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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62화 (162/313)

[162]

구조팀 사무실도 실종된 내가 돌아왔다는 언질을 받았었다. 물론 병원이 시끌벅적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인이 병문안을 막기는 했지만, 나도, 그리고 일행도 서로가 빨리 보고 싶은 건 매한가지였다. 나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고, 곧 익숙한 길을 지나 사무실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어? 하지만 사무실 앞에서 만난 것은 반갑고 또 보고 싶은 우리 일행들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직원들과 날카로운 눈을 빛내고 있는 경비들이었다. 나는 상상하지도 못한 광경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고, 곧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무실 근처에는 중무장한 경비 인원들이 드나들고 있었고, 내부에는 그보다 많은 직원들이 열심히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 앞까지 접근하며 열심히 주변을 둘러봤지만, 일행들은커녕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혼자 다른 지역에 동떨어진 기분,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찢어진 입술을 혀로 핥는다.

다 어디 간 걸까? 나를 애타게 찾을 거라 생각한 일행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만이 나를 무관심하게 지나치며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래, 이곳은 뭐랄까……. 단체장과 간부들이 근무하던 에덴의 중앙건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무실은 왜 이렇게 변한 거고? 분명 우리만 쓰던 사무실이었는데, 영문을 모를 만큼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문 앞을 기웃거리던 나는 안쪽으로 들어오는 직원에게 밀려 얼떨결에 내부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내가 이곳에 서 있든 말든 다 각자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아……. 무언가 난감함과 함께 어색함을 느낀다. 그래도 나는 일단 물어나 보자는 생각에 가장 앞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을 불렀다.

‘저기, 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그러자 열심히 서류를 작성하던 여직원은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봤고, 곧 짜증이 섞인 한숨을 훅 내뱉었다.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말을 걸어서 그런 걸까? 대뜸 불쾌함부터 나타내는 직원의 눈에는 귀찮음과 함께 진한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 앳돼 보이는 여자 직원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건성건성 대답했다.

‘아저씨, 여기는 민원 받는 곳 아니에요~.’

여직원은 다크서클도 짙고 피부도 푸석푸석했다. 아마 습격을 받은 에덴을 수습하기 위해 모든 직원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나는 지금만큼은 여직원을 이해한다.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 그리고 막중한 업무의 연장은 사람을 얼마나 짜증 나고 힘들게 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얼떨결에 사무실을 잃어버린 내 입장도 몹시 난처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언쟁을 피하는 나지만, 지금만큼은 입을 열어 그녀에게 재차 물어봤다.

‘아,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예전에 이곳에서 일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서요. 혹시 구조팀 사무실은 어디로 옮겼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또박또박 내 상황을 설명했고, 굳이 팀 이름까지 밝혀가며 여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무시하지는 않겠지? 난 그녀가 작은 단서라도 알려주길 빌며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여직원은 의외로 표정을 풀었고 곧 의문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얼굴은 뭐라고 해야 할까……. 네가? 정말? 이라고 말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여직원은 잔뜩 늘어져 있던 자세를 바로 하고 나한테 이름을 물어봤다. 아까와는 다르게 한순간 바뀐 태도, 그래도 구조대라는 이름을 듣고 저렇게 반응해 주니 참 기쁘기 그지없었다. 나는 서류를 바쁘게 찾기 시작하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곧 일행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조금 어색한 내 이름을 오랜만에 불러보았다.

‘곽동윤이요.’

그 순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소란스럽던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리고 책상에 머리를 박고 일하던 모든 직원과 사방을 경계하던 경비들이 움직임을 멈추며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한 시선이 느껴지자 눈치가 보인다. 나는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고, 곧 뒷머리를 긁으며 변명의 말이라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서류와 나를 정신없이 비교하던 여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실, 실례했씁니다!!!!!!!!!’

아씨, 깜짝이야. 나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여자에게 놀라 기겁했고, 여직원이 혀까지 씹으며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 나는 일단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한 손을 들어 올렸지만, 여직원이 하는 딸꾹질과 사과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딸꾹, 딸꾹.

정적으로 휩싸였던 사무실은 오직 딸꾹질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여직원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직원들과 경비들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하나둘 이곳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하나같이 눈동자에 호기심과 함께 오묘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갑자기 관심이 집중되니 어색하다.

나는 곤란함을 느끼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뒷걸음질을 치다 인파의 벽에 막혔고, 곧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내가 나갈 수 있는 길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저!! 혹시 저 기억나십니까! xx동에서 딸아이랑 같이 구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저 한쪽에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성이 손을 번쩍 들며 나에게 외쳤다. 그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 남성이었는데, 이상하게 눈에 익고 한 번쯤 만나본 인물 같은 친숙함이 있었다. 내가 구해 줬던 사람인 걸까?

하도 많은 난민과 생존자들을 구해 왔기에 그들의 얼굴을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자의 애절한 외침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나에게 구조를 받았거나, 혹은 구조받은 생존자들의 가족들인지 하나같이 감사 인사를 건네며 내 손과 몸을 잡아 왔다. 정신이 없다.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인사와 악수 앞에 하나하나 응대해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준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들어보는 남성의 목소리였다.

‘동윤 씨? 혹시 동윤 씨, 맞습니까?’

목소리는 사무실 문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를 부른 남성은 방금 막 들어왔는지 많은 서류 더미를 들고 있었고,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한순간 웅성거림을 멈추며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얼떨결에 돌린 시선에는 항상 단체장 옆에 붙어서 나와 그를 열심히 도와주었던 은테 안경이 서 있었다.

나는 예상치도 못한 인물의 등장 앞에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은테 안경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직원들을 수습했고, 내가 인파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 *

내가 있는 이곳은 사무실 안쪽에 있는 작은 방 하나. 원래는 비품들을 모아두는 장소였는데, 지금은 은테 안경이 혼자 업무를 보는 팀장실로 변해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은테 안경은 가장 먼저 손안 가득한 서류를 내려놓았고, 따뜻한 믹스커피를 종이 잔에 타와 나에게 내밀어주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텁텁한 입안으로 달콤한 믹스커피를 흘려보낸다. 아, 달다.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에 속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나는 종이 잔을 내려놓으며 은테 안경에게 말했다. 그러자 은테 안경은 씁쓸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얼굴로 웃었고 곧 내 앞에 앉으며 힘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 한숨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살아서 다행이라는 안도, 그리고 나만 살아서 뭐하겠냐는 자책.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던 단체장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 장면은 수척해진 은테 안경의 얼굴과 오마주를 이룬다. 은테 안경은 대답한다.

‘운이 좋았습니다. 저만 다른 건물에서 있었거든요.’

그날 중앙본부는 부랑자들의 습격을 받아 완파를 당했다. 많은 희생자가 있었으며, 단체장을 포함한 간부들이 개처럼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지금은 죽어 버린 최태식이 원하던 결말.

혼돈과 절망이 에덴을 덮치고 말았었다. 나는 종이 잔에 남아있는 커피를 모두 마셔 버리고, 빈 잔을 천천히 구기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은테 안경은 어두운 얼굴을 뒤로하고 애써 웃어 보이며 말한다.

‘동윤 씨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두 분 이서 추격하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동윤 씨랑 어르신마저 잃게 될까 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같이 일하면서 알게 모르게 정이 쌓였다. 비즈니스로 관계로 시작해 항상 얼굴을 맞대고 우리의 편의를 봐 주던 은테 안경이 딱딱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가끔 그가 보여 주는 친근한 행동이 절대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아팠다. 위로해 줄 말이 없었다. 나는 말 없이 그를 바라봤고, 은테 안경은 공허하게 웃으며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나를 향해 묻는다.

‘단체장님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온화하고 성숙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줬고, 종말 속에 유난히 빛나던 성품을 가지고 있는 에덴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사람도 차가운 바닥과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주마등의 단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비참했다. 너무나 비참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도 에덴의 수장이라는 직함과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죽었다. 누구나 가능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그것. 그는 인간으로서 죽은 것이다.

‘짐이 되기 싫어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에덴을 생각하셨어요.’

한 치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진실한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은테 안경은 조용히 안경을 벗었고, 곧 성호를 그으며 그를 위한 작은 기도를 했다. 수척해진 얼굴 사이로 봄비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떨어진다.

그 눈물은 추잡하지도, 그리고 엄청난 슬픔을 담지도 않은 담백한 눈물이었다. 보슬보슬, 아직 따뜻한 봄이 오지 않았는데도 내 눈앞에는 꽃과 함께 떨어지는 봄비가 보였다. 나는 눈을 감으며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슬픔을 삼키는 시간이 흘러,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던 은테 안경이 미련이 남은 숨을 모두 뱉어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와 악수했고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바쁘신 분인데 괜히 붙잡아 둔 것 같네요. 일행분들이 있으신 새 사무소 주소는 제가 서류랑 같이 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실 텐데, 좋은 시간 되시면 좋겠네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은테 안경이 살아남은 덕에 에덴은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집이고 둥지 같은 에덴. 멍청하고 나쁜 사람이 아닌 은테 안경이 이끌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악수한 손을 힘차게 흔들며, 그에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여과 없이 내뱉었다.

‘에덴을 잘 부탁합니다.’

은테 안경은 단체장의 유지를 그대로 받아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은테 안경은 나와 악수를 마치며 천천히 손을 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런 내 부탁에 들려오는 대답은 감사 인사가 아닌, 생각지도 못했던 부정이었다.

‘아니요.’

어? 나는 순간 은테 안경과 놓은 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넋을 놓았다. 에덴을 이끌어야 하는 단체장과 간부들이 죽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을 대신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나는 자연스럽게 단체장의 자리를 은테 안경이 대신할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은테 안경은 부정을 표했고, 나는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은테 안경은 다시 한 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단체장님이 동윤 씨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기억하고 계시죠?’

마지막으로 나에게 했던 말. 마지막으로……, 그가 했던 말.

[에덴으로 가세요. 사람들을 잘 부탁합니다. 동윤 씨한테……. 매번 신세만 지네요.]

그날 들었던 단체장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며, 내 먹먹한 가슴에 물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은테 안경을 바라보자, 그는 눈가가 축축한 상태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단체장이 마지막 유언을 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은테 안경은 한 치의 의심조차 없다는 듯 단체장이 했을 유언을 짐작하며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리고 아까 겪었던 수많은 감사 인사가 내 기억을 노크하고 지나갔다. 순간 밖을 어둡게 만들던 흐린 구름을 물러가고, 밝은 점심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해 안쪽으로 투영되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고, 피부가 따뜻해진다. 은테 안경은 꼭 잡은 내 손을 조용히 흔들며 힘찬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단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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