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13화 (113/313)

[113]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전투조의 공격이 당장 내일로 다가왔다는 무전을 받은 순간, 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노인은 밤사이 잠시 어딜 다녀온다는 소리와 함께 숙소를 나섰고, 새벽이 돼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이 흘러 여명이 건물들 사이에 걸칠 때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찬물에 몸과 얼굴을 씻으며 컨디션을 확인하는데, 노인이 한쪽에서 조용히 나를 부른다. 난 말 없이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용도실의 문을 열자 알싸한 휘발유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시선을 던진 그곳에는 하얀색 휘발유 통이 육중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노인은 어려운 요구였던 휘발유를 끝내 구하고 만 것이다. 난 그곳으로 다가가 연신 코를 킁킁거렸고, 이 방에 있는 휘발유가 그곳을 전부 태워 버리고도 남을 양이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단체장이 도와줬다.’

종말한 세상에서 휘발유란 무척이나 귀한 자원이었다. 그렇기에 일반 주민들은커녕 우리 같은 특수조 조차 마음대로 쓰기 힘든 자원이다. 하지만 우리의 작전을 들은 단체장은 많은 양의 휘발유를 선뜻 건네주었고, 덤으로 우리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난 통을 통통 두들기며 숨을 훅 내뱉었다.

채연이와 다른 일행들이 깨기 전에 모든 탐색조 인원이 기상했다. 강수련을 제외한 인원들에겐 오늘 작전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별다른 일이 아님을 강조하고, 평소대로 밤을 지내며 즐겁게 잠자리에 들었을 뿐이다.

일행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었기에 마지막 인사 같은 절차는 치르지 않았다. 나는 잠들어 있는 채연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잠결에 아이는 히 웃으며 몸을 뒤척인다. 난 그 모습을 보고는 마지막으로 숙소를 나와 일행들과 사무실로 향했다.

그놈들이 가장 둔해지는 시기, 해가 높이 뜬 12시에서 13시를 노린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주병으로 만든 화염병과 휘발유 통을 가지고 그 근처까지 도착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전에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장비를 점검하기로 했다.

털보는 우리가 오늘 사용할 볼트를 밤새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다크 써클이 짙게 낀 얼굴로 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기에, 나와 노인은 무사히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웃음과 너무나 비교되는 볼트 날을 만지며 조용히 표정을 굳혔다.

우린 적절하게 볼트를 배분하고,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내 허리와 허벅지에 하나씩 꽂혀 있는 대검은 날을 날카롭게 갈았고, 털보가 특수 제작한 임무복을 그 위에 입었다. 그리고 가지고만 다녔지 쓰지는 않던 총들을 오늘만큼은 잔뜩 기름을 먹이며 정비했다.

나와 노인, 그리고 강 형사와 김혜정은 군필이기에 총기 사용이 가능했다. 오늘은 어쩌면 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밤새 만든 소음기를 총구에 매달았고, 총알이 꽉 찬 탄창도 3개씩 넉넉하게 챙겨 넣었다.

정비가 완벽하게 된 총을 강 형사와 김혜정에게 내밀자 그 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는다. 아니, 그 둘을 제외하고도 일행들 모두가 긴장감으로 몸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평소에 하던 매복과는 차원이 다른 임무였다. 그렇기에 적당한 긴장감은 꼭 필요했고, 난 애써 분위기를 유지하며 일행들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 모든 준비가 끝날 때쯤 한쪽에 쭈그려 앉아있던 박다혜가 눈물을 흘리며 빼액 소리를 질렀다.

‘왜요! 왜 난 못 가는 데!’

처음에는 험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다혜는 그 트라우마를 멋지게 이겨내고, 그 나이에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부랑자들을 잡는 어린 사냥꾼이 되어 버린 그녀는 의외로 섬세한 손재주와 집중력 때문인지 크로스 보우 사격에 있어선 꼭 순위권에 들고는 했다. 하지만 난 오늘만큼은 박다혜를 임무에서 제외했다.

그때 이후로 말도 공손하게 하고 일행들에게 그간 못 느꼈던 정을 느끼며 유대감을 쌓아가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가 참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강한 불만, 아니 거의 적대와 같은 반항을 하며 나에게 달려들 기세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을 용팔이와 최성수가 필사적으로 말리며 그녀를 잡고 늘어졌다.

그녀는 잘해 주었다. 아니, 정말 대단할 정도로 빠르게 녹아들어 훌륭한 전투 인원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를 데려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박다혜에게 느끼는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양심이기도 했다.

난 지옥도를 보았다. 그리고 짐승들이 모인 지옥도를 들었다. 짐승과 같은 그놈들이 모여 있는 그곳은 분명 정상이 아닌 욕망과 더러운 인간의 악이 들어 있는 늪지대와 같을 것이다. 우린 그 늪지대를 없애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몸을 담가야 했다.

하지만 박다혜는 아직 어리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도 취약했다. 그녀가 아무리 강한 척, 굳센 척해 봐도 더러운 찌꺼기는 그녀의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게 될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여태 겪었던 멸시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진정한 지옥도를. 인간이 결코 봐서는 안 되는 그 광경을 아직 여물지 못한 꽃봉오리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이것은 내가 일행들에게 어젯밤 통보한 이야기였다.

‘싫어! 갈 거야! 갈 거라고!’

박다혜는 마치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다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억지는 아마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일행들을 향한 분노도 함께할 것이다. 김혜정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최성수는 불안한 얼굴로 박다혜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용팔이만이 입술을 깨물며 나를 향해 조심히 물었다.

‘저……. 형님, 짐만 들게 하는 건 어때요? 어차피 들고 가야 할 짐도 많잖아요.’

용팔이는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 박다혜와 티격태격하기는 해도 유난히 여동생처럼 그녀를 챙겨 주던 용팔이였다. 그녀가 울면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처음 이야기와는 다르게 데려가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용팔이가 적절한 절충점 제시하자 주변에 있던 일행들도 조심스럽게 동의하는 의견을 보내기 시작했다. 박다혜는 나름 중견 멤버인 용팔이와 다른 일행들이 자기편을 들어주자 얼굴이 밝아지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용팔이의 눈빛을 본 나는 한순간 입안이 씁쓸해져 눈을 감고 말았다. 그래, 너도 박다혜를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팔짱을 낀 채 한참 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대기를 가로지르는 차가운 목소리가 노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용팔아, 언제부터 우리가 동윤이 말에 토 달았냐?’

공기가 묵직하게 변하고, 끈적끈적한 압박감이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임무를 기다렸다면, 지금만큼은 적진에 상륙하기 직전에 병사들과 같은 상태가 유지되기 시작했다. 노인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모두의 경각심을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용팔이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고, 박다혜는 입술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다혜, 너 어리광 부리지마.’

노인은 종이마저 베일 듯한 눈빛으로 박다혜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박다혜는 마치 큰 잘못을 한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고, 이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바뀌자 사무실 내부는 추운 겨울처럼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서슬 퍼런 얼굴로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동윤이 아니었으면 일찍이 다 죽었어. 새끼들이 감히 토를 달아?’

노인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노인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일행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고, 용팔이는 어깨가 축 늘어지다 못해 바닥에 쓰러질 기세였다. 그리고 그 순간 박다혜가 울음을 터트리며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다, 다혜야!’

최성수는 노인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박다혜를 쫓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순간 사무실은 침묵으로 휩싸였고, 무전기 앞에서 거친 기침을 하던 김복자 할머니가 천천히 일어나 사무실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걱정 말어, 내가 데려와서 잘 보살피고 있을게.’

난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박다혜를 부탁했고, 피곤과 죄책감이 묻어 나오는 숨을 훅 내뱉었다. 난 장비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그리고 묵직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과 눈을 마주쳤다.

자,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 * * * *

정문은 전투조 인원이 모두 모여 바글바글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지 질겨 보이는 옷들을 입고 있었고, 꽤 위협적으로 보이는 근접무기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리고 용케 허락을 받았는지 스포츠용 보우나 조잡한 크로스 보우도 몇 개 보였다.

한쪽에서 김윤식이 거만하게 앉아 나를 노려보길래 상큼하게 무시해 줬다. 가서 어떤 피똥을 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투조가 제 역할을 해 주기를 빌었다. 그리고 나는 괜한 분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이내 에덴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앞으로 2시간이 남았다. 부랑자들의 본거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빠른 전진을 시작했고, 마주치는 그놈들은 모두 머리에 볼트를 꽂아 주었다. 그리고 미리 지정한 목적지가 보일 때쯤 나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던 노인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 새끼들 눈치 깠어.’

무려 121명이나 당했다. 부랑자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진작 눈치를 채야 했던 것이다. 무언가 바뀐 공기를 느끼고 있던 나는 황급히 일행들을 이끌었고, 부랑자들이 보이지 않는 길목을 지나 몸을 숨길 건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곧이어 나는 정면에 보이는 부랑자들의 본거지를 향해 망원경을 들이밀었다.

망원경으로 주변을 둘러본 나는 방금 전의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형마트 주차장에는 수많은 부랑자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모두 살벌한 무기들을 들고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모닥불을 보아 장시간 이곳에 대기하고 있었던 게 뻔했다.

난 숨을 훅 내뱉었다. 그것은 한숨이 아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 부랑자들에 대한 안도였다. 대형 마트에 있던 모든 부랑자들까지 한곳에 뭉친 게 분명했다. 우리는 전투조가 시선을 끌어 줄 동안 반대로 우회해 본진을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긴장과 혹시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다리를 떨었다. 하지만 노인은 내 어깨를 잡아 주었고, 주변에 있던 일행들이 조금씩 나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말은 안 했지만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도 같이할 것이라고.

난 숨을 크게 들이키며 빠르게 볼트를 장전했다. 그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를 시작으로 모든 일행들은 볼트를 장전했고, 두식이와 용팔이는 화염병과 휘발유 통을 챙겨 들었다. 곧이어 저 멀리서 북적거리는 사람 무리들이 포착될 때쯤 우리는 건물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대형 마트는 큰 정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양 사이드로 작은 문이 하나씩 존재했고, 또 후방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할 수 있는 자동차 길이 하나 존재했다. 사이드에 있는 작은 문은 무언가로 가득 막혀 있었기에 접근할 수 없었고, 우리는 결국 지하 주차장을 통해 대형 마트로 들어가야 했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살며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 근육은 팽창하기 시작했고, 동공과 심장은 같이 떨려왔다. 그리고 바닥을 박차고 달리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은 이미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난장판이었다.

지상 주차장을 빼곡하게 채운 폐차들은 전진하는 전투조의 이동 경로를 막았고, 대열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바닥에 쌓인 눈은 땀과 함께 엉켜 서로의 체력을 빠르게 앗아간다. 두 무리가 충돌하자 들려오는 고성에 온 사방에서 괴물 놈들도 몰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모르는 지옥도. 난 그 광경을 애써 무시하며 어느새 보이기 시작한 지하 주차장 입구로 달려갔다. 사방이 탁 트인 곳을 지나 입구에 도달할 때쯤, 나는 부랑자 두 명이 건들거리는 태도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넓은 입구를 지키기에는 턱도 없는 인원이었다. 정말 최소의 최소 인원. 그 인원을 본 순간 우리의 작전이 들어맞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고, 난 시작을 알리는 숨을 훅 내뱉었다.

그놈들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너, 너희 뭐야!!!’

노인과 나는 황급히 달리기를 멈추고 앉아 쏴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노인은 그놈들과의 작별인사를 건넸다.

‘같이 갈 친구들 많을 거다.’

내 입이 동시에 떨어졌다.

‘먼저 가서 기다려라.’

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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