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후우-.
흥분과 생존본능으로 달궈진 몸을 애써 진정시킨다.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숨이 빠져나가는 순간 긴장이 풀려 버렸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고통을 잊게 만들었던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고통이 몰려오며 이제는 익숙해진 인내를 씹고 잠시 몸을 추슬렀다. 끝났나? 그래, 끝났다. 난 탄창을 모두 소모한 소총을 놓았다. 바닥에는 탄피들이 굴러다녔고, 그 사이로는 놈이 흘린 검은색 피들이 파고들어 간다.
몸이 아프다. 재밖에 남지 않은 정신은 고통에 찌들어 계속해서 꺼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마무리하고 노인과 강수련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늘어져 가는 근육을 부여잡았다.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었다. 손을 뻗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탄피를 치우고,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눈앞에는 놈의 몸체가 보인다.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고, 나를 괴롭혔던 기괴한 울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후경직이라도 나타나는 걸까? 놈은 미세하게나마 몸을 움찔거렸고, 손과 발가락 끝이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리볼버를 머리에 맞고도 적의를 불태우던 모습, 인간이 생각하는 치명상을 가뿐하게 무시해 버리는 강한 생존력. 비록 지금은 죽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중 일을 생각한다면 확실하게 마무리를 하고 가야 했다. 나는 일단 소총을 다시 들고 개머리판으로 놈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규격 외 존재. 인간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던 놈의 뼈와 피부는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필사적으로 개머리판을 내려찍기는 했지만, 단단한 두개골은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큰일이다. 놈을 완전히 파괴할 수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총알은 다 떨어졌고, 놈의 머리를 부숴 버릴 만큼의 무기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나는 일단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대검을 가지고 왔다.
* * *
나는 놈의 몸체를 힘겹게 끌며 부두로 왔다. 부두 한가운데 흥건하게 고인 검은색 피들. 그리고 팔다리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놈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 같았다. 저 깊은 불꽃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인간이었던 악마. 나는 한동안 감상에 빠져 넋을 놓고 있다가 곧 좋은 생각이 떠올라 행동을 개시했다.
놈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고 싶었다. 다시는 나를 쫓지 못하게, 그리고 다시는 인간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리볼버를 맞고도 살아남았던 지독한 놈이다. 보통 방법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놈에게 어울리는 한 장면을 생각해 내었다. 모두 타 버려 회색만 남은 잿더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날아가는 재.
나는 놈을 불태울 생각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방심은 없었다. 나는 일단 가져온 대검으로 놈의 목을 나무 자르듯이 썰어 깊은 상처를 내었다. 하지만 피부와 근육이 어찌나 질기고 단단한지, 목뼈까지 도달하는데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단단한 목뼈는 건들 생각조차 못 했다. 마트에서 죽였던 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용케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바닥에 대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놈들을 위해 바닥에 고여 있는 녀석의 피를 옷과 얼굴 곳곳에 바르기 시작했다. 역한 구정물의 냄새. 온몸에 변종의 채취를 바르는 것이 마무리되자, 내 입에서는 한숨이 같은 불쾌함이 터져 나왔다.
놈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만큼의 손상을 입혀 두었다. 나는 안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목표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레스토랑 내부를 돌아다니며 놈의 몸체를 불태울 도구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복도를 걷는 내내 상념이 몰려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워 잠이 들고 싶다. 이 피곤함은 꼭 고된 철야를 끝내고 새벽을 틈타 대리운전을 뛰는 기분이었다.
야간수당? 하, 나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이 순간에도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가 웃겨 실소를 머금었다. 그만 생각하고…… 할 일을 마무리하자.
나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전투로 시끄럽던 복도는 피와 탄피만을 남기며 칠흑 속에 파묻혔고, 내가 걷고 있는 복도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잔해들을 가로지르며 휘발성이 있는 물건을 찾아 건물을 싸돌아다녔다.
방문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놈들이 물건과 식량들을 쌓아두는 창고도 뒤져보았다. 그렇게 돌아다니기를 10분, 나는 1층 정문 옆에 있는 방 한가운데에서 작은 발전기 여러 개와 함께 휘발유가 가득 담겨 있는 플라스틱 통들을 찾을 수 있었다. 꽤 많은 양이다. 나는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가 무거운 휘발유 통을 양손에 들며, 지나왔던 복도를 다시 걸어갔다.
변종 하나가 대기를 짓누르는 공포를 불러왔다면, 이곳을 쓸고 간 놈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격한 파도를 데려왔다. 문짝은 모두 떨어져 나가 있었으며, 도망친 놈들은 모두 죽어 버렸는지 복도 곳곳에 뼈와 내장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최태식, 이 개새끼도 죽어 버린 걸까? 난 멍한 정신 가운데서 노인에게 볼트를 발사하던 놈의 모습을 회상했다.
후-.
입에서 차가운 입김이 나오고, 조금씩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빨리하자. 일을 마무리하고 노인과 강수련의 흔적을 찾아야지.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1층 바리케이드부터 시작해 내가 걷고 있는 모든 길 위에 휘발유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왕 변종을 불태우는 거, 끔찍한 놈들의 흔적과 마지막 아지트까지 전부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이곳에 있던 부랑자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근원조차 정화하는 불꽃이 모든 것을 지워 버리고, 태초의 상태로 만들어 줄 테니까.
쪼르르륵-. 쪼르륵.
조용한 복도에는 내가 뿌리는 휘발유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왔고, 코끝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아닌 강한 휘발성의 냄새가 전해져왔다. 바닥에 뿌려져 있는 피와 놈들의 발자국이 씻겨나간다. 탄피는 기름에 젖어 해맑은 소리를 내었고, 내 발끝에는 살점의 늪이 조용히 스쳐 지나간다. 자, 모든 것을 지우고 가자. 그녀가 겪었던 끔찍한 기억도, 내가 처절하게 사투했던 공간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1층을 지나, 2층. 그리고 2층을 지나 3층으로 향한다.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계단을 걷고, 찌꺼기만을 남긴 부랑자들의 흔적도 지나친다.
뚜벅-. 뚜벅-.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마치 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처럼 바닥에 기름으로 만들어진 흔적을 남기며, 하지만 되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영원히 지우기 위한 길을 만들었다. 멀어져 가던 노인과 강수련, 죽어가며 나에게 가라고 말했던 단체장. 이 모든 기억이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 후련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하게 아려왔다.
넉넉하게 챙겨왔다고 생각한 휘발유 통이 벌써 반 통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건물 이곳저곳 골고루 뿌려 뒀으니, 불만 점화하면 활활 잘 타오를 것이다. 나는 남은 휘발유를 들고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놈의 몸체가 있는 부두 앞에 멈춰서 휘발유 통을 거꾸로 들고 모두 부어 버린다.
마침내 텅 비어 버린 휘발유 통을 내려놓고, 휘발유로 흠뻑 젖은 놈을 바라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강 형사에게 받아두었던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핑!
황동색 지포 라이터는 청아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불꽃으로 만들어진 줄기가 확 하고 타오른다. 아, 작은 불꽃이 넘실거린다. 난 그것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의 여운 앞에 잠시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휘발유가 뿌려지지 않은 방향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 놈의 몸체 위에 라이터를 던졌다.
‘멈춰, 이 새끼야!’
아니, 던지려 하던 그 순간 저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하나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꼭 성대를 찢어 놓은 것 같은 쉰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분명 내가 들어본 적이 있었던 익숙한 음성이었고, 지포 라이터를 들고 있는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자 최태식 새끼가 크로스 보우를 든 상태로 나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작게 넘실거리는 불꽃 사이로 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작게 실소했다.
최태식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총성을 듣고 몰려온 놈들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는지 온몸은 상처로 가득했고, 입고 있던 옷들은 전부 찢어져 더러운 오물들이 묻어 있었다. 치명상이라도 입었나? 서 있는 모습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고, 목에는 지금도 피가 새어 나오는지 붉게 물든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아마 제때 등장해 준 변종이 아니었다면, 놈은 이곳에 서서 크로스 보우를 조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한때는 많은 부랑자들을 이끌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던 악랄한 놈이, 이제는 저런 우스운 꼴을 하고 나에게 크로스 보우를 들이밀고 있다니.
그래 놈들도 다 죽고 너 혼자 남았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꼬랑지를 만 개새끼 같은 모습. 과거의 악랄함과 영악함을 어디 갔는지, 놈도 이제 바닥을 드러내며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
자, 이곳은 모든 것이 끝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놈에게 보란 듯이 다리를 움직였고, 바닥에 고인 휘발유를 안쪽 발로 쓸어내었다. 그리고 지포 라이터를 옆으로 추켜올리며 날카로운 볼트 날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날려봐, 시발 새끼야.’
노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방금 나처럼 말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담지 않았던 욕설을 시원하게 내뱉으며 아까 들었던 욕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그러자 크로스 보우를 들고 있는 최태식의 팔이 미세하게 떨렸고, 얼굴은 치욕과 분노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놈은 그 순간에도 크로스 보우를 발사하지 않고 있었다.
아,
그리고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놈이 크로스 보우를 발사하지 않는 거지? 놈의 목적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나? 그동안 최태식이 해 왔던 행적을 보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행위는 있었지만, 동기는 없다. 놈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수많은 살인을 저질러 왔고, 망설이지 않았던 잔혹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분명 원거리 무기를 가지고 있는 놈이 유리한 상황임에도, 나를 쏘지 않고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놈이 나를 쏘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왜 저토록 초조해하고 있는지. 시간은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고, 내 머리에 흩어졌던 모든 정보들이 단순한 방향을 가리키며 일렬로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휘발유에 젖어 있는 변종의 몸체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는 지포 라이터 끝에서 멈췄다.
생각의 정리가 끝났다.
내 입에서 어이없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꺼지라고!!!’
저 앞에서 최태식이 고함을 내지른다. 목에는 핏대가 서고, 그 목을 감싸고 있는 붕대에서는 붉은색 피가 점점 번져가고 있었다. 그래, 놈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변종 시체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변종이 다가와 놈들을 몰아냈다고는 하지만, 저 어둠이 깔린 도시에는 아직도 수많은 괴물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놈의 피를 얼굴에 발랐듯이, 최태식도 변종의 체액을 가져야 살 수 있다.
최태식이 조급해 보였던 이유는 바로 자기 목숨이 내 손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나는 소리 내서 웃었다. 그 웃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구차하게 삶을 연명하려는 놈을 향한 조롱이었으며, 동시에 자기 목숨을 끔찍하게 아끼는 쓰레기에 대한 역겨움이었다. 바닥에 침을 뱉자 피와 함께 씁쓸한 내음이 떨어져 나간다.
거대한 적처럼 느껴지던 최태식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작은 개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기억의 단편들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일행들을 살리기 위해 놈들을 막았던 용팔이. 그리고 아이들을 숨기며 자신이 대신 끌려왔던 강수련. 빨리 도망가라고 소리를 지르던 노인과 짐이 되기를 기꺼이 포기한 단체장의 모습까지.
그래, 그들은 전부 저런 이기적인 쓰레기한테 위협을 느끼고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있던 무언가가 탁하고 풀린 기분이었다. 본능을 초월한 무언가, 심지어 삶조차 하찮게 보이기 시작한 무언가가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타협하지 말자, 쓰레기를 치우는 거야.
나는 그대로 입을 열어 놈에게 말했다.
‘오늘을……. 죽어서도 기억해.’
핑-.
내 손은 움직였고, 지포 라이터가 허공을 가른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고, 내 호흡은 그대로 멈춘다.
두쿵, 두쿵.
옆으로 큰 열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는지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뛴다. 난 이명과 심장 소리를 사이에 두고, 감았던 눈을 뜬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그리고 내 눈앞에서 허공을 가르고 있는 지포 라이터가 공간의 하모니를 이룬다.
핑그르르-.
찰나, 황동색 지포 라이터에 내 얼굴이 비쳤다. 비춰진 내 얼굴은 많이 다쳐 있었고, 꼭 괴물과 같은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뒤에 비치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살아 있고, 온전한 인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나, 둘.
모두의 얼굴이 보인다.
하나, 둘.
그리고 내 심장을 격하게 뛰고 있었다. 난 온몸에 힘을 주며 마지막을 힘을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채연아, 애들아. 수련아! 영감님! 용팔아, 두식아! 곧 갈게.
꼭 만나러 갈게.
라이터가 바닥에 떨어지고, 뿌려 둔 휘발유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놈의 몸체는 익은 고기처럼 탁탁 타올랐고, 부두와 건물은 순식간에 붉은 불꽃으로 물든다. 이곳은 사람들이 고통받던 지옥이었다. 놈들은 많은 이들이 죽였던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이 불꽃을 시작으로 모두 사라질 것이고, 회색 재만 남기게 될 것이다. 지옥을 흉내 낸 이들에게, 현세의 지옥은 지금 이곳에 강림했다.
‘안 돼!!!!!!!!!!!!!!!!!’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최태식이 처절한 고함을 내질렀다. 완전한 화염으로 뒤덮인 변종의 시체. 놈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최태식은 삶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이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직시하고 있던 볼트는, 퉁 소리를 내며 나에게 날아온다. 반응한다, 눈동자가 점멸하고 준비된 근육이 폭발했다.
스륵-.
허리춤에 꽂아둔 대검을 오른손으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볼트를 인지하기도 전에 목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왔으며, 준비된 신경이 번쩍이며 터진다. 천둥보다 한 발짝, 눈앞으로 온 빛이 점멸한다. 나는 한쪽 방향을 향해 고개를 틀었고, 날아온 볼트는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옅은 생채기가 터지며 볼을 불로 지진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불어오는 칼바람, 아릿한 불꽃의 냄새. 그 냄새와 바람은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왔다. 귓가로 노인의 목소리가 스치고 지나간다.
[실력 많이 늘었더라?]
[청출어람이죠.]
[지랄.]
오른손을 크게 뒤로 빼고 앞을 향해 힘껏 휘두른다. 내 손에 꽉 붙잡혀 있던 대검은 심장에 심어둔 강철을 가지고 앞을 향해 날아갔다.
빙그르르르-.
내 손을 떠난 대검은 아름다운 직선을 그렸고, 이 상황에 끝을 알리는 푸른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어진 끝에는 최태식의 목이 닿아 있었다.
컥-.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놈이 목을 붙잡는다.
후우-.
나는 숨을 내뱉었다.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흩어지고, 최태식이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위로는 수많은 불꽃들이 파도가 되어 넘실거린다. 이명이 울린다.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저 위에 별이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손끝에 느껴지는 최후의 감각을 만끽하며 타오르는 불꽃을 시야에 담았다.
모든 고뇌와 아픔을 이곳에 두고 간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 한강 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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