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21화 (121/313)

[121]

‘무, 무례해요!’

구 간부 쪽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빼액 소리를 지며 이상한 반항을 해 보인다. 무례해요? 지금 사극 드라마 찍나? 노인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고, 용팔이와 김혜정은 한숨을 내쉬던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윤식과 나머지 구 간부들은 내 뒤에 살벌하게 서 있는 강 형사와 두식이 때문인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소심하게 눈알을 부라릴 뿐이었다.

난 헛기침을 하며 거침없이 도발을 날리는 노인의 허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노인은 능청을 피우더니 이내 허리가 아프다는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살며시 노려보는 나를 피해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참, 이럴 때만 늙고 아프신 척을 하신다. 난 다시 한 번 얄미운 노인의 허리를 찌르고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노인이 갑작스럽게 터트린 폭탄 앞에 분위기가 많이 경직되었다. 구 간부 쪽에선 입을 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신입 간부 쪽에서도 많이 당황했는지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내 얼굴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난 일단 이 얼음장 같은 침묵을 깨기 위해 조용히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내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던 단체장이 속삭이듯 나에게 말했다.

‘동윤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젠 감사 인사로는 모자랄 지경이네요.’

단체장은 항상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것은 한결같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했고, 우리의 노고를 당연하게 받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호의를 자신의 호의로 갚을 줄 알았고, 그 외에도 많은 이득을 주며 사람을 부릴 줄도 알았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 같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체장의 미소에는 후련하면서도 쓸쓸한 이면이 담겨 있었다.

‘자, 동윤 씨도 오셨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봅시다.’

단체장은 그동안 웅크리고 있던 자라가 목을 내밀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비장해진 얼굴로 은테 안경을 호출했다. 그러자 은테 안경은 기다렸다는 듯 두꺼운 서류뭉치를 가지고 왔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구 간부들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져 갔다.

서류는 단체장만이 보는 것이 아니었다. 10장으로 되어 있는 서류뭉치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한 사람당 한 뭉치씩 정확하게 배분되었다. 나는 가장 먼저 서류를 받아들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이력서처럼 어떤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밑으로는 사진 속 사람들의 신상정보들이 간략하게 쓰여 있었다. 난 그 서류를 조용히 읽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에 대한 내용들이 전부 이번 사태로 사망한 전투조 대원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서류를 덮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왜냐하면,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고, 난 차마 그들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서류를 보던 노인은 이 종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짚었고, 이내 한쪽에서 조용히 신음한다.

‘가족분들에겐 제가 직접 찾아갈 생각입니다. 사망 소식과……. 그리고 유해를 찾겠다는 약속을 해드리고 싶군요. 모두 주님의 곁으로 가셨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단체장은 조용히 안경을 벗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얼굴에는 진정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고, 눈동자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뒤섞여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단체장이 김윤식과 구 간부들에게 화가 나는 와중에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서류를 받아든 구 간부들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김윤식이 한 판단착오가 사람을 죽였고, 그들의 희생을 잊은 상태에서 간부들을 싸우기 바빴다. 당장 통계로 나는 숫자보다 이렇게 죽은 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단체장이 그들에게 하는 꾸중이자, 죄책감을 짓누르는 원죄와 같았다.

‘저 새끼 때문이야! 저 새끼가 우리를 미끼로 쓴 거라고!’

하지만 단 한 사람, 이제 벼랑 끝까지 도달한 김윤식만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제 이성조차 잃어버렸는지 서류더미를 냅다 나에게 던지며 자신의 잘못을 나에게 떠넘겼다. 우리 일행들은 격하게 반응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단체장의 표정도 심각하게 일그러져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상하게 여태 지켜봐 온 죽음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서류 더미가 흩날리고, 그 서류 더미는 흩날리는 눈과 오버랩 된다.

죽음이 너무나 가깝다. 항상 그렇게 느끼고 있었고, 수없이 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다. 마치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는 눈들처럼 인간은 그렇게 덧없이 사라져간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내린 시련과 같았고, 어쩌면 지독하게 치명적인 현실일지도 몰랐다. 사그라져가는 인간, 이제는 쉽게 만 보이는 죽음. 하지만 그 무게는 절대 변하지 않았다.

난 고개를 들어 나에게 서류 더미를 던진 김윤식을 노려보았다. 속에서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그 분노의 증기는 차가워진 머리를 만나 차갑게 식는다. 그렇게 차갑게 식은 증기는 액체가 되어 내 심장 위에 떨어졌다. 김윤식, 너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지켜보았을까? 과연 죽음이 뭔지는 알고 있을까?

내 기억 속에 숭고한 죽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더러운 욕망에 모욕당할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난 나도 모르게 의자를 꾹 잡고 손을 떨었다. 그리고 내 다리는 꿋꿋하게 바닥을 밟으며 몸을 일으켜주었다.

버러지, 쓰레기, 괴물보다 더한 찌꺼기의 괴물. 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입을 여는 순간, 차갑게 식은 머리에서 떨어진 분노의 농축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욕망과 분노로 일그러진 김윤식의 얼굴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원색적인 비난, 아니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비난보다 더한 욕설이었다. 할 말도 많고, 반박할 말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논리와 주장이 저놈 앞에서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 낭비였다. 저놈과 저 새끼들은 알아야 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더러운 버러지들인지.

‘무, 무슨…….’

아까 노인에게 무례하다고 소리를 지른 여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더듬는다. 하지만 그녀는 노골적인 욕설 앞에서도 절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을 담은 눈을 뜬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이 두 눈을 정확히 직시하라고,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부끄럽고 잘못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윤식아, 네 목숨값이 19명보다 비싸냐?’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온다. 노인의 혀는 사람을 찌를 만큼 날카로웠고, 그 말은 비수가 되어 허공을 꿰뚫어 날아갔다. 김윤식과 구 간부들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 하는지 우리의 시선을 피하기 바쁘다. 왜 말을 못 하지?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19명보다는 내 목숨이 더 비싸다고. 그러자 여자는 변명하듯 대답했다.

‘임, 임무 중에 생긴 손실이잖아요! 전쟁 중에 일어난 최소한의 손실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러자 저 뒤에서 기회를 노리던 신입 간부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를 향해 외친다.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요! 지휘관이 도망갔다고, 도망! 왜 계속 논점을 흐립니까!’

여자는 지지 않고 외쳤다.

‘아니, 그럼 위험하니까 도망가죠! 지휘관이 죽으면 나머지 병사들은 어떡하라고요!’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회의장. 양측에선 소리를 지르며 논쟁을 펼치기 바빴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간다. 난 두 눈을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당장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딱딱하게 굳어 펴지지 않는 손가락 때문에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옆에 서 있던 노인이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 쥐며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텅!

그리고 섬광같이 빠른 손놀림. 노인이 나에게서 가져갔던 대검은 정확하게 허공을 날아가 구 간부들이 모여 있는 책상 앞에 꽂혔다. 그것은 노인이 양측에게 보내는 경고와 같았고, 어쩌면 무식한 무력시위로 보일지도 몰랐다. 회의장은 다시 한 번 침묵으로 휩싸였으며, 고성을 지르던 여자는 얼굴이 창백해져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절대 섣불리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행동도……. 분명 나를 위해 해 준 행동이었을 것이다. 나에게서 가져간 대검, 그리고 대검을 날린 노인. 꼭 나에게 할 말을 하라는 무언의 옹호와 같았다. 난 그 옹호를 순풍 삼아 걸어갔고, 조용히 김윤식 앞에 섰다. 그리고 내 입에서는 튀어나오기 직전인 증기가 입김을 타고 흘러나왔다.

‘죽을 각오를 했었어?’

김윤식이 창백해진 얼굴을 푸들푸들 떨며 겨우 대답한다.

‘뭐……?’

‘너는 죽을 각오를 했었냐고.’

회색 정글을 원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찾아온 종말은 인간들을 변하게 했고,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사람들은 격한 물살에 던져 넣었다. 같이 흐르기도 한다. 그리고 거친 조류가 되어 서로가 몸을 부딪치기도 했다. 이곳에서 필사적이지 않았던 몸부림은 단 한 줌도 없었다. 모두가 살고 싶었고, 모두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다.

김윤식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에덴의 벽이라는 곳에 자신을 고립시키고 현상유지를 위해 욕망을 불태운다. 때로는 불의를 외면했고, 다가오는 변수를 애써 무시한다. 더러운 손으로 가린 하늘, 남들은 거친 조류를 타고 있음에도 자신은 혼자 고요한 호수가 되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

이것은 다른 종에 대한 혐오다. 그리고 적응하지 못하고 피해를 주며 살아가는 자에 대한 증오다. 권력이 뭐기에, 이 좁은 곳에서 유지하는 그 위선자의 자리가 뭐기에 사람의 목숨을 서류상에 존재하는 손실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난 더는 이 애새끼 같은 놈의 어리광을 보기 싫었다. 마침내 놈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 내 잘못이 아니야…….’

난 그대로 손을 뻗어 노인이 책상에 던진 대검을 잡았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는 뒤룩뒤룩 살이 찐 김윤식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더러운 땀 냄새와, 기름진 고기 구린내. 그리고 욕망으로 찌든 술 냄새가 놈에게서 풀풀 풍겨왔다. 아냐, 넌 후회를 해야 했어. 두 눈으로 지옥을 보고, 그곳에 당신이 방관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난 대검을 잡자마자 놈을 일으켜 세우고 벽으로 밀쳐 버렸다. 놈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며 형편없이 벽에 처박혔고, 두려움과 공포가 찌든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사방에선 경악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윤 씨!’

‘동윤아!!’

단체장과 노인이 내 돌발행동에 깜짝 놀라 비명처럼 나를 부른다. 하지만 내 행동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내 손에 쥐어진 대검은 그대로 허공을 지나쳐 김윤식의 미간으로 향했다. 이대로 대검이 놈을 내려찍는다면 그대로 즉사하겠지. 놈도 그것을 아는지 두려움에 찌든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사, 살려 줘!!!!!!!!!’

오만했던 모습은 죽음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자신에게 죽을 위기가 찾아오고 나서야 그 묵직한 무게를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내 칼날은 그대로 경로를 바꿔 벽으로 향했다. 곧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김윤식의 귀 옆에 꽂혔고, 칼날은 살벌한 소리를 내며 파르르 떨려왔다. 놈은 현실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움도 알아야 한다.

바닥에는 피 대신 노란색 오줌이 줄줄 흘러내린다. 김윤식은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떨었고, 내가 손을 놓자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방에선 경악이 섞인 묘한 분위기가 흘러나왔고, 오직 내 일행들만이 내 주위로 달려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벽에 꽂아둔 대검을 뽑아냈다.

땡그랑.

그 대검은 구 간부들이 모여 있는 책상 앞에 힘없이 떨어졌다. 대학교를 탈출할 때부터 들고 다니던 대검이었다. 그동안 잘 쓰고 있었기에 별다른 교체 없이 사용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구 간부들을 향해 던져 주었다. 그것은 내 투쟁의 기억이기도 했고, 소중한 일행들을 만났던 추억의 단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였다.

‘오늘부로 김윤식 조장의 직위를 해제합니다. 그리고 죄가 있냐, 없냐는! 모두가 참관하는 정식 재판장에서 유가족분과 주민들에게 묻겠습니다! 반론은 더 이상 듣지 않을 테니 모두 해산하십쇼! 징계위원회는 이것으로 끝냅니다!’

단체장의 말이 벼락처럼 회의실을 관통한다. 그것은 여세를 몰아 결정되는 사항이었음에도 구 간부들 중 반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들은 책상 위에 올려진 대검을 멍하니 바라보며 죽은 사람처럼 숨을 죽일 뿐이었다.

문이 덜컹 열리고 단체장의 직속 경비들이 회의실을 박차고 들어왔다. 모두 이때만을 기다렸는지 완전무장한 상태였고, 이미 회의실 밖은 누군가가 지르는 고성으로 시끄러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경비대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김윤식을 일으켜 세웠으며, 이내 회의실 밖으로 끌고 가듯 데리고 나가 버렸다.

김윤식은 힘없이 끌려가며 텅텅 비어 있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난 그 눈동자를 놓지 않고 마주 보면 질겼던 악연과 그제야 이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농축된 물방울이 심장 위에 툭 하고 떨어진다. 난 후련함과 찬 공기가 섞인 숨을 후욱 내뱉었다.

구 간부들은 끝내 내 대검을 들고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돌발행동을 한 죄로 근신이라는 휴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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