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강 형사는 이동 방향을 근처에 있는 지구대나 경찰서로 잡자고 했다. 한 일주일은 적응 기간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로 향하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더 효과적인 방안이라면 그 의견을 아낌없이 들어 주기로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도착해서 듣기로 하고 우리는 강 형사가 짚어주는 지구대를 가장 첫 번째 목표로 잡았다.
임무 첫날은 모든 게 순조롭게 풀려갔다. 밝게 떠 있는 해는 우리를 축복해 주듯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고, 칼바람처럼 불던 바람도 오늘만큼은 조금 얌전한 기분이었다.
탁 트인 시야로 회색 도시가 고스란히 보이기 시작했다.
신경은 날카롭게 빛나고, 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움찔거린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회피 이동. 우리가 도시를 걷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면 세계를 걷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새로 들어온 인원을 위해 중간중간 설명해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이들은 내 노하우와 경험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야 한다. 이동할 때는 벌레처럼, 피할 때는 새처럼, 그리고 공격할 때는 맹수처럼.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고, 넓으면서도 결속된 무리는 우리가 위험천만한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고, 그 눈동자에는 비장함과 굳은 신뢰가 감돌고 있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그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경험하고, 느끼고, 그리고 한걸음 걷게 될 때마다 두려움과 맞설 용기를 축적한다.
두 시간이 지난다. 처음에는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마치 한 무리의 물고기 떼처럼 회색 바다를 가로지른다. 다리는 순풍을 만난 듯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이내 주위 풍경은 휙 휙 바뀌기 시작한다.
숨을 내뱉는다. 하얀 입김이 내 시야를 어지럽히고 뒤에서 내 일행들이 내뱉는 숨과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한다. 내가 방향을 옮기면 모든 인원이 그곳을 따라가고, 내가 몸을 멈추면 모든 인원이 자리에 멈춰 선다.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정면에 지구대 건물이 보였다.
내가 자세를 숙이자 모든 일행들이 동시에 몸을 낮춘다. 그리고 맨 뒤에서 일행들을 보살펴 주던 노인이 다가와 내 옆에 조심히 앉았다. 우리가 들어가려는 지구대 건물 앞에는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몸을 흔드는 그놈들 3마리가 존재했다.
노인이 중얼거린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여태 보여 준 것이 살기 위한 회피 이동이었다면, 지금 보여 줄 것은 그놈들과의 싸움이다. 피하지 못하는 길, 그리고 그놈들을 상대해야 할 상황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최대한 다치지 않고, 목숨을 잃지 않게 효과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내가 뒤를 향해 손짓하자 용케 말귀를 알아들은 강 형사와 김혜정이 재빠르게 기어와 내 옆에 앉는다. 난 그놈들이 듣지 못하게 소곤소곤 속삭이며 어떻게 해야 그놈들을 쉽게 제압하는지, 가지고 있는 약점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알려 주기 시작했다.
말로는 부족하다. 난 손을 뻗어 강 형사와 김혜정의 얼굴을 만졌고, 이내 칼이 들어가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 주었다. 몸이 기억해야 한다. 난 긴장으로 새하얗게 질린 둘을 바라보며 몸에 힘을 불어넣듯 어깨를 꾹 잡아 주었다.
‘두 명이 한 놈.’
3마리야 각자 크로스 보우를 한 발씩만 발사해도 끝난다. 하지만 원래 목적이 그것이 아니었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난 노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크로스 보우의 볼트를 장전하고, 재빠르게 개머리판을 견착한다. 싸늘한 칼바람이 손등을 훑고 지나가자 등골이 사늘하게 시려 온다.
퉁. 퉁.
건조한 발사음이 고막을 스치고 지나간다. 활대를 떠난 볼트는 맹렬하게 날아갔고, 이내 몸을 흔들고 있는 그놈들의 머리를 관통한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흰 눈 위에 검은색 피가 흩뿌려지며 더러운 몸체는 쓰러진다.
두 놈이 죽었다. 남은 놈은 한 마리. 주위에 있던 놈들이 쓰러지자 남아 있는 한 놈은 인지부조화가 왔는지 미친 듯이 사방으로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곧 골목에 숨어 볼트를 발사한 우리를 발견했고, 입을 쩍 벌리며 미친 듯이 기어오기 시작했다.
좋다. 주위에는 움직임을 방해할 장애물이 없는 큰 공터다. 난 크로스 보우를 내려놓고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강 형사와 김혜정에게 턱짓했다. 그러자 그 둘은 굳세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놈은 강 형사와 김혜정을 발견했고, 이내 목표를 변경한다. 목을 씹고, 피를 삼키자.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살육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놈을 본 순간 김혜정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하지만 강 형사는 긴장만 했을 뿐 몸을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절대 잡히면 안 된다. 내가 수없이 말한 그 충고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강 형사가 그놈이 뻗어오는 손을 피해 재빠르게 몸을 젖힌다. 그리고 강렬한 로우킥이 작렬했다. 몸의 중심이 무너진 그놈을 한순간에 넘어지게 했다.
눈 위로 육편이 떨어진다. 그들이 느끼는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아드레날린은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든다. 좋다. 이제 찔러라. 강 형사 뒤에서 잔뜩 굳어 있던 김혜정이 몸을 움찔거린다. 근육은 두려움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무뎌진 신경은 날카롭게 벼려진다.
김혜정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다. 그리고 입을 벌려 새된 비명과 같은 기합을 내뱉더니, 총검을 앞으로 내세우고 그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난 크로스 보우를 꾹 잡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길 빌었다.
김혜정은 내가 손가락으로 꾹 눌러진 부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간 대검은 그놈의 왼쪽 눈을 파고들어 갔고, 이내 뇌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대검을 휘저어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놓는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두려움을 삼킨다. 그녀의 얼굴은 공포와 살육이 주는 묘한 광기로 점철되어간다. 그리고 잠시 뒤 김혜정은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사람처럼 총을 놓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는다. 그리고 강 형사는 그 옆에서 그녀가 놓친 총을 주워들고 손을 조금씩 떨었다.
후욱.
옆에서 노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게 느껴졌고, 나도 그와 동시에 꾹 잡고 있는 크로스 보우를 아래로 내렸다. 손안에 고인 식은땀을 바지춤에 슥슥 닦고, 서늘한 등골을 자리에서 일어나며 움직여 준다. 이 정도면 괜찮다. 저 둘 다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난 그쪽으로 걸어가 바닥에 넘어져 있는 김혜정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놈의 시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강 형사를 내 옆으로 끌고 온다. 넋이 빠졌나? 아니, 강 형사의 눈빛은 또렷했고, 별다른 이상 없었다.
내 눈빛을 느낀 강 형사는 건조하게 소감을 내뱉었다.
‘괜찮습니다.’
* * *
지구대 안은 쑥대밭이었다. 바닥에 찍힌 발자국들은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색이 바래 있었고, 벽에 붙어 있는 핏자국들은 이미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간혹 보이는 옷 조각과 살점의 찌꺼기들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형님, 무기들도 챙길까요?’
용팔이는 어디서 발견했는지 모를 리볼버를 들고 와 내 앞에 내밀었다. 피가 묻어 있는 리볼버는 죽기 직전 발사되었는지 핏자국이 묻어 있었고, 탄약도 모두 사용되어 있었다. 난 유심히 그것을 살펴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모아서 숨겨 놓기만 해.’
우리는 무기를 찾으려고 온 것이 아니기에 괜히 가방의 무게를 늘릴 필요는 없었다. 일단 사무실에 통보해서 지도 위에 표시하게 해 놓고, 나중에 수거할 일이 생기면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부랑자들이나 다른 생존자들이 쓰지 못하게 꼭 숨겨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자고 한 강 형사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어디를 갔나 싶어 주위를 한참 살펴보니 그는 이미 지구대 내부로 들어가 서랍을 뒤지고, 컴퓨터 본체를 뜯어 HDD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아, 저것들을 챙기려고 지구대로 오자고 한 것이구나.
난 바쁘게 움직이는 강 형사를 도와주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서로의 눈치만 보던 다른 일행들은 내가 행동을 개시하자 나를 따라 움직이며 강 형사의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컴퓨터 본체를 뜯어 하드를 챙기거나 주위에 널려 있는 서류들과 종이 뭉치들을 무작정 가방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곧이어 가방이 묵직해지자 추위도 피할 겸 보온병에 챙겨 온 따뜻한 물도 마시고, 열량보충을 위한 간단한 간식도 챙겨 먹었다.
그놈들과 처음 마주한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인지 일행들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김혜정과 강 형사의 얼굴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묘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난 에너지 바를 입안에 욱여넣으며 앞으로의 행보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옆에서 조용히 초콜릿을 씹어 먹던 용팔이가 한쪽에 앉아 있는 박다혜를 향해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촐랑거리긴 해도 속이 깊은 용팔이다. 아까부터 뒤로 쳐지는 박다혜를 챙겨 주고, 마치 친오빠처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박 터지게 싸우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보일 만큼 용팔이는 능숙한 어른으로 변해 있었다.
그만큼 박다혜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용팔이다. 하지만 지구대로 들어올 때부터 박다혜의 상태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그 낌새를 캐치한 용팔이는 재빠르게 몸 상태를 물어보았고, 박다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귀가 붉어지고 주먹을 꼭 쥐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불안한지 발은 안쪽으로 당기고, 허벅지는 힘을 잔뜩 주고 있는지 부들부들 떨려온다. 아, 이거 혹시?
‘……화장실.’
순간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던 용팔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배를 잡고 바닥에 드러누워 시원한 웃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하하! 나는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 위해 고개를 돌려 몰래 웃었고, 주위에 있던 일행들도 남몰래 웃음을 터트렸다.
‘시, 시끄러워!’
박다혜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푹 숙인다. 아이도 사람인지라 묵직한 분위기 때문에 많이 긴장이 된 모양이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 용케 꾹꾹 참아온 것이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강 형사를 향해 물었다.
‘혹시 화장실이 있습니까?’
강 형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지구대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화장실이 있었나? 하지만 강 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사용할만한 여건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피와 살점이 널려 있는 화장실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어쩐담. 난 박다혜만큼 곤란함을 느끼며 턱을 쓰다듬었다. 결국,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혼자 내보내기엔 조금 그랬다. 나나 다른 일행이 동행한다고 그러면 입에 거품을 물고 거절할 아이인데 어쩌면 좋을까? 하지만 내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니랑 같이 갈까?’
아, 김혜정이 있었구나. 워낙 우리와 털털하고 격 없이 어울렸기에 간혹 그녀가 여자인 것을 망각하고는 했다. 그녀는 자신을 포함해 유일한 여자인 박다혜에게 다가와 살갑게 굴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를 꼬시는 것에 성공했다. 그 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에게 말했다.
‘지구대 바로 옆이니까 걱정하지 마요!’
아니,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려 줄 필요는 없는데……. 나는 당황하며 헛웃음을 지었고, 박다헤는 부끄러워 죽겠는지 고개를 푹 내렸다. 잠시 뒤 지구대 정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가까운 곳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둘이 무사히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손목시계와 지도를 확인했다. 강 형사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챙겼고, 시간도 생각보다 넉넉히 남았다. 두어 바퀴 더 돌아볼까? 난 주요지점을 펜으로 콕콕 찍으며 사무실을 향해 부지런히 무전을 시작했다.
지구대 내부에 있는 모든 일행들이 눈을 감고 있다. 오직 싸늘한 바람 소리와 내 무전기 잡음만이 가득한 지구대 내부는 을씨년스러울 만큼 어둡고 칙칙했다. 난 그 한가운데에서 입김을 훅 내뱉고 얼어붙은 손을 부지런히 비볐다.
그리고 순간 내 귀 끝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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