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흩어진 입김 사이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치 기나긴 숲을 지나 어두운 늪지대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우리가 근처 길을 지나자 구름은 기다렸다는 듯 밝은 햇살을 감췄고 차가운 한기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익숙한 기분이다. 잠재적인 위험을 직면한 느낌이 딱 이랬다. 하지만 내 발은 겁먹기 보다는 언제나 그렇듯 앞을 향해 움직였다.
난 흐려진 하늘과 매서운 강풍이 붙잡는 저항을 밀어냈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천천히 아파트 단지로 접근했다. 우리가 걸음을 옮길수록 거리에 있는 가로수가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끝에는 차들이 들어가는 아파트 단지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x 캐슬, 너무나 익숙한 모 기업의 상표와 단지 이름이다. 하지만 그 상표 위에 걸려있는 괴물 놈의 시체는 결코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노인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꼴이 영 뭣같네. 다 죽은 거 아니야?’
우리가 이곳까지 접근했음에도 쉘터에선 별다른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초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입에서는 헛웃음 같은 조소가 터져 나왔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 그래. 이곳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조잡한 모래성 같았다. 난 일행들에게 주변 경계를 지시하며 천천히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나름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게 바리케이드인지, 아니면 그냥 쓰레기 더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최근에 손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그곳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부수고 지나갈 수 있는 자동문에 불과했다. 난 그 형식적인 장애물 앞에서 한동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설마 바리케이드라고 내버려 둔 걸까? 내가 부수고 지나가면 혹시 침입자가 되는 걸까?
벌써 10분이 지났는데,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은테 안경 말로는 우리가 출발하기 전 통보를 해 뒀다고 하는데, 저쪽에선 우리를 발견조차 못한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소리를 내 보고 손을 흔들어 봐도 아파트 단지에서는 흩날리는 바람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용팔이가 기다리다 지쳤는지 바리케이드를 발로 차며 묻는다.
‘그냥 들어갈까요?’
‘아서라, 괜히 소란 일으키지 말고.’
표정이 좋지 않은 노인이 용팔이를 말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 그 누구보다 깽판을 잘 놓는 노인이다. 하지만 임무의 본질을 알고 있는 노인은 애써 참으며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춥다. 이 추운 날씨에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체력과 체온이 빠르게 사라져 간다. 일행들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내 인내심은 한계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쓰레기 더미 같은 바리케이드에서 앳된 목소리가 울려왔다.
‘누, 누구야! 손들어!’
일찍도 나온다, 시부랄. 20분이 지나서야 나오는 경비 앞에 노인이 찰지게 욕설을 내뱉는다. 얼굴은 당장이라도 고함을 지를 듯이 붉었지만 임무를 위해 애써 참는 게 보였다. 잠시 뒤 바리케이드 너머로 누군가 어설프게 걸어왔고, 난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잡고 있는 총을 조용히 내렸다. 그리고 입으로는 준비해 놨던 대사를 꺼내 들었다.
‘에덴에서 왔습니다. 지원 병력이요.’
‘에, 에덴이요? 에덴에서 오신 분들이세요?’
반말은 금세 존댓말로 바뀌었다. 바리케이드를 넘어온 경비는 끽해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남자였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흔들리는 눈동자는 상당히 겁을 먹은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남자의 옷깃을 꾹 잡고 같이 걸어오는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그 여자 아이와 겁에 질린 남학생을 보자 내 입안은 씁쓸해졌고 일행들의 경계는 한순간 풀려 버렸다. 그리고 어이없는 웃음을 달고 있던 노인이 그 둘을 향해 물었다.
‘어른들은 어디 가셨냐?’
남자애는 조잡해 보이는 창을 들고 있었다. 그 창은 내가 초창기에 들고 다니는 식칼 창보다 허술해 보였으며 놈들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못 죽일 만큼 조잡했다. 하지만 이 두 명은 입구를 지키는 경비마냥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런 애들을 경비로 쓰는 건가? 안쪽이 얼마나 개판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남자는 낯선 노인의 물음 앞에 잠시 고민했지만 곧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쉬고 계세요…….’
거짓말 마라, 얼굴에는 분명 분함과 억울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마 이 남자는 안쪽 상황을 최대한 순화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 거다.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고 난 내려 두었던 총을 꺼내 들며 일행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예의상 문지기를 만났으니 우리 임무를 위해 안쪽으로 진입하면 될 것이다.
‘들어가서 이야기 합시다.’
‘네? 아, 네…….’
남자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담겼다. 자신이 열어도 되는 걸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인내심의 한계가 온 나는 그런 망설임조차 받아줄 시간이 없었다. 바리케이드라고 말하는 쓰레기더미를 발로 밟자 고약한 냄새와 먼지가 풍긴다. 난 성큼성큼 그 더미를 넘어 입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일행들의 발소리가 들려왔고, 난 체감상 깊은 늪처럼 보이는 단지를 시야에 담았다.
‘동생이야?’
더미를 넘자마자 노인이 시선을 돌려 남자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남자 옆에 달라붙어 있는 아이는 코알라처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우리를 무서워하는 게 보였지만 그 무서운 와중에도 강한 호기심이 드는지 힐끗힐끗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사이가 좋은 남매인걸까? 노인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모르는 애에요.’
‘모르는 애를 왜 달고 다녀?’
노인이 묘한 눈동자로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 눈빛에는 의중을 알아보려는 날카로운 탐지가 담겨 있었다. 모르는 애 치고는 아이가 남자를 잘 따른다. 꼭 남매처럼 말이다. 노인의 물음에 남자는 다시 한 번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조심히 손을 내려 기름으로 떡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는 애틋함과 짙은 동질감이 묻어 있었다.
‘…….앞 동 사는 애인데, 부모가 버리고 갔더라고요. 화단에 혼자 있길래 그냥 저번 주부터 데리고 다니고 있어요. 애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엄청 착해요.’
남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 건조한 어투로 대답했지만 그 행동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깡 말라 있었고 오랫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못했는지 혈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과 아무 연관이 없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추위와 세상으로부터 보호를 해 주고 있었다. 그래, 바보 멍청이 호구. 제 죽을 길을 찾아가는 송장행 예비 시체였다.
‘자, 사탕 먹어라.’
하지만 그 예비시체에게 사탕을 건네는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노인은 아까와 달리 푸근해진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아이는 깜짝 놀라며 남자의 뒤로 숨는다. 하지만 노인의 손 위에 올려진 게 사탕인 것을 아는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사탕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사, 사탕…….’
그리고 아이 만큼이나 격한 반응을 보인 건 그 옆에 서 있던 남자였다. 남자는 사탕을 보자마자 갈구하는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더니 이내 연신 침을 삼키며 입술을 떨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와 동시에 내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고 가방을 들고 있는 손은 바삐 움직였다. 난 챙겨온 간식들을 꺼내며 남자에게 말했다.
‘좀 드세요.’
‘감사합니다!’
먹을 것 앞에선 경계고 망설임이고 전부 부질없다. 아까부터 소심한 모습을 보여 주던 남자는 한순간 돌변해 내 손위에 간식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먹을 것을 입에 쑤셔 넣는 와중에도 열심히 포장지를 까며 옆에 있는 아이를 챙기고 있었다. 익숙함과 본능에서 나오는 그 행동에는 1%의 가식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단체장 말이 맞았네. 내 옆을 지나가는 노인이 조용히 중얼거렸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 온 보람 하나는 발견한 것 같다. 난 내려놓았던 총을 다시 손에 들며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단지는 종말 전 가지고 있던 모습을 완전히 숨겼고 꼭, 폐건물 같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겨왔다.
‘책임자는 어디 삽니까?’
난 입안에 음식을 구겨 넣는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이곳에 방문한 손님이 아니라 엄연히 에덴을 대표해서 온 지원 병력이다. 적어도 책임자가 와서 우리를 안내하고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게 수순이었다. 하지만 책임자는커녕 경비 임무를 정식으로 받은 건지 의심이 되는 남자만 이곳에 있었다. 남자는 급히 에너지 바를 삼키며 말했다.
‘그……. 책임자 같은 건 없는데요. 최근에 관리 사무소에 모여 있는 걸 본거 같아요. 모셔다 드릴까요?’
이젠 어이없어할 힘도 없었다. 난 그렇게 해 달라고 말하며 아까보다 경계가 줄어든 남자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비싼 분양가를 자랑할 만큼 편의시설들이 많이 조성되어있는 곳이었다. 거리 한가운데는 사람들이 산책을 할 공원과 운동기구들이 있었으며 예쁘게 자란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다만, 지금은 모두 황폐화되었고 공원에는 쓰레기와 이상한 오물들만이 널려 있을 뿐이다. 가로수는 땔감으로 쓰기 위해 모두 잘려 나갔으며, 그 자리는 새까만 재들과 연기가 풀풀 새어 나오는 드럼통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들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아파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왠지,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사람이 얼마나 살고 있습니까?’
난 커튼 사이로 보이는 시선에서 눈을 떼고 앞서 걸어가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걸음이 느려지는 아이를 끌어안고 뒷머리를 긁적였고, 떨어지는 비듬들을 손으로 탁탁 털어낸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는 것이, 대답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모양. 한 2분정도가 지나자 그는 결국 포기했는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분위기가 그런 곳이라…….’
모여 있지만 협력은 하지 않는다. 딱 종말 전 아파트 이웃의 개념과 똑같았다. 그저 지나가면 아, 사람이 있구나. 라고 생각할 뿐 우리에게 이웃이라는 개념은 이미 희미해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현상은 종말이 찾아와도 절대 변하지 않았다. 각자가 자신의 공간만을 지키고, 서로에게는 무관심을 유지한다. 그것이 모여 있되 모이지 않는 사람들의 아파트였다.
저 뒤에서 용팔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형님……. 여기 시체 있어요…….’
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용팔이는 넘어져 있었고 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체 앞에 기겁하며 뒤로 기어간다. 시체다. 아무리 죽음이 가깝다지만 숨을 쉬고 있는 인간으로서 시체를 보면 놀라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앞서 걸어가는 남자는 우리를 향해 뒤돌아보며 당부했다.
‘밟지 않게, 조심하세요.’
그것이 끝이었다. 시체를 치우자, 혹은 망자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자. 그런 인간적인 충고는 전혀 없었다. 그저 더러운 개똥을 밟지 말라는 어투로 남자는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눈 속에 파묻힌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눈들을 치우며 이곳에 죽어있는 시체의 상태를 확인했다.
시체는 총 3구, 외부의 공격으로 죽은 시체는 아닌지 상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온몸은 깡말라 있었고, 마치 잠이든 듯 편안한 얼굴로 죽은 시체들. 난 그 모습을 보자마자 사인을 확실할 수 있었다. 그래, 굶주리고 추워서 죽어 버린 거다. 그리고 시체는 사후에 옷이 벗겨졌는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난방을 위해 생존자들이 옷가지들을 벗겨간 모양이다.
노인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망자에 대한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토록 쉽게 죽을 만큼 가벼운 목숨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명복정도는 빌어줄 시간은 가져야 했다. 일행들은 한동안 그곳에 서서 눈으로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사방에 널린 게 눈이었기에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 눈을 파면 팔수록……. 시체가 발견되기 시작했고 곧 그 작업은 중단되었다.
‘……헛수고하지 말고 빨리 오세요. 얼마나 죽었는지도 몰라요.’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담담한 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적응한 것이지 이 광경 앞에 떳떳한 것은 아니었다. 지옥, 세기말. 모든 단어를 총합해야 내 기분을 대변해 줄 것만 같았다.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묻은 눈을 탁탁 털어 내었다.
‘갑시다.’
난 아직도 넋이 빠져 있는 일행들을 부르며 총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일행들에게 명령이라는 밧줄을 던지며 자리에서 움직이게 만들었다. 머리가 멍하다. 그간 격한 불꽃을 봐 왔다면, 오늘은 그 불에 태워진 하얀색 재들을 본 기분이었다. 하지만 난 마치 기계처럼 발을 움직여 앞서 걸어가는 남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조성된 공원을 지나자 차들이 빼곡한 주차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 남자를 제외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마치 노숙자처럼 꾀죄죄한 모습으로 드럼통 안에 있는 불을 쬐고 있었다. 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생존자들. 아니, 이미 그들의 눈은 생존자가 아닌 산송장처럼 죽어 있었다.
‘동윤아.’
옆에서 노인이 나를 조심히 부른다. 그와 동시에 내 시선과 몸은 재빠르게 노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처럼 쳐진 경계가 있었고 그 너머로는 주차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103동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1층 복도에는 한번 본 적이 있는 여자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새것처럼 보이는 비싼 롱패딩. 다른 생존자들과 비교되는 털모자와 목도리는 한순간 모든 생존자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물론 그 시선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었고 난 그 여자가 누군 인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에덴으로 찾아왔던 그 여자.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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