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22화 (122/313)

[122]

창문 사이로 밝은 햇살이 스며들었고, 그 햇살을 배경 삼아 채연이가 조잘조잘 노래를 부른다. 그 옆에선 또래 아이들이 채연이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즐겁게 웃기 바쁘다. 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숨을 내뱉는다. 꼭 비현실적인 영화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당장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그곳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김윤식의 재판 일자가 오늘이었다. 그 때문인지 에덴의 분위기는 살얼음 같았고, 모든 주민들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오직 아이들이 모여 있는 이 학교만은 평상시 모습을 유지하며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에덴이 생기고 나서 처음 열린 학예회다.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 지금, 학교 선생님들은 불안해하는 아이들과 우울해하는 어른들을 위해 머리를 맞대며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 끝에 부모님과 아이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휴가를 받은 우리는 당연히 전원 참석하였고, 지금은 한곳에 앉아 채연이와 아이들이 하는 합창을 지켜보았다.

난 또렷하게 노래를 부르는 채연이를 보며 벅찬 가슴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행복의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고마워서 나는 저쪽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선생님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이고, 누구 애들이 저렇게 예쁠까.’

귀찮다고 투덜투덜하던 노인은 이곳에 오자마자 가장 앞자리에 앉아 손뼉을 치기 바빴다. 정작 손녀는 옆에 있는데, 저 앞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친손녀, 손자인 마냥 예뻐하기 바쁘다. 이럴 때 보면……. 정말 평범한 할아버지 같았다.

‘동윤 씨! 여기 보세요.’

시선을 돌리자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 터진다. 곧이어 즉석카메라에선 사진이 튀어나왔고, 시간이 지나자 그 사진에는 멍청해 보이는 내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강수련은 배시시 웃으며 카메라를 내렸다. 그리고 사진을 뽑아 들며 나에게 내밀었고, 난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즉석카메라는 또 어디서 구한 걸까? 카메라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강수련은 꼭 딸과 아들의 학예회를 보러 온 엄마 같았다. 난 멍청하게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내 사진을 조용히 들어 올리며 강수련을 향해 말했다.

‘저 말고 채연이 좀 찍어 주세요.’

그러자 강수련은 조용히 내 앞으로 다가와 여태 자신이 찍은 사진들은 한 장씩 보여 주었다. 예쁘게 노래하는 아이들,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노인.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생난리를 치고 있는 용팔이 형제. 일행들 모두가 사진 속에 모여 즐겁게 웃고 있었다.

‘동윤 씨, 우리 같이 사진 찍을래요?’

내가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웃고 있는데, 강수련이 대뜸 내 옆으로 다가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사진? 그녀가 내 옆으로 다가와 사진을 거꾸로 드는 것이 꼭 셀카를 찍자는 것 같았다. 난 뜬금없는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고 있는 강수련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냥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강수련이 내 옆에 꼭 달라붙는다. 은은한 비누향 외에는 어떠한 향도 묻지 않는 온전한 그녀의 향기가 풍겨 왔다. 난 이상하게 부끄러움보다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항상 내가 위기에 빠져 겨우겨우 살아 돌아올 때면, 항상 그녀는 눈물을 터트리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처럼 강수련을 끌어당겨 좁은 사진 속에 그녀와 내가 모두 들어올 수 있게 해 주었다. 곧이어 셔터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사진을 내뱉는다.

그녀는 우리 둘이 찍힌 셀카를 들고 은은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사인펜을 꺼내 사진 아래 빈공간 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뭐라고 적은 거지? 순간 궁금증이 들어 그녀의 뒤로 돌아가 사진을 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사진을 가려 버린다. 그녀는 당황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밀이니까, 보지 마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같이 찍은 건데. 난 괜한 심술이 들어 집요하게 사진을 쫓아갔지만, 그녀는 절대 안 된다는 듯 요리조리 나를 피해 다녔다. 잠시 후 저 멀리서 김시은이 강수련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시은과 노인이 가방에서 돗자리와 도시락통을 꺼내고 있었는데, 아마 아이들의 노래가 끝나면 챙겨 온 도시락을 먹을 생각인가 보다.

강수련은 마침 잘됐다는 얼굴로 내 손길을 피해 그곳으로 도망가려 했다. 난 그 유치한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튀어나왔고,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부리는 그녀의 사진을 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난 그녀가 그곳으로 가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수련 씨, 카메라 좀 빌려주실래요?’

그녀는 카메라를 빌려달라는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절대 고장 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들고 있던 즉석카메라를 나에게 내밀었다. 난 그 묵직한 카메라를 받아들며 저 멀리 걸어가는 강수련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합창이 끝이 났고, 아이들은 각자 부모들을 찾아 강당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사방에서 울리는 웃음소리와 즐거운 이야기 소리가 끊기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도 이곳으로 뛰어오며 밝은 미소를 머금는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맞이하는 대신 천천히 강당 뒤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좋아, 딱 이 자리가 적당했다. 한곳에 어울려 즐겁게 웃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내 시야 한가득 들어온다. 난 침을 삼키며 강수련에게 받은 즉석카메라를 들어 올렸고, 이내 돗자리를 깔며 식사를 준비하는 일행들의 모습을 조용히 카메라에 담았다.

방아쇠를 당기던 내 손가락이 이제는 셔터를 눌러 따뜻한 생을 찍었다.

[그 사진은 일기 한가운데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사진 밑에는 ‘에덴’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것이 그가 에덴에서 가지고 온 유일한 사진이다. 어쩌면 이 순간이 그가 에덴에서 느낀 유일한 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진에는 손때가 많이 묻어 있다.]

* * *

해가 떠 있는 시간을 모두 아이들과 노는 것에 투자했다. 학예회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눈싸움을 했으며, 집으로 들어올 때는 달달한 간식들을 잔뜩 챙겨 왔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보드게임을 했고, 방금은 채연이와 대화를 나누며 아름다운 꿈을 좇는 이야기도 했다.

채연이의 꿈은 화가다. 매번 그림을 그려올 때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가장 먼저 말해 주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아이는 이제 악몽을 꾸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꿈에서 슈퍼맨과 고래가 나온다고 자랑을 해 온다. 나는 채연이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 슈퍼맨이 누구인지, 그리고 고래가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엄청나게 큰 고래가 별 속을 헤엄치며 채연이를 태웠고, 슈퍼맨은 유성을 만들며 그 뒤를 따라온다. 채연이는 항상 은하수 한가운데를 헤엄치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별들이 쏟아지고, 따뜻한 봄바람은 볼과 머리를 간지럽힌다. 그림 속 채연이는 항상 웃고 있었고, 고래와 슈퍼맨도 채연이를 따라 밝게 웃고 있었다.

난 잠들어있는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동윤아,’

이미 밤이 찾아왔고, 일행들 대부분이 잠에 빠져 있다. 하지만 밤잠이 없는 노인만이 유일하게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노인은 급한 용건이 생겼는지 한쪽 방에서 채연이와 같이 누워있는 나를 부르며 손짓한다.

난 아이가 깨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이 있는 거실을 향해 걸어갔다. 곧이어 그곳에는 노인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편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왠지 익숙한 얼굴들뿐이었다. 단체장과 은테 안경, 그리고 박대박. 난 잔뜩 눌린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늦은 밤에 웬일로…….’

에덴 측에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회의실로 호출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단체장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직접 우리 숙소로 찾아왔고, 요즘 자주 만나는 것 같은 박대박까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단체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향해 대답했다.

‘맨날 와달라고 하는 게 죄송해서……. 오늘은 직접 찾아왔습니다.’

역시 용건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직접 찾아와 주니 기분이 묘하게 좋다. 난 노인이 앉아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고, 이내 단체장과 박대박을 마주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어느새 거실로 나온 강수련은 우리를 위해 커피믹스를 한 잔씩 타다 주었다. 단체장은 웃는 얼굴로 커피를 받아들며 조용히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제 겉치레 따위는 안 해도 되는 사이였다. 사족 없이 바로 본론을 말하라는 내 태도에도 단체장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나와 노인을 향해 오늘 낮에 있었던 재판의 결과를 말해 주었다.

‘추방형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무리했군.’

그 대답을 듣자마자 노인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물론 확실하게 끈을 끊어 놓는 게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입장에서만 그랬지 모두를 포용해야 하는 단체장 입장에서는 무리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체장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김윤식이 반론조차 못 하더군요. 재판 내내 넋을 놓고 있기에 구 간부들이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현장에 있던 전투조 대원들의 증언들이 결정적이었고요. 참관한 주민들과 유가족들까지 전부 동의한 결과였습니다.’

추방형. 사실상 사형과 같았다. 가뜩이나 생존이 어려운 밖에서 맨몸으로 살아야 한다? 나조차도 가능할지 모르는 그 어려운 일을 김윤식이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사형보다 더한 사형. 김윤식은 19명의 목숨을 방관한 죄를 이제야 받게 되었다. 단체장은 씁쓸한 얼굴을 지어 보이며 숨을 훅 내뱉었다. 그의 품에서는 달콤한 유자 향기가 폴폴 풍겨 왔다.

‘아.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아직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단체장은 애써 씁쓸함을 몰아내며 밝게 웃었다. 곧바로 마시고 있던 커피를 호탕하게 원샷하고 내 얼굴을 한동안 바라본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를 마주 보며 눈을 마주쳤고, 어느새 늘어난 주름살과 흰머리를 보며 그의 고충을 한동안 느끼게 되었다. 단체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전투조를 재편해야 합니다. 물론 조장 자리는 비어 있고……. 1순위 후보는 당연히 동윤 씨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물어보려고 오늘 온 것이고요.’

예상하던 제의였다. 하지만 난 거침없이 대답했다.

‘싫습니다.’

전투조. 에덴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물론 대외적인 경비와 전투를 전부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위치였지만, 그러면서도 에덴의 든든한 장벽을 차지할 수 있는 권력의 핵심지였다. 조장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안전할 수도, 혹은 위험할 수도 있는 매혹적인 자리. 하지만 난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단체장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은테 안경을 향해 다음 자리에 내정된 사람을 앉히라는 지시를 한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노인은 단번에 거절한 의도가 궁금한지 나를 향해 물었다.

‘왜? 괜찮은 자리 아니야?’

난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안전하고 좋은 자리다. 아마 그곳에 배정을 받는다면 내 마음대로 에덴을 주무를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와 원하는 만큼 놀며 풍요롭고 안정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많은 일을 겪고 이 세상을 지켜보며 느낀 바가 있었다. 난 내 속에 톱니바퀴가 변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내 정체성을 피하기 싫었다.

그리고 단체장이 나를 향해 말했다.

‘부랑자들이 사라졌으니……. 부랑자 전담팀도 사라지겠군요.’

‘네,’

난 담담하게 대답했고, 단체장은 살며시 웃으며 내가 원하는 말을 해 주었다.

‘사실, 박대박 씨 쉘터가 이번에 우리 에덴으로 속하게 되었습니다. 밖을 돌아다니는 변종들 때문에 쉘터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네요. 다들 숙련된 베테랑들이라, 원하는 보직에 앉혀드려도 될 것 같은데, 유난히 박대박 씨가 어떤 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주장하더군요.’

나와 눈이 마주친 박대박이 흐흐 웃으며 식은 커피를 원샷한다. 그가 징계위원회에 참석하고 여태 나를 따라다니며 지켜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해 주었던 박대박의 말이 기억을 스치고 지나갔다.

단체장은 말했다.

‘아무래도 동윤 씨네 팀이 인원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저는 박대박 씨 요구를 들어줄 생각입니다. 부디, 두 분께서 잘 화합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은은한 조명이 쉼 없이 점멸하며 칠흑 같은 어둠을 몰아낸다. 단체장이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동윤 씨, 혹시 무슨 일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했다.

탐색, 그리고 구조.

어둡고 안개 낀 길을 뛰어가는 꿈을 꾸고는 했다. 무섭고 두려웠으며, 채연이가 울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단 한 줄기 빛을 간절히 원했을 때가 많았다. 모든 상황과 모든 현실이 그랬다. 안개 끼고 어둡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저 멀리 보인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는 내가 그 길을 밝혀 주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등대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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