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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115화 (115/313)

[115]

무빙워크를 타고 올라온 3층은 아래층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햇빛이 들어오는 크나큰 창문들은 모두 신문지나 큰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역한 냄새와 동시에 싸늘한 분위기가 피부를 핥고 지나갔다. 우리는 어두운 시야 때문인지 아까 집어넣은 손전등을 다시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난 자세를 숙여 사방을 둘러봤고, 그 옆으로 노인이 다가와 물었다.

‘더 남아 있을지도 몰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층에서 들려온 소란을 듣고 3층에 남아있는 부랑자들이 떼거리로 내려왔었다. 아마 화염병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처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만큼의 숫자였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3층에 부랑자들이 전혀 없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난 확보되지 않은 시야 앞에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확인부터 합시다.’

망설임은 독이고, 주저함은 불구덩이와 같다. 난 거침없이 지시를 내리며 그간 나를 형성해 준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뒤로 갈 구멍은 없고 후퇴할 길이 없다면, 여태 그래왔듯 앞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우린 최대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손전등을 한곳에 모아 사방을 밝혔다.

무빙워크 근처를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역한 냄새는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강한 썩은 내가 풍겨왔다. 나는 황급히 천을 꺼내 입과 코를 막았고, 노인과 강 형사도 인상을 찡그리며 천을 꺼내 들었다. 중앙으로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걸음걸이는 조심스러워졌으며, 코와 입을 막은 천은 한두 장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 그 역한 냄새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시발…….’

노인이 천을 바닥에 떨구며 작은 욕설을 내뱉었다. 나도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현실적으로 믿을 수 없었기에 힘없이 손전등의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내 옆에 있던 강 형사는 격하게 반응하며 입을 막더니 곧 바닥에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뼈 무더기다.

몇 명이지? 두 자릿수? 아니, 그보다 많다. 모두 부랑자들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뼈들이 한곳에 뭉쳐 있었다. 정돈하게 쌓아둔 것이 아닌, 마치 먹고 남은 동물의 뼈를 버린 것 같은 유해들은 정신 사납게 흩뿌려져 기이한 분위기와 차가운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뼈에는 아직 살점이 붙어 있었고, 그 근처로는 분명 불로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근섬유질 사이에 남아 있는 명백한 이빨 자국과 두개골에 아직도 붙어 있는 털들은 저절로 토악질이 나오게 했다.

무형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것은 악의와 증오, 그리고 피가 사무치는 억울함이다. 괴물이 아닌 인간에게 뜯어 먹혀야 했던 사람들의 허탈함과 분노. 난 그 모든 기분을 피부로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노인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뼈 무더기의 주위를 돌았고, 강 형사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곧이어 내 품에선 무전기가 크게 울렸다.

[형님! 2층도 상황 끝났습니다! 모두 구출했어요!]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용팔이의 목소리는 몹시 크고 우렁찼다. 그 목소리에는 분명 내가 사람을 또 구했다는 자부심과 팀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3층에 서 있는 나는 밝게 웃으며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인과 강 형사에게 지시했다.

‘생존자를 찾으세요. 그리고 부랑자 개새끼들도 남김없이 찾아요.’

나의 명령에 노인은 이를 까득 물었고, 강 형사는 표정을 굳힌다. 그리고 그 둘은 바닥에 떨어트린 무기들을 들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마 내가 찾으려는 생존자는 없을 것이다. 이곳은 부랑자들이 음식물 쓰레기들을 버리는 장소였을 테니까. 난 천천히 손을 뻗어 뼈 무더기 위에 손을 올렸다.

난 존재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나는 무엇이고, 이 뼈만 남은 사람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과연 이들의 복수를 위해 부랑자들을 죽일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대답해 주지 않는 두개골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에게 되물었다. 넌 뭐지? 영웅? 이기주의자? 아니면 지금은 단순한 복수자일까? 내부에서 뒤섞인 진창들은 조류를 따라 미친 듯이 휘몰아친다.

[형님?]

대답이 없는 내가 걱정되는지 용팔이가 무전기 너머로 끊임없이 대답을 요구해 온다. 난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잡고 텅텅 소리가 울리는 무빙워크로 고개를 돌렸다. 급하게 올라오고 있는 걸까? 나는 뒷수습을 해 줘야 할 용팔이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용팔아, 거기서 1분만 기다리고 올라와.’

[네?]

내가 조용히 목소리를 깔자 용팔이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무전기 볼륨을 조용히 줄인 나는 일단 감고 있는 눈을 뜨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며 상품들을 덮는데 사용하는 가림막을 찾아내 이곳으로 질질 끌고 왔다.

그리고 팔에 힘을 주며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가림막들을 탈탈 털어냈다. 가림막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산처럼 쌓여 있는 뼈들 위로 가림막을 올려 주었다. 가림막이 이불처럼 그들을 덮자 무섭고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던 두개골과 뼈들은 모든 것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한순간에 모습을 숨긴다.

추웠을 것이다. 그리고 무서웠을 것이다. 난 신발이 진흙 속에 빠진 것처럼 한참을 그렇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용팔이는 내가 지시한 시간이 지나자 황급하게 무빙워크를 달려와 가만히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외쳤다.

‘형님?! 다치셨어요!’

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뼈 무더기를 손으로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무겁고 머리는 아프게 울려왔지만, 난 이 익숙한 기분을 빠르게 떨쳐내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크로스 보우를 들어 올리며 조용히 볼트를 장전했다.

‘용팔아, 같이 올라가자.’

‘네? 다른 생존자는요?’

용팔이의 물음을 끝으로 내 손전등은 꺼졌고, 짙은 어둠이 우리 주위에 깔렸다. 그리고 그 칠흑 사이로 약에 취한 부랑자 놈들이 내뱉는 단말마가 들려온다. 노인과 강 형사는 마치 악귀처럼 그 칠흑 사이를 거침없이 가로질렀고, 난 그들의 뒤를 따라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밖과는 다른 피와 어둠의 시간이었다.

난 용팔이에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경비 팀한테 무전 보내. 3층 생존자 없으니까 그냥 올라오라고.’

‘네……?’

용팔이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한순간 반문을 보내온다. 하지만 난 별다른 설명 없이 다시 한 번 용팔이를 향해 말했다.

‘3층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라고.’

그 순간 저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곧이어 그 처절한 비명과 함께 어둠 사이로 한 인영이 뛰쳐나온다. 그것은 부랑자, 자비 앞에서도 회개 못 할 쓰레기 같은 놈들. 노인과 강 형사를 피해 도망치던 부랑자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처럼 울고 있는 그놈의 얼굴을 보니 내 팔에는 자동으로 힘이 들어갔고, 눈은 튀어나올 듯 아파져 왔다. 난 그대로 크로스 보우를 들어 올려 견착한다. 이제 더는 방아쇠가 무겁지 않았고, 내 손으로 죽여야 할 사람의 얼굴이 무섭지 않았다.

그놈은 달려오는 와중에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처연한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멈추더니 멍하니 나와 빛나는 볼트를 바라본다. 이제야 찾아온 삶의 끝, 그리고 악행의 끝. 짐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난 방아쇠를 당겼고, 그놈은 볼트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눴다.

그 뒤를 쫓아오던 노인이 붉게 변한 눈을 조용히 감으며 대검에 묻은 피를 닦는다. 한순간 모든 일행들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그들의 시선은 오직 나에게로 향했다. 명령을 내려달라. 또 지시를 내려달라. 나는 그런 시선을 느끼며 소매를 들어 올렸고, 내 볼 위에 묻어 있는 피를 쓱 닦아 내었다. 나는 천천히 마모되어가는 내 심장의 소리를 들었다.

‘올라갑시다.’

3층으로 올라오는 내내 우리 팀 사상자는 없었고, 모든 부랑자들도 처리했다. 그리고 생존자들을 구출했으며 안전하게 에덴으로 후송까지 마쳤다. 한 층만 더 처리하면 모든 것이 끝나고 우리에게 승리가 찾아오겠지만, 난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이 망해가는 세상에게 패배해 갈기갈기 찢겨 버린 내 심장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난 숨을 훅 내뱉었고, 상처뿐인 끝을 위해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내 뒤로는 온전히 존재하는 일행들의 숨소리와 거친 발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잠시 후 위층으로 향하는 무빙워크 앞에 도착한 우리는 무빙워크 한가운데를 황급히 막고 있는 부랑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오지 마. 개새끼들아!!’

대형마트에 남아 있는 부랑자들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작정하고 발악하기로 했는지 무빙워크 뒤로 보이는 부랑자들은 꽤 많았으며, 한가운데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 또한 굉장히 견고해 보였다.

난 부랑자들이 들고 있는 날카로운 창들을 보며 조용히 실소를 머금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랑자들이 내 웃음을 보며 격하게 반응했다.

‘올라가면 니들도 죽고, 우리도 죽는 거야! 응? 제발 좀 가라고!!’

뚱딴지같은 소리다. 마지막 층에 이것보다 더 심한 거라도 숨겨 둔 모양이지? 난 무빙워크를 밟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고, 일행들도 크로스 보우를 들어 올리며 내 뒤를 따라왔다. 곧이어 부랑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꽥꽥거리기 시작하자 우리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퉁-, 퉁-, 퉁-.

볼트가 살을 파고드는 소리와 함께 그놈들이 내뱉는 비명의 하모니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나는 담담한 표정과는 반대로 슬슬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노인도 내 생각과 같은지 볼트를 장전하며 다른 일행들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인다.

‘제대로 틀어막았어.’

난 살며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 사격을 가하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해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볼트 사격을 가하며 천천히 접근해 본 결과, 길을 틀어막고 있는 바리케이드가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부랑자들을 죽이는 볼트보다 바리케이드에 박히는 볼트의 수가 더 많았다. 이대로 소모전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볼트는 언젠간 떨어지고 말 것이고, 자연스럽게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번처럼 화염병을 던져볼까? 아니다, 저 바리케이드에 불이 옮겨붙는다면 우리도 저 길을 지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방법이 없을까? 난 메말라가는 입술을 핥으며 한쪽 다리를 천천히 떨었다. 한시가 급한 지금 재빨리 돌파구를 찾아야 했지만, 한정된 공간과 무기 때문인지 머리는 돌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총을 써야 하는 걸까? 난 눈을 질끈 감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총 위로 천천히 손을 올려두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크로스 보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둔탁한 소리를 쫓았고, 그 시선 끝에는 크로스 보우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두식이가 있었다. 두식이는 무언가 답답하다는 표정과 함께 그 속에 무언가 끓어오르는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곧이어 그것이 곧 폭발하기라도 하는 듯 얼굴이 붉어지고 화가 난 듯이 입을 뻐끔뻐끔한다. 용팔이는 동생의 돌발행동을 보며 불안한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얌마……. 왜 그래…….’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순진무구한 두식이의 두 눈은 원초적인 분노로 물들었으며, 그런 눈빛을 캐치한 노인이 재빨리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두식이는 마치 폭주하려는 기관차처럼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이내 앞으로 힘껏 달려가기 시작했다.

‘야! 야!!’

용팔이와 강 형사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뛰쳐나가는 두식이를 잡아끌려고 했지만, 노인은 재빨리 그들의 움직임을 막으며 두식이가 뛰어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동생의 미친 행동을 보며 경악한 용팔이는 왜 막았냐는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봤지만, 노인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웃음에는 돌파구를 찾았다는 시원함이 담겨 있었다.

우리 일행들 중 가장 말이 없는 사람은 두식이였다. 하루에 한마디 듣는다면 정말 운 좋은 날이었고, 어쩌다 두 마디 하는 날에는 모두가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하지만 두식이는 말이 없을 뿐이지 언제나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힘든 일만을 찾아 묵묵히 해결해 주는 든든한 팀의 기둥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앞으로 나아갈 대책이 없을 때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는 했다. 대형마트 근처에서 변종 놈에게 한 방 먹일 때도 그랬고, 할머니를 살해한 부랑자들을 습격할 때도 똑같았다.

그리고 노인은 두식이가 화날 때면 이런 고함을 내지른다고 말해 줬다.

‘으아아아아!!!!!!’

귀가 찌르르 울리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온몸에 힘이 빠지게 만든다. 부랑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인지 두식이가 탱크처럼 달려감에도 대응 하나 하지 못하며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두식이가 바리케이드 정중앙에 몸을 틀어박는다.

쾅!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제법 견고하게 만들었던 바리케이드는 마치 레고 블록을 쌓아 둔 것처럼 부서졌고, 이내 잔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부랑자들은 그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 입을 헤 벌렸다.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두식이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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