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구두 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러 아파트 단지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높은 굽에 구두, 깨끗한 옷과 치마. 심지어 얼굴에는 화장까지 하고 있다. 불과 30m 거리에 사람들과는 극명하게 비교된다. 하지만 그 여자는 마치 TV 안의 사람들을 구경하기라도 하듯 무심하게 복도를 지나쳐간다. 그래,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다.
복도를 지나간 여자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노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시체를 보며 그동안 참고 있었던 씁쓸한 침을 조용히 뱉었다. 일행들의 표정들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난 그녀를 쫓아가 따지기보다는, 주변 분위기를 읽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익숙함은 짓눌린 두려움에서 나는 고약한 지린내였다. 드럼통 앞에 모여 있는 주민들은 저 여자가 지나가자 황급히 입을 다물고 눈을 깔았다. 뭉친 증오가 여자를 향해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하지만 각인된 두려움 때문인지 그 증오는 조용히 일렁이기만 할 뿐 절대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난 불과 1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아파트 단지의 분위기와 상황을 빠르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시발……. 개 같은 년…….’
우리를 안내해 준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이를 악물었다. 보아하니 이 앳된 남자도 그녀를 익히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화를 삼키는 이 남자는 드럼통 앞에 모여 있는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 꼭 겁먹은 강아지의 모습이었다.
입으로는 살벌한 욕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그 소리가 어찌나 작은지 저 지나가는 옅은 바람조차 욕설을 파묻고 감춰 버린다. 그 욕설이 저 여자에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심한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두려움에 떨리는 눈빛은 갈 길을 잃었고, 증오는 표출되지 못해 입김처럼 흩어진다. 내 입에서는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지만, 많은 것을 묻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알아내고 싶었던 한 가지를 그에게 물었다.
‘저 여자, 이름이 뭡니까?’
‘네?’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못 물어볼 걸 물어봤나? 마치 말하지 말아야 할 단어를 꺼내기라도 한 듯 남자는 기겁하며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확신했는지, 나에게 다가와 입술 위에 조용히 검지를 올려둔다. 조용히 하라고? 어, 알았어. 난 일단 입을 다물고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를 살펴봤다. 그는 우리의 역량을 살피기라도 하는지 장비와 얼굴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나는 남자에게 보란 듯이 총을 들어 올렸다. 하나같이 꼼꼼하게 손질한 진짜 총기들이다. 보여? 우리 이런 사람들이야. 이미 저 여자한테 한 방 먹인 적 있으니까, 겁먹지 말고 말해 봐. 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요구가 묻어나는 눈빛을 남자에게 보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들고 있는 총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고, 입술을 조용히 떨기 시작한다. 얼굴에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며, 목으로는 연신 침을 삼켜 들어간다. 한겨울,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고민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자는 1분 정도가 지나자 입을 열었다.
‘……저희 집으로 잠시 가실래요?’
원래는 아파트 주요 인원들이 모여 있는 관리사무소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꺼낼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나와 우리 일행들을 자신의 주거지로 초대했다. 나는 많지 않은 시간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뭔가를 애원하고 도움을 청하는 듯한 그의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고,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박대박을 불렀다.
‘주변에 적당히 자리 잡고 계세요.’
2팀은 언제든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난 그런 2팀에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두라는 지시를 했고, 박대박은 군말 없이 수용하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저 남자의 거주지로는 나와 노인만이 가게 될 것이다. 그 외 나머지 일행들은 박대박을 따라 시야가 탁 트인 이 근처에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다. 그렇게 지시한 나는 총을 뒤로 메고 남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남자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계단을 지나 2층 구석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2층 복도에는 강제로 열린 흔적이 보이는 현관문들과 더러운 오물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느껴지는 인기척들은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남자는 현관문을 조용히 열며 궁색한 변명을 내뱉는다.
‘고층은 추워서 아무도 안 살아요. 그나마 이쪽이 따뜻해서…….’
남자는 들어오라는 듯 현관문을 열고 우리를 바라봤다. 그러자 남자 뒤에 있던 아이는 익숙한 듯 집 안으로 들어갔고, 신발도 벗지도 않은 채 거실을 가로질렀다. 현관문을 열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조금 훈훈한 공기가 얼굴을 치고 지나간다. 자세히 보니 반쯤 열어 둔 베란다에는 아까 단지 앞에서 본 드럼통이 있었고, 그 안에는 질 나쁜 땔감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차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당장 병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환경이 나빴다. 여태 멀쩡하게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인 청결도와 추위. 그리고 물조차 부족한지 한곳에는 더러운 물이 담긴 페트병들이 소중하게 감춰져 있었다. 남자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고, 그나마 깨끗한 곳에 신문지를 깔아 주었다. 나와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괜찮다는 듯 자리에 앉는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앉아만 있었고, 아이는 낯선 우리가 아직도 무서운지 저 멀리 한쪽 방에 숨어 이곳을 훔쳐보고 있었다.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노인이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흔들자 아이의 눈빛이 흔들렸고, 이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침을 삼키기 시작한다. 난 그런 와중에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김지영, 그 여자 이름입니다. 원래 아파트 사람은 아닌데…….’
‘그 여자 말고 당신 이름이요.’
난 남자의 말을 끊고 다시 한 번 정정했다. 난 그 여자의 이름을 알고 싶어 따라왔지만, 그보다 먼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부터 알고 싶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앳돼 보이는 얼굴에 큰 눈, 참 겁 많고 순진하게도 생겼다. 그는 한동안 눈을 끔뻑이다가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다시 고개를 숙인다.
‘호철이요……. 김호철.’
그는 자신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고, 그 순간 옆에서 노인이 웃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서 우리를 훔쳐보던 아이가 어느새 이곳으로 달려와 노인의 양반다리 위에 앉아 있었다. 결국, 간식의 유혹에 넘어간 걸까? 다람쥐처럼 앉아 초콜릿을 야금야금 먹는 아이. 그런 아이를 노인은 손녀 보듯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맛있어? 허허, 이제야 좀 애 같네.’
아니, 아이는 음식이 아닌 사람에게 굶주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치 사람의 체온을 나눠 받기라도 하듯, 그리고 그간 받았던 상처를 투정 부리기라도 하듯. 아이는 오늘 처음 보는 노인에게 붙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어린아이만큼 세상을 순수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짓궂기는 해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노인을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다.
보기 좋은 광경이다. 워낙 애들과 잘 어울려 주는 노인이었기에 딱딱했던 분위기는 금세 사르륵 녹아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를 다시 한 번 부르며 원래 이곳으로 찾아온 목적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 김지영이라고 했나? 난 그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아파트 단지의 상황을 알고 싶었다.
남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목을 풀더니 서둘러 일어나 현관문과 베란다 문을 닫아 버렸다. 거의 강박증과 비슷해 보이는 행동. 남자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조합한 커튼까지 치고는 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난 그런 남자를 말리지 않고 조용히 손전등을 꺼내 들어 방 한가운데를 밝혔다. 자, 이제 더는 기다리기 지친다. 난 말해 보라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 * *
커튼이 열리고 집안에 고여 있던 묵은 감정들이 밖으로 흩어져나간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고, 시간은 한 시간 넘게 흘렀다. 10분 정도면 끝날 이야기였지만, 워낙 쌓인 게 많은 남자가 감정과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난 그런 쓸데없는 푸념까지 전부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이 남자…… 꼭 고시원에 갇혀 살았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입안이 몹시 씁쓸해졌다.
이 아파트 단지도 처음에는 모두가 협력하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나누고, 추우면 서로가 체온을 빌린다. 부족하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생존자들은 잘만 버티고 있으면 곧 구조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책과 같이 마음대로 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소소한 행복과 희망이 유지되던 이 작은 사회는 현실이라는 역풍을 맞아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시작된 외부 인원의 유입. 초기, 착하기만 했던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깨끗한 물이 아무리 많아도 밖에서 들어온 쓰레기 한 더미면 그 물은 구정물이 돼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이상적인 사회도 똑같았다.
외부 인원의 유입은 어느 순간부터 파벌을 만들게 했고, 사람들을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알 수 없는 루트로 들어온 술들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희망이 보이는 길을 완전히 외면하게 했다. 싸움과 절망, 그리고 그 와중에 피어나는 더러운 욕망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지영. 그 여자가 있었다.
김지영이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했든 여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김지영이라는 이름조차 실명인지 모르는 비밀스러운 여자. 하지만 그 여자의 권모술수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 여자가 들여온 술과 유사 마약들은 사람들을 욕망의 노예로 만들었고, 나중 가서는 식량을 이용한 고리대금과 성매매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으며, 아파트 단지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마냥 참기만 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꾹꾹 참고 있던 화는 결국 어떤 모종의 일로 인해 터지고 말았고, 주민들은 모두가 모여 김지영에게 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들은 목소리를 높이는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고, 결국 그 폭력 앞에 굴한 주민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김호철이 말하길, 그날 주민들을 폭행한 남자들은 외부에서 유입되어 파벌을 만든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고만 생각한 그 사람들도 다 김지영과 똑같은 공범이었던 것이다. 아무런 고민 없이 불쌍한 사람들을 받아 주었던 아파트 주민들은 뻐꾸기 새끼에게 내몰린 아기 새처럼 자신의 둥지에서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개판일 줄은 몰랐는데.’
노인은 잠이든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 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노인의 입에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이 걸려 있었으며, 내 입가에도 그와 비슷한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 서류로 봤던 정보와는 완전히 다른 실상이었다. 난 생생한 증언들을 들으며 그간 봐 왔던 풍경들이 끝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재들과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 이곳은 이미 상황이 끝나있는 쓰레기 지역이었다.
‘변종이고 뭐고, 데려갈 사람만 챙기고 튀자.’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노인답게 역시 거침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도 그와 비슷했기에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뭐? 변종을 사냥? 누구 좋으라고? 인간성을 잃은 쓰레기들은 변종한테 다 잡아먹혀야 한다. 내가 총을 잡으며 일어나는데, 그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김호철이 나에게 말했다.
‘……저희 같은 사람들도 데려가 주시나요? 왜요?’
그가 모든 걸 털어낼 때, 나는 이미 임무의 본질을 이야기해 줬다. 우리의 본래 목적. 그것은 바로 빠져나가길 원하는 주민들을 구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변했으니 피해를 당한 아파트 주민 전부를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그것이 단체장이 원하는 것이고, 나도 마음이 후련한 결정일 테니까. 하지만 김호철은 ‘왜?’ 라는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의 대화에 아이가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더러운 손가락을 입에 물며 우리를 바라본다. 난 그 눈동자와 잠시 마주하며 김호철의 물음을 곰곰 하게 생각해 봤다. 그것은 애원이 아니라 순수한 의문이었다. ‘왜 자신들을 데려가 주는 거죠?’ 난 그 처절한 물음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김호철은 바짓단에 손을 닦으며 중얼거린다.
‘저……. 가진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요. 그런데 왜 데려가 주시는 거예요?’
예전 웰빙 마트로 들어갈 때 노인이 해 주었던 개미 이야기가 생각났다. 문득 솟아난 기억의 바다 위에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고, 당장 눈앞에 있기라도 하듯 그때 해 주었던 말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개미는 턱이 약해 돌을 옮기지 못하고, 또 어떤 개미는 몸이 작아 싸우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단체를 유지하고 서로가 협력하며 살아간다. 그래, 마치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우며 살아가듯 말이다.
‘괜찮아요.’
‘네?’
뜬금없는 대답에 김호철은 잘 못 들었다는 듯 반문했다. 하지만 난 말 없이 걸어가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감지 못해 엉겨 붙은 머리와 더러운 옷들. 그리고 땟물이 가득한 얼굴에는 미세한 눈물 자국이 보였다. 아무 표정이 없던 아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밤만 되면 남몰래 울음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다 괜찮으니까, 걱정 마요.’
김호철과 아이, 그리고 모두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다 괜찮으니까 이제 걱정 마요.’ 나는 항상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이 말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위선적이지 않기 위해, 또 한 번 내 마음을 속이지 않기 위해. 난 오늘도 그렇게 말하며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방안은 한동안 침묵으로 가득했고,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침묵을 깨는 소리가 베란다 너머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
사람이 내는 고함이다. 여러 사람이 내뱉는 거로 보아 우리가 없는 사이에 작은 사단이 일어난 모양이다. 넋을 잃고 있던 김호철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거렸고, 아이는 노인의 뒤로 쪼르르 달려가 숨는다. 그리고 노인은 갑자기 들려온 고함에 얼굴을 굳히며 총을 들었고, 노인과 마찬가지로 총을 든 나는 황급히 베란다로 달려가 밖을 바라보았다.
밖을 바라보자 우리 일행들이 처음 보는 무리와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 형사는 그답지 않게 소리를 내질렀으며, 겁 많던 용팔이는 가장 앞에 서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큰일이다. 상대 쪽이 날붙이로 보이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무리 전투경험이 많은 일행들이라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난전이 벌어진다면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모두가 무기를 꺼내 들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고, 난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몸을 움직여 행동하기로 했다.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소총을 재빨리 노인에게 넘겼다. 그리고 홀더에서 권총을 꺼낸 다음에 망설임 없이 베란다를 넘어 1층으로 뛰어내렸다.
2층에서 뛰어내린 나는 수없이 연습한 낙법을 펼치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뒤에선 노인이 나를 황급히 부르는 소리와 함께 왜 여기서 뛰어내리냐는 잔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모든 시선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용팔이는 매섭게 노려보던 눈을 지우며 나를 불렀고, 모든 일행들은 이제야 안심이라는 얼굴로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저쪽 무리에서는 아직도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며 나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시부랄 잡것들이……. 넌 또 뭐야!’
따닥. 따딱. 따닥.
내가 뽑아 든 권총에선 총 3번의 화염이 퍼져 나왔다. 목표는 허공이 아닌 저놈들이 밟고 있는 바닥. 총알이 박혀 든 바닥은 눈과 함께 콘크리트가 터져 나왔으며, 위협적인 소리를 빽빽 내지른다. 욕설을 내뱉은 남자는 날아오는 총알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박는다. 그 주변에 있는 무리들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미, 미친……. 미친놈…….’
총을 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에게 이렇게 대한 미친놈은 단 한 명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난 오늘 이놈들에게 알려 주어야 했다. 내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미친놈이란 걸. 화약 연기가 솔솔 피어나오는 권총을 다시 홀더에 넣자 찬바람이 우리 사이를 휩쓸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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