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29화 (129/313)

[129]

‘아! 이 형님 진짜 답답하네!’

용팔이가 풀이 죽어 있는 남자 옆에서 방방 뛰기 시작한다. 얼마나 답답한지 얼굴은 붉게 변해 있었으며, 입에서는 불이 나오는 듯이 거친 열변이 쏟아져 나온다. 만약 두식이가 중간에 제지하지 않았다면, 진작 운동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난 용팔이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지나치게 착했으니까.

‘거기에는 아직 학생인 애들도 있습니다. 제가 잘 훈육할 테니 어떻게……. 구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눈치를 보며 말하는 걸 보니, 자신을 버린 무리 중에 그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이 포함된 모양이다. 그래, 착한 것도 좋고 제자를 아끼는 마음도 좋다. 그런데, 뭐? 훈육? 이 남자는 망해 버린 이 세상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난 참혹하고 냉정한 현실을 말해 줄까 하다가 왠지 모든 걸 내려놓는 듯한 그의 표정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학생일 때 당신 같은 선생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치?’

하지만 내 뒤를 따라 걷던 노인은 생판 모르는 남을 배려할 만큼 섬세하지 않았다. 노인은 어김없이 독설을 내뱉었으며 쿵쿵쿵 우리를 앞질러 지나가며 ‘나는 정말 어이없고, 화났소!’라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그런 노인 앞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마지막 변호를 하듯 목소리를 쥐어짠다.

‘착한 학생들입니다……. 나쁜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그래요…….’

하지만 그 말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는 헛된 희망을 이 남자는 품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선생이라는 위치가 남자에게 강박증을 심어 준 건지도 몰랐다. 마치 착한아이병에 걸린 사람처럼 나는 좋은 선생님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의 어깨 위로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난 한숨을 내뱉었고 노인은 콧방귀를 뀐다.

‘그놈들이 당신네 버릴 때 한 번이라도 망설이던?’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고, 내 뒤를 따라오는 여자와 아이들은 무겁게 고개를 떨어뜨린다. ‘쓸모없는 짐이다.’, ‘밥을 축내는 기생충이다.’ 어쩌면 이들은 이런 말을 들으며 여태까지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대답을 못 하는 남자 앞에서 노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없이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난 한동안 생존자들의 표정을 살펴보다가 어쩔 수 없이 이동 명령을 내렸다.

‘에덴으로 복귀합니다.’

그 말은 체육관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모순이고 위선적인가? 아니, 난 나의 가치관을 위해 확고하게 정리해 둘 생각이다. 그동안 너무나 더러운 사람들을 봐 왔고, 그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피해자들도 보았다. 나는 생명의 무게를 논할 만큼 전능하지 않았으며, 자비를 끝없이 베풀 만큼 착하지도 않다. 따라서 결론을 내린다. 나와 우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을 위해 그들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은 숨 쉬는 고깃덩어리를 사람으로 만든다. 변종과 괴물에게는 없는 그 죄책감만이 오직 우리를 사람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체육관에 있는 생존자들을 죄책감을 포기했다. 그리고 자신을 짐승처럼 울타리 안에 가뒀고, 단순히 먹고 싸는 유기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난 이상적이지 않다,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렇기에 이 위선을 정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행한 업보는 그대로 짊어질 줄 알아야 했다. 남을 죽일 것이라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하듯, 죄책감을 포기했다면 남에게 동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멍멍.’, ‘컹컹,’ 짐승처럼 짖어라. 하지만 다시는 사람처럼 말하지 말지어다. 난 변해가는 자신을 인정하고, 이 위선조차 자각한다.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이런 헛된 정의를 논해야 하는 등대니까.

‘뭐해 굼벵이들아! 동윤이가 가자고 하잖아!’

아까 내가 내린 이동 명령에 일부 일행들은 안경 쓴 남자를 보며 잠시 머뭇거린다. 하지만 선두에서 노인이 역정을 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열을 이루기 시작했다. 구출한 아이만 15명, 성인 남녀 2명. 무려 17명을 데리고 에덴까지 무사히 가야 한다.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 난 내 뒤를 따라 걸어오는 용팔이 형제를 향해 물었다.

‘두식아, 챙겨왔냐?’

우린 이 구역에서 총 2마리의 변종을 잡았다. 하나는 무서운 보호색을 가지고 있는 흰색 놈 하나, 그리고 학교 내부에서 잡은 학교 괴물 하나. 난 용팔이 형제에게 그 시체를 절대 잊지 않고 챙겨두라 말했다.

그렇게 내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용팔이 형제는 일행과 생존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동안 각각 학교 내부에서 찾은 포대 안에 시체를 담아 왔다. 난 곤죽이 되어 버린 놈들의 시체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거워 보이기는 했지만, 두식이가 있는 이상 아무 걱정 없었다.

‘잘했다.’

‘어!’

내가 웃으며 칭찬하자 두식이가 힘차게 대답한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용팔이가 왜 형님한테 반말하냐며 연신 두식이의 엉덩이를 걷어찼지만, 두식이는 반말이 뭐고 존댓말이 뭐냐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난 기분 좋게 웃으며 에덴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에덴에는 변종들은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소수 존재한다. 그들은 샘플을 모으고 무언가라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연구를 지속하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난 우리가 처리한 변종의 시체를 그들에게 가져다줄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조금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을 바로 지금 내가 하는 행위에 있다.

난 일부러 학교 주위를 돌아 그놈들이 존재하는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위 일행들에게 총을 장전해 두라 말하며 앞에 보이는 놈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변종과 그놈들의 관계는 참 이상하다. 그들은 같은 괴물 같으면서도 서로를 돕지 않는다. 그리고 어떨 때는 변종이 놈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놈들은 그 공격을 피해 도망 다닌다.

사자와 하이에나, 딱 그 꼴이었다.

변종은 상위개체일까? 혹시 놈들은 변종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걸까? 난 우리가 죽인 변종의 시체를 앞에 내려놓고, 놈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놈들은 평소와 다르게 미친 듯이 달려오지 않았다. 뭐지? 망설인다? 주춤주춤하던 놈들은 잠시 우리를 바라보나 싶더니 비틀비틀 걸어 저 멀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꼬리를 내린 똥개 같아 내 입에서는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설이 사실이 되었고, 생각보다 효과도 좋았다.

냄새를 맡는 건지, 아니면 존재감을 느끼는 건지. 놈들은 변종 자체를 무서워하며 심지어 죽은 시체조차 두려워하는 모양이었다. 노인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변종의 시체를 내려다봤고, 난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는 변종의 시체를 소중히 들어 올렸다. 오늘은 생존자를 구했다는 성과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을 얻고 말았다.

‘효과가 얼마나 갈까?’

노인이 내 옆에서 중얼거렸다. 맞다, 문제는 기한이 얼마냐 되냐다. 변종들은 이미 숨통이 끊겼고, 지금은 역한 냄새를 풍기며 자기가 죽었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방향제를 아무리 뿌려도 얼마 후 향기는 사라지듯이, 놈들의 체취와 존재감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공돌이를 갈자 소음기가 나왔듯이, 과학자를 갈면 무언가 나오기는 할 것이다. 나와 노인은 고민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남몰래 웃었다. 그리고 과학자들에게 챙겨 줄 소중한 샘플을 용팔이 형제에게 들게 하고, 다시 한 번 에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저기요…….’

변종 시체를 가지고 실험을 하느라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했다. 하지만 놈들을 피할 필요가 없어진 지금은 약간의 경계만을 하며 이동할 수 있었기에 시간이 많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여유를 가진 상태로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이들을 챙기던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태도가 너무나 조심스러웠기에 난 얼떨결에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네?’

그녀가 대답하는 나에게 물었다.

‘에덴은요……. 어떤 곳인가요?’

난 모자를 고쳐 쓰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랜만에 듣는 질문에 난 생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자가 묻는 말은 우리가 구출하는 생존자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보다는 그 주위 일행들에게 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대부분 눈칫밥을 먹고 살던 생존자들이 구조대의 리더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었다. 노인식 표현을 빌려서 말해 보자면 꽤 당돌하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일행들 표정이 안 좋아진다. 꼭 사고 친 이등병을 본 고참들의 반응 같았다. 김혜정이 나 대신 대답해 주기 위해 이쪽으로 뛰어왔지만, 난 손을 들어 접근을 막았다. 내가 그렇게 어려운 사람인가? 나름 살갑게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슬프다. 난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그녀에게 절대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용기를 가지고 나에게 접근하는 그녀가 참 대견했다.

이런 질문은 당연한 거다. 자신을 위해서, 아니 저 뒤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는 건 너무나 바람직한 태도였다. 에덴이 어떤 곳인가? 난 안 좋은 추억과 좋은 추억이 공존하는 에덴을 향해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내 모자란 말주변으로는 그녀에게 설명해 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가 보시면 알아요.’

그래,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에덴은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다 비슷하다. 하지만 종말한 세상에서 사람 사는 곳은 에덴이 유일했으며, 그곳은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었다. 난 그녀가 내 말뜻을 이해해 주길 바라며 나름 또렷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저, 저기요. 저랑 같이 가요. 제가 다 말해드릴게요…….’

김혜정이 조용히 끼어들어 그녀의 어깨를 잡는다. 왜 말을 더듬지? 김혜정은 그녀를 이끌고 내가 보이지 않는 대형의 뒤쪽으로 살며시 몸을 피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도망가다시피 하는 그녀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앞에는 불이 튀겼고, 뒷머리를 누군가 가격하는 소리가 딱 울려 퍼졌다.

그리고 뒤를 바라보자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리고 히죽 웃고 있었다. 아, 용팔이가 맨날 이렇게 맞았나? 맞아보니 상당히 아프다. 난 알싸한 뒤통수를 만지며 ‘왜 때리냐’는 얼굴로 노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노인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한다.

‘우리 두목님, 오늘도 민간인 겁박하고 계셨습니까?’

‘네?’

‘강 형사! 이 새끼 좀 잡아가!’

‘네? 강 형사는 왜요?’

강 형사는 재빨리 뛰어와 나와 팔짱을 꼈고 그렇게 100m를 같이 걸어가야 했다. 분명 일행들을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다. 속이 답답해 미칠 것 같은데 노인에게 입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하하 호호 웃으며 길을 걸었고, 나만 웃지 못했다.

* * *

‘여기서 잠깐 쉬고 갑시다.’

구출한 생존자들 대부분이 아이들이라 그런지 이동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빠르게 걷고 있었지만, 그 짧은 다리로 바쁘게 움직여 봤자 얼마나 빨리 걷겠는가? 가뜩이나 영양 상태도 좋지 못해서 쉽게 지치고 다친다. 그렇기에 난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일행들의 이동속도를 굉장히 느리게 잡았다.

예전에도 채연이와 같이 이렇게 이동할 때가 있었다. 숨을 죽이고 걷거나 혹은 놈들을 피해 뛰거나. 채연이는 쉽게 지쳤지만 나에게 미안해서 그런지 업히거나 안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며 아이들이 얼마나 걷고 쉬어야 하는지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난 적절하게 이동시간과 휴식시간을 분배했고, 틈틈이 간식을 풀어 아이들이 힘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는 마치 펭귄처럼 모여 자리에 앉았다. 서로가 체온을 나누고, 강하게 불어오는 칼바람을 막는다. 귀가 떨어질 듯 추운 날씨지만, 이렇게 뭉쳐 있으니 그 추위도 덜해진다. 난 나에게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일행들을 하나둘 바라보며, 걷느라 지친 다리의 근육을 천천히 풀어 주었다. 우리가 떠나온 학교는 이미 보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이 아이들도 다시 학교로 가게 되겠지? 어쩌면 채연이의 친구가 될지도 몰랐다. 난 사무실 한구석에 잔뜩 쌓인 식권들을 나눠주어, 이 사람들이 에덴에서 잘 적응하게 도와줄 생각이었다. 물론 여태 한 번도 빠짐 없이 해 온 일이지만, 이번 생존자들은 유난히 시선이 갔다. 난 풀이 죽어 있는 선생을 바라보며 입김을 훅 내뱉었다. 하지만 그 순간 노인이 나를 잡아당겼다.

‘누가 접근한다.’

난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옆에 세워둔 총을 잡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변종의 시체 때문에 그놈들은 접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러 빙 둘러가는 길이었기에 변종들이 있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렇다면 접근하는 사람은 단 한 가지로 좁혀진다.

다른 생존자.

내가 벌떡 일어나자 일행들도 자동적으로 무기를 챙겼고,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를 시작했다. 이번에 구출한 생존자들을 차 옆에 몸을 숨기며 갑작스레 찾아온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노인은 자신이 보고 있던 망원경을 나에게 내밀었고, 난 재빠르게 그것을 잡아들며 노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똑같이 따라 걷고 있는 생존자 무리가 보였다. 성인 남성과 여성이 주를 이루는 생존자 무리는 무언가를 잔뜩 들고 있었고, 하나같이 신체 상태도 괜찮아 보였다. 다만 무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온 방향은……, 분명 학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감히 미행을 해? 노인이 바닥에 침을 뱉었고, 나는 망원경을 천천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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