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좀 어른스러워진 것 같더니, 용팔이는 역시나 용팔이였다. 그날 노인과 함께 떠난 후로 행방이 묘연했던 나를 갑자기 마주한 용팔이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한참을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내가 떨리는 입을 열어 말을 걸어주자, 그제야 자리에 펄쩍 일어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소란스러웠던 출입 사무소는 용팔이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럽게 변했고, 나는 엉엉 우는 용팔이를 끌어안고 한동안 쓴웃음을 머금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련이랑 영감님은……?’
너무나 괴로운 기억이었기에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날 한강 물에 떠밀려 쓸려가던 그 둘을 기억할 때마다 온몸이 아파져 오고, 심장에 구멍이 난 듯 쓰라려 왔다. 영원히 트라우마로 남을 것만 같던 그 장면, 나는 살기 위해 한동안 과거를 망각했고, 그들이 꼭 살아 있을 거란 자기 위안만을 지속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용팔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기쁜 낭보를 내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힘없이 의자에 앉아 버렸다.
‘수련 누나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영감님은 치료받자마자 형님 찾으러 간다고 수색 중이고……. 아! 형님,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요! 빨리 무전치고 올게요! 잠시만요!’
한참을 내 옆에서 울고 불며 시끄럽게 떠들던 용팔이는 무사히 탈출시킨 그 둘의 이야기를 끝으로 어딘가 바쁘게 뛰어갔다. 아마 아직도 밖을 수색하고 있을 노인과 일행들에게 무전을 치려고 간 모양이다.
용팔이가 사라지자마자 출입 사무소는 한순간 정적으로 휩싸였고, 나는 그 가운데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고, 그 둘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온몸 근육이 풀려 버렸다.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에덴으로 들어가려던 피난민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나를 엿보았고, 이곳을 감시하던 경비들은 연신 내 이름을 속삭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경비들과 직원들의 눈에는 반가움과 함께, 끈질기게 살아남은 생존자를 향한 존경과 경외가 담겨 있었다.
실감이 난다. 내가 그 둘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유가 지금 와서야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내 집, 내 둥지. 완전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시체처럼 몸을 늘어트렸다.
‘아, 아저씨……. 저희 이제 안전한 거죠?’
주변에 느껴지는 많은 시선 때문에 눈치가 보이는 걸까? 아까부터 내 근처를 맴돌던 여자가 참 거리낌 없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건다. 저 말투를 봐라, 하루만 더 편하게 대해 주면 나랑 반말까지 주고받을 친화력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나에게 있어 경계를 풀면 안 되는 대상이었고, 숨기고 있는 비밀을 전부 뜯어먹어야 하는 외부인이기도 했다. 이따가 노인이 오면 본격적으로 여자를 심문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실한 정보를 얻어야 했다.
‘…….’
하지만 나는 노인이 오기 전까지는 되도록 온화한 모습을 보여 주며 그녀의 경계를 풀어 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쪽에 잘 협조해 주는 모습과 모든 것을 다 말해 주겠다는 의도를 풀풀 풍기는 여자에게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다.
싫은 일을 나서서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여자가 대화가 통화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이상하다. 그녀에게 대답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아까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뭐지? 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꼭 메두사를 마주하기라도 한 듯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귀에선 이명이 울리며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저기……. 아저씨?’
정신은 멀쩡하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멈춰버린 비디오처럼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콩닥콩닥.
작게 울리는 심장 소리와 규칙적인 들숨 날숨. 나는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살피려 했지만, 내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뒤에서 말을 걸던 여자가 내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고, 나는 그 작은 힘에 밀려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고 만다.
꺅!
내 어깨를 잡았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사방에서 수군거리던 목소리는 한순간 멎어 버렸다.
털썩.
난 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스스로가 방전되었다는 걸 자각했다. 그래, 동윤아. 여기까지 용케 버텼구나. 한계,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한계까지 몰아넣던 몸이 안전한 곳에 도달하자 결국 쓰러지고 만 것이다.
입에서는 다 식은 입김이 훅 터져 나왔고, 덜덜 떨리던 손끝은 그제야 안정을 찾으며 움직임을 멈춘다. 눈을 살며시 뜨자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경비들과 직원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깜빡, 깜빡.
나는 그저 인형처럼 눈을 깜빡이며 그들에게 이끌렸고, 곧 한 경비에게 업혀 재빨리 사무소 밖으로 옮겨졌다.
나는 급변하는 시야를 보며 마지막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쥐어짜 겨우 입 밖으로 작은 말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아이고…….’
내가 할 말은 그게 다였다.
* * *
가끔 정신없이 죽음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집에 도착해 보면 삶의 이유에 대해서 한참을 고민하고는 한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꽤 철학적인 질문을 나 자신에게 계속해 던진다. 하지만 여타 많은 인류가 그래왔듯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이렇게 결론을 내리며 잠을 청하고는 한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낄 수는 있다고. 그리고 미련을 가지면 가질수록 물 안에서 잡은 모래알처럼 전부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고. 나는 깊은 무의식 속에 빠져 한참을 헤엄치고, 그 끝에서 빛나는 별을 만났다.
눈을 뜨자 병원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무기력한 몸을 애써 움직이며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그곳에는 노인이 작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반 백발이었던 머리는 완전한 백발로 변해 있었고, 그날 봤던 주름은 더 거칠고 깊어져 있었다. 참 왜소한 체구를 가진 노인이다. 하지만 저 등은 왜소한 체격과는 다르게 항상 내 앞과 내 뒤를 지켜 주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매어오는 목구멍을 적셨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어났냐?’
나는 대답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노인이 대답한다.
‘너랑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그 대답을 곱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장을 넋 놓고 바라보며 한숨을 후 내뱉는다. 걸어오는 내내 참았던 고통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몸에는 옅은 근육통과 함께 노곤함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키며 벽에 등을 기댔고, 나를 꼭 덮고 있는 병원 이불을 치우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익숙한 병실이다. 내가 다치고 아플 때면 언제나 이곳에 와서 치료를 받고는 했다. 나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그 몸으로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셨어요?’
노인의 옆에는 나무로 만든 지팡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지팡이는 며칠 동안 얼마나 많이 짚고 다녔는지, 손잡이에는 거친 상처들이 가득했고, 지팡이 끝은 이미 달아 뭉툭하게 변해 있었다. 그날 노인은 다리에 볼트를 맞았었다. 원래라면 나처럼 병실에 누워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노인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나를 찾아다녔고, 내가 도착하는 그날까지도 밖에서 끝없는 수색을 이어갔다. 나에게 매번 미련하다는 잔소리를 달고 사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나만큼이나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누워 있을 수가 없었어. 나는 아직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맨날 네가 꿈에 이렇게 말하지 뭐냐? 그냥 가라고, 나를 버려두고 가라고. 근데……. 그럴 수가 있어야지.’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오늘 웃으면서 하루를 맞이해도 내일 당장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게 이 도시였다. 무섭고, 두렵고, 공포는 항상 엄습해 온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으며, 이제는 슬픔마저 말라 마음이 쩍 갈라진 땅처럼 변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감정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어 버리는 걸까? 동료가 죽어도 너무나 익숙한 현실이었기에, 그것을 수긍하고 슬픔을 뒤로해야 할까? 아니, 아마 아닐 것이다.
거친 조류와 같은 현실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해답은 없지만, 답이 있는 그것. 잡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그것. 수식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그것은 나는 물론이고, 고된 여정과 죽음을 넘어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촛불이었다. 나는 작은 눈물을 뚝 뚝 흘리고 있는 노인의 속에서 그 작은 촛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라.’
노인은 목이 메는 목소리로 나에게 당부했다. 한강 물에 떠밀려 가기 전 보여 주었던 그 눈빛과 같이 가자고 말했던 그 목소리. 그것들은 나에게 각인이라도 된 듯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노인의 짧은 말을 통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라. 그것은 다시는 스스로를 버리지 말라는 노인의 애절한 부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 * *
아침이 찾아왔고, 나는 병실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론 더 쉬어야 한다는 간호사의 당부가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그 충고를 집어던지고 탈출을 감행하려고 했다. 어젯밤 노인과 식사를 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가 실종된 뒤에 상황과 그리고 아직도 병실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는 강수련의 상태. 그 이야기를 전부 전해 들은 나는 병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강수련과 채연이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그런 나를 뜯어말린 사람은 노인도, 일행도 아닌, 병실에 쳐들어온 김 철이었다. 강수련이 현재 있는 병실은 병원에 몇 없는 중환자실이었다.
그만큼 위중한 상처였고, 아마 김 철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태였다. 하지만 모든 노력을 쏟아부은 의료진 덕분에 강수련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으며, 지금은 완전한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김 철은 말했다.
이제는 의식이 완전히 깨어날 때만을 기다리면 되는 상황. 하지만 김 철은 눈물을 펑펑 터트리며 감정을 심하게 소모할 그녀를 생각해 조금의 여유를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녀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 몸은 괜찮은지, 어디 상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나는 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전문가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처리하기를 수 십분, 눈치를 보며 탈출하려고 했던 나는 결국 길 철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결국, 붕대를 다시 한 번 감으며 재차 치료를 받는 데 옆에서 김 철이 잔소리를 하고, 앞에서 노인이 잔소리를 한다. 나는 신경쇠약에 걸릴 것만 같은 공간에서 한참을 고통받다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누구냐?’
깨끗한 붕대로 갈아입은 나는 사정사정 끝에 짧은 자유 시간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노인과 함께 한가한 에덴의 거리를 걸으며, 어제 내가 데려온 여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쓰러진 직후, 그 여자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동행인 줄 알았던 경비들은 그녀를 병원으로 인도했고, 지금은 얌전히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히 얌전히 잡혀 준 여자를 생각하며 나는 한숨을 훅 내쉬었다. 그리고 노인에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고 있던 노인은 그대로 지팡이를 꾹 잡으며 걸음을 멈췄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노인도 일이 이상한 쪽으로 뒤틀렸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듣는 귀가 없는지를 살폈고, 곧 그녀를 심문해 모든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노인은 장소와 시간을 마련해 보겠다는 말을 하며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해가 진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노인과 헤어진 나는 당장 채연이를 찾아갈까 했지만, 학교 수업 시간이 아직 50분 정도가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매한 시간이다. 물론 당장에라도 학교에 달려가서 조퇴를 울부짖고 싶었지만, 채연이를 향한 나쁜 소문이 퍼지기라도 할까 봐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한참을 고민했고, 결국 걸음을 옮겨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가기 전에 채연이가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잔뜩 사가고, 사무실로 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다른 일행들도 만나볼 생각이다.
따뜻한 햇볕,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를 만끽하며 종종걸음으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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