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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45화 (145/313)

[145]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밤이 되자마자 바리케이드로 오피스텔 입구를 막았고, 사무실 바닥이나 복도에 모여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나와 노인은 일행들과 주민들이 하나둘 잠을 청하는 와중에도 장비를 점검하고 총기를 손질했다. 그렇게 밤은 점점 깊어졌고, 우리는 불침번을 정해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행들이 만류했지만 난 3시간 동안 경계를 꿋꿋하게 서고 다음 불침번과 교대했다. 그리고 다시 은신처로 돌아와 적게나마 음식을 챙겨 먹었고, 해가 뜨는 즉시 움직일 체력을 차곡차곡 비축했다. 차가운 복도 바닥, 그리고 냄새가 나는 담요. 하지만 난 이것조차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며 일행들의 체온을 난방 삼아 쪽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감자 지끈거리던 머리와 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격한 움직임과 고된 행군 때문에 몰려오는 근육통은 비명을 질렀지만, 난 애써 그 고통을 참으며 한숨이라도 더 잘 수 있게 노력했다. 그리고 정신이 멀어지며 난 한동안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잠은 깊었다. 꿈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항상 보이던 별과 고래도 없었다. 계속해서 흐르는 무의식,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난다. 내 무의식은 거세게 밀리는 시침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기 시작했고, 내가 내뱉고 삼키는 숨은 그 잠에 순풍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난 내가 자고 있다는 걸 들려오는 소음에 자각했다.

‘---!’

소음?

‘-----!’

자각? 무의식 속에 자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 지금 잠에서 깨어난 것이고, 귓가에 울리는 이 소음은 내가 자고 있는 복도에서 들리는 현실의 소리라는 것이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그리고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창문에서 얌전히 올라오고 있는 여명의 빛이었다. 벌써 해가 뜨고 있나? 아니, 아직은 이른 새벽인 것 같았다.

내 귓가를 울리는 소음은 멍한 내 정신을 일깨우고 있었다. 나는 잠결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몽롱한 시야가 닿은 그곳에는 무전기를 붙잡고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는 강 형사가 있었는데, 그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나? 무전기를……. 붙잡고 있다고?

난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신경과 머리가 찌르르 울려옴을 느꼈다. 손이 갑자기 떨려왔고, 마치 아픈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린다. 나는 발작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벌벌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소란을 듣고 깬 일행들과 주민들도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제발,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강 형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가 상상한 그 일이 아니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3층에서 내려온 노인이 강 형사에게 외친다.

‘강 형사! 왜 그래!’

강 형사는 노인이 황급히 부르는 그 순간에도 무전기를 두드리며 통신을 시도했다. 에덴, 에덴! 거기 누구 있습니까? 들리면 대답 좀 해 주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애절함이 담겨 있었지만, 잡음을 내뱉는 무전기에선 노이즈는커녕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강 형사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이를 악물었다.

‘통신이……. 통신이 끊겼어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머리는 누군가 세게 걷어찬 듯 아파져 왔고, 힘을 꽉 주고 있던 팔다리는 그대로 풀려 버린다. 시야가 한순간 낮아진다.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감촉이 느껴져 왔고, 용팔이와 김혜정이 깜짝 놀라서 내 쪽으로 뛰어온다. 형님! 동윤 씨! 용팔이와 김혜정이 내뱉는 목소리가 귓가를 웅웅 울린다. 하지만 그 외침도 곧 이명에 빠져 사라지고 만다.

‘사, 사무실은! 숙소는!! 도대체 언제부터 끊겼는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노인만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며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 형사는 자기가 틀렸다고, 무전기가 고장 났다고 믿고 싶은지 연신 다른 쪽을 향해 무전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무응답과 지지직 울리는 잡음뿐. 에덴에서 오는 통신이 모두 끊겨 버렸다.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강 형사는 넋을 잃고 무전기를 내려놓는다.

‘분명……. 분명 30분 전에는 연락이 닿았는데…….’

30분, 30분. 그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아까 전까지만 해도 되던 통신이 거짓말처럼 끊겨 버렸다. 머리가 멍하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 넋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분명 눈을 뜨고 있음에도 앞이 보이지 않았고 일행들이 소리치는 소음은 이명으로 바뀌어 내 귓가를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후회가 된다. 죄책감과 슬픔이 가슴을 저리게 울려왔다. 그냥 채연이가 있는 에덴에서 있을걸.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추워도 그냥 채연이 옆에서 아이를 지켜줄걸. 내가 잘못했다. 이 모든 건 판단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눈가가 지끈지끈 쑤셔오고, 아직 아물지 않는 상처에선 다시 한 번 선 붉은 피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무너지는 착각에 빠진다.

‘곽동윤!!!!’

짜악-!

하지만 무너지는 나의 세계를 가로막은 건 스스로가 아닌 노인이 내지른 고함이었다. 뺨을 쳐올리는 소리가 이명 사이를 뚫고 터져 나왔고, 볼은 불로 지진 듯 뜨거워졌다. 내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가자 짙은 고통이 볼과 입안에서 느껴진다. 뭐지? 무슨 일이 있었지? 난 떨리는 손을 꾹 잡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주변을 봐라, 이놈아!’

노인이 나에게 고함을 내지른다.

그 고함은 노인의 얼굴을 시작으로 내 시야를 서서히 회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주변이 환해지자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민들은 겁에 질려 눈치를 보고 저 구석에서 자고 있던 용팔이 형제는 나처럼 주저앉아 있다. 김혜정과 박다혜는 눈물을 터트렸고, 강 형사와 박대박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발을 동동 구른다. 모두가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귀중한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 멍청이.

입에서 숨과 함께 혼란이 빠져나왔다.

정신이 번쩍 든다. 힘이 풀렸던 팔다리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혼란과 절망으로 갈기갈기 찢긴 정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쳐들었다. 이번에도 나는 자책했다. 동윤아, 너는 후회할 짓을 했음에도 또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구나. 그래, 바보다. 멍청이다. 하지만 3번의 실수를 반복할 병신은 아니었다.

난 내 어깨를 잡은 노인의 손을 꾹 잡았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벽에 세워두었던 소총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고, 홀더에 들어가 있는 권총은 당장 나를 써달라는 듯 소리를 지른다. 내 머리에 있던 혼란과 공포는 한순간 냉철함과 차가운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패닉에 빠져있던 일행들이 넋을 놓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용팔이, 다혜. 모든 탄창 모아서 영감님하고 나한테 줘.’

‘강 형사! 김혜정! 주민들 인솔해서 당장 움직일 준비 해요.’

나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일행들의 멱살과 옷을 잡고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리고 폭풍 같은 지시를 내리며 이 차가운 분위기에 펄펄 끓는 물을 뿌렸다. 무너졌던 기둥이 다시 한 번 서자, 땅으로 처박히던 기류는 거친 소리를 내며 팽팽 맴돌았고, 일행들은 헛숨을 연신 삼키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미리 행동을 취하고 있던 노인이었다. 노인은 그새 3층까지 다녀왔는지 내가 입을 장비와 탄창을 챙겨왔고, 재빨리 필요한 짐을 싸 주며 물었다.

‘거리는?’

‘걸어서 2시간’

‘우리 둘이서 가면?’

‘죽을 각오로 1시간.’

‘40분으로 해.’

노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이동시간을 줄인다. 주민들을 데려가면 늦는다. 그리고 일행들만 데려가도 늦는 건 똑같았다. 이곳에서 최고의 전투력을 가지고 최고의 기동력을 가져야 한다면, 노인과 나. 우리 단둘이서 먼저 출발해야 했다. 내가 노인이 건네는 가방을 재빨리 받아드는데, 저 앞쪽에서 용팔이가 걸어온다.

‘형, 형님…….’

용팔이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난 그런 모습을 보며 화를 내기보다는, 과거의 나를 보는 심정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어깨를 잡아주었다. 가죽장갑 너머로 용팔이의 어깨 감촉과 떨림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나는 노인이 나에게 해 주었듯이, 손가락에 힘을 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용팔아, 영감님하고 내가 없으면 일행들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은 너야.’

용팔이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마주한 눈동자에는 부담감과 겁,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래, 이 상황이 무서울 것이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우리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용팔이니까. 하지만 위급한 이 순간에서 나는 믿고 있었다. 그날 자신을 희생하려 했던 용팔이의 모습과 그 용기를. 난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용팔이에게 마지막 명령을 각인시켰다.

‘알았지?’

용팔이는 더는 떨지 않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노인은 오피스텔을 박차며 눈의 도시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 * *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길이 아닌 물이 가득한 심해를 뛰는 것 같았다. 숨은 막혀오고 내가 호흡을 하는지, 아니면 숨을 멈추고 있는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다. 우리는 눈을 뚫고, 또 뚫으며 생을 건 뜀박질을 계속했다. 눈앞에는 눈과 도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야는 눈을 감고 뜰 때마다 변해 있었고, 팔과 다리에는 마치 지옥에서 온 아귀처럼 눈이 달라붙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폐가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저 멀리 있을 에덴을 향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이 휘날리고 땀이 얼굴을 덮는다. 눈, 도시, 눈, 길. 땀과 호흡, 그리고 이명. 폐에는 산소가 부족했고, 머리는 생각을 멈춘다. 오직 길과 건물 그리고 눈밖에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우리는 어떤 지점까지 도착했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자 그 어떠한 고통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팔다리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채연아, 채연아, 채연아! 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무의식이 향하는 꼭짓점. 덜렁거리는 가방과 소총. 난 그사이에 사선을 그어 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을 쉬게 만든 것은 뒤에서 내 어깨를 붙잡은 노인의 손이었다. 온갖 물음이 머리를 차지했지만, 산소가 부족한 뇌는 그 생각조차 차단해 버렸다. 난 다리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노인의 얼굴이 보인다. 아, 맞다. 이것은 현실이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자 잊어버리고 있던 숨이 막혀왔다.

커헉, 컥-. 컥!

난 힘겹게 숨을 뱉으며 침을 질질 흘렸다. 시야가 흐리고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정말 죽을 각오로 뛰었던 나와 노인은 둘 다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눈 위에 주저앉는다.

노인이 가방에서 황급히 생수를 꺼내 내 입과 얼굴에 부어주었다. 난 그것이 생명수라도 되는 마냥 받아먹으며 재빨리 숨을 몰아쉰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이 내 몸을 빠져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그러자 시야가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제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난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움직이는 분침과 내 손처럼 떨려오는 시침. 우리가 출발한 지 정확히 4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딱’

‘--따다닥.’

시간과 무전기를 확인하던 내 귀와 신경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에 노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노인은 이미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노인은 정신없이 뛰는 와중에 이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둔탁한 소리. 그리고 주기적이면서도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이 소리! 분명……. 분명 익숙한 소음이었다.

나와 노인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창을 끼워 넣었고 노리쇠를 당겨 장전을 끝낸다. 이곳 주변 풍경은 익숙하다. 평소에도 들락날락하던 이 거리는 지도를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에덴이 멀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는 소음기를 장착한 총소리임이 분명했다.

예상하고 있던 최악의 결과가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는 표정을 찡그릴 순간도 아깝다는 듯 눈에 푹 젖어 버린 몸을 털어내고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에덴과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불같이 타오르는 분노는 귀를 아프게 울리는 이명을 만들어냈다. 총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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