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에덴이 워낙 거대하고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간혹 다른 쉘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는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은 밝은 얼굴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연경과 그 동생도 분명 다른 쉘터 출신이었다. 그리고 탐색조 생활을 할 때도 평소 에덴과 잦은 교류를 맺던 쉘터들이 존재한다는 걸 매뉴얼에서 읽은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쉘터에서 온 생존자를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설명은 들은 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글라스를 쓴 중년 남자와 악수를 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원과 구사일생. 소통하는 것에 작은 문제가 있어서 비록 첫 만남이 삐걱거리긴 했지만, 이 남자가 우리들의 목숨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시원시원한 말투와 쿨한 행동. 생긴 것만큼이나 호탕한 중년 남성의 이름은 박대박이었다. 워낙 강렬한 얼굴과 이름이었기에 일기를 작성하는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혹시나 더 몰려올 변종들을 피해 근처 건물로 자리를 옮겼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그들이 건네주는 따뜻한 음식을 받아먹었다.
쌓인 피로를 짧게나마 회복하기 위해 담요를 깔고 누워 있는데, 왠지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박대박이 우리에게 다가와 또 말을 걸었다. 나는 누구요. 당신들은 누구요, 이상. 짧은 인사와 함께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우리는 이들이 에덴과 꽤 가까운 곳에 쉘터를 조성한 생존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개새끼들!’
‘네?’
‘쉘터 이름 물어봤잖아?’
개새끼들을 이끄는 박대박. 자기 이름만큼이나 쉘터 이름도 강렬했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를 물어볼까 하다가 변종의 목숨을 끊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생존자들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변종의 시체를 들고 걸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왠지 야생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늑대나 들개 무리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비속어가 섞인 단체 이름처럼 나쁜 뜻을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에덴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얌전히 살아가는 꽃들이라면, 저들은 척박한 환경에 대항해 꿋꿋하게 살아가는 잡초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난 투덕거리며 걸어가는 생존자 무리를 조용히 지켜보며 컵 안에 담긴 커피믹스를 마셨다. 그러자 내 옆에 서 있던 박대박이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나도 에덴에 볼일이 있는데, 같이 갈까?’
왜 이렇게 친근하게 굴어? 나는 격 없이 다가오는 박대박에게 의아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박대박은 나뿐만이 아닌 모든 일행들에게 호의를 담고 친근하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마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그의 태도도 대략적이나마 수긍이 되었다. 난 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 명령이 떨어지자 30명쯤 되어 보이는 무리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이동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소리를 듣고 달려온 괴물 놈들을 가뿐히 처리하고 눈 속에 파묻는다. 그리고 길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는 쇠창살 하나까지 전부 해체해 리어카에 담았다.
마치 개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은 10분 정도가 지나자 마치 이사를 하듯 질서정연한 대열을 완성했다. 끌고 다니는 리어카만 5대, 그곳에는 무엇인지 모를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커다란 포대기가 내용물의 유출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치게 친절한 대우를 받으며 무리 중앙에 위치했다.
우리는 에덴으로 가는 직선 경로가 아닌, 한참을 우회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이동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겠지만,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변종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로를 잡은 것은 내가 아닌 박대박이었다.
워낙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끌었기 때문일까? 에덴으로 출발하기 전 나도 모르게 훈수를 둘 뻔했지만, 그런 나를 노인이 조용히 막아섰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괴물 놈들과 하는 전투뿐만이 아니라 종말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또한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나는 알아서 안전한 길을 개척하는 박대박을 보며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오랜만에 선두가 아닌 무리 중간에 위치해 편안하게 이동했다. 숙련된 베테랑이자 경험 많은 지도자를 만나게 되니 왠지 기분이 묘하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박대박이 이끄는 무리들은 하나같이 노련하면서도 거친 분위기를 풍겨 왔다. 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그들은 우리에게 유난히 강한 호의를 보내 왔다. 거기다 젊어 보이는 생존자들은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다가와 맛있는 군것질거리나 친근한 말들을 건네 오기도 했다. 난 당황하면서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내미는 초콜릿 하나를 받아들었다.
내가 얼떨결에 초콜릿을 받아들자 저 앞에서 걷고 있던 박대박이 걸음을 늦추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곧이어 그는 코를 킁 거리며 조금 부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서 그래.’
고마워? 뭐가? 워낙 우리를 잘 대해 줬기에 처음에는 뭔가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듯 박대박이 이끄는 무리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내는 것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난 이들을 오늘 처음 만났고, 이만한 이들에게 빚을 지운 기억도 없었다.
‘왜요?’
난 의문을 담아 짧게 물었다. 그러자 박대박은 흐흐 웃더니 다시 한 번 콧물을 삼켰고, 이내 조용히 손을 올려 나와 어깨동무를 했다. 근육으로 다져진 묵직한 팔의 무게가 어깨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내 어깨를 손으로 꾹 잡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 새끼들한테 잡혀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어.’
당연한 소리겠지만 에덴에만 피해자가 있는 건 아니었다. 부랑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잡아갔고, 또 많은 이들을 죽였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으며……. 오늘에서야 그 지옥을 불태울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고 있던 박대박이 인상을 찡그리며 슬픔을 삼켰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에 꼭꼭 숨겨 뒀었는지 묘한 따뜻함이 남아 있는 초콜릿을 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검은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포장지, 온기 때문에 녹아 있는 내용물. 분명 두고두고 아껴 먹으려고 했을 귀한 보물일 것이다.
너무나 작았음에도……. 그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순수한 호의와 고마움이 내 가슴을 간지럽혔다. 나는 사명감이 없었다는 것에 부끄러웠고, 그런데도 애절한 고마움을 표하는 그들 앞에서 쑥스러웠다. 나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얼굴을 돌려 사방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을 눈 안 가득 담았다.
그간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모를 만큼 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후련함과 동시에 떠난 보낸 사람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종말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선, 또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각자가 각자의 사정을 담고 수천 편의 슬픈 드라마를 들이밀었다. 난 물밀 듯 흘러오는 격한 감정을 느끼며 눈을 꼭 감았다.
‘엿 같은 세상이라서……. 그냥 정말 거지 같은 세상이라서 슈퍼맨 같은 건 다 죽어 버린 줄 알았는데…….’
박대박이 나에게 건네는 말 때문일까? 도시 한복판에 뜬 해를 바라보는 내 눈과 가슴이 조용히 떨려왔다. 나는 애써 그 떨림이 추위 때문일 것이라고 합리화했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묘한 감정 때문에 그 떨림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감정이 마모된 상처를 보듬어 주었다. 마치 따스한 햇살을 마주한 것과 같았다.
‘사람들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다.’
박대박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모든 무리가 걸음을 멈추며 나에게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내 귀로는 그날 채연이가 즐겁게 부르던 노래가 스쳐 지나갔다. 아빠는 슈퍼맨, 아빠는 모두를 구하는 슈퍼맨. 난 주머니에 있는 초콜릿을 꾹 잡았다.
* * *
이동하는 도중 난 갑자기 의문이 생겨 박대박에게 물었다.
‘단체장님이랑 친하십니까?’
분명 그의 부탁을 받고 우리를 지원하기 위해 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꽤 친한 사이겠지? 하지만 내 질문을 받은 박대박은 숨을 훅 내뱉으며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물음과는 조금 빗나간 대답을 툭 던지듯 해 주었다.
‘좋은 사람이지.’
그는 결코 친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박대박은 점점 가까워지는 에덴의 정문을 바라보며 주위에 있는 일행들과 자신의 동료들을 살폈다. 그리고 예전 일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짧은 턱수염을 만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교류는 했지만 도움을 청할 사이는 아니었어. 연락이 한 일주일 만에 왔나? 평소 딱딱하던 그 양반이 웬일로 처음부터 굽히고 들어오더라고. 부랑들 본거지에 들어가는 미친놈들이 있는데……. 제발 좀 도와달라고.’
그 미친놈들이 우리다.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단체장이 보기에는 영 불안했던 모양. 하지만 그가 느낀 불안함과 새롭게 만들어 둔 쥐구멍은 결국 우리를 살렸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박대박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
‘당연히 미쳤냐고 했지. 우리들 분위기도 개판인 마당에 그 지옥에 왜 들어가겠냐고. 근데 무전을 끊고 보니 어떤 미친놈일까 하고 궁금증이 드는 거야. 그래서 저 멀리 떨어져서 한 번 지켜봤어. 너희들이 누구고……. 도대체 뭘 하려고 했는지.’
박대박이 그 두꺼운 손으로 내 등을 팡 친다. 그리고 한 점 후회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
박대박 무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날 그곳에 뼈를 묻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간 세계를 비웃고 있는 신이 우리에게 자비를 던지기라도 하듯 이득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던 선행은 부메랑처럼 날아와 우리를 구해 주었다. 아,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에덴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박대박 무리는 당연하다는 듯 우리를 따라왔다. 에덴에 볼일이 있다고 했던가? 아마 우리가 구출한 자기 쪽 사람들을 만나러 온 것일 것이다. 난 혹시 도울 일이 있을까 하고 물어봤지만 박대박은 고개를 저으며 일단 쉬라는 대답을 해 왔다.
나는 무전기를 꺼내 정문을 열라고 말했다. 그러자 평소와는 달리 너무나 암울한 경비의 대답이 들려왔고, 이내 에덴의 정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부상자들의 향연이었다.
‘여기! 여기야!’
역시 부상자들 한가운데에선 의사가운을 팔랑이는 김 철이 맹활약 중이었다. 정문 안에는 수십 명이 넘는 부상자들이 있었고, 병원으로 수송조차 못 하고 있는지 임시로 지어진 텐트 안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한 의료진과 수용시설 때문에 대부분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방치되어 있었다. 아마……. 이번 싸움으로 부상을 당한 전투조일 것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나 착해 빠진 용팔이 형제였다. 용팔이 형제는 피를 흘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결국 부상자들을 번쩍 들어 올려 텐트로 나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용팔이 형제를 시작으로 김혜정과 강 형사도 바쁘게 움직이며 부상자들을 수송했다.
우리랑 대척점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은 어떠한 망설임 없이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노인은 망설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고 생각했는지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일행들을 따라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나중에 봅시다.’
난 허탈하지만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박대박에게 말했다. 이제야……. 이제야 이 싸움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가기 시작했다. 후련한 미소와 함께 일행들을 따라가려는 나를 본 박대박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저 새끼들 전투조놈들 아니야? 왜 도와줘? 너희들이랑 사이 안 좋다며.’
맞다. 사이 안 좋다. 오늘 전투조를 이끌었던 김윤식 새끼와 그 외 전투조 간부들은 만나자마자 죽통을 후리고, 사생결단을 낼 생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명령을 받았던 저 사람들까지 외면하며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누구는 이득을 위해서, 또 누구는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지만, 적어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아버지, 그리고 누군가의 아들, 혹은 누군가의 구성원. 죽어가던 이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들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디좁은 내 마음이 천천히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인간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몰랐다. 난 숨을 크게 들이키며 신선한 공기를 가득 삼켰고, 썩은 구정물을 뱉어내며 차가운 공기 속에 따뜻한 체온을 느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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