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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51화 (151/313)

[151]

‘뭐, 뭐해! 이 병신들아!!! 빨리 잡아!!’

3층 건물에서 최태식이 욕을 내지르며 크로스 보우를 발사한다. 난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볼트를 느끼며 강수련을 감싸 안았고, 노인이 숨어 있는 엄폐물로 기어들어 갔다. 내 돌발행동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멈췄다. 이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해가 사라진 밤에 이토록 큰 소음을 내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놈들 대부분은 넋을 놓고 있었고, 오직 최태식만이 우리를 향해 볼트를 발사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도, 도망가!!!’

당황으로 인한 침묵은 곧 깨지고 말았다. 놈들은 최태식이 명령과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엔 지옥이 시작될 것이다. 인간의 숫자가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노인의 공격으로 상당수 숫자가 줄어 있던 부랑자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도망, 필사적 도망만이 다가오는 지옥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본능이 놈들을 이끌고, 죽음의 공포에서 비명을 내지르게 했다.

난 그 공포 사이를 가로지르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허벅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노인의 재빨리 뒷덜미를 잡아챈다. 응급처치? 괜찮냐는 말? 지금 이 순간에는 모든 게 사치스러운 행위였다. 노인도 그걸 아는지, 미친 짓을 벌인 나를 타박하기보다는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판단하기 바빠 보였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요.’

나는 이를 악물며 노인에게 말했다.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산소를 끊임없이 삼키는 폐는 나에게 미쳤냐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는 강수련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노인의 뒷덜미를 잡았다. 몸이 무겁다. 아니, 짓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꼭 심연을 걷는 것만 같은 이 저항감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었다. 아아아! 소리 없는 비명이 목구멍에서 뛰쳐나온다. 하지만 나는 살기 위한 뜀박질을 시작했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

노인이 쉬어 버린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나에게 끌려가는 그 상황에서도 총을 놓지 않고, 3층을 향해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엄호 덕분일까? 나를 공격하던 볼트는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고, 내 앞길을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내 마음을 사정없이 뜯어먹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심연 속에 보이는 물고기 떼는 어김없이 움직이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맨발이 콘크리트 바닥을 밟고 육편이 고기를 밟는다. 몇 마리? 백? 천? 상상조차 가지 않는 소리다. 내가 쏘아낸 총소리는 밤의 도시에서 잠들어 있는 놈들을 깨어나게 했고, 알량한 싸움을 펼치던 인간들은 파도에 쓸려 지나가는 해초와 다를 게 없었다. 난 그 흐름에 어김없이 몸을 맡기며, 우리가 들어왔던 부두로 뛰어갔다. 저 앞에 정신없이 흐르는 한강 물이 보인다. 난 부두에 도착하자마자 노인의 뒷덜미를 놓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이 흘러내린 땀으로 어지럽다. 입에서 단내가 나며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후욱-, 후욱.

내 옆에서 노인이 격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온몸은 정신없이 흘린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거기다 허벅지에 생긴 상처는 지쳐가는 노인의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 죽으라고 윽박지르는 마지막 최후.

하지만 난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그 운명을 거부했다. 살 것이다. 다 살려서 갈 것이다. 난 누군가 이 상황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거부했다.

강수련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피가 흐르는 노인의 허벅지를 틀어막았다. 노인은 정신이 흐려지고 있는지 살짝 풀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본능적인 반응을 하며 내가 내준 붕대로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손이 덜덜 떨린다. 노인의 뜨거운 피를 받는 내 손에서는 옅은 경련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나는 노인의 손을 꾹 잡아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응급치료가 끝나자마자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추며 부두에 매달려 있는 부유물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스티로폼부터 시작해서, 구조용으로 내버려 둔 튜브까지. 대검으로 찍어 뜯어내고, 하나하나 모으며 노끈으로 묶었다. 급박한 순간에도 나는 침착하기 위해 애썼다. 내가 급조해서 만든 부유물은 수영을 할 상황이 아닌 노인과 강수련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꼼꼼하게 부유물에 상태를 확인하며, 노인과 강수련을 묶어 고정시켰다.

나는 마지막으로 노인의 소총과 탄창을 모두 뺏었다. 그리고 바닥을 진동시키는 놈들의 발소리가 커질수록 노인과 강수련을 물속에 밀어 넣는 내 몸은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신을 반쯤 놓고 있던 노인이 손을 뻗어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르겠다. 내 멱살을 잡은 노인의 손은 나를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는 듯,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난 순간 숨이 막혀, 부유물을 밀고 있는 손에 힘을 놓고 말았다.

노인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같이 가…….’

같이 못 간다. 같이 가면 다 죽는다. 저 멀리 달려오는 놈들은 아귀 같은 입을 쩍 벌리고 우리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강수련과 노인의 상태? 이대로 가면 물 위에 있어도 죽고, 지상으로 가도 죽는다. 적어도 노인과 강수련이 숨을 시간을 누군가 만들어줘야 한다. 내 입에서 숨이 입김과 함께 진한 숨이 풍겨간다. 시련과 시련을 넘어, 고통과 인내를 넘어선 무언가가 또 나에게 내려지고 있었다.

너희는 언제쯤 죽을까? 분명 누군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저주받은 현실, 현실보다 더 독한 현실. 모든 요소와 불어오는 바람마저 우리에게 죽으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도 떨지 않고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영감님, 물 위에 오래 있지 말고, 바로 지상으로 가요. 그리고 금방 따라갈 테니까, 수련 씨랑 먼저 에덴으로 가 있어요.’

나는 노인의 양손을 꾹 붙잡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고통이 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눈동자에는 땀과 같이 눈물이 어린다. 얼굴에는 피와 같은 고통이 깃들었다. 노인은 나를 놓지 못했지만, 나는 노인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놓아 주세요, 그리고 빨리 가요.’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악력이 서서히 풀렸다. 그리고 나는 있는 힘껏 부유물을 강으로 밀었다. 저 멀리 흐르고 있는 물살을 따라 두 사람이 흘러내려 간다.

‘영감님, 우리 그날 마트에서 먹었던 김치찌개 기억해요? 말은 안 했는데, 진짜 맛있게 먹었거든요. 우리 다음에도 꼭 끓여 먹어요. 애들이랑, 사람들 다 불러서 꼭 수련 씨한테 끓여달라고 해요. 분명 다들…….’

두 사람이 저 멀리 흘러가고 내 읊조림은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입김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진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있는 바람도 날카롭게 불어오는 칼바람에 찢겨 사라져 버렸다. 저 짙은 어둠 속으로 내가 떠나보낸 두 사람이 파묻혔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은 온통 어둠이었고, 이 공간에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나는 탄창을 소총에 끼워 넣으며 이를 악물었다.

‘아아아-----!!!!’

‘아----끄아아!!’

놈들이 지르는 울음소리가 공명한다. 내가 서 있는 부두 바닥은 철렁철렁 흔들렸고, 레스토랑 건물 뒤로는 많은 숫자의 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차와 하나뿐인 길 때문에 굉장히 좁은 곳이다. 하지만 밀려오는 고기들은 서로가 서로를 밀며 그곳에 몸을 욱여넣었다. 마치 다져진 고기처럼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놈들의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로 향해 있었고, 딱딱거리며 움직이는 이빨에는 나의 미래를 예견하는 붉은 살점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소음기를 분리하고 재빨리 일어난다. 그리고 내 바닥을 박치고 뛰쳐나간 내 발걸음은 도망이 아닌 놈들이 몰려오고 있는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레스토랑 건물이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 쏟아져 나오는 놈들이 보인다. 그래, 도망갈 때가 아니다. 놈들이 물살 위를 흘러가는 노인과 강수련을 발견하지 못해야 했다. 나는 망설였으면 얻지 못했을 기회를 포착하고, 놈들의 손을 피해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1층, 2층, 3층, 그리고 옥상.

나는 내가 빠져나왔던 죽음의 공간을 역행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밟기 시작하자 1층 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수백 마리가 울부짖는 소리는 대기를 찢고 내 고막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허억-. 허억-.

난 터질 듯한 심장과 이제는 아파져 오는 폐를 붙잡고 오로지 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옥상 문을 몸으로 밀 때쯤, 내 발목을 붙잡는 무언가에 걸려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난 그대로 몸을 돌려 총을 발사했다.

탕!

탕! 타앙-!

조준간을 옮기고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눈앞에 있는 총구는 무대, 그 위로 정신 사나운 불꽃들이 미친 댄스를 춘다. 시간은 다시 한 번 느려지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해진다. 그리고 눈에는 물기가 어리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면 달려오는 놈들이 쓰러지고, 그 뒤로는 더 많은 놈들이 몰려온다. 내가 놈들을 죽이지만, 파도에는 티도 나지 않는다. 해일이 나에게 온다, 짙은 검은색이 나에게 오지만 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죽음의 순간을 정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위태로운 줄타기도 언젠가는 끝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무섭냐고? 무섭지 않다. 죽어서 슬프냐고? 아니, 나는 슬프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에서 죽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인하고 강수련을 살렸다. 그러니 나는 한 줌의 후회조차 들지 않았다.

달칵, 달칵.

방아쇠가 움직인다. 나는 총을 쏜다. 그것은 검은색 세상을 향한 나의 마지막 선 긋기였다.

드디어 공이가 빈 공간을 친다. 탄창을 가득 채웠던 총알은 바닥이 났고, 다음 탄창을 교체하기도 전에 검은색 파도는 내 지척까지 접근했다.

아아아아!

놈의 울부짖음이 내 코앞에서 들려왔다. 난 탄창을 뽑아 드는 그 손을 그대로 놓고 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꽂아둔 대검을 뽑아 들며 놈들을 향해 고함을 내뱉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놈들이 내뿜는 붉은 불빛들이 짙은 어둠 사이로 쏟아진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을 향해 손을 뻗는 놈의 목을 움켜잡으며 그대로 대검을 내려찍었다. 대검 날이 놈의 눈을 파고 들어가고, 더러운 살과 함께 뇌 속을 헤집어 놓았다. 원초적인 파괴로 인한 떨림이 손끝에서 시작해서 신경을 찌르르 울린다. 난 그대로 대검을 뽑아 들고 내 쪽으로 넘어지는 놈을 발로 차 밀었다. 파도 위로 너무나 알량한 퍼짐이 묻혀 버렸다.

한 놈을 죽였다. 하지만, 그 뒤로는 수백 배는 많은 놈들이 있었다. 난 나에게 달려오는 놈의 발을 그래도 걸어 버렸지만, 그 뒤로 달려오는 놈에게 팔을 잡히고 말았다. 내 팔을 잡는 놈의 대가리에 대검을 박아 넣으려고 했지만, 그 대검을 잡은 손마저 다른 놈에게 잡히고 말았다. 몸이 밀린다, 검은색 해일이 나를 덮쳐오자 내 몸은 너무나 가볍게 넘어지고 말았다. 방파제도 없었고 수없이 위기를 넘겼던 행운은 나에게서 등을 돌린다.

‘아-.’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 시야에는 놈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끝없이 이를 벌리며 나의 살점을 탐내는 아귀들. 내 팔은 붙잡히고 버둥거리는 다리마저 붙잡혀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도 목청이 떨어져 나가라 고함을 내질렀다. 나를 잡아라, 여기서 이 지옥을 끝내자. 저 멀리……. 저 멀리서 흘러가고 있을 노인과 강수련에게 내 마지막 입김이 닿을까?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발버둥 치던 내 팔다리도 멈췄다. 한 놈이 내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었다. 이상하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삐이이이-.

이명이 길게 울린다. 나는 그대로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가가 떨리는지 시야가 흔들린다. 그리고 그 시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너무나 어두웠다. 하지만 그 가운데 보석처럼 박힌 별들. 그 별들은 깨끗해진 하늘에 하나의 집단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하늘도 내 목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는 한 놈에게 가려져 사라진다.

난 다시 눈을 감았다.

놈들이 내뱉는 울음소리, 그리고 짙은 이명.

‘-------.’

딱, 각.

‘------!!’

딱각, 딱-.

내 손끝이 꿈틀거린다. 죽어가는 신경이 한순간 눈을 뜨며 이명 사이로 들려오는 그 소리를 포착하게 한다. 짙은 노이즈 사이로 마치 목각인형이 춤을 추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것은 분명 환청이 아닌 또렷하게 들려오는 현실의 소리였다.

난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 소리를 들었고, 놈들에게 붙잡힌 손을 천천히 떨었다. 힘겹게 눈을 뜨자 핏빛으로 물든 시야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목을 물어뜯으려고 하던 놈의 몸체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난 아직 죽지 않았다.

딱각, 딱-. 딱딱딱.

아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다.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 저 소리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던 그때의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내 팔다리를 붙잡고 있던 놈들은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괴상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노, 그리고 그 분노 속에 숨겨진 두려움이었다.

팔다리의 구속이 풀리고, 내 시야를 꽉 막고 있던 놈들의 대가리가 사라진다. 놈들이 울부짖으면서 새롭게 등장한 포식자를 경계했고, 곧 자리를 피해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마치 바퀴벌레 무리가 빛을 피해 흩어지는 것 같은 무리들은 10초도 되지 않아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놈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놈이 왔다고.

콧잔등에 무언가 차가운 게 안착한다. 힘겹게 눈을 뜨며 하늘을 바라보자 내가 봤던 별들이 하얀색 눈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어둠 사이로 보이지 않는 빛이 떨어진다. 난 떨리는 손을 뻗어 얼굴 위에 떨어진 눈을 훑었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각, 딱-.

더러운 원피스. 새하얀 몸체. 긴 머리카락으로 없는 턱을 가린 그놈이 옥상 난간에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에 선명하게 난 총알 자국과 보이지 않는 증오의 형체는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놈이 내는 기괴한 소리에는 나를 죽이고 말겠다는 살의가 기쁨과 겹쳐 오묘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난 바닥에 피를 뱉었다. 그리고 내 손에 꾹 잡혀 있는 대검을 앞으로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은 끊어질 듯 점멸했고, 시야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이 내린다. 하늘에서 수없이 많은 눈이 바닥에 안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놈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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