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저 앞에서 비틀비틀 도망가는 여성은 분명 활동하기 좋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깨끗한 옷과 준수한 영양 상태.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생존자에게서 볼 수 없는 묘한 문명의 향기는 그녀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그것. 우리랑은 다른 곳에서, 아니 완전히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온 그녀는 이 도시를 찾아온 이방인이자 이레귤러와 같았다. 난 이를 악물고 그 뒤를 쫓아갔다.
여자는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고, 입으로는 연신 비명을 지르며 도시를 가로지른다. 나는 저 여성을 잡아야 한다는 목적과 함께, 무슨 사달이 나기 전에 입을 닥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뜀박질이 미친 듯이 빨라진다.
이미 온몸에 근육통은 예열된 엔진으로 인해 고통을 잊게 했다. 아무리 뛰어 봐도 이성을 잃은 사람일 뿐, 난 금세 여자의 뒤를 따라잡았고 몸을 날려 다리를 걸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자를 낚아채 손으로 입을 막는다.
대화 시도? 웃기지 마라. 나는 이성을 잃은 여자에게 상냥한 행동을 취할 생각이 없었다. 수상하다, 미치도록 수상하다. 기나긴 안갯길 끝에서 불쾌한 본질과 근원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나는 그녀를 절대 놓을 수 없다는 기세로 입과 함께 온몸을 구속했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장작패기 칼을 목 끝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읍읍 거리던 여자는 한순간 몸을 떨었고, 부들부들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본다.
여자의 눈동자는 완전한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사이에 보이는 붉게 충혈된 눈. 아마 여자를 노려보는 내 눈동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 나는 장작패기 칼을 조용히 움직여 움찔거리는 여자의 울대로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면 경고로 끝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속삭인다.
‘조용.’
꼭 괴물이 말하는 것만 같은 거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조용히 공간을 가로질러 여자에게 전달되었고, 버둥거림이 서서히 멈춘다. 창백해진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여자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내가 괴물이 아닌 사람이란 안심과 제발 살려달라는 애절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매몰차게 외면하며 또다시 속삭였다.
‘입 꽉 다물고 일어나.’
소음은 곧 죽음이다. 난 눈을 뜨게 된 아이에게 처음으로 빛을 보여 주는 것처럼 회색 도시의 법칙을 몸소 알려 주었다. 장작패기 칼을 들자 검은색 피와 뇌수 사이로 박살 난 뼛조각이 주르륵 떨어진다. 그리고 그 광경을 고스란히 본 여자는 몸을 떨면서도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굼벵이 같은 모습에 나는 결국 그녀를 잡아끌어 일으켰다.
여자가 새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입과 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만큼 지금 꼭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목을 잡았고, 그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성과 똑같은 사원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손이 떨린다. 이 여자도 일주일 전 갱신한 사원증을 가지고 있었다.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아프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무형의 무언가와 마주친 아득함이 들었다.
나는 손에 힘을 줘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을 뜯어낸다.
분명 제대로 코팅된 빳빳한 사원증이다. 컴퓨터로 깔끔하게 프린트한 글자와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겉 그림들은 무언가 세련돼 보이기까지 했고, 사원증 한쪽에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사진은 오랜만에 문명의 일상을 엿보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사진은 마치 모든 게 단순한 악몽이었다는 듯, 그리고 너의 발악은 한줄기 작은 바람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웃음이 느껴진다. 사진 속 여자는 그냥 웃고 있지만, 난 그 웃음이 내 발악을 조롱하는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참 동안 사진 속 여자와 눈을 마주치며 숨과 함께 모든 걸 뿜어내었다. 그리고 하늘 위로 올라간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흩어질 때, 나는 끝내 사원증을 바닥에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명이 울린다. 머리가 아프고 나는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잠시 넋을 놓다가 마지막 단말마처럼 숨을 후욱 내뱉었다.
그리고 내 행동을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마치 발악하는 사람처럼 여자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품과 정보를 빼앗았다. 그 거친 행동에 여자는 연신 비명과 눈물을 삼켰지만, 나는 그녀를 동정할 찰나의 여유조차 없었다.
모든 물품들이 바닥에 늘어진다. 지갑, 신분증, 지역지도, 그리고 무언가가 가득 적혀 있는 수첩과 마지막으로 작은 액정이 나가 있는……. 위성 전화기까지.
아니다, 절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닐 거라고 생각한 현실은 내 눈앞에 들이닥쳤고, 머리를 한순간 패닉 상태로 만든다.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필기가 되어 있는 지역지도와 수첩을 열어 그녀가 이곳까지 온 목표와 이유를 대략적이나 읽어낼 수 있었다. 이질감의 원인. 여자에게 그토록 생소한 느낌이 났었던 이유, 모든 것이 설명되었지만, 진실은 파묻힌다. 나는 여자가 열심히 필기했을 글자의 마지막 단어를 읽으며 그대로 수첩을 던졌다.
비밀, 그리고 취재.
취재? 웃기지 마라, 이딴 세상에서 취재가 무슨 소용이냐? 하지만 이 사람들은 보란 듯이 취재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곳으로 몰래 들어왔다. 이들에게는 분명 목적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꼭 이곳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이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곧 내 입에서 떨림이 섞인 말이 새어 나온다.
‘누구야……? 너흰 도대체 누구야……?’
뒷목이 뻣뻣해지고, 장작패기 칼을 들고 있는 손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나는 여자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그대로 풀었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그녀가 뭐라고 말이라도 해 주기를 기다렸다.
다 거짓말이라고, 그냥 자신이 만들어서 가지고 있는 거라고. 내가 방금 짐작하고 있던 예측이 모두 거짓부렁이라고 말해 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심장 속에 사정없이 비수를 박아 넣었다.
‘사, 살아 있는 사람…….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고……. 분명……. 없다고 했는데…….’
모든 고통이 밀려온다. 그동안 꾹 참고, 또 참았던 고뇌와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냥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채연이가 잘 클 수 있고 내 일행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만 생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명감, 본능, 간절함. 모든 것을 담고 있던 목표는 나를 움직이는 근원과 같았었다. 하지만 그 견고한 탑이 방금 이 여자의 말로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꺽하며 숨을 내뱉으며, 쌓이고 쌓였던 슬픔을 내뱉었고, 곧 한이 쌓인 목소리로 여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누가 그래……!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고 누가 그러냐고!!!’
땡그랑.
컥-.
내가 들고 있던 장작패기 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칼을 놓은 내 손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여자의 목으로 향했다. 얇디얇은 목이 내 손에 잡히자 끊어질 것만 같은 마지막 숨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컥-. 컥컥.
여자는 질러지지 않는 비명을 삼키며 몸을 버둥거렸지만, 내 손은 그녀의 목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야가 좁아진다, 그리고 귀에는 짙은 이명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속에 느껴지는 검은 진창을 그대로 삼켰다.
아아-.
진창을 삼켰음에도 검은 찌꺼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내 몸을 잠식하는 절망처럼 정신과 육체가 서서히 썩어들어 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목을 잡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한다.
여자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마 곧 죽겠지, 이렇게 잡고만 있어도 이 여자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마지막 이성이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뭐해?
손을 놓자 너무나 가벼운 생명이 숨을 이어간다. 여자는 바닥에 쓰러져 자기 목을 잡았고, 곧 컥컥 소리를 내며 살기 위해 미친 듯이 호흡한다. 나는 그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며 그녀의 목을 잡고 있었던 내 손을 들어 올렸다.
떨린다, 지금 내 마음만큼이나 굳건한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채연이……. 채연이가 보고 싶다. 강수련, 영감님, 용팔아, 두식아. 내가 살고 있다고 말해 주던 일행들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
‘---아 ---!!’
그리고 내가 넋을 놓은 사이에도 도시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저 골목 너머에서 놈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내 목은 그쪽을 향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그래, 그렇게 고함을 내질렀는데 놈들이 반응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하다.
근방에 있던 놈들이 내가 지르는 고함을 듣고 따라왔는지 꽤 많은 숫자가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떨림과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근처에 떨어진 장작패기 칼을 잡아 들었다.
웃기다. 나는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이 도시는 그 찰나조차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이 섞인 소리를 내뱉는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나를 거친 조류 속에 집어 던진 현실 속에서 누군가에게 한번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왜……. 이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칼을 잡고 있는지.
그리고 놈들에게 달려가는 그때, 내가 물어봤던 질문을 내가 대답해 주었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구나.
* * *
‘저,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나는 억센 개 사료를 씹으며 울고 있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구린내와 사람의 음식에서는 나지 않는 역한 비린내, 가뜩이나 음식이 먹히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구역질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구역질마저 삼키며 체력과 칼로리를 비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 사료를 으적으적 씹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시침과 분침은 정확히 오후 5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몇 분만 더 지나면 해가 지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당일 에덴으로 복귀한다는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왜냐하면, 갑자기 찾아온 변수가 당장 내일은커녕 저 앞에 보이는 미래마저 뒤틀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저씨……. 살려 주세요, 네? 제가 다 말해드릴게요…….’
내가 끌고 와 복도 구석에 처박아 둔 여자는 눈물을 훌쩍이며 나에게 빌었다. 그녀는 전깃줄로 팔과 다리가 묶여 있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혼자 떠들기 시작하는 게, 이쪽 상황을 대충이나마 짐작하며, 스스로를 열심히 변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말을 무시했고, 지금은 참다 참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내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자 여자는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고 도망갈 곳이 없는 복도 끝을 향해 끝없이 기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도 끝에 닿자 더 이상 뒤로 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결국 내 발밑에 쭈그리고 앉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웅크렸고,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여자가 떨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건 동정심과 보호 본능이 아닌, 불확실성에서 오는 경계였다.
안개가 자욱하다. 그리고 저 멀리 안개 끝에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종착점이 보이고 있었다. 그 길의 끝이 과연 낭떠러지일지, 아니면 또 다른 길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아야 하는 사람처럼 무서운 현실을 직시했고, 이성을 되찾아온다.
알아야 한다, 더 알아내야 한다. 나는 이것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자각하며, 이 여자를 에덴으로 끌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놈들한테 물어뜯기기 싫으면 입 다물어.’
호의와 상냥함은 필요 없었다. 난 그녀에게 윽박지르며 소음을 내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자 여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시선을 피했고, 곧 구석에 처박히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놈들의 무서움은 이곳까지 오면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나는 여자가 내 경고를 잘 받아들이길 빌며 다시 자리로 와 앉았다.
바닥에는 남자의 시체에서 수거한 물품과 여자의 온몸을 뒤져 빼앗은 물품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정보를 수집했고, 그 정보들을 한곳에 모아 기다란 로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저기 떨고 있는 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여자를 꺼리고 있었고, 말조차 나누기 싫은 묘한 경계심을 느낀다.
말하기 싫다, 그리고 확실치 않은 내용을 받아들이기도 싫었다. 겁에 질리고, 목숨이 위험에 빠진 상태. 아무리 일반인이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심문은 에덴의 도착한 상태에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내 철칙은 그들에게 빼앗은 물품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포기하지 않게 했다.
현실이 아득하다. 그리고 멀고, 너무나 어렵게만 느껴진다. 나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만 같은 거대한 진실을 잠깐이나마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당한 변명을 찾았다.
그래, 에덴으로 가는 게 우선이다. 거기서 가장 든든한 노인에게 같이 물어보자. 내 일행들, 내 뒤에 항상 서 있어 줄 일행들과 같이하는 거다. 나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정신을 붙잡으며, 저 멀리 펼쳐질 에덴의 정문을 상상했다.
일행들이 기다린다.
나는 그녀에게서 빼앗은 수첩을 펼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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