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38화 (138/313)

[138]

‘우리 애들한테 무슨 볼일 있으십니까?’

난 고개를 들어 바닥에 넘어진 남자를 바라봤다. 총알 3발과 대비되는 예의 바른 말투. 난 너무나 차갑게 분노하고 있었기에 기꺼이 존댓말을 쓰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찢어진 종이처럼 흩어져 버렸고, 일행들은 내가 모습을 보이자마자 총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우리 일행들이 바보라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받고,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었을 뿐이지. 난 천천히 일행들에게 접근했다.

놈은 겁을 먹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나를 개잡놈이라 부르며 침을 튀기던 입은 굳게 닫히며, 미약한 심음 소리만을 내뱉고 있었다. 그래, 입을 다물고 있겠다? 난 기꺼이 받아들이며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용팔아, 무슨 일이냐?’

내가 고개를 돌려 용팔이에게 사건의 전말을 물어보자 용팔이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어 놈에게 삿대질을 시작했다.

‘저 새끼가 우리 막내한테 찝쩍거렸어요.’

내 고개는 자동적으로 돌아가 일행들 사이에 있는 박다혜에게로 향했다. 난 알고 있다. 박다혜는 이런 일로 주눅 들고 겁먹을 아이가 아니다. 지금도 매섭게 눈을 부라리며 놈을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요즘 성격도 살갑게 변해 모든 일행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아이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당찬 막내이자 사무실의 살림꾼이었다. 난 일행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일행들 얼굴에는 분명 이렇게 쓰여 있다.

감히 우리 막내를 건드려?

내 입에서는 헛웃음이 튀어나왔고, 권총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손가락 근육이 가죽 장갑을 땅기는 소리가 끼기긱 하며 울려 퍼졌다. 이 묵직한 공기가 말해 주고 있었다. 이번 일은 절대로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난 일행들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나서야 할 때가 있음을 알고 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난 놈에게 물었고, 놈은 대답이 없었다. 그래, 물어봐야 뭘 하겠는가? 이런 질문은 놈들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여기는 저들의 아지트고, 그 무리는 무서울 게 없는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 먹고 싶으면 먹고, 탐하고 싶으면 탐하고. 힘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면서 살았을 터인데, 이런 질문을 듣는 것 자체가 웃긴 상황일 것이다. 다만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인 게 중요한 것이었다.

놈은 수치심을 아는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풍겨오는 짙은 술 냄새와 역한 본드 냄새. 욕망을 대변하는 그 냄새들이 차가운 바람을 타고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더러운 수염과 그사이에 묻어 있는 더러운 찌꺼기들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심지어 겁에 질려 있는 저 남자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한 자 앞에 강하고, 강한 자 앞에 약하고. 심지어 자신이 했던 행위조차 합리화하지 못한다.

놈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왜 처음 보는 미성년자를 건드리려고 했습니까? 얼마나 많이 해 왔고, 익숙하길래 무의식으로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그리고 놈은 모든 범죄자들이 그래왔듯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

수군거리던 소리는 어느새 소란스러운 말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소음기를 착용했다지만 총성의 묵직함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소음기의 묻힌 총소리를 듣고 온 사람들은 어느새 사방으로 몰려들었고, 꼭꼭 숨어 있던 기존 주민들 또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상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누군가 급히 달려온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통장님!’

얼굴이 죽을 듯 썩어들어 가던 남자는 아파트 한쪽에서 튀어나온 중년을 보며 환하게 웃었고, 이내 안도와 든든함이 섞인 한숨을 후 내뱉는다. 그 한숨을 본 내 시선은 무심하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허겁지겁 바지 벨트를 채우고 있는 통장이라는 중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년 남자는 그간 봐 왔던 주민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잘 먹어서 그런지 살이 포동포동 올랐고, 옷은 방금 포장을 뜯기라도 했는지 굉장히 따뜻하고 깨끗해 보인다. 독점과 탐욕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옹호하기라도 하듯 주변에 몰려 있는 아파트 주민들의 눈빛이 살벌해지기 시작한다.

중년 남자는 눈치라는 걸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통장이라는 직위는 딱지치기로 딴 게 아닌지, 그는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주변 분위기를 살폈고, 이내 우리가 들고 있는 총 쪽으로 조용히 곁눈질까지 쳤다. 과연 이 총이 없었다면, 그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대했을까? 내가 의문을 느끼는 사이,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챙기려는 지 적당히 무례한 말로 물어왔다.

‘거 누구신데, 이 소란이요!’

‘에덴에서 왔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 짧은 말만큼 우리의 입장과 상황을 대변해 주는 말은 없었다. 당신들이 불렀잖아? 그리고 우리는 와 줬고. 에덴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공기는 다시 한 번 묵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일행들과 대치하던 남자는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죽어 버렸고, 통장이라 불리는 중년 남성은 유난히 당황해하며 추운 날씨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근방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에덴이다. 물론 강제적인 지배와 통치는 아니지만, 그 덩치만으로도 이름을 무겁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저, 그…… 내일쯤에나 오신다고 들었는데요?’

남자는 갑자기 저자세로 나오며 누군가를 급히 찾기 시작했다. 당황해하는 꼴을 보아하니 허겁지겁 도망쳐온 김지영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모양. 하지만 우리를 피해 먼저 아파트로 돌아온 그녀를 찾는 건 헛수고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난 한눈팔지 말고 이 상황에 집중하라는 듯 남자를 불렀다.

‘일이 있어서 좀 빨리 왔습니다. 용건 끝나셨으면 하던 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존댓말이지만 너무나 날카로운 의중을 통장에게 던졌다. 나는 지금 통장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저 남자와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니 여기에 낄 거 아니면 알아서 빠져라. 통장은 곧바로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어느새 우르르 나온 파벌 인원들은 우리와 대치하며 묘한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통장도 체면과 권위라는 게 있을 것이다. 내가 일행들을 대신해 앞으로 나온 것처럼, 통장도 저들을 이끄는 처지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했다. 물론 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격한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어깨가 펴지고, 얼굴도 당당해 보인다. 아마 자기 뒤에 있는 파벌들을 믿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아무리 에덴에서 왔다지만, 이래도 되겠습니까? 다짜고짜 총을 쏘다뇨! 다치는 사람이라도 나오면 어쩔뻔했습니까? 에덴 사람들은 다 당신처럼 그렇게 과격합니까?’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꼭 우리가 을들을 압박하러 온 갑처럼 보였다. 뒤늦게 난입해 전후 사정을 모르는 파벌 사람들은 우리가 다짜고짜 총을 쐈다고 생각했는지, 눈빛이 험악해지고 금방이라도 우리를 덮쳐올 듯한 기세를 풍겼다. 군중심리, 모여 있기에 무섭지 않다. 그런 마약 같은 심리는 총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서 겁을 상실하게 만든다. 난 길게 숨을 내뱉으며 조용히 박다혜를 불렀다.

‘다혜야.’

‘네!’

초면에 그라운드 기술을 걸며 욕을 하던 박다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일행들 사이에서 잘 적응해 나가던 그녀는 어느 샌가부터 나를 깍듯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모든 어른한테 예의를 지키며 착한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태도를 잃지 않은 채 내 옆으로 다가와 각 잡힌 자세로 얌전히 서 있었다.

‘저 사람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지?’

아무리 총과 무장을 하고 있다지만, 박다혜는 미성년자다. 얼굴에서부터 어린 티가 났으며, 키도 여기서 제일 작은 편이고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아이가 무장을 한 채 내 옆으로 다가오자 주변에 시선은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저런 애가 여기 왜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의문은 박다혜의 대답으로 인해 싸늘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땔감을 주우려고 뒤쪽으로 갔는데, 갑자기 저 새끼가 나타나서 제 머리를 잡아당기고 엉덩이를 만졌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 살아? 역시 고삐리가 쫄깃해 보여, 엉덩이가 아주 좋…….’

‘그만.’

난 필터 없이 내뱉는 그 노골적인 증언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증언과 헝클어진 박다혜의 머리카락은 일행들의 분위기는 살벌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던 용팔이는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죽일 듯이 놈을 노려봤고, 특히 그곳에 같이 있던 김혜정은 총의 노리쇠까지 당기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아마 일행들과 무기가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파벌 사람들은 그 분위기 앞에 당황하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더욱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 그랬어?’라는 질책보다는 왜 하필 건드려도 우리를 건드렸냐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통장은 똥을 씹은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다가 이내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놈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허허. 저희 쪽에서 따끔하게 혼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지랄하네, 미친놈이.’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통장의 말을 끊은 것은, 너무나 시기 절묘하게 등장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내가 뛰어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계단을 통해 내려왔는지 아파트 문 앞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안 보인다 싶더니, 내가 놓고 온 장비들까지 전부 챙겨와 준 모양이다. 노인은 에구구 소리를 내며 가방을 내려놓고 박다혜를 향해 말한다.

‘다혜야, 할아버지가 저번에 뭐라고 말하던?’

‘네! 당한 만큼 갚아 주라고 하셨습니다!’

노인이 조곤조곤 말하자 박다혜는 씩씩하게 대답하며 자세를 바로 한다. 겉으로만 보면 조언을 해 주는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지만, 그 내용은 결코 평범한 말이 아니었다. 당한 만큼 갚아 준다. 그 말은 들은 파벌들은 웅성거렸으며, 통장은 넋 놓고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군가 말릴 틈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간 노인은 강간 미수범인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눈이 쌓인 바닥에 내팽개치며 말한다.

‘그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구나.’

자기 파벌 사람이 끌려갔지만, 아무도 다가올 생각을 못 한다. 왜냐하면, 허리춤의 대검을 만지는 노인의 분위기가 너무나 살벌했기 때문이다. 나만큼이나 일행들을 끔찍하게 아까는 노인이다. 그런 노인의 차가운 분노는 마치 농축된 알코올처럼 그들 사이에 조용히 떨어졌다. 박다혜는 넘어진 남자의 옆으로 씩씩하게 걸어가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벗었다.

짜악-!

짜악!

박다혜가 갚아 준 것은 겨우 뺨 2대였다. 하지만 어찌나 살벌하게 때리는지 남자의 코피는 사방으로 터져나갔으며, 차가운 바람에 얼어 있던 피부가 시뻘겋게 변한다. 입안이 찢어졌는지 입술 사이로 굵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그 피만큼 농후한 공기가 주변을 옭아맸다. 하지만 그렇게 처맞는 와중에도 남자는 상황판단을 못 하는지 눈동자를 떨었다.

박다혜는 마치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손을 털었고, 이내 쪼르르 달려 일행들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쿨한 행동의 미련 없는 결과. 박다혜는 그것으로 만족했는지 후련한 얼굴로 김혜정과 용팔이에게 엉겨 붙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노인은 다시 한 번 남자의 멱살을 잡고 통장이 있는 방향으로 휙 던져 버렸다.

흰 눈 위에 떨어진 붉은 피들은 마치 우리와 그들 사이에 그어진 선처럼 보였다. 만나자마자 그어진 붉은 선. 그것은 이곳으로 넘어오지 말라는 나와 노인의 경고이기도 했다. 난 반들반들한 권총 손잡이를 만지며 말했다.

‘용건 끝났습니다.’

관계는 어긋났고, 선은 선명하게 그어졌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동물이다. 하고 싶으면 하고, 헤치고 싶으면 헤치고. 이들은 그런 쓰레기와 같은 행동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해 오며 살아왔다. 많은 자들이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힘의 논리 앞에 맥없이 당해야만 했을 것이다. 난 그들에게 참회와 징벌보다는, 자신들이 했던 힘의 차이를 그대로 맛보게 해 주었다.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입안에서는 구정물 같은 쓴 물이 맴돌았다. 난 바닥을 향해 그것들을 내뱉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통장과 그들에게서 천천히 멀어졌다. 할 일이 많았고, 시간은 부족했다. 난 서둘러 김호철을 찾으며 그와 같은 처지의 주민들을 전부 모이게 했다.

* * *

‘다 모였어요!’

김호철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그가 사람들을 모으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1시간 20분. 사람 몇 명 모으는 것이 뭐 그렇게 오래 걸리냐 하겠지만, 파벌에 쫓겨난 주민들이 이곳저곳으로 숨어들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노인과 함께 김호철이 사람들을 모아두었다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한 명 한 명 세본 결과 총인원은 30명이었다. 김호철이 말하길 반절도 남지 않은 숫자라고 하는데, 내 기준에는 생각보다 인원이 많았다. 어떤 파벌에도 들지 못하고 자신들이 살던 아파트에서 숨어 지내야 했던 그들. 그들은 마치 난민과 같은 모습을 하고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음식을 먹지 못해 깡말랐으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노인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얼마 못 걸어가, 이 사람들.’

그 말은 이 난민들을 버리고 가자는 냉정한 소리가 아니었다. 자,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지금 시각은 오후 1시 30분. 에덴으로 가는 시간은 넉넉했지만, 이들이 그곳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중간에 낙오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추위와 굶주림에 아사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몰랐다.

난 한숨을 푹 내쉬었고 일행들을 향해 베이스캠프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마치 키를 잃은 배 위에 안착한 기분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