들이 놈들과 교전을 하고 있었고, 어딘가로 급히 떠나가는 형세를 취하고 있었다. 꼭 어딘가로 나가야 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하던 임무를 실패한 사람처럼 말이다. 여자는 쩍쩍 말라가는 입을 연신 다시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전산 시스템은 일부 마비되고, 휴교를 시작으로 예비군들도 전부 긴급 소집됐어요. 그러다 갑자기 계엄령이 떨어지면서 언론 통제가 시작되고……, 이상하게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어딘가로 사라졌죠.’
그녀의 말과 그간의 기억들이 나에게 진실과 근접한 단서를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서는 모든 현상들이 들어맞는 톱니바퀴처럼 서로에게 길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 입에서는 한탄 같은 숨이 훅 빠져나왔고, 난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정부는……, 정부는 구조 작전에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가 더 지나서야 이 현상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중국을 시작으로 러시아, 그리고 미국까지 계엄령을 발표하자 다른 쪽 상황이 더 나쁘다는 것도 알았고요. UN도 마비된 마당에 대한민국 정도면 성공적으로 방어를 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다른 곳에 있었어요.’
노인이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듯 짧은 단어를 읊조렸다.
‘북한.’
여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수척한 얼굴을 연신 끄덕였다.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은 군대에 가고 그곳에서 2년이라는 전투훈련을 받는다. 비록 본인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자 시민 대부분에게 총과 군복을 입혀 주면 군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사실이 아니었다. 아마 초반에 이 지역을 단단히 틀어막고 놈들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이유도 육군 강국이라는 이점과 시스템 덕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와 휴전 중인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어요. 퍼져 있던 사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경계선에서 관측되던 북한 군인들도 하나둘 사라졌죠. 전문가들은 북한이 다른 나라랑 마찬가지로 이런 괴현상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국 인공위성으로 관측된 모습은…….’
그녀는 끝말을 흐리며 말라가는 목을 침으로 적셨다. 나는 넋 놓고 그녀의 말을 듣다가 흐려지는 끝말을 대신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각보다 수습이 빨랐겠지.’
북한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계엄령? 구출 작전? 웃기지 마라. 체제조차 정상이 아닌 그곳에서 상식이라는 게 통할 리가 없었다. 피해자가 나오든 말든 그곳에 폭격을 때려 부어도 되고 군인들을 억지로 쑤셔 넣어 놈들을 짓밟아도 된다. 전염성이 없으니 어떤 희생과 피해자가 나와도 상관없었다. 불만이 있더라도 그것을 내뱉는 미친놈들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정부는 불안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이 놈들에게 점령당한 지금, 일상이라는 체제가 마비되고 영향력을 행사할 국제사회는 놈들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휴전 중인 경계선에는 자신들보다 수습이 빠른 북한이 존재했고, 수많은 방사포가 언제 자신들을 겨눌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반도가 당장 개판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폭풍전야. 정부는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폭풍을 걱정해 혼란을 숨기고 은폐하기 시작했다.
이 사태는 제삼의 요소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는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 유지되고 있던 허술한 댐에 작은 구멍을 남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행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한가운데에 남겨져 이유도 모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는 의자에 힘없이 앉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심문을 마친 나는 그녀를 구금이 아닌 따로 마련한 숙소로 데려다주었고, 노인과 함께 바람이 차게 불어오는 거리를 걸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일행들 전부가 한곳에 모여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사이를 조용히 가로질러 한쪽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채연이를 찾았고, 곧 그 옆에 누워 아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옆에 누운 걸 잠결에 느꼈는지 채연이는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히히 웃더니 곧 내 허리에 손을 넣어 꼭 끌어안는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보며 웃을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눈가, 그리고 경련이 일어나는 듯 부들거리는 얼굴. 나는 아이를 마주 안아주며 천천히 긴 한숨을 내뱉었다.
해가 뜨면 그녀와 다시 한 번 만나 대책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때는 내 일행들과 에덴의 주민들에게도 모든 진실을 말해 줄 생각이다. 머리가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불어오는 폭풍을 두려워하며 힘없이 눈을 감았다.
채연이와 고래가 헤엄치는 별 바다를 오늘은 보지 못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