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108화 (108/313)

[108]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진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지금 하는 행위는 썩 유쾌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세상이 그동안 나를 변화시킨 건지 오늘만큼은 이성보단 분노가 몸을 지배하는 날이었다.

배신자 여자는 울고 불며 한 번만 봐달라며 사정했지만, 노인은 그런 그녀의 부탁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힘껏 얼굴을 후렸다. 바닥에는 피가 튀기고, 비명은 벽에 부딪혀 내부를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그리고 어금니가 몽땅 나갈 때쯤 그녀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 후회가 하필 나한테 걸렸나에 대한 짜증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신에게 빌어먹는 회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애당초 회개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저 난 피해자의 아픔을 그녀가 단 1%만이라도 느끼길 바랐다.

길거리에서 죽은 남자의 최후가 스쳐 지나간다. 비록 이름조차 모르고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는 낯선 남자였지만, 이상하게 공허함이 느껴지는 죽음이었다. 마음 같아선 이 여자의 최후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에는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너무나 많았기에 함부로 죽일 수도 없었다.

영악하긴 했지만 독한 여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맞아도 입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기에 그냥 대검을 꺼내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발작을 시작했고, 이내 내가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술술 불며 내 일기장에 내용들을 차곡차곡 쌓아 줬다.

일단 그녀는 에덴의 주민들을 하나둘 납치해 부랑자 무리에게 상납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의도가 궁금해 물어보니 처음에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인 것을 아는 나와 노인이 진실의 매를 가하자 그제야 진실을 토해 냈다.

뭐, 그녀가 사람을 건네 주고 받은 대가는 당연히 마약이었다. 어디서 그 많은 마약을 구했는지 유통경로가 의심될 정도의 수량이었다. 그것들은 전부 그녀의 사유지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으며, 그것과 관련된 정보는 나중에 강 형사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부랑자들의 본거지는 그곳이 맞았다. 혹 그들을 이끄는 대장이나 집단의 우두머리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그녀도 잘 모른다고 답해왔다. 물론 처음에는 믿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강한 심문은 가했고, 그런데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곳이 단순한 무리의 집합체일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그녀가 모르는 자세한 속사정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정보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는 그녀가 불러 주는 첩자 명단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살생부를 작성했다.

그렇게 심문이라고 불리는 고문이 끝난 시각은 저녁 8시였다. 배신자 여자는 모든 걸 포기했는지 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난 지금까지 적은 모든 정보를 확인하며 다시 한 번 은테 안경을 호출했다. 그리고 그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용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어르신~ 식사하세요.’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식사를 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다. 격한 움직임과 스트레스의 여파가 찾아오는지 슬슬 허기가 느껴질 때쯤, 다행히 용팔이가 식사를 가지고 사무실로 찾아와 주었다. 사무실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풀풀 풍겨 왔지만, 용팔이는 신경 쓰지 않으며 먹을 것을 들고 이곳을 향해 낑낑 걸어 왔다.

‘좀 어때?’

노인은 용팔이가 들고 온 식사들을 받아들며 물었다. 그러자 용팔이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고, 이내 안심이 된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많이 괜찮아졌어요.’

김혜정과 박다혜의 상태가 많이 호전된 모양이었다. 미안함과 씁쓸함 때문에 당장 찾아가 보지 못했지만,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 이따 숙소로 들어갈 때 병문안이라도 가 볼 생각이었다. 내가 주먹밥을 들어 입안에 욱여 넣는데, 용팔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 여자가 그 여자죠?’

‘어, 맞아. 어떻게 알았냐?’

노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깨끗한 사무실 한가운데에 피투성이 여자가 앉아 있음에도 용팔이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오면서 들어본 적 있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가리키기까지 했다. 용팔이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대답했다.

‘오늘 소문 못 들었어요? 저기 게시판에 신문까지 나왔는데……. 에덴의 간부, 사실은 부랑자?’

자극적인 기사였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불과 반나절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이 서서히 퍼져 소수의 신문 단체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아무리 세기말이라 해도 실종자가 속출하는 와중에 체포된 범인이 에덴의 간부였으니까.

에덴에 대한 신뢰도는 당연히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여론은 나쁘게 흘러갔다. 신문에서는 그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으며 단체장의 할 말을 잃게 했다. 아마, 저쪽 중앙 건물에서는 팔다리가 빠질 만큼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용팔이에게 말했다.

‘같이 먹을래?’

‘그럴까요? 흐흐.’

용팔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그리고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식사를 계속했다. 용팔이는 밥을 먹고 왔음에도 나와 비슷한 양을 먹어 치웠고, 노인도 배가 많이 고팠는지 평소보다 많은 주먹밥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쯤, 중앙 건물에서 뛰어온 은테 안경이 경비들과 함께 배신자 여자를 인계받았고 이내 마련된 시설로 끌고 갔다. 그리고 단체장이 찾는다는 말과 함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우리를 안내했다. 채연이가 보고 싶었는데……. 야근을 해야 할 분위기다.

* * *

회의라는 게 원래 이렇게 자주 있나? 노인이 툴툴거리며 내 뒤를 따라 왔고, 용팔이도 얼떨결에 동행하게 되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 우리는 회의장 앞에 도착했고, 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회의장에는 단체장을 제외한 간부들은 아무도 없었다.

‘동윤 씨,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얼굴이 어두운 단체장이 조용히 일어나 우리를 맞이했다. 난 대충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하고 바로 용건을 위해 그를 향해 걸어갔다. 주위에 경비들이 많았지만 나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나는 자백 받은 살생부를 단체장에게 넘겼다.

단체장은 그것을 받아들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뱉었고, 책상 위에 손을 얹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애써 분노를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단체장은 그 살생부를 근처에 있는 경비들에게 넘겼고, 경비들은 재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에덴은 다시 한 번 역풍을 맞이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뿌리를 뽑겠네요.’

회한과 후련함이 미묘하게 섞인 말이었다. 단체장은 모든 걸 뽑아내는 듯한 숨을 훅 내뱉더니 의자에 앉아 온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노인은 관심 없는지 한쪽에서 사탕을 까먹고 있었고, 용팔이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회의장은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그 침묵을 깨며 단체장에게 물었다.

‘그 여자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단체장만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그어 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죄는 무겁고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 그리고 윤리가 아직도 존재하는 장소임을 고려해 교도소로 끌려가는 그녀를 순순히 내버려 두었다.

법이 있을 것이고, 절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권한을 받은 나에게, 그녀의 처벌 정도는 물어볼 이유가 있었다. 단체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교리가 붙어 있는 액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동윤 씨는 종교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마 신을 믿었다면, 난 그 고시원에서 신을 저주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단체장은 내 단호한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교리가 적혀있는 액자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조금 물기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줘야 하는 걸까요?’

난 대답하지 않았고, 단체장은 교리 앞에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회개한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착한 자라도 회개할 신을 만나지 못한다면 천국에 가지 못하는 걸까? 그 누구도 답변을 내려 주지 않았고, 심지어 인간은 그 의미를 더럽혔다.

단체장은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흐느꼈다. 같이 에덴을 꾸리고 만들어 가던 간부들의 배신, 그들은 심지어 굳게 믿고 있던 교리를 맹세한 자들이었다. 단체장은 충격적인 배신 앞에서 인간이기에 무너지고 있었다. 침묵은 돌보다 무거웠고, 공기는 늪처럼 끈적였다.

곧이어 단체장의 울음소리는 서서히 가라앉았고, 비수보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심장을 가로질러 갔다. 그 목소리는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맡겨도 되겠습니까?’

‘이제부터 보고는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사형이다. 묵직한 단어가 내 어깨를 짓눌렀지만, 단체장이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공감했다. 난 대법관도 아니었고, 사람을 심판할 신도 아니었다. 그저 내 목덜미를 문다면 똑같이 물어 줄 짐승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법칙도, 윤리도 아닌 정글의 순리였다.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용팔이도 잔뜩 굳은 상태로 일어났다. 난 마지막으로 단체장의 씁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돌보다 무겁고 늪보다 끈적한 그 방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신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신은 전지전능했기에 인간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매하다고 말한다면, 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 존재하는 것은 인간뿐이라는 것이다. 문을 닫고 복도를 걷는데, 저 너머로 단체장이 흐느끼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 * *

생각이 많아져서 밤늦게 숙소로 들어갔다. 채연이는 이미 잠들어있었고, 난 그런 채연이를 끌어안고 쪽잠에 들었다. 사실 계속해서 꾸는 악몽 때문에 깊은 잠은 자지 못했다. 난 뜬눈과 악몽으로 밤을 보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동안 표류했다.

여명이 하늘을 살며시 물들이고, 새벽이 되었다. 난 기분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채연이가 깨지 않게 일어나 다른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노인이 먼저 일어나 앉아 있었고, 이미 준비를 다 해 놨는지 장비들이 바닥에 가지런히 널려 있었다. 모두가 잠에 빠져 있을 새벽, 나의 일과는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

‘혼자 가도 되는데.’

하지만 노인은 중지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거부했다. 난 이상하게 웃음이 나와 허탈하게 웃었고, 노인도 나를 따라 이상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에너지 바로 간단하게 식사를 끝내고, 일행들을 피해 숙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이제는 친숙한 은테 안경의 얼굴이 보였다. 어젯밤 미리 말을 해 두었기에 쓸데없는 사족을 달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건조한 아침 인사를 끝으로 미리 배정받은 장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침 해가 뜨지 않아 조금 어둡다. 새벽이 보내는 특유의 분위기는 내 가슴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움직여야 하는 몸은 충실하게 명령을 따랐고, 복잡한 길을 지나갔다. 같은 장면처럼 스쳐 지나가던 골목은 어느새 사라지고, 빈 공터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뭡니까?’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일부러 골랐다. 하지만 아무도 없을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공터 한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펭귄처럼 모여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은테 안경에게 물어보자 은테 안경은 눈을 천천히 감으며 말했다.

‘유가족들입니다.’

아, 난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힘이 들어가는 주먹을 애써 잡으며 은테 안경처럼 눈을 감았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해 못 할 기분이 내 몸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난 우리가 지정한 장소를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시선이 느껴진다. 펭귄처럼 모여 있던 유가족들은 우리가 다가오자 일제히 시선을 옮겼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추위와 허무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흐으으……. 흐으…….’

그리고 찬바람 사이로 아련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교도소 시설을 지키고 있던 경비대가 약속한 시간에 맞춰 그 여자를 데려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신자 여자는 모든 걸 포기했는지 산발이 된 머리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난 손을 들어 피곤과 흑색으로 젖은 얼굴을 닦아 내었다. 그리고 노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선의 길을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찐득한 무언가가 발에 묻어 나왔고, 그 감정은 조류가 되어 내 마음을 연신 내려친다. 난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가족 사이를 가로지르자 사방에서 감사 인사가 들려왔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리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극도의 분노를 내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범인을 잡고, 그녀의 목숨을 가져갈 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뿌듯하지 않았다.

눈물을 뿌리치고 억겁의 발을 내디딘다. 나는 합리화를 불태우고, 정당함을 늪에 집어 던졌다. 난 내가 시작한 매듭을 마지막까지 끝내고 싶었다.

여명이 밝다, 그리고 난 아직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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