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강수련이 차려 준 아침 밥상을 열심히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앞치마를 매고 있던 강수련은 웃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고, 그곳에는 무언가를 한 아름 들고 있는 단체장과 은테 안경이 서 있었다.
‘어머, 단체장님! 어쩐 일이세요?’
강수련은 환하게 웃어 주며 그들은 반긴다. 단체장이 우리 숙소에는 어쩐 일이지? 아침부터 온 걸 보니, 새벽에 있었던 일 때문인 것 같았다. 단체장은 환하게 웃으면서 강수련에게 들고 온 선물들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이 먹을 간식부터 지금은 구하기 힘든 식재료들까지 다양했다. 강수련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동윤 씨랑 할아버님은 지금 식사하고 계시는데, 같이 드실래요?’
아이들은 등교하고 어른들은 각자의 일터로 출근했다. 숙소에는 오직 늦잠을 잔 나와 노인만이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강수련은 항상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단체장과 은테 안경을 아침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노인이 숟가락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린다.
‘노동청에 고발해 버린다.’
그 말에 막 숙소로 들어온 단체장은 소리 내서 웃었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처음은 망설이던 은테 안경도 단체장이 서슴없이 자리에 앉자 자신도 그 옆에 살며시 착석했다. 부엌에서 강수련이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이 둘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는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난 단체장과 은테 안경에 수저를 내밀며 물었다.
‘어제 그 여자는 뭡니까?’
내 물음에 단체장은 수저를 받아들며 씁쓸하게 웃었다. 본인이 원했던 상황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문전 박대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중간에 낀 입장에서 많이 곤란했을 그가 단호하게 축객령을 내려 준 것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단체장은 한숨을 훅 내뱉으며 어제 하지 못했던 자세한 이야기를 천천히 해 주었다.
에덴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쉘터는 총 3곳이 있다. 그마저도 한 곳은 이미 변종들에게 당했는지 연락 두절이고, 다른 곳은 우리가 어제께 구조를 해 주었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았다고 판단되는 쉘터. 우리가 준비가 끝나는 대로 향하려고 했던 곳이기도 한 그곳은 에덴보다는 못하지만, 꽤 규모가 거대한 곳이라고 알고 있다.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아파트 단지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대형 부락과 같은 곳이었다. 에덴이 단체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면, 그곳은 여러 단체들이 섞여 한 집단을 이룬 쉘터였다.
딱히 정해진 리더도 없었고, 법이나 질서 같은 기본적인 체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몇몇 사람들로 인해 자정작용 되고 있다고 하지만……. 어제 그 여자를 보니 그 쉘터도 결코 정상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노인식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미친년이었다.
에덴은 생존자들의 규합이라는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 쉘터와 관련해선 항상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쉘터들이 그랬듯 아파트 단지는 에덴과 합류하기를 거부했고, 모호한 포지션을 취하며 쭉 다른 노선을 탔다고 한다. 그렇게 계속 유지될 것만 같았던 그들과의 관계는 불과 일주일 전에 뒤바뀌고 말았다.
변종들이 풀려났다. 놈들을 막을 거대한 장벽이 없다면, 더는 살아남을 수 없는 도시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변종들로 인해 사달이 난 것은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였지, 한동안 계속해서 에덴을 향해 무전이 왔다고 한다.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꽤 피해가 있었을 걸로 추정되었다. 서로 견제만 하던 단체들이 처음으로 한곳에 뭉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그렇게 통합된 아파트 단지에서 고심 끝에 대표자로 보낸 사람이라고 단체장은 말했다.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변종을 상대하지 못한다. 잘난 척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나마 변종이라는 존재와 싸움이 성립하는 팀은 우리 구조대가 유일했다. 그 소문은 사람들 입을 통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고, 아파트 단지는 자연스럽게 구조대의 파견을 요청한 것이다. 극적인 순간에 성립한 협력과 결정. 모든 게 완벽했지만 딱 한 가지, 그 여자가 모든 걸 망쳐 버렸다.
‘근데, 거기는 원래 합류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식사를 끝낸 노인은 아이들이 먹는 간식 통에서 몰래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우리가 어제부터 궁금해하고 있던 사항을 나 대신 질문해 주었다. 휴식이 끝나면, 구조를 갈 계획이 아니었나? 지금 보니 처음 했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자 단체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미묘한 갈등과 걱정이 담겨 있는 게, 상당히 심란한 모양이었다.
‘의견 차이가 좀 심했나 봅니다. 통합되었다지만, 에덴으로 합류하자는 무리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무리로 의견의 충돌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참, 중간에 낀 우리 입장만 곤란해졌습니다. 구조를 하자니, 상대측에서 반대를 하고. 또 그냥 두자니……. 변종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으니까요.’
지금까지 살아남은 쉘터들의 특징은 많은 물자와 무기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반대를 하던 무리는 자신들의 힘인 무기와 물자를 에덴에게 고스란히 빼앗기는 걸 두려워한 모양이다.
욕망은 자연스럽게 기득권을 만들고, 어떨 때는 사람의 목숨보다 자신의 지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변종들의 공격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과연 그때가 돼서도 버티고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동윤 씨…….’
단체장은 밥을 먹다가 말고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았다. 이미 밥을 다 먹은 나와 노인은 조용히 커피를 타왔고, 가만히 앉아 단체장과 은테 안경을 바라보았다. 그냥 이런 말이나 해 주려고 온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단체장이라면 분명……. 그들을 도와주자고 말하겠지.
‘그 한 놈 죽인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난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는 단체장에게 먼저 화두를 던져 주었다. 마냥 사람을 도와주자는 단체장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였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게 그놈을 죽여도, 기득권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절대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다. 아니, 일이 나쁘게 흘러간다면, 아파트 단지와 척을 지게 될지도 몰랐다.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기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아니,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체장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지 심란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저도 한계가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곳에도 에덴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차마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요.’
‘눈치를 봐서 좀 빼 와달라?’
노인은 단체장의 속뜻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투척 실력만큼이나 날카로운 말을 던지며 단체장의 입을 다물게 했다.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 노골적이고 정확한 질문 앞에 단체장은 할 말을 잃었을 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자 은테 안경은 이 순간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아마 그곳에는 우리가 필요로 할 모든 정보가 적혀 있을 것이다. 변종의 정보부터 시작해서, 아파트 단지에 대한 정보까지.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우리에게 권유할 단체장이 절대 아니었다.
‘부담 가지지 마세요, 동윤 씨. 그저……. 부탁을 한 번 드려보는 겁니다.’
단체장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래, 그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구조팀에 대한 명령권까지 포기하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해 주었다. 그는 분명 부탁이라고 말했다. 내가 거절해도, 아니면 수락해도 상관없는 부탁. 난 이상하게 속이 간지럽다고 느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틀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이틀 뒤면 재정비가 완료될 것이다. 변종에 대한 정보까지 있는 이상, 철저하게 계획을 짠다면 놈을 ‘사냥’ 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첫 번째 구출 임무보다 쉬울지도 모르기에 난 선뜻 단체장의 부탁을 받아 주었다. ‘그곳에도 에덴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차마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요.’ 단체장의 그 말이 귓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래, 분명 있을 것이다. 다수에게 짓밟혀 입을 다물어야 하는 소수가.
‘감사합니다.’
단체장과 은테 안경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고, 밥이 들어 있는 그릇도 깔끔하게 비운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우리의 아침 식사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는 나와 노인도 사무실로 출근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적당하게 쉬고 가라는 말과 함께 숙소를 나서려고 했지만, 이제 막 코트를 입고 있던 단체장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동윤 씨, 어르신.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선물? 간혹 아이들 간식이나 식재료를 보내주는 단체장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이렇게 직접 주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노인과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단체장을 바라보았다. 그리자 그는 은테 안경에게 조용히 시선을 보냈고, 은테 안경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나와 노인에게 사각형으로 생긴 검은색 가방을 하나씩 넘겨 주었다.
‘권총?’
노인이 가방을 열자마자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가방에는 깔끔한 케이스 사이에 놓인 권총이 있었는데, 군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법한 B사의 대표적인 자동권총이었다. 말 그대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그 권총은 예비 탄창과 함께 소음기까지 갖춰진 하나의 패키지 같았고, 변종과 싸우게 될 나와 노인에게 알맞은 선물이었다.
‘저번에 일행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보다 고충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필요할까 싶어서 힘 좀 써 봤습니다.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마음에 드냐고? 당연한 소리다. 우리보다 빠른 변종들을 상대해야 하는 나로서는 소총의 긴 리치가 항상 걸림돌이 되었다. 빨리 총구를 돌리고 싶어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총구와 긴 견착 시간은 어제께와 같은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다. 그러나 권총이라면? 더군다나 소음기까지 달린 자동 권총이다. 단체장이 정말 힘 좀 쓴 모양이었다.
‘최고네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마워요.’
난 권총을 다시 케이스 안에 넣고, 단체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단체장은 오랜만에 도움이 되어 기쁜지 소리 내서 하하 웃었다. 나는 그의 거친 손을 잡았고, 그도 나의 거친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 훈훈한 광경은 노인이 끼어듦으로써 금방 깨져 버리고 말았다. 노인은 내 어깨를 잡고 다급히 말한다.
‘야, 너 근데 이거 쓸 줄 알아?’
난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영감님 쓸 줄 몰라요? 아는 줄 알고 받았는데.’
‘내가 007이냐? 권총을 쏴 봤게?’
단체장의 웃음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나중 가서는 완전한 무표정이 되어 버렸다.
* * *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채연이가 학교에서 배워 왔는지 저녁 내내 노래를 흥얼거리며 엎드려 있었다. 아이는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갈수록 그림 솜씨가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저번에 그려준 슈퍼맨이 목이 없는 3등신이었다면, 지금 그리는 슈퍼맨은 심지어 목이 생긴 5등신인 것이다. 아마 이대로 간다면 8등신의 슈퍼맨이 생기게 될 것이다. 기특한 녀석, 아무래도 채연이는 천재인 것 같다. 난 아무 말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채연아, 친구는 많이 생겼어?’
항상 일이 바빠 채연이를 챙기지 못하는 나다. 간혹 있는 이런 시간도 우리에게는 굉장히 소중했고, 둘 다 밤늦게 잠들고는 했다. 그리고 여태 실컷 놀다가 잠시 쉬고 있는 나는 문득 아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해졌다. 저번에 학예회를 갔을 때는 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 같았는데, 혹시 모르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힘차게 대답했다.
‘응!’
‘나쁜 친구는 없어? 싫은 친구는 없구?’
아픈 세상이다.
아픈 세상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새겨 주었다. 그 상처는 덧나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하고, 혹은 다시는 지우지 못할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어른들마저 이런데, 그것을 보고 배우는 아이들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중에 보살핌을 받으며 상처를 치유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세상을 미워하며 삐뚤어졌을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채연이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갠차나! 다 친구야!’
가장 처음에는 사람이 아닌, 캐릭터를 자주 그리던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에 대한 미움을 버린 아이는 큰 고래와 슈퍼맨을 그리기 시작했고, 곧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지금 채연이의 그림에 혼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 함께 모여서, 그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고.
그들은 굉장히 큰 고래 등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괜찮아. 모두 친구니까. 채연이는 도시가 아닌 밤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아이에게 남은 상흔은, 어쩌면 반짝반짝 빛나는 성흔이 되어 버린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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