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14화 (114/313)

[114]

단체장이 약속한 직속 경비대가 근처까지 도착했다는 무전이 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명령권이 있음을 강조하며, 대형마트 내부에서 구출 활동을 벌일 동안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부랑자들의 진입을 막고, 괴물 놈들을 처리할 예정이라 말했다. 난 흔쾌히 수긍하며 우리가 인도해 주는 생존자들을 잘 인계해 달라 요구했다.

여유 시간을 아무리 많이 잡아보아도 한 시간이다. 그 촉박한 시간 동안 이곳을 불태우고, 모든 생존자들을 확보해야 했다. 대형마트는 총 4층으로 이뤄져 있었고, 무빙워크를 이용해 상층으로 향해야 했다. 일단 우리는 지하 주차장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지하 주차장을 칠흑 같은 암흑천지였다. 하지만 후각을 툭툭 치는 매캐한 연기 냄새와 은은하게 풍겨오는 역한 냄새가 이곳에 부랑자 놈들이 살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챙겨온 손전등을 꺼내 들고 앞을 밝히며 뛰어갔다.

암흑 사이로 여러 줄기의 빛이 가로지른다. 손전등으로 사방을 살피자 빼곡한 차들이 그저 단단한 철 덩어리가 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혹 중간마다 보이는 드럼통에는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젖은 장작이 불타고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사방으로 흔들었다. 이런 어두움 속에서 구역 하나하나 확인하며 생존자들을 찾기에는 무리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용팔이 형제와 김혜정을 투입하기로 했고, 나와 노인. 그리고 강 형사는 위층으로 향하기로 했다.

지하 주차장 문을 발로 박차며 움직이지 않는 무빙워크를 정신없이 뛰었다. 철을 밟는 텅텅거림이 비어 있는 대형마트를 울렸고, 우리들의 거친 숨소리는 흥분으로 격앙된 심장을 미친 듯이 울렸다. 마침내 지상 1층으로 도착했을 때쯤 저 멀리서 시끄럽게 울리는 전투음이 우리들의 조급함을 더욱 자극했다.

대형마트 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구역들은 쓰레기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무언가로 가득했고, 옷가지와 파는 물건들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곳곳에 보이는 텐트와 쓰레기들로 만든 거주지는 이곳이 어떤 용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생존자! 생존자를 찾아야 했다. 그러기에 앞서 나는 가장 먼저 볼트를 장전했고, 노인과 강 형사도 나를 따라 활시위를 당겼다. 우리는 무빙워크를 박차고 뛰어가며 1층 중간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발소리를 들은 부랑자 몇몇이 텐트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강한 본드 냄새와 노폐물이 주는 역함이 풀풀 풍겨온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그저 사람을 죽이는 킬링 머신처럼 몸을 움직여 크로스 보우를 견착했다. 퉁, 퉁. 건조한 발사음이 대기를 갈랐고, 그 여파는 텐트를 기어 나오는 부랑자 두 놈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난 재빠르게 뛰어가 볼트를 맞지 않은 부랑자 한 놈의 머리를 발로 차 버렸다.

컥!

아직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인지 못 하던 부랑자는 머리를 강하게 맞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내가 다시 한 번 머리를 가격하자 이내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난 크로스 보우를 바닥에 내려놓고 허벅지에 꽂아두었던 대검을 뽑아 들었다.

‘잡아 온 사람 어디 있어.’

시간이 없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못할시 어떻게 될지는 목에 들이민 대검이 설명해 주었다. 그놈이 숨을 내뱉자 역한 본드 냄새가 풍겨왔고, 이빨 사이로는 무슨 고기인지 모를 이물질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놈은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흐린 동공을 계속해서 흔들었다. 그러자 난 그대로 대검을 들어 그놈 허벅지에 꽂아 넣었다.

날카롭게 간 대검은 무리 없이 놈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몽롱한 약 기운도 극심한 고통을 몰아내 주지는 않는지 그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으려 아가리를 벌렸다.

‘끄으으으윽-읍!’

그와 동시에 나는 가죽장갑을 낀 손을 그대로 들어 올려 그놈이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입속에 집어넣었다. 가죽장갑 중앙에는 철로 만들어진 징이 박혀 있다. 나는 그대로 힘을 주며 이빨을 박살 내겠다는 기세로 놈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디 있어.’

놈은 고통으로 뭉개진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동자를 흔든다. 놈이 발버둥 칠 때마다 허벅지에 박힌 대검은 움찔거렸고, 피는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내 마지막 경고를 인지한 놈은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막힌 입을 대신해 남아 있는 손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놈이 힘없이 가리킨 방향은 1층에 존재하는 푸드 코트였다. 난 놈이 하는 자백과 동시에 내 뒤에서 대기하는 노인과 강 형사를 향해 눈짓했고, 그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답을 얻은 나는 그대로 대검을 뽑아 들고 말했다.

‘반성하지 마라.’

너에겐 반성할 권리조차 없으니까.

내가 꽂아 넣은 대검이 뽑힘과 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놈이 눈을 붉게 물들이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징이 박힌 가죽장갑은 그대로 놈의 목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이제 꺼져가는 마지막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게 그대로 대검을 놀려 놈의 숨통을 끊었다.

볼과 눈 아래로 피가 팍 튀긴다. 난 살며시 눈을 감고, 소매로 그 피를 닦았다. 그리고 입안에 들어온 씁쓸함과 놈의 피를 뱉어내며 내가 인간과 서서히 멀어지고 있음을 충분히 자각했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꼿꼿하게 서서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지하고, 떨쳐낸다.

‘…….’

노인과 강 형사가 달려간 방향에서 놈들이 지르는 고함이 울린다. 아직 남아 있는 잔당이 있나? 난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대검에 묻은 피를 흔들어 털어 내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크로스 보우를 주워들고, 고함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푸드 코트는 마치 사육장처럼 조잡한 바리케이드가 둘러져 있었고, 중앙에는 발가벗은 사람들이 가축처럼 모여 있었다. 그 가장자리에는 노인이 정신없이 크로스 보우를 발사했으며, 강 형사는 능숙한 총검술로 부랑자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었다.

한 5명쯤 되어 보이는 부랑자들은 대부분 바지를 벗고 있거나 나체 상태였는데 아까 죽인 놈들처럼 본드와 약에 찌들어 있었다. 그리고 몸에서는 풍겨오는 익숙하면서도 역한 냄새……. 나는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크로스 보우를 견착한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쇠파이프를 들어 강 형사에게 달려가는 놈의 몸체를 조준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근접거리에서 발사된 크로스 보우는 그대로 날아가 놈의 옆구리에 꽂혔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가 팍하고 튀긴다.

‘으아아! 살려 줘!!!’

부랑자는 드디어 찾아온 심판 앞에 지체 없이 비겁한 꼬리를 말았다. 한순간에 모든 인원이 죽어 혼자 남게 된 부랑자는 고함을 지르며 뛰어갔고, 조합하게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넘어 반대쪽으로 도망가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리춤에서 대검을 꺼내 든 노인은 그대로 놈을 향해 투척했고, 대검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놈의 목을 꿰뚫었다. 꺽 소리와 함께 바리케이드를 오르고 있던 놈의 몸체가 형편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순간 내 허리춤에 꽂아둔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형님, 우리 올라가고 있어요!]

무전을 보낸 사람은 용팔이였다. 아래층 상황이 모두 끝난 모양인지 용팔이의 숨을 조금 거칠어 보였고, 그 옆으로는 다른 일행들이 내뱉는 숨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난 허리춤에 꽂아 둔 무전기를 뽑아 들고 용팔이게 물었다.

‘생존자는?’

난 그와 동시에 노인과 강 형사를 향해 눈짓했다. 용팔이 형제와 김혜정이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다면 뒤처리를 그들에게 맡겨도 될 것이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두 무리로 나뉘어 효과적인 구출 작전을 펼쳐야 했다. 노인과 강 형사가 위층으로 뛰어감과 동시에 무전기는 잡음을 내뱉으며 용팔이의 목소리를 전해 왔다.

[12명 구했어요! 밖에 있던 분들이 에덴으로 이송시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래요!]

좋다. 좋아,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난 용팔이에게 이곳으로 올라오는 즉시 푸드 코트에 모여 있는 생존자들을 구출하라고 알렸다. 그리고 잠시 생존자가 있는 방향으로 무심결에 시선을 돌리자 모든 생존자들이 한곳에 뭉쳐 초점이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제정신들이 아니다. 학대와 학살, 그리고 인간이 보여 주는 욕망과 추악함 앞에 그들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낯선 손님은 불과 5년 전 자신이 구한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을 그대로 읊어 주었다.

‘……모두, 모두 괜찮아질 겁니다.’

괜찮아질 것이다. 세상이 망하고 종말이 다가왔지만, 그리고 인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괴물들이 언제나 우리의 목을 노리겠지만, 그런데도 괜찮아질 것이다. 희망은 있었다. 그런데도 빛이 있다. 밤이 지나고, 기필코 여명이 찾아오는 것처럼. 과거의 밤은 지나고 오늘의 아침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난 태양처럼 빛나는 채연이를 보며 그렇게 믿고 있었다.

눈을 감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자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절망스러운 광경과 상황은 어둠 속으로 한순간 사라지고 그 어둠 속에선 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채연이와 일행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힘차게 일어나 뜀박질을 시작했다. 온몸에는 힘이 넘쳤고, 근육은 당장에라도 뛰어오를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난 크로스 보우를 앞으로 들고 노인과 강 형사가 달려간 무빙워크를 향해 뛰어갔다. 그곳에는 개떼처럼 무빙워크를 내려오는 부랑자들이 있었다.

‘동윤아!’

노인이 이를 악물고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더는 버티지 못할 거라는 무언의 뜻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 총을 발사하게 해달라는 외침이었다. 크로스 보우의 저지력으로는 저 많은 숫자를 막지 못했다. 하지만, 총을 쏘기에는 밖에서 싸우는 부랑자들이 문제였다.

난 크로스 보우를 내려놓고 내가 들고 온 가방을 정신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 내내 노인과 함께 떠들며 만들던 녹색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녹색 소주병에는 휘발유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 휘발유를 머금은 천이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난 찰랑거리는 화염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주머니를 뒤져 강 형사에게 받아온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든다. 핑! 철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지포 라이터 앞에선 불이 조그맣고 솟아올랐고, 난 그 불로 화염병 입구를 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려오는 부랑자들을 막고 있는 강 형사와 노인을 향해 외쳤다.

‘물러나!!!!!!!!’

내 외침을 들은 강 형사는 본능처럼 몸을 돌려 무빙워크를 내려오기 시작했고, 그 뒤에서 볼트를 발사하던 노인도 그대로 뒤돌아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뛰어오던 노인은 내가 들고 있는 화염병을 발견했고, 이내 큰 소리로 웃으며 부랑자들을 향해 중지를 추켜올렸다. 노인은 곧 현세의 지옥을 만날 부랑자들에게 외쳤다.

‘안부 전해 줘라. 개새끼들아!’

노인과 강 형사가 사정권에서 벗어난 걸 확인한 나는 그대로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내 화염병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무빙워크를 올라가려는 그놈들의 뒤통수를 향해 화염병을 투척했다. 정확하게 날아간 화염병은 그놈들 사이에 툭 하고 떨어져 붉은 화염을 내뱉었다.

쨍그랑!

터진 휘발유는 사방으로 퍼졌고, 중앙에서 시작한 불길은 순식간에 그놈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바글바글하는 개미 떼들은 금세 불길에 휩싸여 버둥거렸으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몇몇은 무빙워크에서 뛰어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난 크로스 보우를 견착하며 외쳤다.

‘시간 없어요!’

난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거나 아직도 무빙워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놈들을 향해 크로스 보우를 발사했고, 노인과 강 형사도 나를 따라 기계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곧이어 그놈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무빙워크에 길을 열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앞을 향해 뛰쳐나갔다.

바닥에는 아직도 불길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지옥으로 가는 입구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불길은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앞길을 막았다. 하지만 난 곧은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속도가 붙기 시작한 내 몸은 재빠르게 불길을 뛰어넘었고, 노인과 강 형사도 겁 없이 내 뒤를 따라붙어 불길을 무시했다.

후욱-.

숨을 내뱉자 불길만큼 뜨거운 정수가 숨을 통해 빠져나왔다. 앞으로 2층 남았다. 곧, 곧 도착지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난 떨리는 손으로 등에서 볼트를 꺼내 들고 크로스 보우의 활시위를 당겼다. 건조한 소음과 함께 볼트는 장전되었고, 난 심장에 강철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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