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난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우리가 에덴까지 돌아갈 시간을 계산했다. 넉넉하게 잡아 한 시간. 난 손목시계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꿈틀거리는 그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지구대는 침묵으로 휩싸였고, 오로지 바닥을 걷는 내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놈의 허벅지에는 아직도 볼트가 꽂혀 있었다. 강 형사가 나름대로 지혈이라고 해 뒀는지 허벅지 위로 두꺼운 천이 꽉 감아 두었다. 피가 흐르는 게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한 지혈은 아니었다. 아마 이대로 둔다면 죽겠지. 난 차가운 눈으로 그놈을 내려다봤다.
그놈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읍읍 거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안에 가득한 천 때문에 비명은 벽에 막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했고, 놈의 눈은 두려움과 공포로 붉게 물들어갔다. 앞으로 다가간 나는 조용히 발을 들어 놈의 허벅지를 꾹 밟았다.
‘끄으으으으!!!’
놈이 온몸을 버둥거린다. 내가 밟은 허벅지는 물은 머금은 스펀지가 짜이듯 피가 쭉쭉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내 발을 잡아도 소용없고, 아무리 애절하게 쳐다봐도 소용없었다. 난 한참을 허벅지를 지르밟다가 놈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너희들이 누군지 알아.’
놈이 숨을 거칠게 내뱉을 때마다 역한 냄새와 강한 본드 냄새가 풍겨온다. 그리고 흔들리는 눈동자와 넋이 빠져 있는 얼굴은 이놈이 제정신이 아닌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서 고통과 공포를 못 느낀다는 것은 아니었다.
난 손을 뻗어 박혀 있는 볼트를 잡아당겼다. 정말 사람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볼트는 절대 쉽게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난 고함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그놈을 발로 밟으며 기어코 볼트를 뽑아냈다. 독해져야 한다, 괴물을 상대하려면 괴물보다 더 괴물이 되어야 했다.
‘너 같은 놈들이 더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놈은 곧 죽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나는 놈의 출혈을 막기 위해 허벅지 위를 감고 있는 천을 꽉 당겨 지겨운 삶을 더 연명하게 만들어 줬다. 이 속도라면 천천히, 아주 느리게 삶을 저주하며 죽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놈은 온몸을 버둥거리며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읍읍 비명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강 형사에게 눈짓했고, 이내 입안에 처박혀 있는 천을 빼내 주었다. 그러자 그놈은 기다렸다는 듯 눈물을 질질 흘리며 애원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똑같은 레퍼토리다. 자신의 숙명인 마냥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는 놈들이, 정작 자신이 죽을 차례에는 거짓말처럼 목숨을 구걸한다. 윤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이 정글이라면, 이곳이 정말 죽고 죽이는 회색 정글이라면 이들도 당장 오늘 죽을 각오가 돼야 했었다.
‘영감님.’
난 조용히 노인을 불렀다. 그러자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전깃줄을 끊어와 놈을 기둥에 묶기 시작했다. 그놈은 차마 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버둥거림을 지속할 뿐이었다. 시간을 확인하자 겨우 10분이 지났다. 하지만 난 더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여기에 묶어 놓고 갈 거야.’
그동안 쾌락에 몸을 맡기며 천국까지 비행한 멍청이가 한순간 지옥으로 떨어져 내린다. 전깃줄에 꽁꽁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놈은 출혈로 서서히 죽어가거나 밤이 되어 찾아온 괴물 놈들에게 산채로 뜯어 먹힐 것이다.
살과 피는 사라지고, 뼈마저 씹어 먹힌다. 아마 존재 가치는 아예 사라질 것이고 살아 있었다는 증거조차 이 세상에서 증발할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놈은 두려움에 온몸을 맡기며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빨이 딱딱 부딪혔고, 눈물과 콧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난 그놈에게 단 한줄기 동아줄을 내려 주었다. 그것은 절대로 놓지 말아야 할 끈과 같았고, 그놈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기회였다.
‘더 모여 있잖아, 그치? 위치만 말해 주면 되는 거야.’
분명 근처다. 모든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수색을 나가는 족족 마주치는 그놈들은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마치 인간을 사냥하듯 돌아다니는 놈들은 분명, 한곳에 모여 그 역겨운 짓을 지속하고 있을 것이다. 난 대검을 들어 살며시 그놈 앞에 내려놓았다.
선택하자.
편안한 죽음일지, 아니면 산채로 내장이 먹히는 죽음일지. 난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놈을 바라봤고, 악몽과 두려움에 발버둥 치는 눈동자를 꿰뚫듯 쳐다보았다. 속에서 올라오는 쓴 물과 원초적인 거부감은 분노와 증오로 인해 한순간 증발한다.
‘흐으으……. 흑…….’
놈이 마치 인간처럼 울먹인다. 인간이길 거부하고 정체성을 역행하던 짐승이 죽을 때가 돼서야 인간처럼 눈물을 흘린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고, 그것보다 더 차가운 침묵이 지구대 내부를 묵직하게 짓누른다.
추운 날이었다.
* * *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같이 갈까요?’
강 형사가 불안한 듯 물었지만 난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박다혜와 김혜정은 현재 안정과 치료를 해야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을 현장에서 이탈시키기로 했고, 에덴까지 강 형사와 용팔이 형제를 동행시키기로 했다. 강 형사는 팀이 둘로 나뉘어 비교적 소수가 된 우리를 염려했지만, 난 매몰차게 그 걱정을 외면했다. 그리고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임을 강 형사에게 상기시켰다.
예상대로 부랑자들의 근거지는 이 근처에 있었다. 그놈들이 과연 우리가 찾는 부랑자 집단이 맞는지, 아니면 통합되지 않은 다른 부랑자들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나랑 노인이 그 근처를 정찰하고 올 생각이다. 미지의 적이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고, 실마리가 진실로 변해 내 곁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먼저 출발하세요.’
나는 강 형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장비와 짐을 챙기는 용팔이 형제를 바라봤다. 김혜정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어 있었지만, 박다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 것이다. 난 사무실과 연결된 무전기를 강 형사에게 넘겨주고, 무사히 나갈 수 있게 주변을 살피며 배웅해 주었다.
‘우.’
두식이가 에덴을 향해 걷다가 갑자기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그것을 시작으로 용팔이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강 형사도 얼떨결에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난 희미하게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일행들을 확인했다.
찬바람이 불고, 미묘한 떨림이 섞인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많은 게 변했어, 그치?’
많은 게 변했다. 세상이 변했기에 내가 바뀐 건지, 아니면 내가 변했기에 세상이 바뀐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변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앞으로 살기 위해서는 변해야 했다. 노인의 얼굴에는 짙은 그리움과 회한이 묻어 있었다.
‘먼저 나가 있을게.’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장비를 챙겨 나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리고 허벅지에 매달아 둔 대검을 꺼내 들고 다시 지구대 내부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는 전깃줄에 묶여 버둥거리는 그놈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입이 천으로 막혀 있기에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그는 눈물과 콧물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마지막 생을 되돌아봤다.
그래, 많은 게 변했지.
* * *
부랑자가 자백한 그놈들의 위치는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였다.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하나쯤은 존재하는 모 브랜드의 대형마트는 지금 같은 세상에선 누구나 탐낼 물자와 지리적 이점까지 존재하는 완벽한 요새였다.
난 지도 위에 그 지점을 표시하며 조용히 입김을 내뱉었다. 예전 탐색조가 기록하길 그곳은 비어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기록은 잘못된 정보였거나 혹은 조작된 정보였고, 이걸 기록한 탐색조 인원은 부랑자들의 첩자일 확률이 높았다. 첩자를 잡아서 다행이지,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게 딱 지금 같은 상황을 보며 만들어 낸 말이 아닌가 싶었다.
목적지를 정한 나는 노인과 함께 도시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인원이 적어진 만큼 속도는 더욱 올라간다. 거의 뛰다시피 한 걸음은 순식간에 골목을 돌파하고, 간혹 보이는 그놈들은 준비자세도 필요 없이 머리에 볼트를 꽂아 넣었다.
노인과 나는 마치 한 몸이 된 사람처럼 죽이 척척 맞았다. 그놈들을 발견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였고, 내가 손을 내밀면 볼트는 1초도 되지 않아 얹어진다. 그렇게 이동하기를 30분, 우리는 일행들이랑 같이 움직인 거리의 반 정도를 이동할 수 있었다.
목표로 한 대형마트가 저 멀리 보일 때쯤, 못이 잔뜩 박힌 바리케이드가 골목을 막고 있었다. 이 근처로 접근하는 것조차 막아 둔 걸까? 대형마트까지 500m 정도가 남았는데 생각보다 영역이 넓었다. 난 사방을 둘러보며 느껴지는 인기척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자 노인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탐색조 새끼들, 일 어지간히 못 했었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 넓은 영역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보통 무능한 거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난 에덴으로 돌아가는 즉시 탐색조들이 기록한 정보들을 다 초기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노인과 나는 일단 근처에 있는 상가 건물로 숨어들어 주변을 살피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여태 우리가 다녔던 지형이 좁은 골목과 낮은 빌라 건물이 대다수였다면, 이곳은 크고 높은 테크노 파크가 밀집된 장소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산업단지가 있었고, 그 앞으로는 우리가 목표로 했던 대형마트가 떡하니 존재했다.
노인은 나에게 망원경을 내밀었고, 우리는 옥상에서 정찰을 시작했다.
대형마트를 감싸고 있는 길은 모두 크고 긴 대로였고, 움직이지 못하는 차들로 빽빽하게 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 차 한가운데 마치 불도저로 치운 것 같은 작은 길이 존재했는데, 그곳에는 부랑자들로 보이는 인원들이 한 줄로 서서 걷고 있었다.
적어도 20명이다. 압도적인 숫자 앞에 난 침을 꿀꺽 삼켰고, 정신없이 망원경을 움직였다. 대형마트 창문은 거의 깨져 있었는데, 그 너머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인영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꼭 마트가 영업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중구난방처럼 돌아다니는 그놈들은 꼭 여왕개미가 없는 개미 떼 같았다. 빈민촌? 부랑자 소굴? 하나의 단체라고 하기에는 그들은 너무나 엉성했고, 심지어 보초를 서는 인원조차 없었다. 나는 부랑자들이 하나로 뭉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동윤아.’
노인이 나를 조용히 부르며 차들이 빽빽한 대로를 가리켰다. 내가 빠르게 망원경을 옮기자, 그곳에는 부랑자 무리가 사람들을 질질 끌며 대형마트로 복귀하고 있었다. 변종을 만났던 자리에서 발견한 부랑자들과 똑같았다. 그들은 인간사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발가벗은 사람만 10명, 이 종말 속에도 많은 생존자들이 살아남았고, 그들은 회색의 괴물들이 아닌 또 다른 괴물들에게 잡혀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난 일기장을 꺼내 주변 지형과 부랑자들의 분포도를 정신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대형마트 안은 무슨 풍경일까? 도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지? 난 입술을 물며 한참을 사색에 빠졌다. 그리고 지금 시간이 부랑자들이 한창 복귀할 시간인 걸 깨닫고 짙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피곤함을 몰려온다. 난 마른세수를 해 보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조급해 하지 마.’
노인이 조곤조곤 말하며 아쉬워 보이는 나를 달랬다. 맞다, 그저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놈들의 위치를 알았고, 대략적인 지형도 파악했다는 것이다. 다만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 그리고 생각보다 개활지에 위치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복귀할 시간이었다.
난 바닥에 내려놓은 장비들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지도 위에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곳 전체가 내가 예상하는 그놈들의 영역이었다. 이 근방을 기준으로 서서히 조여 가던가, 아니면 부랑자들의 꼬리를 잘라야 했다.
‘…….’
‘……꺅!’
그리고 그 순간 계단을 내려가려는 우리들의 귀로 들려서는 안 되는 비명이 작게 들려왔다. 갑작스럽다. 도대체 어디지? 분명히 이 근방이다. 이곳이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근처 건물인 걸 자각한 순간, 난 부랑자들이 복귀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간다는 걸 빠르게 추측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타이밍이 너무나 안 좋았다.
노인이 황급히 자세를 숙이고, 나도 계단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였다. 비명과 남자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 건물 옆 골목을 지나가는 걸까? 내 오른쪽 귀가 움찔거렸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자 목소리.
‘시발! 갈수록 줄어든다?’
그리고 여자 목소리.
‘아니, 몇 번을 말해요? 전투조의 손발이 잘렸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했잖아요!’
무슨 이야기지? 전투조? 전투조가 여기서 왜 나와?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필사적으로 기어 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어 골목을 지나가는 한 무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복귀하는 부랑자들인지 사람 3명을 개처럼 끌고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다친 성인 남성과 매질을 당하며 작은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 그리고 인질을 제외한 6명은 부랑자들로 보였고, 그 선두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남녀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었다.
선두에 있는 남자는 피가 덕지덕지 붙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고, 그 옆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여자는 깨끗한 복장에 심지어 비싸 보이는 야상까지 걸치고 있었다. 머리가 팽팽 돌았고, 로직들이 순식간에 흩어진다. 난 천천히 미간을 찡그리며 주먹을 꽉 잡았다.
‘확실해?’
남자는 음흉한 표정으로 혀를 핥더니 이내 여자의 허리로 손을 넣었다. 그러자 여자는 한눈에 봐도 가식처럼 보이는 애교를 부리며 남자에게 안겨 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살짝 돌려진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고, 들고 있던 크로스 보우를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볼트를 장전하고 노인에게 손짓한다.
저 여자, 회의할 때 본 간부 중 하나다.
진짜 꼬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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