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노인이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노인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속 안에 남아 있는 허망함과 재를 입김과 함께 뱉어냈다. 속 안에 있는 모든 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곳에 남은 이 증오와 분노마저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한 손에 채연이를, 그리고 또 한 손으로는 피의 절은 대검을 꾹 잡으며 눈을 감았다. 공기에는 피 냄새와 함께 시커먼 종말의 연기가 아릿하게 흩어졌다.
강수련은 숙소와 에덴, 그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항상 웃으며 나를 반겨 주던 그녀. 아무리 힘들어도 주변 사람들 먼저 챙겨 주던 그녀. 겁 많고 눈물이 많지만……. 그런데도 자신보다 약한 이를 보호하던 그녀. 그녀는 채연이와 아이들 전부를 살리고, 내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 현실이 너무나 싫어 피가 솟구칠 것 같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며, 내 허망함에 불을 꺼 줄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속에서……. 내 속에서 살점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숨을 쉬며 살아 있는데,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속 안에 모든 신경과 감정이 나를 죽은 사람이라 말한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채연이가 계속해서 울었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도 하나같이 울고 있다. 애써 눈물을 닦고, 입안에 고인 울음을 삼키지만. 저 아이들에게 누구나 다정했던 숙소의 엄마는 그 아이들 곁을 떠났다. 손가락을 피자 대검이 바닥에 떨어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대검 위로 내 손에 고인 피들이 같이 떨어졌다.
내 공간에만 시간이 멈췄다. 시선은 내 손에서 떨어진 피에 고정되었고, 그 피는 모래시계처럼 규칙적으로 흘러 내가 존재하는 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싸늘한 찬바람은 가슴에 생긴 구멍을 훑고 지나간다. 난 한참을 그렇게 넋을 놓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내 입에선 모래알처럼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은요?’
노인이 대답했다.
‘모두 무사해.’
그래, 노인이 제때 도착한 모양이다. 사무실의 문은 열려 있었고, 그 내부에는 노인이 대피시킨 상주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로는 많은 피난민들과 부상자들이 몰려왔으며, 장벽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낸 전투조들이 이곳을 기점으로 에덴의 혼란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래, 에덴은 이런 공격으로 무너질 요새가 아니었다. 흉터를 남기겠지만, 분명 아물 것이다. 모두가 악몽으로 기억하겠지만, 그 한밤의 소란도 시간이라는 망각 속에 곧 잊힐 것이다.
하지만 떨어져 나간 내 살점은 결코 아물지 못했다.
‘……어디로 들어왔답니까?’
‘전투조가 동쪽 장벽에서 개구멍 하나를 발견했어. 김지영 그 시발 년이 만들어 둔 거겠지.’
‘거기로 들어왔으면, 거기로 나갔겠죠?’
‘그래.’
김지영은 놈들에게 열쇠를 쥐여 줄 단초가 되었다.
에덴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중앙 본부가 깔끔하게 공격당했고, 그곳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단체장과 간부들이 실종되었다. 또 무전시설은 파괴 되었으며, 에덴 곳곳에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광 시설까지 습격을 당하고 말았다. 놈들은 에덴이라는 큰 코끼리를 넘어트리지 못했지만, 그 코끼리를 움직이는 머리와 귀를 마비시킨 것이다.
최소한의 공격으로 최고의 피해를 입힌다. 에덴의 뼈대라고 볼 수 있는 전투조와 장벽은 건재함에도 속이 비어 버린 낙원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아마 혼란을 수습해도 오늘의 상처가 한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에덴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큰 장벽과 무기도 아닌 단체를 이루는 체계와 질서였으니까.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이마와 얼굴에 묻은 피를 슥 닦아 내었다. 그리고 깊은 숨을 훅 내뱉으며 채연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부랑자 일부가 개구멍을 통해 에덴을 빠져나갔을 것이라 확신했다. 중앙 본부에서 죽인 그놈들이 하던 이야기, 그리고 꼭 게릴라전처럼 치고 빠지는 행동들과 사망이 아닌 실종으로 기록된 간부진들. 이 모든 로직들은 놈들이 노리는 게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계획으로 인해 놈들이 얻게 될 이득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난 바짓단에 조용히 피를 닦고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울고 있는 채연이의 얼굴과 눈가를 슥 닦아 주었다. 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은 하늘에 내리는 비처럼 끝없이 샘솟고 있었다.
또르륵, 또르륵, 또르륵.
흐르고 또 흐른다. 그 눈물은 내 마음에 내리는 비와 같았다. 내 손은 조용히 떨려왔고, 뜨거운 아이의 눈물을 받아 내는 내 손가락도 떨려왔다. 마음이 저리고 먹먹해져 온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저기……. 그거 먹을 건가요?’
‘강수련……. 이요.’
‘당신이 죽을까 봐 그랬어요!’
‘많이 아프죠?’
‘힘들죠? 아프잖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줘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줘요.’
아아-!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완전히 사라졌다고, 더는 흘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눈물이 그제야 터져 나왔다. 모두 현실이다. 꿈이라고, 내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이 아픈 것이 모두 현실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 쩍쩍 갈라졌던 땅에 너무나 슬픈 비가 내린다. 그녀는 나에게 따뜻한 봄비였다. 너무나 추운 현실에 불어오는 한줄기 봄바람이었다.
마음의 상자를 열어보자 그녀의 얼굴이 생각났고, 피부 위로 그녀의 체온이 일렁인다. 내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한 것이 채연이었다면, 내 발걸음을 쉬게 해 준 것은 강수련 그녀였다. 까먹고 있었다. 언제나 옆에 있었기에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항상 나를 바라보던 해바라기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빠가……. 아빠가 꼭 데려올게.’
내 입에선 울음과 함께 잔뜩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후회하는 자가 남긴 또 다른 후회였다. 그리고 그 약속 앞에 채연이가 엉엉 울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 양손은 채연이의 양 볼을 잡았고, 우리는 이마를 맞대며 꼭 지켜야 할 약속을 눈물과 함께 찍었다. 다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 다시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나도 아이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공간에는 우리 둘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방이 있었다는 걸.
‘형, 형님!’
숨을 훅 내뱉고 고개를 들자 저 멀리서 황급하게 뛰어오는 용팔이가 보였다. 용팔이는 온몸이 상처와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갑자기 날아온 비보를 들었는지, 얼굴만큼은 피가 아닌 눈물로 젖어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채연이를 꼭 안아 주고, 품이라는 둥지에서 아이를 놓을 준비를 했다. 용팔이와 일행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채연이를 지켜줄 것이다.
난 채연이를 안아 들고 천천히 용팔이에게 걸어갔다. 용팔이는 넋이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고, 모든 것이 설명되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 눈물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떨어지지 않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안고 있는 아이를 용팔이에게 넘겨 주었다.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일행들이 용팔이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다친 사람들도 보이고,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버린 표정들이 보인다. 비탄이 흘러나온다. 슬픔이 우리를 잠식한다. 나는 일행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눈을 마주쳤고, 열리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어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는 지시를 내렸다.
‘제가 올 때까지 사람들을 지켜 주세요.’
내 지시를 들은 일행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내 말은 일행들 전부를 남기고 추격조를 꾸리겠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지시를 가장 먼저 반발한 사람은 김혜정이었다. 그녀는 손을 번쩍 들며 눈물과 뒤섞인 애절한 고함을 나에게 내질렀다.
‘저, 저도 갈게요!!’
그래, 김혜정도 강수련이 사라졌다는 비보를 들었을 것이다. 만난 시기도 짧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찰나의 불과한 시간이겠지만,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유난히 강수련과 친하게 지내던 그녀였다. 나는 그녀가 내 말에 가장 먼저 반발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아니, 해 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은지 내 옆에서 조용히 걸어 나와 김혜정을 노려봤다.
‘까불지 마. 너희들이 조금만 더 잘했어도 진작 추격조 꾸렸어. 근데, 뭐? 겨우 그거 뛰었다고 빌빌대는 새끼들이 따라오겠다고?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해? 지금 이런 말 하는 시간도 아깝다. 빨리 안 꺼져!!!’
가혹하면서도 현실적인 말이었다.
상황이 끝난 지 불과 20분도 지나지 않았고, 노인이 전투조를 통해 놈들이 들어온 개구멍을 찾아내었다. 말 그대로 놈들을 추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바닥의 내린 눈은 놈들의 방향을 알려줄 것이고, 동시에 내리는 눈은 그 흔적을 지울 것이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속도였다. 놈들이 설마 바로 따라오겠어? 라고 생각하는 그 빈틈을 노려야 하는 것이다.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면 짐이다. 이것은 행군과 이동이 아닌, 놈들을 죽이기 위한 추격이었다. 심장이 터질 만큼 뛰어야 했고, 엎어지거나 힘들다고 숨을 고를 시간이 없었다. 살기 위한 뜀박질에는 만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파트 단지에서 에덴까지 도착한 시간. 그 거리를 뛰어오며 녹초가 된 일행들은 나와 자신들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숙이며 우리를 향한 원망이 아닌, 자신을 향한 원망을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혜정은 결국 눈물을 터트리며 서럽게 울었고, 일행들은 내 지시를 따라 빠르게 흩어졌다. 이곳에서 미련을 남기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 흩어지는 미련 속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될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용팔이와 눈을 마주쳤고, 용팔이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
‘네, 저도 믿을게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며 끝내 고개를 돌렸다.
손의 떨림이 멎었다.
* * *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더는 그녀를 찾으며 엉엉 울 시간도 없었다. 난 모든 신경을 한곳에 쏟아부었고, 빠르게 뛰어가는 노인의 뒤를 쫓았다. 에덴 곳곳에는 그을림과 함께 삶의 방향성을 잃은 시체들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사이를 빠르게 지나 동쪽 장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고, 온몸에 묻은 피들이 딱딱하게 굳는다.
‘저기!’
보이기 시작한 동쪽 장벽.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는지, 동쪽 장벽 근처에는 전투조를 제외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은 전투조들이 모여 있는 장벽 한곳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분명 놈들이 지나온 개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노인은 그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했고, 전투조에게 지시를 내려 그곳을 지키게 했던 모양이다.
‘주변에 있는 놈들은 다 처리했습니다! 지금 지나가시면 됩니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한 전투 요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황급히 고함을 내질렀다. 그 고함을 들은 나와 노인은 빠르게 그쪽으로 달려갔고, 주변을 살피고 있던 전투조들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혹시나 있을 놈들을 대비해 주변을 경계했다. 우리는 곧 장벽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장벽 아래로 사람 여럿이 지나갈 만큼의 구덩이가 보였다.
‘동윤아, 잘 봐라.’
나는 황급히 구덩이를 향해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나를 막으며 침착하라는 듯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개구멍으로 들어가기 전 근처에 남아 있는 흔적을 향해 검지를 가리키며 말없이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어깨 위에 느껴지는 악력. 내 시선은 저절로 그 흔적을 향해 움직였다.
구덩이 근처에 한가득 쌓여 있는 눈 위에는 많은 사람이 지나간 듯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마 대부분 부랑자 놈들의 발자국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발자국들 사이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흔적들이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닌 그 흔적들은, 분명 걷고 있는 게 아닌 끌려가는 보폭의 불규칙함이었다. 난 황급히 그쪽으로 뛰어가 발자국들을 살펴봤다.
그놈들이 몇 명인지는 관심 없었다. 내 시선과 신경은 오로지 불규칙한 발자국에 꽂혀 있었고, 그 흔적을 따라 미친 듯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어떤 건 성인 남성의 발자국인지 크기가 컸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폭력을 당하기라도 했는지, 옅은 핏줄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바닥을 기고, 또 기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
‘아.’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내 눈앞에 나 있는 발자국을 꾹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흔적과 차가운 눈이 한가득 들어온다. 놈들에게 강제로 끌려갔는지, 보폭은 불규칙했고, 이곳저곳에 넘어지고 끌려간 흔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발자국과 흔적은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대신해 놈들에게 끌려간 것뿐이었다.
분명 울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무서워서가 아닌, 아이들이 걱정되어 울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아마 이곳에 있었다면, 나에게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까? 채연이를 지켜달라고 애절하게 작별인사를 건네지 않았을까? 그래, 그녀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저 멀리 미련이 보인다. 저 멀리 내가 그토록 찾던 허망함이 형체가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난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발자국이 찍힌 눈을 꾹 잡았다. 그녀의 흔적과 내 손에서 흘러내린 피들이 뭉치가 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그 피를 머금은 눈은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진 붉은 꽃처럼 유일한 분노를 그린다. 입에서 입김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감님……. 도와주세요.’
‘그래.’
‘내가 망설이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
‘다시는 후회하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소총을 앞으로 둘러메고 노리쇠를 당겼다. 총알이 죽음을 노크한다. 그 노크 음은 나에게 놈들을 죽이겠다는 맹세를 하고, 언제든 인간성을 버리겠다는 약속을 한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는 길,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개구멍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저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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