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육중한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대부분 일행들은 병원에 있어야 할 내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노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손질하고 있던 총기를 내려놓고는 일행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하라고 말하며,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환자가 여길 왜 오고 그래?’
노인이 내 옆구리를 주먹으로 툭 치며 묻는다. 난 나도 모르게 흐르는 웃음을 머금고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한순간 조용해졌던 사무실은 내가 모자를 벗는 것과 동시에 다시 시끌벅적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털보는 바쁘게 무언가를 만들었고, 무전기 앞의 인원들은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토론을 벌인다. 그리고 전투 인원은 오늘도 어김없이 훈련을 지속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는 온통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와 숨으로 가득했다. 난 인위적인 난방만이 존재하던 병실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집, 내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에 몸을 감싸고 있는 긴장감이 사르르 풀림을 느낀다. 나는 모자를 다시 쓰고, 실실 웃고 있는 노인에게 농담을 건넸다.
‘내가 없으면 큰일 나잖아요.’
노인이 소리 내서 웃고는 다시 한 번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그는 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가 없으면 큰일 나기는 하지.’
웃기려고 했던 말인데 얼떨결에 칭찬을 받게 됐다. 아, 분위기가 어색하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노인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이야기의 화두를 바꿨다.
‘단체장이 뭐랍니까?’
언제나 그렇듯 항상 사건이 터지고, 우리는 그것을 해결한다. 하지만 어제 일은 사람을 구하라는 단체장의 지시를 미묘하게 어긴 행동이 분명했다. 나는 스스로가 떳떳하면서도 단체장의 지위를 인정하기에, 노인과 용팔이를 향해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하라고 일렀다. 노인도 그 점을 정확히 짚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준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기 권한이 아니라고 하더라.’
에덴에서 외부활동을 하는 인원은 구조대가 유일하다. 단체장의 대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양분하겠다는 말과 같았고, 그 양분한 권한을 우리에게 망설임 없이 주겠다는 사실상 양도선언과 비슷했다.
명령권과 선택권은 온전히 우리가 가진다. 그만큼 신뢰와 믿음이 두텁다는 소리에 다른 간부들은 차마 입조차 뻥긋거리지 못했다고 노인은 말했다.
좋다, 뒤탈이 없다는 소리에 난 만족이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원정을 통해 얻은 실적과 일행들의 실전경험을 생각해 보니, 내 눈가에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날이고, 기쁜 순간. 난 문득 든 생각을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우리 회식이라도 할까요?’
어엿한 팀 하나가 탄생했다. 출발하기 전 있었던 어색한 기류는 단 한 번의 실전으로 전부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박대박 무리와 기존 일행들이 빠르게 팀 속으로 녹아들었다.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팀 회식이었다. 내 말을 들은 노인은 지금껏 그걸 생각 못 했다는 듯 구미가 당긴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괜찮은데?’
괜찮은 아이디어다. 구조를 가야 할 마지막 쉘터는 자가 방어가 가능한 곳이고, 당분간은 여유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내 눈 상처와 이번 일로 손상된 장비를 생각해 본다면 당장 이번 주는 임무를 진행이 힘들다. 반강제적으로 휴식을 취하게 된 상황. 난 이왕 이렇게 쉬게 될 거, 제대로 파티를 열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술도 구하고, 맛있는 음식도 구하고, 모두 함께 모여서……. 난 잠시 행복한 상상에 젖었다.
‘계십니까!’
하지만 그 행복한 고민은 사무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깨지고 말았다. 그 큰소리에 모든 일행들은 움직임을 멈췄고, 노인은 귀찮은 듯 터덜터덜 문 앞으로 걸어가 육중한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문밖에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는 익숙한 사람이 추위에 덜덜 떨며 서 있었다.
급하게 왔는지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고, 그 땀에서는 따뜻한 김이 솔솔 피어오른다. 추위를 막을 점퍼조차 입고 있지 않은 그는 분명 병원에서 만났던 에덴의 연구원이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 통성명은 했던가? 무슨 용건이 있길래 우리 사무실을 찾아온 거지? 턱을 만지며 고민하고 있는데, 그 연구원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말했다.
‘아이고 춥다……. 병원에 계신 줄 알고 갔는데 없으셔서…….’
그는 나에게 용건이 있는 모양이다. 난 일단 추위에 떨고 있는 그를 전기난로 근처로 부르며 용팔이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주저 없이 이곳으로 걸어와 전기난로에 연신 손을 비비기 시작했고, 이내 용팔이가 타온 믹스커피를 소중하게 받아들었다. 한 1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양도해 주신 변종 시체 말입니다.’
아! 맞다, 하루가 워낙 정신없이 지나가 버려서 우리가 들고 왔던 변종 시체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은 내가 병원으로 끌려가는 순간에도 일러뒀던 지시를 잘 기억해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변종 시체가 없다고 했더니, 이미 연구소에다 보내진 모양. 난 이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사 인사는 괜찮습니다.’
변종 시체가 굉장히 유용한 도구인 것은 부정 못 하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안전지대를 만들어 주는 물건. 외부 활동이 잦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유통기한이 짧다는 것이다. 일반 시체보다 빨리 썩는지,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변종의 시체는 다시는 들고 다니기 싫은 끔찍한 물건이었다.
안전성과 신뢰성. 자주 쓸 도구가 필요로 하는 요소였다. 그래서 나는 연구원들에게 약간의 기대를 하고 시체를 양도한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 결과를 가지고 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남자는 단순히 감사 인사를 위해 온 것만은 아니라는 듯 가방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연구결과입니다.’
이렇게 빨리? 불과 하루가 흘렀다. 아니 하루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시간이다. 난 그 병을 받아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그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산송장처럼 보인다. 다크써클은 짙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밤을 지새우며 연구를 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니……. 천천히 하셔도 되는데, 괜찮으십니까?’
고맙기는 하지만 조금 미련할 정도로 바보 같은 행동이다. 우리의 휴식 주기가 꽤 길어진 만큼, 당장 오늘 주지 않아도 이상이 없을 터인데,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후다닥 일을 처리하고 결과를 만들어 왔다. 난 그가 내민 병을 조심히 살펴보았다. 변종에게서 채취했다고 주장하는 그 액체는 마치 물처럼 투명한 액체였다.
‘덕분에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동윤 씨.’
훗날 놈들의 근원을 파헤치는 연구가 진행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다. 코앞까지 위기가 찾아와 고비조차 넘기기 힘든데, 그 누가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 한단 말인가? 말 그대로 에덴은 근본적인 연구에는 아직 관심이 없었다. 매번 회의 때마다 나온다는 연구소의 존재 이유. 물론 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주의지만, 일부 간부들은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이들이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진행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중앙에 전달해야 했고, 그 기회를 우리가 만들어 준 것이다. 난 유리병을 소중하게 받아들며 피곤해 보이는 남자에게 수고 많았다는 감사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아침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실전에서 써 보시고 꼭 이야기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제 실전에서 써 보는 일만 남았다. 꼭 향수처럼 생긴 유리병은 분사할 수 있게 장치를 달아두었고, 그것을 옷이나 장소에 뿌려두면 된다고 남자는 말했다. 만약 효과가 있다면 에덴은 그놈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난 연구원 남자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며 먼저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일단 급한 대로 딱 한 병만 만들어 뒀다고 하는데……. 이것을 대량생산 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할 것이다. 야근과 철야가 계속될 그의 앞날에 잠깐 안녕을 빌어 주었고, 난 유리병을 소중하게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은 이미 바쁘게 움직이는 일행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난 그사이에 섞여 들어가 내 할 일을 시작했다.
* * *
아까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 은근슬쩍 회식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생각보다 격한 반응이 있었고, 회식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정된 시간이 당장 오늘 저녁. 회식 이야기를 꺼낸 나와 노인보다 주위 일행들이 더 신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을까? 진즉에 할 걸, 조금 후회가 된다.
회의 때 사용할 음식 걱정은 없었다. 이미 식권은 넘쳐날 만큼 있었고, 매번 주민들이 고마움을 표하며 우리 숙소 앞에 음식들을 두고 가기 때문이다. 내가 미안해서 간혹 식권으로 바꿔주기는 하지만, 그들은 한사코 거절하며 조용히 음식들을 두고 사라졌다.
음식을 두고 가는 사람들 중에는 도움을 준 유가족들도 있었고, 우리에게 구출 받은 생존자들도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노인은 절대 거절하지 말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으라며 나에게 말했다.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난 일단 노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형님! 술 마셔도 돼요?’
용팔이가 침을 꼴딱 삼키며 나에게 말했다. 술이라……. 워낙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이었기에 인간은 본능처럼 술을 찾았다. 술은 현실을 잊게 만들어 주고 닥쳐올 내일을 잠깐이나마 회피하게 만들어 준다. 어쩌면 아무것도 못 하는 발버둥 속에서 술만큼 우리에게 자비로운 돌파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것을 알기에 술을 금지했었다. 우리는 회피와 외면이 아닌 현실이라는 공간을 살아가야 했다. 사는 것이 목표고, 서로를 살리는 것이 숙원인 우리에게 판단력과 현실을 흐리게 만드는 술은 근원 속의 악과 같았고, 몸을 죽이는 독약과 비슷했다. 하지만 난 오늘만큼은 이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조금만 마실 자신 있어? 취하면 확 밖에다 버리고 온다.’
하지만 꼬장꼬장한 내 입은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약간의 음주를 허락해 주자 용팔이는 신나서 만세를 부르며 뛰어갔고, 저쪽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일행들도 기쁨의 비명을 내지른다. 박다혜와 최성수가 은근슬쩍 같이 환호성을 지르길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아 줬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회식을 할 예정을 세웠다. 우리는 오랜만에 숙소에 있을 일행들을 부르고, 박대박의 무리들도 다 불렀다.
* * *
노인이 내 잔에 조용히 술을 따라준다. 2명당 한 병씩 제공된 소주는 적은 듯싶으면서도 회식 분위기를 내기에는 충분했다. 학교와 일을 끝내고 온 우리 일행들도 다 부르고, 이번에 새로 합류한 박대박 무리까지 전부 불러왔다. 그러자 인원은 40명이 넘어갔고, 넓은 사무실은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곳곳에 놓인 촛불들이 은은하게 일렁인다. 말만 회식이지 그냥 편하게 모인 술자리였고, 전등이 없어서 그런지 눈과 정신이 편안했다. 나와 노인이 주도하는 게 아닌 만큼 각자 이야기가 통하는 무리끼리 모여, 조용히 술을 마시거나 간혹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술은 교류를 나누게 해 주고, 오늘만큼은 편하게 이야기를 하게 해 주었다.
소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나? 나와 노인은 조용히 자리를 피해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창문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시끌벅적한 무리에서 우리가 소외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일부러 자리를 피해 준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행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게, 오늘만큼은 아무런 눈치를 보지 않게 하도록 직장 상사는 조용히 사라져 줘야 한다. 노인이 술잔을 드는 나를 보며 잔소리한다.
‘너 술 마시면 안 되는데.’
‘한 잔만 마실게요.’
술을 따라 준 누군데? 내가 조용히 투덜거리자 노인은 또 좋다고 웃는다. 요즘은 날 놀리는 재미로 사시는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볼 때와는 다르게 많은 무뎌진 모습이시다. 그날 휴게소에서 나에게 총구를 들이밀던 눈빛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고생으로 피부도 상하고, 흰머리는 더 늘어났지만……. 항상 행복해 보이시는 얼굴이기에 난 안심이 되었다.
처음 거리를 떠돌 때가 생각났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쉼터에서 언제 공격을 당할까 걱정하던 날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저기서 얌전히 아이들과 자는 채연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하고 여기까지 군소리 없이 달려와 준 일행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난 입안에 술을 머금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수다 소리와 은은하게 일렁이는 촛불들. 밖은 어두웠지만, 하늘에는 빛나는 별들은 검은색 도화지에 수를 놓고 있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가슴이 뜨겁고, 눈가는 떨려온다. 먹먹함과 취기가 올라오자 나도 모르게 감정이 동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술잔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건조한 기쁨은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