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11화 (111/313)

[111]

비명을 지르려는 입 사이로 볼트가 꽂혀 삐져나온다. 비명은 단말마와 함께 침묵 속으로 사라졌고, 즉사한 몸뚱이는 흰 눈 위에 쓰러진다. 그 사격을 시작으로 박다혜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볼트 사격을 시작했다. 모든 게 계산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길 한가운데 서 있던 부랑자들은 동료의 죽음을 확인했고, 본능적으로 엄폐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위에 있는 차나 건물 바닥을 밟는 순간 죽음을 알리는 소음이 울린다.

핑, 핑, 핑, 핑!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소리는 곧 부랑자들의 전멸을 예고했고, 내 손가락은 스프링처럼 움직이며 방아쇠를 쉴 틈 없이 당기며 볼트를 장전했다.

노인의 예상이 적중하는 순간이다. 길 한가운데가 아닌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나 차 옆에 설치한 함정을 향해 부랑자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함정에 걸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거나 고통 어린 비명을 내뱉는다. 신발마저 뚫어 버리는 송곳 함정의 칼날은 치명적이면서도 쉽게 목숨을 앗아가지 않는 악랄함이 있었다.

짐승보다 더한 짐승에게 어울리는 함정이었다.

함정에 당한 부랑자들은 이젠 쓰러진 과녁일 뿐이었다. 9명이나 되는 인원이었지만 그놈들의 죽음은 너무나 건조하고 손쉬웠다. 마지막으로 오줌을 지리며 나를 바라보는 한 놈을 향해 볼트를 발사하고 천천히 견착을 풀었다. 소리 없는 살육이 끝났다. 내 입에서 빠져나온 입김은 그놈들의 죽음에 침을 뱉는다.

나는 크로스 보우를 놓고 계단을 내려가 하루살이처럼 꼬이기 시작한 괴물 놈들까지 손쉽게 처리했다. 그리고 일행들과 함께 더러운 부랑자들의 시체를 옮겨 건물 안에 쑤셔 박는다. 만약 해가 지고 밤이 된다면, 괴물 놈들이 알아서 증거를 인멸해 줄 것이다.

이번 전투로 함정을 이용한 사냥이 효율적이라는 게 입증되었다. 노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송곳 함정들을 회수했고, 우리는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인질로 잡혀 있었던 사람을 치료해 줬다. 이젠 너무나 숙련된 치료 앞에 인질로 잡혔던 사람은 금방 기운을 차리고 우리를 따라나섰다.

다들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부랑자들을 손쉽게 처리하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바뀌지 않게 하는 것은 내 역할이었고, 적절하게 리미트 라인을 조절하며 스케줄을 작성했다. 일단 구출한 생존자를 에덴으로 인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구출한 생존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연신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 왔다. 아까 아침에 일로 탄력이 붙은 일행들은 유독 그를 챙겨 주며 온갖 캐어를 해 주었다. 그러자 구출된 생존자는 더욱 힘을 내며 에덴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뒤를 따라왔다.

나는 눈이 덮인 길을 걸으며, 에덴이라는 의미가 처음으로 들어맞는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외투를 살며시 벗어 생존자에게 덮어 주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따뜻한 체온이 이름 모를 생존자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되길 빌었다.

[이 아래로는 꽤 시간이 지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좋은 볼펜을 구했는지 다음 장부터는 또렷한 잉크 자국들로 일기가 작성되어 있다. 그는 한 달 동안 쓰던 모나미 볼펜을 드디어 버린 모양이었다.]

* * *

누군가 내 일기를 읽을 리 없기 때문에 사과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기를 한동안 쓰지 못한 것에 대해 조용히 반성 정도는 하기로 했다. 그만큼 바쁘기도 했고, 정보를 제외하면 기록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일기를 마지막으로 작성한 날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은 오랜만에 받은 휴가를 만끽하기 위해 해가 잘 드는 창문 앞에 앉아 오랜만에 일기를 작성한다.

휴가긴 하지만 일행들은 아침부터 일어나 트랙을 뛰어다녔고, 근력운동 및 크로스 보우의 숙련도를 늘리기 위해 훈련했다. 그리고 점심밥을 먹은 지금, 다들 낮잠을 자기 위해 침낭 안에 몸을 말았다. 물론 부지런한 노인과 털보만이 저 한쪽에서 무언가를 속삭이며 장비를 제작할 뿐이었다. 난 뚝딱거리는 소리를 음악 삼아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부랑자 탐색조의 활동은 안정권을 찾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체계적으로 짠 스케줄은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었고, 우리 팀의 손실은 당연히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간 생존자를 50명가량 구출했으며, 부랑자들은 정확히 121명을 사냥했다.

당연히 전원 사살이다. 놈들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증거는 확실히 인멸했다. 아마 지금쯤 그놈들의 시체는 전부 괴물 놈들 아가리로 들어갔거나, 이미 소화되어 존재 자체가 없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바쁜 일상이 지속하다가 어제를 마지막으로 노인이 사냥 중단을 선언했다.

죽여도 너무 많이 죽였고, 구출해도 너무 많이 구출했다. 결국, 일을 너무 잘해서 변수가 생기고 만 것이다. 나도 사실 새로 유입된 인원들이 이렇게 잘해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날 이후로 독기를 품은 것인지 김혜정은 유난히 악독한 사격 실력을 보여 줬고, 노인에게 크로스 보우 작동법을 배운 박다혜도 어느 샌가부터 사냥에 동참하고 있었다.

강 형사?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범죄자의 심리를 그대로 꿰뚫어 본 강 형사는 노인과 더불어 작전을 계획하는 머리 중 하나가 되었다. 너무나 망설임 없이 자신을 미끼로 쓴다든지 혹은 능숙한 잠복을 보여 준다든지, 계획이 정확히 들어맞을 때는 가끔 그가 형사였던 걸 자각하고는 했다.

말 그대로 일주일 동안 완벽한 팀이 만들어졌다. 간혹 삐걱거리는 부분은 내가 캐치해 수습했고, 각자의 역할이 확실한 팀원들은 부족한 나를 열심히 따라와 줬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사냥 중단이 선언된 뒤 모두가 꿀맛 같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에덴도 많은 폭풍을 겪었다. 간부들이 대거 물갈이되었고, 심지어 재판과 함께 첩자들의 추방도 진행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암묵적인 사형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사자가 나인지라 게시판 앞을 지나갈 때마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폭풍은 우리가 사살한 부랑자들과 꾸준하게 구출해 온 생존자들의 숫자였다. 유난히 교리를 맹신하는 단체장은 매번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 칭찬하기 바빴고, 날이 갈수록 장비와 시설, 대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비록 게시판에 붙여지는 신문 한 장이 유일했지만, 나름 언론사라고 존재하는 단체도 우리에게 이상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우리가 꼭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신문기사를 써 내려가는데 나로선 굉장히 부담스럽고 껄끄러웠다. 자극적인 선전의 마스코트가 된 기분이랄까?

하지만 한글을 또박또박 읽기 시작한 채연이가 가끔 신문을 읽으며 나에게 방방 뛰어들 때는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또한, 지금도 사무실 문 앞에 쌓이고 있는 식재료들과 선물들을 볼 때는 미묘한 감정과 뿌듯함이 교차하기도 한다.

물론 운동도 꾸준하게 하고 있다. 영양가 있는 식사와 강도 높은 운동을 지속하자 자연스럽게 근육과 체력이 붙기 시작했고, 내 몸은 마치 운동선수처럼 변하고 있었다. 오래달리기를 하거나 팔굽혀 펴기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놀라고는 했다.

내가 일기를 다 작성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데, 털보와 어울리고 있던 노인이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와 물었다.

‘우리가 안 써먹은 게 또 뭐가 있지?’

정말 모든 방법과 장비들을 동원해 함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좋았고, 많은 부랑자들을 사살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점은 그 방법과 장비들도 한계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부랑자들도 바보만이 모여 있는 집단이 아닌지라 간혹 함정을 피하거나 역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무리가 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함정을 반복해서 사용하거나 너무 뻔한 패턴은 지양되어야 했다. 노인이 사냥 중단을 선언한 이유도 어제 함정을 간파당한 일 때문이었다. 하마터면 사상자가 나올 뻔한 상황. 노인은 클리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맞대었다.

‘글쎄요…….’

하지만 한계가 봉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 노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봄에도 난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인은 결국 입맛을 다시며 길게 하품했고, 이내 뚝딱거리고 있는 털보를 향해 다시 다가갔다. 그렇게 1시간이 흘러,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은테 안경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오늘이 휴가라고 들었습니다.’

은테 안경이 여전한 얼굴로 나와 마주했다. 나는 이젠 수염이 없는 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한쪽에 놓인 커피를 타와 은테 안경에게 내밀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용건을 말했다.

‘해가 지고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여전히 정중한 몸짓이었다. 그동안 간부 회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으니, 아마 오랜만에 진행되는 회의일 것이다. 오늘이 휴가기도 했고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기에 난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도 한쪽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내뱉으며 동의했다.

그 말을 끝으로 커피를 모두 마신 은테 안경이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한쪽에 얌전히 앉아 있던 노인은 손뼉을 짝 치며 일어났고, 이내 꿀맛 같은 낮잠의 끝을 알렸다. 용팔이와 두식이는 귀를 막으며 웅크렸고, 다른 일행들도 뒤척이며 훈련을 거부한다.

하지만 노인은 그렇게 물렁물렁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무실에선 큰 고함과 함께 투덕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난 화장실을 핑계 삼아 사무실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햇살이 마중 나와 내 얼굴을 밝게 비춘다.

* * *

나와 노인만이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다른 일행들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을 싫어했다. 유난히 딱딱한 분위기와 중압감 때문일까? 다들 숙소로 돌아가 일찍 휴식을 취했지만, 오늘만큼은 긴장한 용팔이를 동행시켰다.

물론 용팔이가 회의실에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저번에 얼떨결에 따라와 단체장을 만난 적이 있는 덕인지 그때만큼 긴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생각보다 많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용팔이도 이제 팀에서는 중견급 멤버였다. 발가벗은 채 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던 게 눈에 훤한데, 이제는 든든한 삼촌이 되어서 조카와 동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키가 좀 큰 건가? 난 한층 성장한 용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었다.

이제는 익숙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얼굴이 많이 밝아진 단체장이었다. 단체장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곳으로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파격적일 만큼 친밀한 행동이었기에 모든 간부들이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많이 의심했고, 경계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단체장이란 사람의 본모습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문 종교인이었다. 신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을 사랑했고, 그 누구보다 모든 사람을 도우려고 했다.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순수한 사람. 단체장은 나와 꽉 붙잡은 손을 흔들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휴가 중에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난 짧게 대답했지만, 결코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난 웃고 있는 단체장과 마주 보며 옅은 웃음을 머금었고, 이내 단체장이 손수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회의장에는 저번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다만, 많은 간부들이 사라져 있었는데 내 손으로 죽인 여자를 포함해 그녀를 옹호했다고 알려진 간부들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난 굳은 얼굴로 그 자리를 바라보다 초면인 한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긴장했는지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동윤 씨, 일주일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정도까지 해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제일 상석에 앉은 단체장이 모든 간부가 모인 자리에서 우리 팀을 칭찬했다. 난 그 의도를 알기에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였고, 내 옆에 있던 노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익살스러운 거만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단체장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잠시 지나가는 폭풍이라고 생각하시고 모두 힘내 주세요. 아, 그리고 이번에 새로 일을 같이하시게 될 분들이 있으신데…….’

사형당하고 추방당하며, 많은 배신자들이 피의 복수를 당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빈자리를 굴러 들어온 돌이 차지했고, 그 돌은 단체장이 직접 던진 비수였다. 유난히 나잇대가 높았던 간부들과는 다르게 단체장이 뽑은 간부들은 모두 나잇대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 명 한 명 자리에서 일어나 소개를 시작하는데, 소개를 들으면 들을수록 기존에 있던 간부들의 표정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새로 들어온 간부들 대부분이 외부에서 유입된 인원이거나 줄이 닿지 않는 단체장의 직속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 단체장은 이 시기를 기회라고 시작했는지, 안 보이는 칼을 빼 들어 기득권을 잡고 있는 기존 간부들의 심장을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노골적인 영역 싸움에도 간부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언제 뽑힐지 모를 나와 노인의 대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뽑힌 인원들의 시선은 분명 나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시선이 느껴진다. 고인 물이 보내는 악의와 질투, 그리고 흘러들어온 물이 보내는 선망과 긴장.

처음 회의장에 들어왔을 때랑은 확연하게 달라진 시선 앞에 난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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