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에덴까지 가는 길은 평탄하고 조용한 침묵의 길이었다. 우리는 슬프게 내리는 눈 사이를 뚫고, 너무나 익숙한 에덴의 문을 통과했다. 이미 보고를 받은 상태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료진들은 황급하게 이쪽으로 뛰어와 생존자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새롭게 창설된 경비대들은 치료를 받는 그들을 절도 있게 인솔했다.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그리고 난 톱니바퀴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자리를 차지했다.
‘이봐요, 선생님.’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인솔을 따르고 있는 정 선생을 불러 세웠고, 사무실에 남아도는 식권을 그에게 한가득 안겨 주었다. 그는 요즈음 보기 힘든 책임감 있고 착한 선생님이었다. 분명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부모 없는 아이들을 잘 이끌어 주고, 보살펴 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선생님에게 아주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정 선생은 멍하니 식권을 바라봤고, 난 밥과 기호식품을 받기 위해선 이 식권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거의 맨몸으로 오다시피 한 그들이 에덴에 정착하기 위해선 이 식권이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간단한 설명을 들은 정 선생은 고개를 푹 숙이며 눈물을 뚝뚝 흘렸고, 하염없이 감사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감사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마땅한 이에게 작은 보상을 해 준 것이니까.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등 뒤로 수많은 사람이 보내는 감사 인사가 하염없이 들려왔다. 난 뿌듯함을 느끼기보단 삶의 고귀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는 게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일까. 하염없이 이어지는 철학적인 질문과 고뇌 앞에 난 결국 고민하기를 포기했다. 생각만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픈 문제는 빨리 건너뛰고, 채연이를 만나고 싶었다.
‘어딜 가, 이 자식아!’
은근슬쩍 숙소로 돌아가려는 나를 노인이 낚아채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한쪽에서 환자를 살피고 있는 김 철을 부르며 내 왼쪽 눈 상태를 빨리 봐달라며 청한다. 김 철도 무엇보다 내 상처가 급한 것을 아는지 황급히 이쪽으로 뛰어왔고, 이내 내 눈 상태를 살핀다. 상처를 감고 있는 붕대가 순식간에 풀리며 후끈한 고통이 왼쪽 눈에서 느껴졌다.
자그마한 손전등을 내 눈에 비추며 상처를 살피는 김 철의 표정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하지만 난 애써 숨을 삼키며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결과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마음속으로 이미 포기를 하고 있었기에 김 철이 어떤 말을 해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지 발을 동동 구르며 김 철에게 묻는다.
‘저, 의사 선생님……. 괜찮을까요? 이놈이 무리를 좀 해서…….’
김 철은 침착하게 대답해 준다.
‘좀 무리가 아닌데요.’
의사란 사람들은 다 이런 걸까? 분명 내 왼쪽 얼굴에는 놈의 살벌한 손톱으로 뜯긴 상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철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침착하게 내 상처를 살피며 증세를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겠다는 말을 너무나 침착하게 했다.
난 얼떨결에 일행들에게 이끌려 병원으로 갔다. 그렇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박대박에게 전후처리를 부탁했고, 강 형사에게는 사무실에 가서 내부인원을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그 외 인원에게도 시킬 임무가 있었지만……. 울상을 하고 따라오는 용팔이 형제와 발을 동동 구르며 따라오는 김혜정을 보니 그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 하는 사이에 입원 절차가 끝났고, 응? 하는 사이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나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 철 때문에 반항조차 못 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채연이가 학교에서 나올 시간이었다. 만나야 하는데……. 데리러 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그렇게 말해 봐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귀를 막아 버린다.
주변에는 익숙한 일행들의 냄새가 가득하다. 내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자, 이상하게 눈이 감겼고, 모든 긴장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프다, 생각보다 아픈 상처였다. 난 마치 애처럼 누워 찌릿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내가 살아 있음을 자각했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철의 대답은 ‘괜찮으니까, 경과를 지켜보자.’ 이었다. 난 완전한 실명을 예상했었지만, 놈의 손톱은 운 좋게 내 안구는 피해간 모양이었고, 김 철은 깔끔하게 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가 해 주는 긍정적인 대답 덕분일까? 10년은 더 늙어진 것 같은 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며, 옆에 있던 용팔이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김 철은 그래도 워낙 상처가 깊고 심하니, 요양과 치료가 필요로 한다는 주의를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외에 나도 모르는 상처들이 온몸에 가득했으며, 다음부터는 응급치료 정도는 해 주는 게 좋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노인은 알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고, 용팔이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새빨간 황혼이 지고 밤이 찾아왔다.
난 조용한 병실에 누워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으며, 방 안에는 작은 스탠드 하나만이 조용히 빛을 내며 점멸하고 있었다. 내가 다쳤다는 소식이 돌자 에덴은 이상하게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리고 내 휴식을 방해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는지, 내 병실 근처에는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과 용팔이는 단체장을 만나기 위해 방을 떠났으며, 이곳에는 오직 나와 채연이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온 채연이는 곧장 병실로 찾아왔고, 내 붕대와 다친 모습을 보며 한참을 울어 재꼈다.
눈치가 빠른 아이다.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내가 많이 다쳤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다. 난 달려오는 내내 굉장히 불안해했을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래 주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밥도 같이 먹었다. 난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단둘이 병실에 앉아 평화로운 한때를 즐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울고 있던 아이는 내 짓궂은 장난에 까르륵 웃었고, 한참을 날뛰며 뛰어다녔다. 그리고 잘 시간이 다가오는지 졸린 얼굴로 내 품에 안겨 아기처럼 꼼지락거린다. 그리고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는 왜 다쳐써요?’
나이와 맞지 않게 속이 깊은 아이는 가끔 내 속을 찌르는 질문을 하고는 했다. 이럴 때는 현실적인 대답을 해 줘야 할지, 아니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주는 대답을 해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해 주었다.
‘채연이 친구 만들어 주려고.’
이번에 구출한 생존자들은 대부분이 학생이거나 채연이처럼 어린아이들이었다. 한동안 조사와 숙소 배정이 이뤄질 것이고, 곧 우리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 채연이 또래가 많았었는데, 어쩌면 다 채연이의 친구들이 될지도 모른다. 난 맞는 말과 이상적인 생각을 섞어 적절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자 채연이는 힝 소리를 내며 내 품에 얼굴을 묻는다.
‘그럼 친구 싫어요.’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버려야 한다. 어른들조차 인정하기 싫은 현실을 아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상처가 더 아파져 왔다. 너무 일찍 철이 들었구나, 그럴 나이가 아닌데…….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속이 쓰려 온다.
내일이 너무나 두렵다. 일행들을 잃을까 봐 겁나고, 채연이를 더는 못 보게 될까 봐 두렵다. 과연 내 앞에는 어떤 날이 기다리고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의미한 발버둥일까 봐, 모든 게 다 허사일까 봐 눈앞이 흐릿해진다.
이것은 미련이었고, 미련함이었다. 내 욕심은 물속에 쥐고 있는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한계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오늘 낮처럼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이 닥쳐올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난 그 모래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난 그 아이를 놓지 못하는 미련처럼 꼭 끌어안았다. 이 따스함을 절대 놓기 싫었다.
* * *
병실 침대는 생각보다 좁았다. 난 무전기를 꺼내 강수련을 불렀고, 잠이든 아이가 편한 숙소에 있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무전을 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강수련과 김시은이 병실 문을 열고 찾아왔다. 이에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조용히 안부를 전했다.
짧은 대화를 마친 김시은은 노인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고, 이내 잠이든 채연이를 끌어안고 나갔다. 하지만 강수련은 나와 할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조용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지만,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편안함과 신뢰가 오가는 시선에는 그동안 탄탄하게 쌓여온 관계가 섞여 있었다.
강수련이 조용히 내 손을 붙잡았다. 난 생각보다 따뜻한 온도 앞에 흠칫 놀랐지만, 이내 조용히 입을 다물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녀를 바라봤다. 항상 웃어 주고 한발 앞서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을 챙겨 주는 엄마 같은 그녀다. 하지만 이렇게 슬퍼하는 얼굴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기에, 난 그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많이 아프죠?’
그녀의 말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들 중 가장 처음 나와 만나, 많은 일과 고초를 겪은 그녀다. 간혹 노인도, 용팔이 형제도 모르는 끈이 그녀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알고 있다. 그녀는 나를 언제나 이해해 주고 있으니까.
힘들고, 아프고, 두렵다. 모든 것이 나에게 고통과 죄책감으로 다가오고, 업보처럼 나를 옭아맨다. 모두가 내 등을 따라오며 오직 나만을 바라본다.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그 고통을 호소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게 사라지고, 죽어 버릴 것 같으니까. 내 의지와 심장이 살얼음 사이에서 힘겹게 고개를 든다. 그렇기에 너무나 외로웠다.
하지만 그녀는 다 안다는 듯 내 손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함부로 울 수 없는 나를 대신해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감싸주었다. 눈물이 손위에 떨어지고, 내 심장 또한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방울이 내 영혼의 정수 위에 물을 뿌린다. 그 어떤 말보다, 그 어떤 행동보다 나 대신 흘려 주는 눈물이 모든 것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힘들죠? 아프잖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줘요. 아프면 아프다고 모두한테 말해요. 네? 아무도 동윤 씨를 탓하지 않아요. 제발……. 제발 힘들다고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는 한겨울의 앙상한 가지처럼 흔들렸다. 눈물이 침대보를 적시고, 내 손은 울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동안 겪었던 고통과 기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죽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도 난 살아남아 일행들을 만났다. 이내 아픔이 사라지고 고통도 녹아내린다. 그녀의 눈물과 얼굴을 본 순간 내가 왜 그래왔는지를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난, 이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손을 뻗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침대 위로 올라와 나를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내 속에 담겨있는 한기를 녹인다. 그리고 내 얼굴 옆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눈물이 나 대신 볼을 적신다. 난 울지 않는다. 난 울 수 없었다. 나 대신 그녀가 울고 있으니, 난 울지 않으려 한다. 상처는 더는 아프지 않았다
* * *
아침 해가 커튼 사이로 흘러내린다. 잠에서 깬 나는 침대 위에서 내려가 창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거침없이 커튼을 치자 너무나 밝은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와 어둠과 한기를 몰아냈다. 아, 오늘은 일을 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겠다. 조금 현실적인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내 입에서는 헛웃음이 걸리고 말았다.
난 환자복을 벗고, 노인이 걸어두고 간 임무복들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온몸에 있는 흉터와 멍이 임무복에 가려 사라지고, 내 몸은 다시 태어난 듯 가볍기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리며 김 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윤 씨, 몸은 좀 어떠세요? 어? 아이고, 또 나갈 준비 하시는구나.’
그는 항상 나에게 휴식을 권했다. 하지만 그 권유를 언제나 무시하는 나를 포기했는지, 무덤덤한 잔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고, 오늘 챙겨 먹어야 할 약들을 꼼꼼하게 챙겨 주었다. 내가 미안한 웃음을 흘리자 그는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환한 미소를 마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난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고 훅 입김을 내뱉었다.
‘사무실로 가시나요?’
그가 물었고 난 대답했다.
‘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요.’
내가 기지개를 쭉 펴며 나갈 준비를 마치자, 김 철은 기다렸다는 듯 병실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먼저 나가보라는 듯 은은한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을 구해 줘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나누고 병실 문을 나섰다.
아침을 맞이한 에덴은 바쁘게 돌아갔다. 책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들부터, 이른 출근을 위해 길가를 뛰어가는 사람들까지. 분명 모두가 제자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르는 서로를 위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고 또 굴러간다. 그렇게 톱니바퀴를 탄 시침은 움직이고, 시간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분명 저 중에도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을.
오직 나만이 다른 톱니바퀴를 굴릴 수 있는 그런 자리.
오직 나만이.
나 외에는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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