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따딱, 따다닥. 노인의 총성을 시작으로 사격에 자신 있는 일부 일행들이 놈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그간 많이 참았다는 걸 보여 주듯 잔뜩 억눌린 총성음이 고막을 요란하게 튀기며, 붉은색 피가 묻은 놈에게 거친 화망을 내뱉는다. 놈은 민첩하고 눈으로 쫓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하지만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총알의 그물을 피할 만큼 재빠르지는 않았다. 놈보다 빠르고, 치명적인 철 덩어리가 바닥과 눈을 정신없이 튀긴다.
놈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뒤늦게 눈치채고 말았다. 하지만 그 판단 미스는 단 한 번뿐인 도주 기회를 놓치게 했고, 그 대가로 도망을 치기도 전에 몸통에 수많은 총알을 받아야만 했다. 그놈들처럼 단순한 치명타로는 절대 죽지 않는다. 놈의 몸이 걸레가 될 때까지 총을 발사하고 찢어야 했다. 노인은 허공에 빈 탄창을 던지며 두 번째 탄창을 끼워 넣었다. 그 기계 같은 움직임은 놈에게 발을 놀릴 찰나조차 주지 않는 공격이었다.
끼이이이이이-.
놈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온몸을 꼬고 바동거린다. 몸에서 흘러내린 검은색 액체는 위협적이던 보호색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소름 끼치게 보이던 외형은 죽어가는 한 마리의 생명체처럼 연약해 보일 뿐이었다. 물론 동정심은 들지 않았고, 나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놈의 회색 눈동자는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놈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 온몸을 꼬며 약한 척을 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회색 눈에서는 살벌한 살기가 번들거린다. 그리고 놈은 재장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어 버린 화망을 노렸다. 다리 하나가 날아가고 찢어진 배에선 더러운 내장이 흘러내렸지만, 놈은 상관없다는 듯 바닥을 긁으며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난 본능처럼 내 팔을 그었던 대검을 움켜잡는다.
‘젠장!’
강 형사가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재장전을 서두른다. 하지만 일행들은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놈 앞에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지 빠르게 재장전을 마치지 못했다.
‘비켜.’
강 형사를 옆으로 밀어낸 노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노인은 침착하게 탄창을 끼워 넣고, 놈의 머리를 향해 단발로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가 반쪽 날아가고, 이제는 흉측한 목뼈조차 보이기 시작했다. 더러운 뇌와 시궁창 같은 뇌수가 줄줄 흐르고, 회색 눈알은 하나만 남게 된다. 그런데도 그놈은 살육의 갈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끈질기다, 아니 끈질기다는 단어로 설명할 모습이 아니었다. 거의 광적일 정도로 살육을 원하는 놈은 완전한 본능 앞에 잡아먹힌 아귀와 같았다. 왜, 어째서! 그런 살의를 인간에게 가지는 걸까? 난 한때 인간이었을 놈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 가득 담았다. 그리고 내 앞에서 탄창을 놓치고 버둥거리는 김혜정을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대검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또 한 번 시신경이 점멸한다.
심장이 뛴다. 놈과는 달리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나를 밀치고, 당기며 끊임없이 휘몰아치게 했다. 내 피는 거친 파도가 되어 넘실거렸고, 심장은 그 거친 감정을 망설임 없이 받아 낸다. 내 옆에 열차가 지나가고 있는 착각이 들 만큼 심장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쿵, 두쿵, 그리고 난 숨을 크게 들이쉬며 흰색 악몽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따닥!
노인은 잔탄을 마저 비웠고, 그 뒤로 가해지는 일행들의 사격은 없었다. 왜냐하면, 노인이 침착하게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머리가 다 날아가고, 몸체도 반쯤 사라져 있다. 놈이 달려온 자리에는 흘러내린 내장과 찢긴 살점이 가득했고, 하나만 남게 된 팔은 내 앞에서 바닥을 긁고 있었다. 성대조차 사라진 놈은 형편없는 속도로 뛰어오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대로 대검을 내려찍었다.
* * *
‘깊게도 긁었네, 미련한 놈.’
노인이 혀를 차며 붕대를 꽉 묶어 준다. 위협적인 변종을 만났지만, 부상자는 나 말고는 나오지 않았다. 팔의 상처는 꽤 깊었는지 일행들은 한동안 내 앞에 붙어 출혈을 잡아 주고, 붕대까지 꼼꼼하게 감아 주었다. 흉터가 선명하게 생길 것 같다. 하지만 무사히 변종을 잡을 수 있었기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난 마지막으로 노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이 사라지자 눈은 거짓말처럼 그치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우리에게 연신 나가라고 가지를 흔들던 나무들은 모든 게 끝난 줄 아는 것인지 잠잠하게 햇살을 가리고 있었다. 난 긴장감으로 절어 버린 손을 바짓단에 닦으며 노인에게 읊조렸다.
‘몰이를 당했어요.’
놈에게 노려진 순간 직감했다. 그동안 놈들이 격하게 공격하지 않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고, 우리가 이곳을 목적지로 잡고 있다는 것까지 놈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이라는 미끼를 이용해 함정을 판 걸지도 모른다. 물론, 거기까지 사고하고 계획할 지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봐야 했다.
노인은 기분이 더러운지 바닥에 침을 뱉는다. 그리고 한동안 예리한 눈으로 음침한 기운을 뿜어내는 학교 건물을 바라보았다. 시각, 청각, 후각. 모든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은 때론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감각은 따로 있었다.
신경이 연신 움찔거리고 피부는 따끔하다. 무형의 무언가가 내 앞을 가로막고 머리는 연신 옅은 경종을 울린다. 난 뻣뻣해진 팔 근육을 만지며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분명 저 건물은 위험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옆으로 뛰어온 박대박이 말했다.
‘대장, 일단 이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어.’
내가 치료를 받을 동안 박대박은 자기 무리를 이끌고 숲 근처를 정찰했다. 그리고 예상과는 다르게 또 다른 변종이나 그놈들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소음기가 있다고 해도 소리가 완전히 감춰지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이 근방에 있는 놈들은 소리를 듣고 몰려 왔어야 할 텐데, 지금은 그런 낌새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그놈들은 변종의 영역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든 일행들이 무기의 정비를 마치고 나를 바라본다. 그것은 임무의 속행인지, 아니면 후퇴인지 결정해 달라는 무언의 요구와 같았다. 난 침을 삼키며 한동안 고민의 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변종들과 전투를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냥의 주체가 되어야지, 놈들이 주도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 난 무전기를 잡고 사무실을 호출했다.
‘아직도 무전이 옵니까?’
교전 사실은 사무실도 알고 있었다. 한동안 숨죽이고 있던 최성수는 우리가 모두 무사하다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 사람도 소음기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제발 구해달라는데, 뭐라고 말해야 돼요?]
‘건물 안에 괴물이 있냐고 물어봐.’
아마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건물 안에 있는 생존자가 알고 있냐 아니면 모르고 있냐에 따라 위험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난 한동안 잡음을 내뱉는 무전기를 부여잡고 천천히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아마 그때쯤 내 머리는 후퇴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없다고 그러는데요……. 이 사람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후퇴합니다.’
난 그 무전을 받은 순간 단호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안에 있는 생존자가 놈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 건물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더군다나 어떤 변종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실내에 들어갔다간 꼼짝없이 고립될 위험이 있었다. 난 일행들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아무런 반발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일행들은 어둡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구조를 포기한다, 그 죄책감이 가슴을 노크했지만, 난 애써 문을 걸어 잠그며 완벽한 계획을 세울 내일을 기약했다. 아니 내일을 기약하자고 떨리는 심장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난 갈등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틀린 선택일지언정, 절대 멈출 수는 없었다. 난 일행들이 내뿜는 죄책감을 대신 받아내며 무거운 짐을 또 하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무표정을 유지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한다. 오늘만큼은 나를 숨기고 슬픔을 묻어놓는다.
그리고 무전기에선 또 다른 내용이 흘러나왔다.
[그……. 애들이 많다고……. 그 사람이 아이들만 좀 구해달라고 전해달래요…….]
무전을 보내는 사람은 제정신이 맞았고, 분명한 인간이었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가 날아온다. 모든 일행들은 그 작은 무전 소리에도 반응하며 행동을 멈췄고, 나와 노인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사실 굉장한 모순이다. 우리가 유난히 아이들에게 약하고, 어린 생존자에게 자신의 소중한 이를 투영시킨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무게를 나누는 굉장히 모순적인 행동에 불과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도 지독하게 인지하고 있다. 멍청하고, 미련하며, 모순적이고 어쩌면 악한 걸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너무나 작은 인간이었기에 그 행동 속에 합리화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냉철은 사라지고, 심장에 심어진 강철인 너무나 맥없이 녹아내린다. 명령을 따르겠다는 일행들의 표정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고, 슬픔으로 먹칠 되기 시작했다.
‘형, 형님…….’
가장 먼저 나를 부른 건 역시나 용팔이였다. 용팔이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내뱉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고, 나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하며 눈을 내리깔아 버린다. 난 쇠 맛이 나는 입안을 다시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박다혜와 김혜정, 그리고 잔뜩 굳어 버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강 형사와 두식이. 항상 냉철하던 노인마저 저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뒷짐을 진다. 일행들이 나에게 부탁하지 못하는 심정을 알고 있었다. 목숨을 건다는 건, 그만큼 대가를 필요로 하는 무거운 짐이었다.
고민하는 우리를 향해 저 앞에 있는 박대박이 말했다.
‘슈퍼맨들 납셨네.’
검은 도화지에 떨어진 흰색 잉크를 향한 명백한 조롱이였다. 하지만 그 차가운 독설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너무나 온화하고 평온해 보였다. 그는 분명 나를 처음 만난 날 이렇게 말했다. 슈퍼맨 같은 건 없어진 줄 알았다고, 그리고 사람들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 말은 불어오는 바람과 섞여 맥없이 기억 속에 흩어진다.
박대박 주위에 있는 무리들은 무기와 장비를 챙기며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그 재미없는 농담 때문이지 잔뜩 굳어 있는 분위기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일행들은 꼭 달리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처럼 말없이 몸을 움직여 뜨거운 열기를 내뱉는다. 내 지시를 기다리겠다는 굳은 눈빛과 행동은……. 이상하게 내 어깨 위에 놓인 짐을 덜어 주는 공조와 같았다.
영웅이 아니기에 숭고하지 않았다. 모순적이기에 존귀하지도 않았다.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먹칠 된 세상에서 작은 불꽃은 더는 타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존경도 없다면, 박수갈채는 공허함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발버둥일 뿐일까? 우리가 하는 행동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 물음에 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의(定義)는 세워지지 않고, 정의(正義)는 의미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 * *
노인이 의견을 말하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난 그가 화가 났나 싶어 한동안 표정을 살펴보았지만, 노인의 얼굴에는 분노하거나 불쾌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그저 무표정을 유지하며 나 대신 대검의 날을 갈아 줄 뿐이었다. 내가 하겠다고 말했지만,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고 한동안 익숙한 침묵이 유지되었다.
10분간 휴식을 취하며 무전 너머에 있는 생존자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출을 마음먹은 이상, 짐작이 아닌 제대로 된 지형 정보를 얻어야 했다. 난 빈 종이에 학교 내부 지도를 그려내며, 아이들과 생존자들을 구해 낼 루트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학교 안에는 나를 포함한 소수만 들어갈 것이다. 처음에는 포함되지 않은 일행들이 반발했지만, 난 가장 손이 맞고 사격 동선이 겹치지 않는 한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 못을 박아 두었다. 나와 노인, 그리고 용팔이 형제. 가장 처음 지옥을 헤치고 나왔던 멤버가 다시 한 번 모이게 되었다. 팀워크는 말해 봤자 입 아프고, 총을 가지고 변종을 상대함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들은 4명씩 묶어 팀을 나눴다. 그렇게 나눠진 팀들은 건물 밖에서 우리를 엄호하게 될 것이다. 이동 경로를 창문이 붙어 있는 복도로만 잡은 이상 시야가 한정된 우리보다는 밖에서 모든 창문을 지켜보고 있는 일행들이 엄호를 하기에 적절할 것이다.
난 숨을 크게 내뱉으며 조용히 총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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