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는 눈치 없이 밝은 빛을 비추며 하늘로 떠올랐다. 난 그 해를 뒤로하고 노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난 몰려오는 추위와 떨림을 느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작게 열린 입 사이로 입김을 훅 내뱉었다.
날씨가 춥다. 난 앞서 걸어가는 은테 안경에게 물었다.
‘명단에 적힌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사형당한 그녀만큼 악질인 사람은 없었지만, 협조를 한다거나 부랑자들과 밀거래를 하는 범죄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사람들도 모두 사형을 당하는 걸까? 내 물음을 들은 은테 안경은 우리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으며 말했다.
‘가족들을 포함해 맨몸으로 추방할 생각입니다.’
사실상 종말의 손을 빌린 사형 선고였다. 이 정도 처벌이면 부랑자들에게 팔려가 죽은 피해자들에 대한 속죄가 될 것이다. 울고 있는 단체장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독한 결정을 내린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오늘 하루는 임무를 나가지 않고 정비를 하며 보낼 생각이다. 앞으로 부랑자들과 벌인 전면전에 대한 상의도 필요했고, 박다혜와 김혜정의 상태를 살필 필요도 있었다. 우리는 은테 안경과 중간에 헤어지고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빠!’
아, 등교할 시간인가보다. 강수련이 사다 준 걸까? 예쁘게 생긴 곰돌이 신발을 신고 있는 채연이가 이쪽을 향해 도도도 뛰어왔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고통과 인내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벅찬 행복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난 두 팔을 활짝 벌려 천천히 자세를 숙였다.
그러자 채연이는 휙 하고 몸을 날려 내 목을 끌어안는다. 그 짧은 시간에 살이 더 붙었는지 상당히 묵직했다. 난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들어 올려, 복숭아처럼 붉게 달아오른 뺨을 비비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뒤이어 그 뒤로는 등교준비를 끝낸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나와 노인을 발견하자 해맑게 웃으며 허리를 꾸벅 숙인다. 그 모습이 얼마나 공손하고 예의 바른 지 노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꼭 손주, 손녀를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웃던 노인은 결국 식권을 용돈처럼 챙겨 주며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무실 인원들은 전부 출근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강수련만이 부엌에 남아 우리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책상 옆에는 무엇인지 모를 물품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게 뭐지? 부엌으로 들어가 물품들을 뒤져보니 그것들은 시중에서 팔았던 식재료들이었다.
‘이게 뭡니까? 장 봤어요?’
우리가 먹을 식재료는 단체장이 책임지고 보내 준다. 그래서 하루 먹을 만큼의 양만 딱 배달되기에 단 한 번도 식재료들이 쌓여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이정도 양이면 배급을 받지 않아도 한 달을 배불리 먹고도 남을 것이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거지? 강수련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아, 동윤 씨가 주문하신 거 아니셨어요? 아침부터 사람들이 가져오던데…….’
식재료를 만지던 내 손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난 강수련에게 물었다.
‘몇 명이나요? 따로 한 말은 없었어요?’
그러자 강수련이 셈을 하는지 눈을 살며시 감는다. 그리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한 오십 명 정도? 전 배달시킨 줄 알고 그냥 받았어요. 이상하게 그분들이 고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배달하는 입장에서는 고맙다는 인사를 할 리가 없다. 난 식재료를 만지다 조용히 손을 놓았다. 그런 나를 왜 그러냐는 얼굴로 바라보는 강수련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식사를 위해 의자에 앉았다. 밥과 따뜻한 국, 그리고 소박한 반찬이 나왔지만 내 먹먹한 가슴은 가실 길이 없었다.
‘아껴서 꼭꼭 씹어 먹어라.’
노인이 국그릇을 들고 쭉 들이키며 나에게 말했다.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이내 옆에 놓인 수저를 손으로 잡았다. 큼지막한 건더기가 둥둥 떠 있는 먹음직스러운 된장국은 뜨거운 김을 내뱉고 있었다.
그 된장국 사이로 수저를 찔러 넣어 한입 크게 퍼먹자 구수한 국물이 혀를 타고 식도로 들어가고, 차가운 몸은 녹아내린다. 그렇게 건조해 쫙쫙 갈라진 가슴 사이로 단비가 흘러들어 왔다.
애지중지하고 아껴두었을 식재료들이다.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유가족들은 꼭꼭 숨겨 둔 보물들을 가져와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이상하리만큼 몰려오는 죄책감과 그런데도 존재하는 고마움이 한곳으로 뒤섞여 마음을 진창으로 만든다.
하지만 된장국이 너무나 맛있었기에 난 오늘도 배를 채우기 위해 묵묵히 식사를 지속했다.
우리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오직 강수련만이 내 앞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 * *
우리는 김혜정과 박다혜를 찾아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병실은 텅텅 비어 있었고, 김철 의사는 그 둘이 퇴원했음을 알려 왔다. 벌써? 이렇게 일찍? 나와 노인은 비어 버린 병실을 멋쩍게 바라보며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로 돌아가 요양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육중한 사무실을 열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털보가 힘들게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지도와 무전기 앞에선 김복자 할머니와 최성수가 열심히 떠들며 정보를 기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용팔이 형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널찍한 사무실을 운동장처럼 뛰고 있었고, 강 형사는 물통을 들고 와 근력운동을 하고 있었다. 또한, 숙소로 돌아가 쉬고 있을 거로 생각한 김혜정과 박다혜도 용팔이 형제 뒤를 따라 열심히 뛰고 있었다. 잠시 뒤 용팔이가 나를 발견하고 해맑게 웃으며 뛰어왔다.
‘형님! 식사하셨어요?’
‘어? 어.’
난 침을 삼키며 짧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각이 잡힌 듯 제대로 돌아가는 사무실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러움이 물밀 듯 몰려온다. 이런 것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제 일행들은 맞물려 움직이는 톱니바퀴처럼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내일을 생각하며 몸을 단련했다. 고개를 돌리자 노인이 웃음을 머금고 용팔이에게 말했다.
‘하던 거 계속해.’
‘옙!’
용팔이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뛰고 있었는지 한쪽에는 물병들이 가득했고, 다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하지만 불평을 하는 사람도,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모두 그저 진지한 얼굴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박다혜랑 김혜정은? 나는 재빠르게 시선을 돌려 열심히 뛰고 있는 그 둘을 바라봤다. 김혜정은 어제의 일을 빠르게 극복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박다혜는 예전과 같은 까칠한 모습으로 그 뒤를 쫄랑쫄랑 뛰어가고 있었다.
오래 쉬어도, 아니, 낙오해 떨어져 나가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매일 식권을 챙겨 줄 생각이었다. 그만큼 저번 일은 나에게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고, 그녀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 둘은 트라우마를 털어 내고, 내일을 위해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태연한 표정은 도리어 나를 당황하게 했다.
‘티 내지 마.’
내가 넋 놓고 그들을 바라보자 노인이 허리를 쿡 찌르며 조용히 속삭인다. 그 속삭임에 정신을 차린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고,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노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작 당사자가 아픔을 털어 냈는데,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티를 내서는 안 됐다. 난 노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휘파람을 불며 외투를 벗었다.
노인이 나를 데려간 곳은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옷들이 쌓여 있는 창고였다. 어제부터 무언가 많이 배달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아마 단체장 측에서 활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아 준 모양이다. 난 유명 브랜드로 기억하는 상표를 만지며 운동복의 포장을 뜯었다.
노인이 조용히 휘파람을 분다.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는데, 나도 마찬가지여서 별다른 말은 안 했다. 운동복과 더불어 사무실에 도착한 의류는 재질이 모두 좋은 것뿐이었다. 단체장이 신경 써 준 게 대놓고 보일 만큼 굉장한 사치품들이었으니 노인과 나의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난 두꺼운 활동복을 그 자리에서 벗었고, 이내 내 맨살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난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깊은 숨을 훅 내뱉었다. 그러자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노인이 내 배를 탁 치면서 실실 웃었다.
‘응? 식스팩이야, 식스팩.’
내가 상처를 살피며 한숨을 내뱉은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괜히 장난을 걸고 나를 칭찬하는 노인을 보며 난 쓴웃음을 지었다. 멍 자국과 상처 자국, 온몸이 찢어지고 꿰매어졌다. 언제 이렇게 흉터가 생긴 걸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치열한 한 달이었다.
난 그것들을 숨기기 위해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새 옷 냄새가 풀풀 풍겼고, 오랜만에 입어보는 편한 옷인지라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난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온 노인을 바라보며 스트레칭을 시작했고 이내 입을 열어 물었다.
‘운동하실래요?’
노인이 정색하며 고개를 흔든다. 참 이럴 때만 허리를 숙이고 허약한 척을 하신다.
* * *
태초로 돌아간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하던 뜀박질이 단순한 건강과 취미를 위해서였다면, 과거 인류가 했던 뜀박질은 살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다. 맹수를 피해서, 그리고 맹수가 되어 뛰어야 했던 인간은 지금 다시 한 번 태초로 돌아갔다.
죽어라 뛰어야 살 수 있다. 세기말에 뜀박질이란 이제 필수적인 요소였다. 단순히 체력을 기르기 위한 운동은 쓸모없다. 나는 모든 걸 내뱉고 소진하기 위한 경주를 시작했다.
일행들은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했는지 하얀색 테이프로 넓은 사무실에 트랙을 만들어 두었다. 창고처럼 널찍한 사무실은 체육관을 연상시킬 만큼 공간이 넉넉했으니 걱정은 없다. 난 그 트랙을 미친 듯이 뛰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페이스 조절 따위는 없었다. 이건 누군가를 따라잡고 1등을 목표로 하는 달리기가 아니었다. 내 뒤에는 나보다 빠른 그놈들이 달라붙을 것이고, 저 앞에는 모든 장애물이 나를 막을 것이다. 모든 연료를 불태운다는 각오가 내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운동을 하고 있던 나머지 일행들은 중간에 떨어져 나갔고, 난 30분째 이 전력 질주를 지속하고 있었다. 내 폐는 호흡과 무호흡 사이를 쉴 틈 없이 오간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 호흡법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내 코와 입은 그저 산소를 갈구하며 끊임없이 벌렁거린다.
새로 지급받은 운동복은 어느새 땀범벅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또한 길게 자란 머리는 땀으로 푹 절여 버렸다. 난 소매로 땀들은 쓸어내며 주저앉듯 자리에 쓰러졌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팔은 한계가 왔다고 비명을 지르며 덜덜 떨린다.
운동을 했다는 생각보단 그저 그놈들을 피해 한 걸음 더 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처절한 안도가 생각날 뿐이었다. 난 흘러내리는 땀을 무의식적으로 핥으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잠시 뒤 저쪽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렇게 미친놈처럼 뛰어야지 사는 거야. 알았어?’
고개를 돌리자 일행들이 바닥에 너부러져 내가 뛰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만 혼자 뽀송뽀송한 노인만이 책상 위에 앉아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좀 얄밉길래 괜히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식사할 시간이 다가왔었다.
위장에 있는 걸 깨끗하게 소비한 일행들은 미친 듯이 밥을 퍼먹었다. 특히 온몸이 녹초가 된 유입 인원들은 노인의 지시를 받아 닭가슴살 통조림을 하나씩 해치워야 했다. 두식이가 유난히 울상인 걸 보니 아마 노인이 자신에게만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난 꿈틀거리는 두식이의 근육을 구경하며 내 밥 위에 있는 닭가슴살 반을 두식이 밥 위에 올려 주었다.
식사를 끝내도 우리의 일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위장을 비우기 위한 운동은 시작되었고, 일행들 입에선 곡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운동에 참여하지 못했고, 노인에게 이끌려 털보의 작업실로 향해야 했다. 따로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털보, 다 만들었어?’
노인이 칸막이를 치우며 털보를 향해 물어본다. 그러자 털보는 작업용 고글을 들어 올리며 땀이 묻어 있는 턱수염을 털었고, 이내 자신의 작업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것은 한 번 본 기억이 있는 뾰족한 송곳이었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들며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제대로야.’
핑! 소리를 내며 송곳이 날개를 펼친다. 그것은 마트 옥상에서 변종을 악마처럼 물어뜯던 털보표 함정 도구였다. 털보는 우리가 운동할 동안 꾸준히 작업했는지 많은 송곳이 한쪽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들어 올리며 나에게 말했다.
‘동물이 왜 말을 못 하는지 알아?’
너무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노인이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을 할 줄 알았으면 인간이 욕을 오지게 처먹었을 거거든.’
핑! 핑! 핑! 함정 송곳들이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 날개는 살점을 뜯고 피를 쏟아내게 할 악마의 이빨과 같았다. 노인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우린 싸움을 하는 게 아니야, 지금부턴 사냥을 해야지.’
부랑자 사냥.
난 그 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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