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누군가 시침을 거세게 밀기라도 하는지,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낮에는 몸을 한계까지 몰아넣는 훈련을 지속하고, 밤에는 촛불 앞에서 장비를 점검하며 하루를 보냈다. 왼쪽 눈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완치 판정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적응해야 했다.
처음에는 기시감과 이물감을 많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좁아진 시야가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왼쪽 눈 자체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변화에 적응했다고 해야 할까? 불편함은 사라지고, 평소처럼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김 철과 노인에게 적응력이 좋다는 칭찬을 수십 번 들을 때쯤, 나는 강 형사에게 권총 사격을 지도받을 수 있었다.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는 있었다. 일행들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겠다는 내 고집을 묵묵히 따라 줬으며, 고되고 힘든 훈련을 버텨 주었다. 고통을 견딘 팀워크는 불 속에 넣어둔 도자기처럼 견고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하나의 유기체가 탄생했을 때, 우리는 같이 생각하고 같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더, 더, 더! 손가락에 생긴 물집 위에 또 다른 물집이 잡히고, 진물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온다. 근육은 비명을 지르며 내 몸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입에선 비명과 같은 고함이 나온다. 심장은 한계라고 말하지만, 난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아프고, 상처 사이로 또 피가 새어 나온다. 하지만, 인내와 집착이 그 상처를 틀어막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난 전능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다. 파도가 언제 치는지 알 수 없는 나는 언제든지 조류 속에 몸을 던질 준비를 해야 한다. 내 한계를 알고 있다.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준비를 벽돌처럼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
하나 더! 하나 더! 내 머리는 강박증이 걸린 환자처럼 가쁘게 뛰어가는 카운터 다운이 차지했다. 용팔이가 내 옆에서 방을 동동 구르며 힘내라고 외쳤고, 사무실의 시선은 어느새 이쪽으로 몰려든다. 내 근육은 고통을 호소하며 경직된다. 머리는 손을 놓으라며 사정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뜯어먹었다.
입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고함이 터져 나왔고, 한계까지 도달한 근육이 또 다른 힘을 끌어올린다. 마치 마른오징어를 쥐어짜듯 내 온전한 정신은 한계의 정수를 쥐어짜낸다. 그리고 용팔이가 소리를 지르며 카운터를 하나 올릴 때쯤, 난 망설임 없이 철봉에서 손을 놓고 바닥에 넘어졌다. 용팔이가 웃음과 함께 신나 죽겠다는 듯 방방 뛰어온다.
‘형님! 형님, 신기록!’
용팔이가 말하길 턱걸이 신기록이란다. 체력장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내 한계에서 1을 추가한다. 너무나 보잘것없는 한 방울이지만, 그 방울을 모이고 모여 크나큰 강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난 벽돌을 쌓는 마음처럼 계속해서 부딪히고 숫자를 추가했다. 머리에선 엔도르핀이 터지고, 고개를 숙이는 아드레날린은 기운이 빠져 집으로 돌아간다. 나보다 주변 일행들이 더 난리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느끼며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내일이 출발이야, 인마! 힘 빼지마.’
노인이 내 쪽으로 생수통 하나를 던져주고, 또 잔소리를 해 온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난 군소리 없이 생수를 받아들고 단숨에 비워 버렸다. 맞다, 하룻밤만 지나면 임무가 시작되는 이틀째 아침이었다. 체력보충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난 마치 훈련에 중독된 사람처럼 사무실로 기어와 다시 한 번 운동을 지속했다. 난 괜히 질문을 던져 화두를 바꿨다.
‘어때요? 총은 손에 좀 익어요?’
권총과 소음기를 선물 받은 우리는 단체장이 급하게 마련해 준 지하 주차장에서 한동안 사격 연습을 했었다. 백발백중, 뭐든지 잘 쏘고 잘 던지는 노인이었지만, 권총 사격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약한 모습을 보여 줬다. 다행히 어느 정도 소질이 있는 나는 일찍이 졸업하고 사무실로 왔지만, 영 소질이 없는 노인은 오늘 낮까지 강 형사에게 붙잡혀 있어야 했다.
묵직한 맛이 없어서 힘들다나? 물론 소총과 비교하면 화력이 약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뭐든지 척척 해내던 노인이 처음으로 어수룩한 모습을 보여 주자, 난 오랜만에 웃으며 노인을 놀릴 수가 있었다.
내 질문을 들은 노인은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007 배우처럼 사무실 한가운데를 걸어가더니 손 권총으로 나를 빵야 하고 쏴 버렸다.
그런 노인의 허리춤에는 권총이 없었다.
‘강 형사, 줘 버렸다.’
폼 나게 자세를 잡아놓고 노인의 입에서는 결국 포기 선언이 나왔다. 용팔이는 그게 웃겨 죽겠다는 듯 바닥을 신나게 굴렀고, 결국에는 노인에게 얻어맞고 말았다. 아무래도 노인은 본인이 쓰지 않는 게 효율적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은 강 형사에게 돌아갔고, 우리는 마지막 일정을 위해 사무실로 전부 모여 앉았다. 시간은 오후 4시, 이 회의가 끝나면 전부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것이다.
단체장이 준 변종의 정보는 잘게 쪼개진 로직 조각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는 되어있지만, 맞추기 전의 퍼즐과 같다고나 할까? 노인과 나는 어젯밤 잠까지 줄여가며 그 정보를 종합하고, 잘라 낼 건 과감하게 잘라 냈다.
워낙 중구난방 한 증언들까지 전부 모아놨기에 선별 작업에만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나는 그 정보를 종합해 낸 결론을 지금 앉아 있는 일행들에게 전해 주었다.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상상도도 한 번 그려봤는데, 노인이 무슨 귀신 사진을 그려놨냐며 바로 잔소리를 해 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행들의 사기를 위해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보내온 피해 보고는 대략 이랬다. 사망자 12명, 실종자 19명. 부상자는 당연히 없었고, 목격자는 3명이다. 이것이 이틀 전에 온 정보라고 생각해 본다면, 지금은 더 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생겼을 것이다. 우리가 이 사망 보고를 본 순간 든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망자 숫자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노인은 일행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좋은 놈이다.’
아마 사망자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다면, 나는 놈을 단순한 포식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망자는……, 내 기준에서는 분명히 많지 않았다. 변종은 인간을 개미 밟듯이 죽이는 강력한 포식자다. 말 그대로 마음만 먹으면, 100명이고 200명이고 학살이 가능한 규격 외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놈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아껴먹는 아이처럼 야성을 감추고 있었다.
주체 못 하는 본능과 이성의 차이였다. 배가 고파야 사냥을 시작하는 사자와 상어의 간만을 빼먹으며 유희를 즐기는 범고래의 차이. 놈은 생각과 사고를 할 줄 알고, 심지어 절제조차 할 줄 안다. 이 수많은 말과 단어를 종합해서 낸 결론을 결국 ‘위험하다’였다. 하지만 나와 노인은 일행들을 향해 두려워하고, 겁먹으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사냥꾼이야. 그놈 머리 꼭대기에서 놀 줄 알아야 해.’
벼랑 끝에 도착하면, 더는 도망갈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사이를 가로질러야 했다. 노인은 보란 듯이 대검을 뽑아 들었고, 내가 그려두었던 놈의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림 한가운데에 대검을 꽂아 넣으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종식했다.
* * *
날이 밝았고. 모든 일행들은 에덴의 정문으로 집결했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안개처럼 먹먹한 겨울의 햇살이 온몸을 어루만진다. 나는 신발 끈을 단단하게 동여매며 마지막 장비 점검을 마쳤다. 출발시간이 임박해 온다. 정확하게 5분 뒤 에덴의 정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난 스트레칭과 함께 느린 뜀박질을 하며 적당히 몸을 달구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쇼.’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은테 안경이 우리의 안녕을 빌어 주었다. 난 화답하며 작게 웃었고.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있어야 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나의 신경을 건드리고. 당돌한 거래를 해 보이던 그 여자. 그녀가 도움을 청해야 할 대표자 아니었나? 우리랑 같이 갈 거로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여자는 안 옵니까?’
내 물음에 은테 안경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여자는 오지 않는 걸까?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지? 내가 대답을 기다리며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자 저 멀리서 걸어오던 노인이 은테 안경 대신 대답했다.
‘어떤 놈이 면전에 칼을 던졌는데, 퍽이나 같이 가겠다?’
은테 안경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설적이긴 하지만 노인의 말이 정답인 모양이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무책임한 그녀의 태도는 또 한 번 아파트 단지에 대한 실망으로 찾아왔다. 난 혀를 쯔쯔 차며 바닥에 내려두었던 모자를 눌러썼고, 정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내 옆을 따라오던 은테 안경이 허탈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겁을 먹더군요. 어제 사람들을 데리고 먼저 가 버렸습니다. 길 안내를 좀 맡길까 했는데……. 죄송합니다.’
‘괜찮아. 우리는 내비 달고 다니잖아.’
노인이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두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길 안내를 받으며 돌아다녔다고 그러나. 내 주머니에 있는 지도와 사무실에 연결된 무전기 하나면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난 등에 메고 있던 총을 앞으로 꺼내 들고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일행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대열을 정하고 내 뒤에 서기 시작했다. 긴장과 오묘한 열기가 내 몸을 감싼다.
이제 무전기를 꺼내 들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출발선에 서자 모든 경비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정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수없이 드나들던 정문이지만, 이 장소는 매번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난 모자를 꾹 눌러쓰며 우리가 나가야 할 정문을 빠르게 통과했다.
[팀 채연, 팀 채연 출발했습니다.]
무전기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 * *
‘천천히 접근해, 천천히.’
노인이 앞으로 걸어가는 용팔이에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긴장된다. 그와 동시에 기대된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일행들은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지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구경하기 바빴다.
혹시 급박한 상황이냐고? 아니다, 우리는 그냥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에 연구소에서 나눠 준 변종 액체를 실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액체를 묻힌 채 실험대상이 되어야 하는 사람은 제비뽑기에서 걸린 용팔이였다.
‘영감님……. 나 진짜 무섭거든요.’
액체를 향수처럼 뿌리고 놈에게 접근하던 용팔이가 울상을 취하며 뒤를 돌아본다. 자식이 아까부터 걷다가 말고 엄살을 부리기 바쁘다. 그러자 노인은 당장 안 걸어가면 엉덩이를 뻥 차 주겠다는 듯 역정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짬은 똥구멍으로 먹었냐, 이놈아! 총은 장식이야? 빨리 걸어가!’
울상을 하며 가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던 용팔이는 노인이 역정을 내자 그제야 놈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변종 액체는 모두에게 뿌릴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니 최소한의 사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뽑을 수 있는 양을 알아야 했다. 거리는 60m. 간격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노인의 역정을 따라오던 놈이 용팔이를 발견했다.
옳지, 옳지! 노인이 박수를 치며 반응을 기다린다. 놈은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며 앞에 보이는 용팔이를 공격하기 위해 아가릴 쩍 벌렸다. 용팔이는 기겁하며 총을 들었고, 나도 몰려오는 아쉬움을 잠시 접어두며 총구를 들어 올렸다. 효과가 없는 걸까? 하지만 그 생각을 하는 동시에 놈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어?
수없이 많은 그놈들을 상대해 봤지만, 공격을 멈추는 놈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 그놈은 여태 봐 왔던 모든 규칙을 깨부수고, 특이한 행동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쩍 벌리던 아가리는 힘없이 닫히고, 몸체는 마치 방황하는 물고기처럼 동선을 이리저리 바꾼다. 그리고 내가 총구를 내림과 동시에 놈은 미친 듯이 뒤로 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망갔다, 그 미친 광기를 보여 주던 놈이 처음으로 도망간 것이다. 접근을 안 하는 줄만 알고 있던 우리는 놈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겁을 먹자 한동안 쇼크에 빠졌다. 하지만 그 쇼크도 잠시, 나는 시체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여 주는 변종 액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역시 공돌이랑 과학자들은 열심히 갈면 좋은 성과물을 가져다준다.
‘용팔아! 수고했다, 가자!’
용팔이를 부르는 노인은 유난히 기뻐 보였고, 내 얼굴에도 노인과 같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말해 뭐 하겠는가, 이 액체를 대량생산 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작은 병 하나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희망일지도 몰랐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를 밝혀줄 작은 촛불을 난 소중히 챙겨 넣었다.
일행들은 성공적인 실험 앞에 기쁘게 웃으며 떠들었고, 난 실험결과를 일기장에 정신없이 적기 시작했다. 놈이 어떤 반응을 보여 주었고, 범위는 어떠한지. 연구원들을 만나면 해 줄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저 멀리서 유일하게 불행한 용팔이가 터덜터덜 걸어온다. 얼굴을 보아하니 분명 삐져 있다.
‘진짜……. 씨…….’
용팔이의 입에서는 끊임없는 투덜거림이 튀어나왔다. 놈에게 접근하는 게 많이 무서웠던 모양인데, 위급한 순간에는 그렇게 잘 싸우던 놈이 꼭 이럴 때만 저런 엄살을 부린다. 난 한동안 용팔이의 투덜거림을 들어주며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접근하지 않으니 우리는 한결 편하게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다만, 혹시 모를 변종들의 습격을 대비해 사방이 탁 트인 도로만을 찾아 걸어 다녔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길수록 지도 위에 목적지는 점점 가까워진다.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도로 한가운데 앉아 주먹밥을 나눠 먹기도 했다. 그렇게 이동하기를 2시간,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 메마른 입술을 핥으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내가 내뱉은 입김이 하늘로 올라가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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